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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50화 (50/201)

50화

왕딱정벌레의 단단한 갑각에는 김진석의 화살이 통하지 않았다.

분명히 제대로 적중했는데도 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김진석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너무 빠른데.”

거대한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놈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어느 정도냐면 조그마한 왕딱정벌레를 잘만 맞추던 김진석의 화살이 빗나갈 정도.

과장 보태서 거의 순간 이동 하듯이 움직이는 보스 왕딱정벌레였다.

사산에서 레벨 업 하기 전의 노라의 같은 레벨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보스 왕딱정벌레도 마땅한 공격 수단이 없었다. 일반 왕딱정벌레랑 같았다. 입 부분에 있는 집게가 조금 더 단단한 정도.

김진석의 피부는 가뿐하게 찢어 버리는 치악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 생각보다 상대가 어렵지 않았다.

포션은 많았으니 급소만 노려지지 않는다면 놈도 마땅히 김진석을 죽일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김진석은 이 로스트 월드에 처음 들어왔을 때 죽였던 헬 하운드를 상대하는 마음가짐으로 놈을 상대했다.

“죽을 때까지… 죽인다.”

* * *

그렇게 2시간이 지났다.

1시간이 지날 때쯤에는 김진석에게도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보스 왕딱정벌레의 속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으니.

주변 정리를 끝낸 노라와 다이아는 숲속 땅바닥에 앉아서 김진석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미 보스 왕딱정벌레가 마땅히 김진석을 죽일 수단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그녀들도 맘 놓고 볼 수 있었다.

“너, 아이템이 부족해서 못 죽일 것 같은데 계속할 거니?”

“포션이 아까워서 상처에 직접 뿌리시는 건데, 아깝습니다.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노라도 다이아도 김진석이 보스 왕딱정벌레를 잡을 거라곤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지금 김진석은 고작 훈련장에서 주는 나무 활과 화살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노라가 당신도 사용할 수 있는 활을 가지고 있다고 주겠다고 했지만 김진석이 한사코 거절했다. 오기가 생겼다.

1시간이 지나니 보스 왕딱정벌레의 움직임에 익숙해져 있었다.

놈은 갈룸의 왕보다 훨씬 못했다. 분명 같은 레벨이었지만 갈룸의 왕이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정작 갈룸의 왕은 김진석 자신이 제압할 수 있었는데 놈보다 더 약한 보스 왕딱정벌레를 이기지 못하다니.

그래도 황소고집인 김진석도 2시간이 지나니 고집을 꺾었다. 포션도 더는 딱히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것이다.

보스 왕딱정벌레에게 더는 배울 게 없었다.

“오, 이제 끝이야? 너도 참 알 만하다.”

“그대보다 훨씬 더 레벨이 높은 몬스터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잘한……?”

노라와 다이아는 김진석의 한숨과 짜증 섞인 표정을 보고 포기할 거로 생각한 듯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김진석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보스 왕딱정벌레를 잡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는 다른 자의 힘을 빌려야 했다.

[카이와의 동기화 1%]

“차징 샷.”

김진석의 스킬이 아닌 카이의 스킬, 차징 샷. 자신의 공격력에서 퍼센트만큼 증가하기에 카이가 쓰는 것만큼 강력하진 않았지만 보스 왕딱정벌레에게는 충분했다.

김진석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기를 모았다. 갑자기 김진석이 움직이지 않자 보스 왕딱정벌레가 좋다고 달려들었다.

그때 카이의 차징 샷이 김진석의 손에서 나갔다.

파사삭!

그와 동시에 압력을 버티지 못한 김진석의 나무 활이 터져 버렸다.

나무 화살은 부들거리며 간신히 날아가다가 마찬가지로 보스 왕딱정벌레의 앞에서 터져 버렸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어?”

다이아는 그 위력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허망한 말이 나왔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터져 버렸지만 뒤따라온 엄청난 풍압이 보스 왕딱정벌레를 날려 버렸다.

그 속도와 위력은 다이아조차도 쉽게 내보일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당연히도 카이의 스킬은 함부로 난사할 순 없었다.

[재사용 대기 시간 하루.]

“쯧.”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아쉬웠다. 그래도 희소식이 존재했다.

[동기화율이 높아지면 재사용 대기 시간이 줄어듭니다.]

고작 1퍼센트라 하루였다. 김진석이 레벨을 더 높이고 강해진다면 재사용 대기 시간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난 도대체 네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

노라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더니 김진석이 날려 버린 보스 왕딱정벌레를 찾으러 가겠다고 말하고 놈이 날아간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용병이었으니 딱히 김진석의 신상을 물어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다이아는 아니었다.

“카이 씨… 아니, 김진석 씨라고 불러야 할까요?”

갑자기 불린 자신의 이름에 김진석은 흠칫 놀랐다. 김진석은 다이아를 바라봤고, 그녀는 김진석의 반응에 확신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이크 성에서 사람을 찾는다고 합니다. 이름은 특이하게도 김진석. 인상착의는… 입은 것만 다르고 모든 게 같군요.”

그녀의 말에 김진석은 식은땀을 흘렸다.

* * *

다이아는 물론이고 노라, 심지어 엘리온과 레온하르트까지 김진석이 김진석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만나자마자 바로 안 것이 아닌, 가이크 성에서의 공문이 날아왔을 때 알아차렸다.

“김진석이란 남자를 찾는다… 검은색 머리와 눈. 범상치 않은 거구라…….”

“누군지 알 것 같은데?”

가장 먼저 레온하르트가 엘리온과 함께 그 공문을 봤고, 둘은 동시에 누군지 알아차렸다. 제대로 된 신분증도 없이 혼자서 거지 몰골로 칼라 성을 찾은 자.

그리고 외형이 완벽히 공문에 적힌 것과 똑같은 자는 칼라 성에 딱 한 명이 있었다.

“카이군.”

“카이네.”

둘은 서로를 쳐다봤다. 하지만 김진석의 정체를 알았다고 한들 상관없었다.

“정체를 숨기는 이유가 있겠지. 공문에도 딱히 별말이 쓰여 있지 않아.”

“확실히… 게다가 그는 비명의 숲을 건너왔다고 하는군. 아마도 가이크 성의 빡빡한 규율에 지레 겁먹고 도망친 게 아닐까 하는데…….”

“…그 카이가 겁을 먹었다고?”

“그저 예상일 뿐이라네.”

엘리온과 레온하르트는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원래 같았다면 김진석을 그냥 찾았다고 가이크 성에 소식을 알리면 됐지만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마 가이크 성에서 그를 찾는 이유는 비명의 숲 너머의 지식을 알고 싶어서인 것 같았다. 그들도 비명의 숲 너머에서 온 자는 죄다 마족이었던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김진석을 두둔하고 있었다.

“설령 마족이라도 상관없다. 악마도 아니고 마족이니 전부 나쁜 놈인 건 아니겠지.”

“…노라에게는 어떻게 말하지? 그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사실대로 말하면 된다. 적어도 내가 본 그는 마족이라도 문제가 없는 자다. 자네도 인정한 거 아닌가? 자네가 나보다 더 노라를 애지중지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할 말이 없네.”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은 그렇게 김진석을 두둔하겠다고 정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노라에게 알리고, 다이아에게는 노라와 다이아가 서로 싸우고 난 이후 김진석의 교수로 임명하기 전에 불러 말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로스트 월드 속 모든 마을, 성, 도시 전부에 가이크 성 소속의 정보원들이 있었다.

사소한 정보까지는 알리진 않지만 레온하르트가 기사 학교에 데려온 인재는 절대 사소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인재가 벌인 일들까지.

가이크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 * *

“노라 교수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당신을 위해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죠.”

다이아의 말에 김진석은 충격받았다. 노라가 알고 있다는 건 엘리온도, 레온하르트도 다 알고 있다는 뜻이다.

“…….”

“엘리온도, 레온하르트 님도 당신에 대한 정체를 숨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들키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당신이 비명의 숲 너머에서 왔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그 뒤에 올 말을 침을 삼키며 기다리고 있었지만 다이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물어보십니까?”

“물어보면 알려 주실 겁니까?”

역으로 들어오는 질문에 김진석을 말을 잃어버렸다. 어차피 사실대로 말해 봤자 그들이 믿지 않을 테니.

밝히고 싶어도 밝힐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이곳은 지구가 아니었다. 레벨이 존재하는 이상 그들이 원하는 건 대부분 이룰 수 있는 곳이 이곳, 로스트 월드였다.

김진석의 머릿속에 있는 다른 세계의 지식을 원하는 자가 김진석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레온하르트나 엘리온과 같이 선한 자만이 있는 곳이 아니다.

진실을 밝히기에는 아직 김진석은 너무나도 약하다.

“정체를 숨기고 싶으시면 외형부터 바꾸셔야 합니다. 지금 당신은 누가 봐도 칼라 성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이아는 오히려 김진석에게 조언을 하고 있었다. 지금 김진석은 거의 거지나 다름없었다.

로스트 월드로 들어온 지 꽤나 시간이 지나 김진석의 머리는 지금 거의 단발머리 여자만큼이나 자라 있었다.

다행히 수염이 그리 자라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게 오히려 정체를 숨기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됐다.

“그리고 가이크 성에서 기사 두 명이 칼라 성으로 온다고 합니다. 이름은 다렌과 찰스. 가이크 성에서도 유명하고 강력한 기사들입니다. 그들이 칼라 성으로 오는 이유는 불명. 휴식이 목적일 수도 있고, 관광이 목적일 수도 있죠. 하지만 김진석, 당신이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언제 온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저 온다고만 말했죠.”

다렌과 찰스, 김진석이 로스트 월드에 들어왔을 때 그를 구해 준 인물이었다.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었고, 게임 속 NPC였다.

그들은 게임 속에서도 뛰어난 자들이었고, 중요 인물이었다.

찰스는 몰라도 다렌이라면 지금 성 하나를 가지고 있어도 될 정도의 레벨일 것이다.

“정체를 숨기고 싶다면 준비하세요. 아니면 그만큼 강해지세요.”

“…알겠습니다.”

그때 노라가 숲을 뒤지고 돌아왔다. 그녀의 팔에는 상처가 조금 있었지만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다.

아마 보스 왕딱정벌레가 한 번에 죽지 않아 마무리하고 온 것 같았다.

노라는 김진석과 다이아에게 흐르는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뭔데. 너 또 무슨 일 벌였어?”

노라는 바로 다이아를 의심했지만 김진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김진석, 맞다고 하는군요.”

“…뭐?”

다이아의 돌직구에 김진석은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자기가 말하려고 했지만 다이아는 그럴 시간도 주지 않았다.

“비명의 숲 너머에서 온 마족으로 추정되는 인물. 그자가 본인이 맞다고 합니다.”

“…….”

다이아의 말에 당황하는 건 김진석뿐만이 아니었다. 노라 또한 다이아의 말에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죄송합니다. 변명이지만 언젠가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하…….”

김진석의 변명 아닌 변명에 노라도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네 입에서 듣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런데 노라는 다이아를 원망 섞인 눈초리로 바라봤다. 노라는 딱히 김진석이 정체를 숨긴 것을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에게 김진석의 얘기를 듣기 전에 이미 가명이라는 걸 감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라는 적어도 김진석의 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노라의 투정 섞인 말에 다이아는 처음 보는 웃음인,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언젠가 제 선택을 고맙게 여길 날이 올 겁니다.”

“됐어.”

노라는 고개를 저으며 김진석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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