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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55화 (55/201)

55화

“마력 무기.”

엘리온이 쓴 스킬, 마력 무기.

마법사들이 가장 쓸모없어하는 스킬 중 하나로 자신의 무기에 마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마법사의 무기는 마나에 도움을 주는 아이템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엘리온은 내구성이 높지도 않은, 훈련장에서 준 나무 지팡이에다가 마력 무기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푸르른 마나가 흐르는 나무 지팡이를 들고, 엘리온은 살란이 달려오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살란은 그런 엘리온을 보면서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순식간에 다가간 살란은 가장 강력한 공격인 찌르기보다는 거리를 유지하며 창을 옆으로 휘두르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엘리온은 그런 살란의 공격을 한 손에 든 지팡이 하나로 가볍게 막아냈다.

살란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공격을 막아 낸 엘리온의 주변에서 바람이 일 정도였지만 엘리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온화한 얼굴을 한 엘리온과 다르게 지금의 엘리온에게선 다이아의 모습이 보였다.

“남매가 맞긴 하군요.”

“…….”

엘리온은 나무 지팡이로 거대한 창을 밀어내며 오히려 살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워낙 거대한 창을 들고 있던 살란은 오히려 마법사가 파고드는 거에 당황했다.

하지만 살란도 한 기사단의 기사단장이었고, 곧장 대응했다.

* * *

“…졌습니다.”

“승자! 엘리온 이사장!”

김진석은 결과는 예상했지만 과정이 생각한 거와 전혀 달랐다.

엘리온이 스킬 몇 개 사용해서 가볍게 이길 줄 알았다. 아무리 레벨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레벨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직업이 마법사였으니.

그런데 오히려 딱 두 개의 스킬만을 사용해서, 오로지 육체만 이용해서 한 기사단의 기사단장을 이겨 버렸다.

그것도 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말이다.

“…후.”

하지만 엘리온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레벨이 높다고 한들 상대는 기사단의 기사단장이었으니.

그런데 대진이 끝나고 엘리온의 시선이 어디론가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곳엔 레온하르트가 있었다.

레온하르트는 진지하게 엘리온의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경기장의 관중들은 생각 외로 수수했지만 엄청난 경기에 환호하다가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고요해졌다.

“…둘이 싸웠나?”

상황을 모르는 관중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김진석은 노라, 다이아와 헤어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오늘 그가 본 엘리온과 살란의 싸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김진석은 캐릭터를 키울 때 카이를 제외하고 전부 PVP에 능한 캐릭터만을 키웠었다.

실제로 그런 캐릭터로 약한 마법사 같은 캐릭터한테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작 키보드 두드리는 것으로 컨트롤을 하는 게임 캐릭터가 아닌, 실제 인물이 자신의 몸을 움직여 직업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마법사가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말이다.

“원래 강한 자란 건 알고 있었지만…….”

로스트 월드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인 엘리온이었지만 이 정도 수준인 줄은 몰랐다. 게임 속에서는 레벨이 높으니 강하다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레벨이 높다고 무조건 강한 건 아니었지만 레벨이 높다는 건 그만큼 경험이 있다는 거다. 겉모습은 아름다운 남성의 모습인 엘리온이었지만 속은 레벨이 57인 괴물이었다.

“이곳에 와서 기절도 많이 하고 배우는 게 많네.”

* * *

다음 날.

그날부터 다시 대진은 하루에 한 번 있었다. 걸러질 만큼 걸러졌고, 이제는 대진이 빨리 끝나지 않았다.

이번 김진석의 대진은 학생이 아니었다. 교수였다.

김진석은 그 교수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다.

[시시. LV:34]

전에 김진석에게 집적댔던 교수 중 한 명이었다. 기억도 안 나는 기사단 소속으로 김진석을 자신의 기사단에 영입하려고 했다.

“야. 저놈 죽여 버려, 그냥.”

노라는 저 교수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나쁜 쪽으로.

김진석은 딱히 노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도 기분이 좋진 않았다.

“경기! 시작하겠습…….”

“리안 씨.”

“…예?”

대진이 끝나면 말도 없이 그저 돌아가는 김진석이었지만 처음으로 심판에게 질문했다. 오히려 심판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진검을 사용해도 됩니까?”

“아……! 괜찮습니다. 학생은 원래…….”

“아뇨, 저 말고요. 저 교수님이요.”

김진석은 자신이 아닌 앞에 멀뚱멀뚱 서 있는 교수를 가리켰다. 그는 교수라서 평범한 나무 검 하나를 들고 있었다.

“전 상관없으니 교수님도 무기 드시죠.”

“…이익!”

김진석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교수한테는 도발로 느껴졌다.

김진석이 이 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

레온하르트, 엘리온과 싸우는 것. 즉, 강한 인물과 싸우는 거다.

눈앞에 교수도 약해 보이긴 하지만 레벨은 김진석보다 높은 기사다.

기사 학교에까지 초청받은 기사였으니 절대 방심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하는 짓은 쫌팽이나 다름없지만 말이지.”

“…….”

김진석의 생각을 읽었는지 노라가 대놓고 들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심판 리안은 김진석과 시시 교수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다가 시시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님이 허락한다면 상관없을 거 같습니다만… 어쩌실 겁니까?”

“…들겠습니다.”

시시 교수는 심판에게 말하며 훈련장에서 주는 나무 검을 구석 한편으로 집어 던지며 어디론가 향했다. 자존심이 꽤나 상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일반적인 검이 아닌 찌르기에 특화된, 마치 레이피어 같은 무기를 들고 돌아왔다.

김진석은 그 무기에 남들이 보면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실제로 그 미소를 본 일반인들이 닭살이 돋아 팔을 비비고 있었지만 이젠 김진석을 잘 아는 노라와 다이아는 그 미소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저거, 새로운 거랑 싸운다고 좋아하네.”

“왜 그가 인간이랑 싸우는 걸 좋아할까요? 이해할 수 없네요.”

하지만 그녀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김진석은 당연히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인간이랑 싸우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무기를 든 인간이랑 싸우는 걸 좋아하는 거다.

이렇게 말해도 이상하게 들릴 뿐이지만 그는 싸움이 재밌었다.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는 게 김진석은 기분이 좋았다.

언제부턴가 미래에 있을 큰 사건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지는 게 목표였던 김진석이, 이제는 싸움 자체가 즐거워져 버린 것이다.

싸움의 스릴을 즐기는, 마치 익스트림 스포츠처럼 말이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자는 이미 그거에 중독돼 일반적인 쾌감에는 둔감해진다고 했다.

지금 김진석이 그 상태와 같았다.

“시작!”

그때 심판 리안이 대진의 시작을 알렸다.

김진석은 단검을 들고 있었다. 앞의 교수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활만 사용한다면 저 무기의 특성을 알지도 못한 채 이길 수도 있었다.

애초에 지금까지 오면서 김진석이 무기를 든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검을 들고 앞의 시시 교수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레이피어를 허공에 찔렀다.

그와 동시에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김진석을 향해 날아왔다.

물론 그의 스킬이 아닌 아이템에 들어 있는 스킬이었고, 당연히 김진석은 그 아이템을 감정한 상태였다.

땅바닥을 가르며 날아오는 칼바람은 위협적이었다.

“스탭.”

하지만 속도만 빠를 뿐 공격 범위가 그리 넓지 않았으니 김진석은 스킬을 사용해서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시시는 너무나 가볍게 피하는 김진석의 모습에 살짝 놀랐지만 지금껏 보여 줬던 기행이 있었으니 곧바로 김진석에게 달려들었다.

이번 대회에서 김진석이 무기를 든 경우는 처음이었지만 활을 사용하는 김진석의 모습이 자주 보였으니 경계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김진석은 이번엔 활을 사용할 맘은 없었고, 단검을 들고 찔러 오는 레이피어를 쳐 냈다.

* * *

“에메랄드 교수?”

“…예. 왜 그러시죠, 노라 교수님.”

그래도 지금은 보는 눈이 있으니 노라는 다이아에게 존댓말을 하며 불렀다. 물론 노라는 딱히 그런 건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다이아를 생각해서 해 준 것이다.

“저 교수, 진심으로 하는 거 맞나?”

“아마 맞을 겁니다.”

“…그래?”

노라는 시시 교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생들 수준 보고 실망하긴 했는데… 교수도 저럴 줄은 몰랐는데.”

“…당신의 수준이 너무 높은 겁니다. 그는 동레벨 기사 중에서 강한 자입니다.”

노라는 시시 교수를 보고 실망했다. 그의 수준이 너무나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이아가 말했다시피 그는 이 세계에서 재능이 수준급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노라의 눈에는 형편없었다.

“아무리 봐도 카이가 대충 하고 있는데? 이미 쟤 눈은 따분하다는 표정이야.”

김진석은 처음에는 교수랑 싸운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비록 그보다 레벨이 별로 높진 않았지만 기사 학교의 교수였으니 재밌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 * *

김진석은 처음에는 거릴 두며 레이피어로 치고 빠지는 전략을 사용하는 시시 교수가 까다로웠다.

다가가려 하면 기사답지 않은 얇디얇은 몸으로 김진석의 단검을 가볍게 피해 냈다.

게다가 그는 진심으로 김진석을 뭉개 주겠다는 건지 무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사단 로고가 박혀 있는 기사 갑옷까지 입고 왔다.

게다가 그의 방어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한 손으로 레이피어를 사용하는 자라 그런지 파고들어 오는 김진석을 손으로 쳐 내는 기술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

레이피어로 찌르는 게 위협적이고, 속도도 빨랐지만 김진석에게 닿지 않았다. 애초에 시시 교수와 비교하기도 미안한 노라와 다이아와 함께 다닌 김진석이었다.

둘과 실전 같이 싸운 적도 있었으니 시시 교수의 속도는 그에게 하품만 나올 수준이었다.

“이익……!”

하필 시시 교수의 장점도 그의 속도였으니 그 속도가 통하지 않는 김진석에겐 아무리 공격해도 닿지 않았다.

게다가 훈련이 목적이니 깻잎 한 장 차이로 피하는 김진석을 시시 교수는 이 악물고 공격하고 있었다.

그 경기를 보던 학생들과 관중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학생이라 하지 않았어?”

“아니, 다른 학생들이랑 그냥 수준이 차이 나는 줄 알았는데… 교수도 저 학생을 못 이기네?”

“저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는 누구야?”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에 괜히 노라는 콧대가 높아졌다.

“당신이 가르친 거 아니잖아요?”

“시끄러. 내 학생이니 내가 가르친 거야.”

그때 김진석은 레이피어를 위로 튕겨 내고 스킬을 사용해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들으란 듯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게 전부십니까?”

“…뭐라?”

겉으로 보기에도 시시 교수는 크게 지친 것 같았다. 반면 김진석은 멀쩡했고, 시시 교수는 크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제게 마땅한 공격을 성공시킨 적이 없으신 거 아닙니까?”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 김진석도 시시 교수에게 공격을 성공시킨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김진석이 그를 제대로 공격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증명하듯 김진석은 갑작스럽게 그에게 달려들었다.

시시 교수는 놀랐지만 차분히 대응했고, 레이피어로 김진석을 노렸다.

하지만 김진석은 이번에는 피할 생각이 없었고, 일부러 어깨를 레이피어에 가져다 대었다.

위협적인 레이피어의 뾰족한 끝은 김진석의 어깨를 가볍게 관통해 뚫었지만 김진석은 그걸 노리고 있었다.

관통한 레이피어를 반대쪽 손으로 잡아 역으로 집어넣어 아예 못 빼게 만들어 버렸다.

그에 당황한 시시 교수는 순간적으로 레이피어를 잡아 빼려 했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레이피어가 박힌 채 그대로, 김진석은 사시 교수를 들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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