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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46화 (46/201)

46화

* * *

“안녕하세요~ 루비입니다. 이번 모의전에서 감명받고 반을 옮기게 됐어요. 잘 부탁드려요~”

“…….”

다이아의 말에 노라와 김진석은 말을 잃었다.

김진석은 직접 싸웠고, 노라는 뒤에서 직관했으니 그녀가 절대 일반적인 학생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이미 김진석은 그녀의 정체를 전부 알고 있었다.

“원래 반을 이렇게 멋대로 옮길 수 있나요?”

“나도 몰라.”

당연하지만 반을 쉽게 옮길 순 없다. 하지만 옮길 순 있었다. 교수의 수업이 맘에 들지 않는다든가, 하는 이유에서는 이사장인 엘리온에게 직접 다른 반으로 옮기고 싶다고 서류 같은 걸 보낸다.

엘리온이 직접 그걸 검수해서 그게 타당하다 싶으면 얼마든지 옮길 수 있다. 즉, 이사장의 권한으로 얼마든지 옮길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지금은 수업한 지 2주밖에 안 되는 시간이라 쉽게 옮길 수 있었다.

“그런데 제 방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냥요?”

다이아는 김진석이 있는 505호의 방문을 두드렸고, 노라가 열어 준 거였다. 둘은 생각보다 모의전이 너무 길게 이어져서 밤이 늦어 헤어지고 이른 아침에 김진석의 방으로 모인 것이다.

물론 기숙사장인 앙골라스는 무시한 채.

그런데 김진석의 방과 아침에 모이는 걸 어떻게 알고 다이아가 찾아왔다.

“잘 부탁드려요?”

“…….”

김진석의 방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분명 세 명이나 있었지만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노라는 다이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다이아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김진석을 향해 있었다.

김진석은 그녀의 시선이 매우 부담스러워 괜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다이아를 알고 있었으니 다른 사람의 시선이랑은 차원이 달랐다. 그녀는 노라보다도 레벨이 높았다.

게다가 그녀는 궁수. 아무리 김진석이 화살을 보고 쳐 낼 수 있었다곤 하지만 그건 나무 활과 화살이었다.

멀리서 저격한다면 김진석은 단말마조차 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노라… 교수님. 피드백 해 주신다고.”

“…아, 그래.”

원래 어제 받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고, 김진석도 피곤해했으니 다음 날인 오늘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이아가 끼어든 것이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했으니 김진석이 조용한 방에서 말을 먼저 꺼냈다.

“아니… 굳이 내가 말할 필요가 있나 싶네. 거기… 루비라고 했지?”

“네?”

“내가 이 녀석보고 살기를 지우라고 했었어. 네가 직접 마지막에 싸웠잖아. 어땠어?”

“음…….”

다이아는 노라의 말에 손으로 턱을 괴며 생각했다.

“살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어요. 특히 마지막에 제 목을 향한 단검 때는 아예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이아는 딱히 김진석을 칭찬하려는 게 아닌, 그냥 있는 느낌 그대로 말했다. 그런데 노라가 이상한 걸 느꼈다.

“애초에 학생들은 살기가 아예 없다시피 하던데… 넌?”

그때 갑자기 다이아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김진석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 김진석은 급히 뒷걸음질했고, 노라도 마찬가지로 단검을 꺼내 다이아의 목을 노렸다.

김진석의 목 앞에서 다이아의 단검이 멈췄고, 노라의 단검도 다이아의 목 앞에서 멈췄다.

“살기가 느껴졌나요?”

다이아의 목에선 핏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노라는 진심으로 다이아를 죽이려고 했는데, 김진석의 목 앞에서 단검이 멈춘 걸 보고 노라도 멈춘 것이다.

“…아니, 안 느껴졌어.”

노라의 말에 다이아가 먼저 단검을 김진석의 목에서 치웠고, 노라는 다이아를 죽일 듯이 바라보다가 단검을 치웠다.

김진석은 반응하긴 했지만 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괜찮아, 흑호야.”

어느새 김진석의 그림자가 미친 듯이 일렁이고 있었다. 흑호는 정말 미세하게나마 있는 살기를 감지하고 나오려고 했었다.

김진석이 급히 흑호를 막은 것이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진석은 다이아를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죄를 짓지 않는 이상 그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누굴 죽이지 않았다.

다른 말로는, 죄를 짓는다면 가차 없이 죽였다.

“다음번엔 진짜 죽인다.”

“알겠어요.”

노라가 꺼낸 단검은 자신의 무기인 독거미의 단검으로 다이아의 목을 노린 거였다. 0.5초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그 단검은 다이아의 목을 찔렀을 것이다.

워낙 날카로워서 그런지 살짝 가져다 대기만 했는데 다이아의 목에서 피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김진석은 품에서 꺼내는 것처럼 인벤토리에서 최하급 포션을 꺼내 다이아에게 주었다. 고작해야 저 정도 상처는 반창고만 붙여도 금방 낫겠지만 굳이 최하급 포션을 준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널 죽이려고 한 년인데 왜 잘해 줘?”

“년이 뭡니까, 년이. 설마 절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그렇죠? 다… 루비 씨?”

“당연하죠.”

다이아는 의외의 눈으로 김진석을 바라보다가 다시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노라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다이아와 김진석을 바라봤다.

“하… 됐어. 그래서 넌 뭘 배우고 싶은데? 참고로 이론 수업 따위는 없어. 다 몸으로 배운다?”

노라의 말에 다이아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모의전을 보고 반을 옮겼다고 했는데 고민하고 있다는 게 우습긴 했다.

“단검을 다루는 방법을 좀 배우고 싶네요. 카이 씨에게 단검으로 밀려서 말이죠.”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딱히 사실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김진석보다 다이아가 단검을 사용한 시간이 더 길 거다.

하지만 김진석은 단시간에 노라에게 훈련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단검을 사용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노라가 따로 알려 준 것이 없었는데도 알아서 배운 것이다. 그 또한 김진석의 재능이었다.

그런 김진석을 오로지 신체 능력으로 압도했다. 그게 다이아가 급히 생각해 낸, 노라의 수업을 들을 핑계였다.

“그러지, 뭐. 너 잡는 것부터가 맘에 안 들긴 했어.”

“굳이 여기 있지 말고 훈련장으로 가죠.”

그렇게 셋은 훈련장으로 향했다.

시선이 항상 끌리긴 했지만 이번에는 시선이 끌리다 못해 그들을 보려고 찾아온 학생들로 훈련장이 붐비고 있었다.

“그런데 옆의 또 다른 여자는 누구야? 학생인 것 같은데.”

“너 몰라? 이번에 21연승을 한 카이를 꺾은 살란 교수님 소속 학생이야. 이름이… 루비였나?”

“그래? 하필 그때 멀리 있어서 모의전을 못 본 게 한이네. 그런데 왜 저기 있어?”

“그러게……. 그런데 양손의 꽃이네.”

소문의 소문이 겹쳐 모의전에 안 온 학생도 본 학생이 알려 주며 소문이 겹쳤다. 그런데 노라와 다이아의 외모가 너무 눈에 띄었다.

애초부터 유명한 노라의 외모도 있었고, 숨기진 않았지만 밝혀지지 않아 숨어 있던 다이아가 양지로 나오며 유명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모의전에서 살란 교수의 학생을 21연속으로 이긴 김진석을 이긴 학생으로 유명해지고 있었는데, 외모까지 합쳐서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핏빛의 적발 노라와 아름다운 은발의 다이아는 서로 정반대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사이에 거구의 김진석이 있으니…….

“미녀와 야수 같네.”

하지만 셋은 똑같이 주변의 시선엔 관심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하지만 이번엔 둘이 아닌 셋이서 훈련장의 구석으로 향했다.

그런데 노라는 개조하고 그대로 내버려 둔 관중석으로 같이 올라가더니 김진석에게 말했다.

“너, 여기서 기다려.”

“예? 알겠습니다.”

김진석은 의문을 가졌지만 알겠다고 대답했고, 다이아와 노라는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노라는 품에서 독거미의 단검을 꺼내더니 다이아에게 말했다.

“루비라고 했지. 너 진심을 다해 봐.”

“그게 무슨 말씀이신…….”

“시끄러. 내 감이 말하는데 넌 절대 일반적인 학생이 아니야. 나도 엘리온 아저씨한테 들은 게 있거든?”

노라도 마찬가지로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노라의 입에서 엘리온이란 이름이 나오자마자 웃음을 지우더니 한숨을 쉬었다.

“참… 입이 가볍네요, 그 사람.”

“그 사람?”

다이아의 말에 노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이아는 아공간을 가지고 있었고, 그 안에서 자신의 무기인 활을 꺼냈다.

“후회하지 않나요?”

“그럴 리가.”

노라는 단검을 던졌다 받았다 하고 있었고, 다이아는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있었다. 다이아의 활은 레벨 45 때 사용할 수 있는 활이었다.

김진석은 갑자기 벌어진 고레벨 둘의 싸움을 직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진석에겐 의문이 있었다. 다이아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는지는 둘째 치고, 왜 그녀가 힘을 숨기지도 않은 채 모의전에 참가했을까.

자신의 힘을 들키게 된다면 앞으로의 일에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가 둘째로 치면 안 될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상대에게 상처를 내고 그 위에 포션을 뿌린다는 일이 이 세계에서 고문 중 가장 악랄한 고문이란 걸 김진석만 몰랐다.

그때 주변에서 탄성이 들렸다.

어느새 김진석의 주변에는 노라와 다이아의 싸움을 보려고 구경 온 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김진석을 무서워해서 그의 근처는 둥그렇게 비어 있었다.

물론 김진석은 신경 쓰지 않고 노라와 다이아의 싸움에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노라의 뺨에는 상처가 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마치 다이아의 지금 모습과 똑같이, 말이다.

다이아는 김진석이 호의로 준 포션을 먹지 않은 채 자신의 아공간에 넣었고, 노라에 의해 단검에 상처가 난 뺨은 그대로였다.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히 노라의 머리에 화살을 쏘아 냈고, 노라는 단검으로 그걸 튕겨 냈다.

하지만 화살은 살짝 뺨을 스쳤고, 결과가 지금이었다.

노라는 개의치 않고 김진석과 같이 거리를 좁히려 다가갔다.

“기교.”

“속사.”

둘은 동시에 스킬을 사용하면서 다이아는 백스텝을, 노라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소리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둘의 속도는 대단했다.

그런데 레벨이 더 낮은 노라가 다이아보다 속도가 월등히 빨랐다. 이유는 당연히 그녀의 스킬인 기교.

공격 속도만 올려 주는 속사와 달리 기교는 모든 속도를 다 높여 줬다.

하지만 다이아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샤프 아이.”

궁수의 주력 버프 스킬 중 하나인 샤프 아이. 게임 속에서는 치명타 확률이 증가하는 버프를 주지만 이곳에서는 동체 시력이 향상된다.

굳이 말하자면 동체 시력이 높아져 급소를 더 잘 맞출 수 있게 되는 것.

다이아의 눈은 정확히 노라를 따라갔고, 화살을 수차례 발사했다. 그녀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노라는 화살을 전부 튕겨 내고 있었다.

“소드 댄스.”

김진석도 노라의 추천으로 배운 스킬, 소드 댄스. 360도로 몸을 돌리며 사방을 사정없이 베는 저 스킬은 노라가 사용하면 파괴력이 차원이 달랐다.

노라는 그 스킬을 화살을 튕겨 내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게임 속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결국 공격형 스킬이었고, 하나의 화살이 노라의 어깨에 적중했다. 그런데 마치 태풍처럼 제자리를 돌며 화살을 튕겨 낼 때 갑자기 그 안에서 단검이 날아와 다이아를 노렸다.

노라 또한 동체 시력으로 화살을 막아내며 동시에 단검을 다이아에게 날린 것이다.

다이아도 그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급히 피하려고 했지만 노라와 마찬가지로 어깨에 단검이 적중했다.

하지만 노라는 어깨에 화살이 꽂혔을 때부터 제대로 된 자세를 구사하기 어려웠고, 결국 몇몇 화살이 그녀의 몸을 스쳤다.

수준 높은 그 전투에 학생들은 물론이고 김진석조차도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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