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49화 (49/201)

49화

* * *

궁수 스킬을 배우고 난 다음 날.

노라와 다이아, 그리고 김진석은 이사장인 엘리온의 허락을 받고 몬스터를 잡으러 칼라 성 밖으로 나갔다.

아무리 교수라도 학생을 함부로 몬스터와 싸우게 둘 순 없었다.

이사장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했다. 그 기준은 학생이 잡으려는 몬스터와 레벨이 얼마나 차이 나는가, 그 학생의 재능이 어떠한가 등등이었다.

물론 다이아가 그걸 허락받으러 가자마자 뭔가 확인하지도 않고 허락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엘리온은 적어도 잡으러 가는 몬스터의 레벨은 확인했어야 했다.

“…에메랄드 교수님, 정말 확실합니까?”

“활을 연습하기에는 적합한 몬스터입니다.”

김진석도 그 몬스터의 이름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지만 문제는 그 몬스터의 레벨이었다.

“…레벨 39인 몬스터를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 강하진 않으니.”

다이아가 그렇게 말을 했지만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김진석은 이해가 안 됐다.

게임 속 세계에서나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잡았지, 현실인 이곳에서는 대부분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를 잡았다.

그것 또한 매우 조심스럽게 상대했다, 가 김진석이 죽인 여성 용병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그런데 노라는 물론이고 다이아까지 김진석에게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기본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언제나 냉철한 판단을 하는 다이아였고, 이번 몬스터를 아니깐 그나마 납득할 수 있긴 했다.

“왕딱정벌레는 백 마리가 나와도 나 혼자서도 잡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 리들리도 혼자 잡는 애가 뭐 그리 겁이 많아?”

왕딱정벌레. 색이 형형색색인 것과 조금 크다는 걸 빼면 일반적인 딱정벌레와 똑같다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공격 방식도 놈들의 단단한 입으로 무는 것과 단단한 갑각으로 날아오는 속도 그대로 박아 버리는 것밖에 없는, 왜 레벨이 39인지 의문일 몬스터였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점이 있었다.

“실제로 백 마리 가까이 모여 다니니깐요…….”

게임 속에서도 실제로 백 마리 가까이 모여 다녔다. 그리고 그게 하나의 개체였다. 즉, 39레벨 몬스터 한 마리가 왕딱정벌레 백 마리라는 뜻이다.

왕딱정벌레는 원래 서식지와 비슷하게 숲에 살았다. 워낙 조그마해서 나무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생물을 덮친다.

“무슨 일 생기면 여기로 데려온 교수님이 알아서 하겠지, 뭐.”

노라는 대놓고 다이아를 견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할 말이 많았다.

“사산에서는 아니던데요.”

“…….”

굳이 긴말을 하지 않고 딱 한 마디만으로 그녀를 조용히 하게 할 수 있었다.

다이아는 애초에 노라를 무시한 채 길만을 안내하고 있었고, 금방 놈들이 사는 서식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칼라 성과 그다지 멀지 않았지만 게임 속에서는 인기 없는 사냥터였다.

성장 초반에 광역 스킬이 많은 특정 몇몇 직업군만이 이 숲을 찾았다.

그런데 숲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왕딱정벌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애초에 놈들의 몸 색이 워낙 형형색색이라 알 수밖에 없었다.

“활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아시는 것 같으니 딱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무기를 사용하지 말고 저 왕딱정벌레들을 잡아 보세요.”

그렇게 말한 다이아는 노라의 손목을 잡고 뒤로 물러나며 동시에 단검을 나무에 던졌다.

그 단검은 왕딱정벌레가 숨어 있는 나무를 타격했고, 꽤나 강한 힘이었는지 나무가 흔들렸다. 그에 놀란 왕딱정벌레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더럽게 많네.”

왕딱정벌레의 크기는 15센티로 웬만한 새만 했다. 그런 놈들이 자그마치 백여 마리나 나무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왕딱정벌레는 바로 근처에 있던 김진석을 보고 미친 듯이 날아왔다.

마치 드론이 나는 것처럼 엄청난 날갯짓 소리는 그 소리만으로도 압도될 것 같았다.

“일제 사격.”

몇 없는 궁수의 광역 스킬을 사용했다. 아직 스킬 레벨이 1인 일제 사격은 고작해야 세 발의 화살을 동시에 부채꼴로 쏘아 낼 뿐이었지만 그게 어딘가.

고작 세 발의 화살이었지만 세 발 전부 고작 15센티인 왕딱정벌레를 꿰뚫었다.

그 모습을 본 다이아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아직 수십, 수백 마리의 왕딱정벌레가 남아 있었다.

놈들이 날아오는 것에 본능적으로 단검을 꺼내려고 했지만 다이아의 말이 생각나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틈이 왕딱정벌레가 달라붙을 틈을 주고 말았다.

그런데 김진석은 사고방식이 남들과 전혀 달랐다.

왕딱정벌레는 공격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 애초에 백여 마리가 하나의 개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놈들의 크기는 15센티. 벌레 주제에 크지만 일반적인 몬스터와 비교하면 조그마한 편이었다.

즉, 백여 마리가 한 번에 김진석의 몸에 달라붙지 못하는 이상 단번에 상대를 죽일 순 없다.

“회피 사격.”

공격력은 약하지만 순간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는 스킬. 하지만 그건 순간이었고, 계속해서 날아드는 왕딱정벌레들을 피할 순 없었다.

회피 사격으로 한 마리 더 꿰뚫었지만 그게 전부. 순식간에 수십여 마리가 김진석의 몸에 달라붙었다.

물론 김진석은 그걸 예상했고, 곧바로 최하급 포션을 꺼내 온몸에 뿌렸다.

어차피 놈들은 큰 상처를 줄 순 없었고 치료가 더 빠르면 버틸 수 있다, 가 김진석의 생각이었다.

“…미친 새끼.”

“…….”

김진석의 기행을 본 노라와 다이아는 말을 잃었다. 애초에 다이아는 왕딱정벌레 몇 마리를 내버려 두고 전부 죽일 속셈이었다.

기껏해야 참새의 크기인 왕딱정벌레. 그것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놈들을 김진석이 얼마나 잘 맞출지 알아보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처음에 화살 세 발로 왕딱정벌레 세 마리를 꿰뚫는 것을 보고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깜짝 놀랐다.

게다가 노라조차도 김진석의 기행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지만 저 정도 미친 짓은 처음 봤다.

왕딱정벌레에 물리는 것도 살이 찢겨 지는데 그걸 포션을 위에 뿌려 치유하는, 말 그대로 김진석만이 생각할 수 있는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그 끔찍한 고통을 전부 이겨 내고 그 와중에도 다이아의 말대로 활만을 사용해 하나하나 왕딱정벌레를 꿰뚫고 있었다.

살이 찢기고 강제로 치유되는 고통이 계속해서 반복되는데도 김진석의 화살은 단 한 발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

그 모습을 노라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른 교수의 수업에 관여하지 말라는 학교의 규칙을 깨고 단검을 던지며 달려 나갔다.

“이건 수업이 아니잖아, 거지 같은 년아!”

노라는 바로 김진석의 옆에 달려가서 그를 도왔다.

노라의 말에 다이아도 그제야 이미 꺼내 들었던 활을 왕딱정벌레에게 겨눴다.

“…….”

노라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다이아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닌 화가 나서 감정이 올라오고 있는 거였다.

정작 김진석은 어리둥절했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조용히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나도 교수가 된 지 얼마 안 됐지.”

“…예.”

노라는 최대한 화를 삭이며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이아에게 화가 난 것도 있지만 얼마 전의 자신을 생각나게 하는 것도 있었다.

“우린 벌써 각자 한 번씩 학생에게 죽음의 경험을 느끼게 했어. 너보단 내가 더 심하긴 했지만…….”

얼마 되지도 않은 사산에서의 사건. 노라는 항상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후회할 짓은 하지 마. 너도, 나도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제야 노라는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감정을 다스렸다. 다이아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묵묵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김진석은 뻘쭘히 서 있다가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포션 값만 지원해 주신다면… 전 상관없습니다.”

“…….”

* * *

최하급 포션을 뒤집어쓴 김진석은 금방 상처가 전부 치유됐고, 셋은 숲으로 계속 들어갔다.

그런데 김진석은 눈으로는 처음 보는 곳인데 뭔가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김진석은 처음으로 이 세계에 들어와서 게임 속 로스트 월드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게임 속에서도 이 숲에는 왕딱정벌레만이 살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놈들이 근처에 오는 생명체들은 같은 몬스터고 나발이고 전부 물어뜯어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이 세계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언뜻 생각나는 지형까지.

“야! 딴생각하지 마! 네 교수가 일하고 있는 거 안 보이냐?!”

하지만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노라의 외침에 감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감상에 젖은 김진석이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노라와 다이아가 너무 김진석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던 것이다.

김진석도 처음엔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왕딱정벌레가 그리 강하지 않았고, 둘이 있었으니 믿고 싸우긴 했지만…….

그게 둘의 가슴속 무언가를 지핀 것 같았다.

노라는 트라우마 같은 게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다이아도 이렇게 과민 반응할 줄은 몰랐다. 김진석도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결국 김진석은 둘이 잡고 남은, 열 마리도 안 남은 왕딱정벌레를 활로 쏘는 게 전부였다.

물론 고작 열 마리의 왕딱정벌레는 김진석에게 달라붙을 틈도 없었다. 처음에는 스킬을 사용해서 달라붙지 못하게 했지만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젠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김진석이었다.

고작 1시간 만에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이는 김진석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과보호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당연하지만 그 어떤 교수도 학생에게 본인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잡으라고 시키진 않는다.

다른 교수들이 봤다면 저게 수업이냐고 질타받아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김진석 본인은 그런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한눈에 봐도 일반적인 왕딱정벌레보다 큰 왕딱정벌레가 있었다.

[보스 왕딱정벌레. LV:41]

거진 70센티 정도 되는 왕딱정벌레가 나무에 떡하니 달라붙어 있었다. 붉은색인 놈은 나무에 숨어 있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대놓고 한가운데 매달려 있었다.

게임 속 로스트 월드에서는 저런 몬스터가 없었다.

아마 이 숲에 찾아오는 생명체를 잡아먹으며 성장한 것 같았다.

“저 혼자 잡아 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다른데? 적어도 레벨이 40은 될 텐데, 괜찮겠어?”

“단번에 죽지는 않을 테니 제가 만약 비명을 지르면 도와주십시오.”

“당신이 비명을 지르는 건 상상하기 어렵군요.”

노라는 김진석을 걱정했고, 다이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신의 피부를 뜯어 먹는 딱정벌레에 둘러싸이고, 그 위에 포션을 뿌려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는데도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않은 김진석이었다.

백여 마리의 왕딱정벌레를 잡기 위해서는 숨을 쉬는 것도 컨트롤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변을 정리해 드리죠. 노라 교수님?”

“나도 알아. 재촉하지 마.”

어느새 둘도 친해져 있었다.

김진석의 양옆으로 단검과 화살이 먼저 날아가고, 동시에 둘이 앞으로 날아가듯 달려갔다.

왕딱정벌레들은 그녀들에게 순식간에 갈려 나갔다.

김진석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보스 왕딱정벌레에게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놈은 나무에 매달려 있었고, 김진석이 다가오자 그제야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일반 왕딱정벌레도 날 때 드론이 나는 것만 같은 소리가 날 정도였지만 놈이 날아오르니 마치 헬기가 나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관통 샷.”

김진석은 활 스킬 중에 가장 강력한 스킬을 사용했다. 왕딱정벌레조차도 관통 샷을 맞으면 말 그대로 관통해 최소 두 마리 이상을 죽이는 스킬이다.

텅!

그런데 방패에 맞은 듯한 소리가 났다.

왕딱정벌레는 갑자기 몸에 닿은 화살에 화가 났는지 엄청난 소리를 내며 김진석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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