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하지만 대회가 끝난 건 아니었다.
하필 김진석의 대진은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의 경기 이후였고, 대진 상대는 마찬가지로 교수였지만 김진석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교수를 이겼다.
앞의 경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그렇게 다음 날.
대회의 마지막 경기만이 남아 있었다.
“대단하군. 결승까지 올라올 줄이야. 그래도 자네 경기를 지켜봤는데 다 쟁쟁한 교수들이었는데도 비교적 쉽게 이기더군.”
“감사합니다. 레온하르트 님의 경기도 대단했습니다.”
둘은 으레 나누는 덕담을 서로에게 했다. 하지만 둘 다 빈말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경기를 감명 깊게 보았으니깐.
“나도 훈련에 몰두하긴 했다만 자네의 경기는 인상 깊었네.”
이번 경기의 심판인 엘리온도 김진석을 칭찬하고 있었다. 김진석은 익숙하지 않은 칭찬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레온하르트가 알아서 하겠지만 혹여나 일이 벌어져도 내가 수습할 수 있으니 자네도 최선을 다하게.”
“알겠습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경기에 관중들의 열기는 식었지만 김진석이 최소 교수급이란 걸 아는 관중들은 전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재밌어 보이는 경기에 환호성을 내주었다.
“결승! 시작합니다!”
* * *
길고 길었던 대회가 끝났다.
결승의 결과는 당연히 레온하르트의 승리. 김진석도 꽤 분전했지만 레온하르트의 단단한 성벽 같은 방어력을 뚫어내진 못했다.
세계수의 인정과 차징 샷을 사용했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겠지만 설령 그게 통했다고 한들 어차피 상대를 죽이려고 싸우는 게 아니었다.
활과 단검, 스킬 등등 모든 수단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직 김진석의 체력은 끝나지 않았지만 레온하르트를 뚫을 수단이 없었던 김진석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그나마 그것도 레온하르트가 공격을 안 하고 방어만을 하며 김진석의 실력을 보려고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경기가 끝나고 김진석의 교수인 노라와 다이아가 다가왔고, 엘리온과 레온하르트는 흐뭇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다.
김진석의 재능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노라와 다이아도 첫 교수직이었다. 학생이 뛰어나다고 한들 교수의 능력이 부족하면 학생의 앞길을 막는다.
“단검을 다루는 기술은 투박하지만 간결했다. 상대를 죽이려는 그의 눈빛은 내게도 압박이 오더군.”
“단검도 대단했지만 활, 활을 다루는 솜씨가 절대 한두 달 사이에 배울 수 있을 수준이 아닌데 말이지.”
레온하르트는 단검을, 엘리온은 활을 다루는 솜씨를 칭찬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저 멋쩍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진짜 교수들이었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알려 주었겠지만 그녀들은 아니었다. 강의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그저 김진석의 재능과 실전 경험을 끌어 올려 줬을 뿐이었다.
* * *
다렌과 찰스는 칼라 성에 있는 대회를 구경하고 있었다.
“저자… 김진석과 똑같이 생겼는데.”
“대장님도 그렇게 생각했나요? 머리 스타일 말고는 진짜 다 똑같네요.”
이번 대회의 주역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눈에 띈 자가 바로 김진석이었다.
당연히 다렌과 찰스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김진석은 다이아의 조언을 따라 지저분했던 머리를 시원하게 잘랐었다. 이 세계에 들어왔을 때도 비슷한 머리카락이었지만 훨씬 더 너저분했다.
당연하지만 머리카락에는 별 관심이 없는 김진석이었으니 한번 자를 때 시원하게 자르는 편이었다.
이 세계에 들어왔을 때는 머리를 자르고 한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고, 지금의 머리보다 훨씬 더 길었다.
분명 머리 스타일 말고는 김진석이 분명했지만 다렌과 찰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둘이 만났던 김진석은 레벨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김진석은 교수조차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각성했다고 한들 고작 3, 4개월 사이에 교수를 이길 힘을 가질 자는 아무도 없었다.
“진짜 그냥 비슷하게 생긴 자인… 건가?”
그 의심 많은 다렌조차도 헷갈리고 있었다. 게다가 찰스보다도 더 정의로운 레온하르트가 그를 기사 학교에 입학시켰고 엘리온도 그를 묵인하고 있었으니 다렌과 찰스는 그를 들먹이기 어려웠다.
“레온하르트 님을 의심하는 건… 아니죠, 대장님?”
“…돌아가자.”
* * *
대회가 끝난 지 3개월이 지났다.
김진석이 기사 학교에 입학한 지 6개월이 된 시점, 그의 레벨이 38이 되었다. 고속 성장이나 다름없었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도 그의 곁을 보조하는 노라와 다이아 덕분이었다.
게다가 다이아의 레벨도 49로 레벨 업을 했고, 노라도 45로 2 레벨 업이나 했다.
그리고 지금 셋은 이름 모를 숲에서 지난 3개월간처럼 몬스터를 잡고 있었다.
“노라, 최대한 다리를 노리세요. 놈이 기동성을 없애야 합니다. 다이아 씨, 놈의 뿔을 주목하세요. 또 무슨 스킬을 사용할지 모릅니다.”
김진석은 어느새 둘보다 앞장서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고, 둘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둘은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김진석의 말을 순순히 따르고 있었다.
셋이서 이미 수많은 몬스터를 잡아 왔고, 그때마다 김진석의 재능에 놀란 그녀들이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몬스터를 죽이는 재능 하나만큼은 둘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게다가 지금 셋이서 상대하는 몬스터는 그녀들도 무시할 수 없고, 처음 잡아 보는 몬스터였다.
[엘리트 미노타우로스. LV:46]
미노타우로스, 그것도 엘리트였다.
일반적인 미노타우로스는 인간의 모습에 소를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자그마치 4미터의 거구에 소의 머리와 발굽, 하지만 인간의 모습인 미노타우로스는 정말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미노타우로스의 레벨은 42. 하지만 눈앞에 있는 엘리트 미노타우로스의 레벨은 46이다.
바지만 있는 일반 미노타우로스와 달리 엘리트 미노타우로스는 마치 기사와 같이 갑옷을 입고 있었다.
레온하르트처럼 온몸을 감싼 갑옷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놈은 일반 미노타우로스와 달리 제대로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놈의 머리 위에 난 거대한 뿔에서 노란색 구가 생겨나고 있었다.
“다이아 씨!”
다이아는 김진석의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활을 쏘아 내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김진석도 스킬을 사용했다.
“관통 샷.”
다이아 그녀가 김진석에게 직접 추천해 주었던 스킬. 둘이 동시에, 화살을 엘리트 미노타우로스의 머리를 향해 쏘아 냈다.
하지만 그건 미노타우로스를 노린 게 아닌 놈의 스킬을 노리고 있었다.
게임 속에서도 엘리트 미노타우로스는 스킬이 있었다. 따로 이름은 없었지만 놈은 뿔 위에 기를 모으고 레이저 같은 걸 발사했다.
김진석은 그걸 기억하고 있었지만 놈과 조우하자마자 바로 사용할 줄은 몰랐다. 다행히 셋은 재빨리 움직여 피했는데, 땅바닥에 구멍이 뚫리는, 심상치 않은 그 위력에 셋은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김진석의 임기응변이었다.
노라와 다이아의 싸움을 보고 스킬로 스킬을 상쇄할 수 있다는 건 알긴 했다.
그래서 일부러 놈이 레이저를 쏘기 전에 화살을 먼저 쏘아 냈고, 다행히 그의 예상은 적중해 머리 위에 모이던 노란색 구가 화살에 맞고 사라졌다.
“노라!”
“알고 있어!”
“어썰트.”
그와 동시에 김진석은 활을 집어 던지고 바로 단검을 꺼내 들며 노라와 함께 스킬을 사용해 미노타우로스에게 달려갔다.
미노타우로스는 자기 몸만 한 거대한 도끼를 들고 달려오는 둘을 내려쳤다.
노라와 김진석은 마치 짠 듯이 양옆으로 산개하며 피했다. 하지만 과연 미노타우로스였는지 도끼가 땅에 닿으니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나며 충격파가 일었다.
김진석과 노라는 그 충격파에 허공에 붕 떴지만 노라는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발판이 있는 듯 허공을 박차며 앞으로 날아갔다.
“이레이저.”
노라는 대상의 목을 긋는 스킬인 이레이저를 사용했다. 김진석이 기동성을 끊으라고 말했지만 목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노라도 생각이 있었다.
미노타우로스도 놀고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 거대한 도끼를 손에 놓고 목 뒤로 날아오른 노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두꺼운 팔로 노라를 붙잡았지만 다이아가 그 팔에 정확히 화살을 꽂아 넣었다.
꾸워어엉!
미노타우로스는 화살이 팔에 꽂혔지만 노라를 놓지 않았고, 그대로 노라를 짓뭉개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날아갔던 김진석이 돌아왔다.
“은밀한 발걸음. 스텝. 슬라이서.”
세 개의 스킬을 적절히 조합해 몰래 미노타우로스에게 달려들었고, 스킬 슬라이서로 정확히 놈의 발목을 베었다.
자칫하면 노라는 죽을 뻔했지만 그녀는 김진석과 다이아를 믿었고, 둘은 그에 부응했다.
김진석은 정확히 갑옷이 둘러싸여 있지 않은 발목을 베었고, 미노타우로스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노라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면서 노라는 아직 끝까지 발동되지 않았던 스킬, 이레이저를 마저 사용했다.
하지만 놈은 쉽게 죽지 않았다.
그래도 그 기세를 몰아 김진석과 다이아가 공격했고, 결국 엘리트 미노타우로스는 그렇게 쓰러졌다.
【 엘우드와 마족 】
[강철 궁. LV:35. 공격력 41]
“이걸 제가 받아도 됩니까?”
“엉, 이번에 몬스터 잡고 떨어진 아이템이 돈이 좀 짭짤했어.”
엘리트 미노타우로스를 잡고 아이템이 떨어졌다. 아쉽게도 셋이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고, 그걸 상점에 팔아 금화를 번 것이다.
김진석은 지금껏 변변치 않은 활을 사용해 왔는데 김진석의 레벨에 맞는 활을 노라와 다이아가 사다 주었다.
셋은 애초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정확히 아이템과 금화 배분을 1/3로 나누었다. 세계수의 인정을 평범하게 사용할 수 없었으니 김진석은 돈을 모아 활 하나를 장만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녀들이 먼저 선수 쳐 김진석에게 선물해 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선물을 받은 적이 노라에게 처음이었고, 두 번째는 노라와 다이아였다. 뭔가 감정이 오묘해진 김진석이었지만…….
절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혹시 졸업은 언제 하십니까?”
다이아는 강철 궁을 감명 깊게 보고 있던 김진석에게 물었다. 노라는 왜 그런 걸 물어보냐고, 눈빛으로 다이아를 힐난이고 있었다.
“졸업이요?”
기사 학교의 졸업은 매우 특이하다.
학생은 자신이 원할 때 얼마든지 졸업 신청을 할 수 있었고, 그를 가르치는 교수는 신청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단, 그 학생이 졸업할 만한 지식과 능력을 가졌는지 시험해 봐야 했다.
당연히 교수의 눈에 든 학생은 교수의 시험이 프리 패스였지만 이사장의 공인이 있어야만이 졸업할 수 있었다.
물론 김진석은 이사장과 교수 둘 다 눈에 들었기에 졸업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음…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아마 제 레벨이 칼라 성 근처에 있는 몬스터들보다 높아지면 졸업할 것 같습니다.”
김진석이 레벨 업을 순식간에 할 수 있었던 것은 둘의 도움으로, 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칼라 성 근처에 있는 몬스터들은 김진석과 레벨이 비슷하거나 김진석이 더 높았기에 지금 미노타우로스를 잡으러 온 곳도 칼라 성 근처보다는 다른 마을과 더 가까웠다.
엘우드 마을. 과거 악마들의 침공이 있기 전 인간들에게 데인 엘프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사실 마을이라고 하기보다 도시라고 하는 게 엘프들에겐 맞았다.
인간들보다 훨씬 인원수가 적은 그들은 인간의 마을에 있는 인원수랑 그들의 도시, 엘우드에 사는 엘프들과 수가 같았기에 마을이라고도 불리고, 도시라고도 불렸다.
그리고 그곳은 다이아와 엘리온의 고향이었다.
하지만 엘우드는 숨겨져 있었고, 레온하르트조차도 모르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