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58화 (58/201)

58화

김진석은 일부러 미노타우로스를 잡으러 간 이유가 있었다.

미노타우로스는 자기 레벨보다 강력한 몬스터로 웬만하면 거의 잡으러 가지 않는 몬스터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진석이 굳이 그곳으로 간 이유는 바로 엘우드 때문이었다.

게임 속에서 엘우드에 몬스터들이 침공한 사건이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인간 사이에 숨어 있던 마족이 몬스터를 이끌고 침공해 왔다.

그 몬스터 중에는 인간형 몬스터가 대부분이었다. 고블린을 비롯해 방금 잡은 미노타우로스까지.

수많은 인간형 몬스터가 엘우드를 침공해 왔고, 엘프들은 열심히 막아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때 나타나는 게 주인공, 플레이어다.

플레이어가 레벨 40이 됐을 때.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무조건 미노타우로스를 잡으러 온다. 아무 이유 없이 미노타우로스를 잡으러 가라고 퀘스트가 말해 플레이어는 엘우드 근처의 숲으로 오게 된다.

그런데 숲에서는 단 한 마리의 미노타우로스도 발견할 수 없었다. 플레이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찾으러 돌아다닐 때 갑자기 주변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고, 그곳에 가니 마족이 엘우드를 침공하고 있던 것이다.

게임 속에서의 일이었기에 그 일이 정확히 언제 벌어질지는 알기 어려웠다.

다만 김진석은 기사 학교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으니 주변에 일어나는 큰일 중 하나인 엘우드의 상태가 어떤지 보러 온 것이다.

“미노타우로스가 별로 없긴 하지만… 아예 없지는 않으니깐.”

그렇게 김진석이 안심하고 있을 때 어딘가를 보고 있던 다이아의 표정이 급격히 나빠지더니 노라와 김진석을 보며 말했다.

“잠시 어디 좀 다녀올 수 있을까요? 갑자기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노라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다이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상 가는 게 있는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같이 가시죠?”

“예? 아니…….”

보기 드문 다이아의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그걸 여유롭게 볼 시간은 없었다.

“엘우드, 위험한 거 아닙니까?”

“…….”

다이아는 김진석을 잠시 바라보다가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 뭔 일인데… 야?! 같이 가!”

노라는 알 수 없는 둘의 말에 어리둥절한 채 있다가 다이아가 달려가고 그 뒤로 김진석이 따라가니 급히 뒤를 따라 달렸다.

* * *

“…쯧.”

김진석은 다이아의 뒤를 따라 달려가며 주변 상황을 보고 있었다.

다이아는 올곧게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는 게 아닌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엘우드에 들어서는 방법이다.

정확한 부분에서 방향을 꺾고 달리고 걷고를 반복했고, 이내 갑자기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그저 우연히 엘우드에 들어섰다는 설정이지만 다이아는 엘우드에 들어가는 방법을 전부 알고 있었다.

숲이었던 주변이 갑자기 바뀌었다. 원래 엘우드는 마찬가지로 숲이었지만 하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나무가 심어 있다.

온통 나뭇잎으로 뒤덮여 있어야 하는 엘우드여야 했지만 지금의 엘우드 상황은 매우 좋지 못했다.

나뭇잎은커녕 나무들이 뭔가에 강제로 부서져 있었고, 불에 타 쓰러지고 있었다.

다이아의 표정이 점점 굳고 있었고, 노라도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채 묵묵히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때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로운 비명과 급박한 고함. 절대 평범한 상황이 아니었다.

다이아는 그 소리에 노라와 김진석조차 따라가기 벅찰 정도의 속도를 내며 달려 나갔다.

“노라, 먼저 달려가지 마시고 상황을 살피죠.”

“…알겠어.”

김진석은 이미 달려간 다이아를 내버려 두고 노라에게 말했다. 노라도 다이아를 뒤따라 스킬까지 사용하려 했지만 김진석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둘이 발견한 건 수많은 몬스터의 군세였다.

익숙한 고블린과 임프들은 물론이고 강력한 미노타우로스와 처음 보는 기괴한 인간형 몬스터까지.

그리고 그 중앙에 서 있는 몬스터는 미노타우로스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칠흑같이 새까만 가죽과 털, 뿔이 위로 자라나 있고 그 위에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바포메트.”

[바포메트. LV:59]

몬스터를 이끄는 마족이다. 놈이 왜 엘우드를 침공했을까? 딱히 이유가 없었다. 그저 놈이 엘우드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거슬리는 엘프들을 죽이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게다가 엘우드는 숨겨져 있고, 그곳에 사는 엘프들은 폐쇄적이기 때문에 이곳을 침공해도 주변에 있는 인간들이 도와줄 수가 없었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도와줄 수 있던 건 정말 우연이었다.

다이아는 이미 몬스터들의 수장인 바포메트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화살이 놈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문제는 다이아의 화살조차도 바포메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포메트는 화살을 손으로 가볍게 쳐 내며 화살을 쏘아 낸 자를 바라봤다. 다이아는 몬스터들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며 바포메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었다.

다이아가 그러는 이유는 당연히 있었다.

엘프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고, 몬스터들을 힘겹게 몰아내고 있었다. 화살과 여러 마법, 엘프들에겐 드물지만 방패를 들고 전위에 서는 자들까지.

하지만 몬스터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들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지만 힘겨워 보였다. 게다가 게임 속에서 바포메트가 침공할 때 수장을 비롯한 강한 엘프들이 없었다.

아무리 폐쇄적인 엘우드 엘프들이라지만 다른 엘프들의 도움 요청을 무시할 순 없었다. 나중에 나올 얘기였지만 그들은 어떤 나라에 묶여 있는 상태였다.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상태였고, 하필 그때 바포메트가 침공한 것이다.

“노라, 다이아를 도와주세요. 저 몬스터, 심상치 않습니다. 다이아 씨의 화살이 통하지 않는 것만 봐도 괴물 같은 놈입니다.”

“알았어. 너는?”

“전 저기 엘프들을 돕겠습니다.”

“그래… 조심해.”

“노라도요.”

둘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노라는 다이아에게, 김진석은 엘프들에게 달려갔다.

* * *

엘프들은 2시간 전부터 이어지는 몬스터의 침공에 지칠 대로 지쳤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모를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엘우드를 침공해 왔다.

놈들은 엘우드에 걸린 마법이 통하지 않는지 바퀴벌레보다 많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한 엘프가 나타나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다이아인가?”

그녀의 고향인 만큼 다이아를 아는 엘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그녀를 보고 엘리온이 왔을까 싶어 잠깐 희망적인 기분을 가졌지만 금방 사그라졌다.

다이아 또한 강력한 인물이었지만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 미노타우로스가 엘프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엘프들은 전위에서 갑자기 뛰어 들어온 미노타우로스를 멍하니 쳐다봤고, 미노타우로스가 그 거대한 손을 엘프들에게 휘두르는 순간.

“관통 샷.”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미노타우로스의 손목을 뚫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미노타우로스에 비하면 조그마하지만 거구인 한 남자가 놈의 목 뒤에 안착했다.

“이레이저.”

미노타우로스의 목에서 피가 솟구치며 엎어졌고, 남자는 그대로 땅바닥에 착지했다. 레벨 40이 넘는 미노타우로스는 그렇게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인간?”

“인간이 어떻게 여길……?!”

엘프라고 뚜렷이 알 수 있는 귀가 그에겐 없었다. 즉, 인간이란 뜻이었지만 엘우드는 인간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엘프들은 그를 경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경계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그들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이다.

“다이아 씨가 부탁해서 오게 됐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떻죠?”

그 남자, 김진석은 가볍게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엘프들에게 말했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김진석이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뚫고 오면서 잠깐 공세가 멈췄고, 전장 최전방에 있던 엘프 남자가 김진석의 앞에까지 걸어왔다.

“엘우드 부사령관 오르페라고 한다. 인간이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묻지는 않겠다.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나?”

김진석은 누가 봐도 자신을 하대하는 오르페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지만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었다.

게임 속에서는 이 공세를 막으면 바포메트는 잠깐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때 엘리온과 다이아가 어떻게 알고 이곳에 와서 공세를 막을 수 있게 된다.

이때 다이아를 플레이어가 처음 만나지만 김진석은 이미 알고 지낸 사이였다. 다이아가 이미 이곳에 있는 이상 이후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게다가 바포메트가 물러난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 알 수 있는 것. 리치와 같이 바포메트를 중심으로 모인 몬스터들이라 놈만 죽이면 몬스터들은 알아서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죽일 수 있냐는 것이다.

[오르페. LV:44.]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엘프 중에서 가장 강력한 자가 고작해야 레벨 44다. 절대 낮은 레벨은 아니었지만 지금 다이아가 상대하고 있는 바포메트의 레벨에 비해선 턱도 없었다.

노라가 가세하고 있다지만 둘은 바포메트의 상대도 되지 않고 있었다.

바포메트는 마족으로 인간과 다름없는, 지능이 매우 뛰어난 자다. 놈은 가지고 놀 듯이 주변의 몬스터들을 물리고 혼자서 둘을 상대하고 있었다.

노라와 다이아가 바포메트의 시선을 끌고 있었지만 소 머리인 놈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저 거대한 소머리 몬스터가 적의 우두머리입니다. 놈만 잡으면 다른 몬스터들은 금방 사라질 겁니다. 저희가 저놈을 잡을 동안 다른 몬스터들을 신경 써 주시면 됩니다.”

물론 오르페와 그를 비롯한 강한 엘프들이 가세한다면 바포메트를 죽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전장에는 바포메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즉, 김진석이 말하는 건 지금 하는 것만 잘하라는 말이다. 괜히 자신들의 싸움에 끼지 말고.

오르페가 뭔가 말하기도 전에 김진석은 몬스터 밭을 뚫고 노라와 다이아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인간을 좋아하는 엘프가 왜 있는지 모르겠군.”

* * *

“괜찮으십니까?”

“…아니.”

“…아뇨.”

김진석은 금방 바포메트의 앞까지 왔지만 노라와 다이아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고, 둘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그녀 둘이 한계까지 몰아쳐진 것이다.

“잠시 쉬고 계세요. 제가 상대하고 있죠.”

“호오, 또 다른 인간인가. 숨겨진 엘프의 마을이라곤 하지만 인간이 자주 보이는데.”

김진석의 그녀들에게 말하고 있을 때 바포메트가 흥미 깊은 눈으로 김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을 동시에 상대했음에도 놈은 여유로워 보였다. 놈과 레벨이 같은 레온하르트라고 한들 둘을 상대하면서 저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바포메트는 게임 속에서 보스급 몬스터. 같은 레벨이라고 한들 플레이어보다 훨씬 강한 존재다.

김진석은 바포메트를 잠시 바라봤다.

엘리트 미노타우로스와 비슷한 크기였지만 느껴지는 압박감이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김진석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원래 바포메트는 악마다. 스토리상에서 나온, 눈앞에 있는 바포메트는 후에 레이드 몬스터로 나올 진짜 악마 바포메트의 예행 연습용 몬스터일 뿐이다.

악마 바포메트는 마족과 달리 훨씬 거대하고 날개까지 달린, 정말 괴물이었다.

“너보다 강한 놈을 수십, 수백 번을 잡았었다. 고작 너에게 당할 내가 아니야.”

“…무슨 소리지?”

비록 게임 속 이야기지만 김진석은 악마 바포메트를 과장 없이 수백 번을 잡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걸 현실에서도 해야 할 수도 있다.

눈앞의 마족 바포메트 정도는 눈 감고도 잡을 수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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