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47화 (47/201)

47화

【 발각 】

김진석은 언제나 이곳이 현실이라고 자각하고 있었다.

게임 속 세계고, 게임 지식을 바탕으로 생활하고 있었지만 현실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연중에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 시스템과 똑같은 UI, 사용자 인터페이스인 푸른색 글씨, 그리고 노라는 아니었지만 익숙한 게임 속 인물들까지.

하지만 그 착각은 노라의 스킬 활용 방식으로 깨트려 졌다.

뒤가 없는 공격형 스킬인 소드 댄스를 화살을 쳐 내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건 아무리 김진석이라도 생각하기 어려웠다.

지금껏 게임이라는 틀에 박혀서 정직하게 스킬을 사용했던 김진석은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노라의 싸움 방식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소드 댄스란 스킬과 같이 뒤가 없는 공격을 선호했다. 자신의 몸이 다치건 말건 상관치 않고 오로지 상대를 죽이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김진석과 같았지만 차이점은 그녀의 공격엔 살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걸 이용해 얼마든지 공격에 페이크를 주고 있었다.

정직한 공격 방식을 사용하는 김진석과 달리 노라는 공격이 매우 변칙적이었다.

노라는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다이아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다이아는 노라의 단검을 활의 활대로 막아냈다. 레벨이 높은 다이아는 노라의 단검을 막아 낼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근접전이 주특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다이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활대로 단검을 막으며 동시에 눈앞에서 화살을 쏘아 냈다.

노라는 단검으로 활대를 비틀며 방향을 틀었지만 목 근처를 지나가 피부가 크게 찢겨 나갔다.

하지만 다이아의 몸에도 상처가 하나둘 생기고 있었다.

“회피 사격.”

“어썰트.”

다이아가 도망가려고 하면 노라가 달라붙는다. 김진석이 지금껏 본 그 어떤 싸움보다 격렬했다.

둘의 몸에는 상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고, 그때 갑자기 다이아가 기침을 했다.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그 싸움엔 기침은 큰 빈틈이었다.

노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하체만큼은 다치지 않게 한 이유가 여기 있다는 듯 기사 학교의 학생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다이아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다이아도 마찬가지로 그걸 노렸다는 듯 화살을 쏘아 냈다. 노라는 달려가는 동안에는 그 화살을 피할 방법이 없었고 그렇다고 멈출 순 없으니 결국 자신의 오른손을 희생했다.

오른손에 박힌 화살을 무시한 채 다이아의 목에 단검을 들이밀려는 순간, 다이아는 노라의 얼굴에 기침했다.

그 기침에는 피가 섞여 있었고, 얼굴에 피가 튄 노라가 살짝 움찔한 사이에 다이아는 스킬까지 사용하면서 거리를 벌렸다.

“회피 사격.”

말 그대로 회피하면서 사격하는 스킬. 다이아는 거리를 벌리면서 동시에 노라의 왼손을 노렸다.

노라는 하필 피가 눈에 튀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도 오로지 감에 의존해 왼손을 움직였지만 화살이 스쳐 왼손도 크게 찢어졌다.

둘의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쿨럭… 제가 이긴 거 아닌가요? 손. 사용하지 못하실 것 같은데.”

“꺼져. 너도 독 걸렸으니 시간만 끌면 내가 이긴다.”

다이아는 독거미의 단검에 붙어 있는 상태 이상, 독에 걸렸다. 하지만 노라도 손을 부들부들 떨며 단검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교수들도 그녀들을 막을 엄두를 내질 못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둘의 싸움은 격렬했다.

하지만 둘의 싸움을 말릴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

“그만하시죠.”

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자는 바로 김진석이었다. 왜 이 싸움이 시작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를 죽이려고 한 싸움은 아닐 거다.

왠지 모르겠지만 둘의 감정이 너무 고조되어 있었고, 진정시켜야 했다.

“노라 교수님, 루비 씨를 시험해 보려고 한 거 아닌가요? 루비 씨, 노라 교수님은 딱히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김진석은 다이아의 성향을 알고 있었고, 노라는 잘 모르겠지만 예상한 거다.

잠시 김진석의 말을 들으며 노라와 다이아가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이러라고 내가 반을 옮겨 준 건 아닌데 말이지.”

엘리온이 훈련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한 학생이 둘의 싸움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껴 이사장실로 가 학교에서 가장 강한 엘리온을 부른 것이다.

“셋. 이사장실로 따라오도록.”

* * *

그렇게 셋은 엘리온에게 끌려가 엄청나게 혼났다.

김진석은 딱히 잘못이 없었지만 구경만 했다는 이유로 괜히 같이 혼났다. 다이아도, 노라도 엘리온의 화난 모습을 처음 봤다.

하지만 노라는 가만히 있지 않았고 대들었다.

“이 여자, 뭐 하는 작자죠?! 아니, 대충은 아는데 왜 제 수업을 듣게 한 거죠?!”

그 결과 노라의 등짝이 남아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이아에 대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제 잘못이네요?”

결국 최종적으로 둘이 싸우게 된 원인이 김진석 때문이었다.

다이아는 이렇게 된 거 직설적으로 김진석에게 물었다.

“상처를 내고 그 위에 포션을 뿌리는 건 극악무도한 범죄자도 잘 알지 못하는 고문 방법입니다. 당신은 그 방법을 어디서 알게 되었죠?”

다이아는 어느새 활을 꺼내 김진석을 조준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노라도 단검을 꺼냈고, 여차하면 2차전이 벌어질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다이아! 무슨 오해가 있을 거다! 카이 학생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자가 아닐 거다!”

엘리온도 오른손엔 지팡이, 왼손엔 단검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낀 김진석은 그저 무덤덤하게 말할 뿐이었다.

“그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니깐요.”

“…예?”

그런 김진석을 다이아는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미 그런 눈빛은 익숙한 김진석은 말을 이어 나갔다.

“없는 포션을 아끼기 위해선 효율적인 사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상처에 포션을 직접 뿌리면 고통이 따르긴 하지만 효과가 좋다는 걸 발견했죠. 그 이후로 종종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다이아는 의심 섞인 눈빛으로 김진석을 바라봤지만 노라는 그럴 수 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넌 잘 모르겠지만 얘, 미친놈이야. 그럴 수 있어.”

“…자기 몸에 사용했다면 그 고통은 알 수 있을 텐데요.”

“뭐, 얼마나 아프다고. 그 학생이 나약한 거겠지.”

“그럼 직접 느껴 보세요.”

그때 다이아는 자신의 아공간에서 김진석이 주었던 최하급 포션을 꺼내 노라에게 던졌다.

갑자기 뭔가 날아오길래 노라는 반사적으로 단검을 들어 쳐 냈지만 약한 유리병은 깨졌고, 그 내용물이 노라를 뒤덮었다.

“어……? 끄으윽. 끄억.”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기도 전에 이사장실로 끌려 들어왔으니 아직 노라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런데 그 위로 포션을 뒤집어썼으니 결과는 뻔했다.

제대로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몸을 부들거리며 움츠러지고 있었지만 그녀 또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용병. 고작 이 정도로 정신을 잃을 만큼 나약하진 않다.

최하급 포션임에도 불구하고 노라의 몸에서 큰 상처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처가 말끔히 치유되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엄청난 고통이 따르지만 흉터조차 남지 않습니다. 효과적인 고문 방법이죠.”

“…….”

다이아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설명하고 있었고, 엘리온은 말을 잃었다. 언제나 강인한 모습을 보인 노라가 이 정도로 아파하는 모습은 처음 봤으니.

노라는 입에서 피가 날 정도로 이를 꽉 깨물며 버텼고, 이내 포션의 효과가 끝나자 깊은 한숨을 흘렸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고통이었어.”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하는 노라였다.

다이아는 그런 노라를 바라보다가 김진석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증명하세요. 당신이 직접.”

다이아의 말에 엘리온도, 심지어 노라조차도 김진석을 의심 섞인 눈초리로 바라봤다.

김진석은 그녀의 말에 얕은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당신이 조건을 내밀 처지가 아닐 텐데요.”

다이아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김진석은 물러나지 않았다.

“아뇨, 어차피 당신은 절 죽이지 못합니다. 저는 기사 학교에 해를 끼치긴커녕 도움을 드렸으니깐요.”

실제로 살란 교수의 학생과 김진석의 모의전이 있었던 다음 날, 수많은 학생이 김진석에게 자극받아 훈련을 시작했다.

“과거에 저질렀던 죄를 찾으시려면 얼마든지 찾으세요. 하지만 그것까지 따지자면 당신은 가장 먼저 기숙사장부터 죽였겠죠.”

다이아는 기사 학교의 해를 끼치는 자는 가차 없이 죽였다. 과거에 저지른 죄도 마찬가지. 하지만 기사 학교에 도움이 되는 자라면 과거에 죄를 저질러도 살려는 둔다.

기숙사장처럼, 말이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조건이 뭐죠.”

“간단합니다. 활. 활 쏘는 법을 알려 주시죠.”

김진석은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몬스터를 죽였을 때 온갖 무기가 다 나왔지만 활만큼은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사용 방법은 몰랐으니 상관은 없었지만 왜 활만 몬스터가 떨어뜨리지 않았을까.

활을 사용할 줄만 안다면 몬스터를 훨씬 편하게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직업의 한계 따위는 김진석에겐 없었으니 궁수 직업의 스킬도 배워서 사용하면 될 것이다.

“왜 저죠?”

“제가 알기론 당신보다 활을 잘 다루는 자는 없습니다.”

“…언제 저를 봤다고 그러시죠?”

“노라… 교수님과 싸우는 모습만 보면 그곳에 있던 학생들도 알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이기셨으니깐요.”

“야! 아직 모르는 거거든?”

김진석의 말에 노라가 발끈했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노라와 마찬가지로 다이아도 마땅한 치료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녀에게 걸려 있던 독은 이미 다 나아 있었다.

포션을 사용하지 않고도 독이 나았으니 시간이 지났다면 노라가 결국 지게 됐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넌 어떻게 증명할 건데?”

“직접 사용해야죠.”

김진석은 처음에 포션을 상처에 직접 사용했던 것과 똑같이 품에서 패링 대거를 꺼내 손바닥을 찍었다.

갑자기 벌어진 기행에 엘리온과 노라는 깜짝 놀랐고, 다이아는 그의 행동을 유심히 쳐다봤다.

하지만 김진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위에 똑같이 최하급 포션을 꺼내 부었다.

로스트 월드. 이 세계에 막 들어왔을 땐 고통에 익숙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고통을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이에 잊어버렸다.

하지만 고블린, 임프, 갈룸, 최근에 해골이 된 몬스터들까지. 잊어버렸던 고통을 일깨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김진석은 단검으로 뚫어 생긴 손의 상처를 앞으로 펼쳐 보여 주었다. 상처가 실시간으로 치유되는 게 눈에 보였다.

다이아는 김진석의 표정을 보았지만 김진석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손바닥에 뚫린 상처가 전부 치유됐고, 그때까지도 김진석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됐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다이아는 결국 김진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 나한테 배우고 있으면서 활은 또 왜 배우고 싶어 하는 거야. 설마… 내가 졌다고 이러는 건 아니지?”

노라는 은근히 다이아와의 승부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아뇨, 그럴 리가요. 그저… 활은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습니다.”

김진석의 메인 캐릭터인 카이. 카이의 메인 무기가 바로 활이었다. 그리고 카이와 동기화가 되었을 때 머릿속에 활의 사용법이 언뜻 스쳐 지나갔었다.

다이아는 엘리온이 남으라고 말했고, 노라와 김진석은 이사장실에서 나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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