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김진석과 엘리온의 여동생, 다이아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다이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엘프와 같이 활을 들고 있었다. 스물한 명의 학생을 상대해 왔지만 처음으로 활을 든 상대였다.
둘의 거리는 4미터 남짓. 김진석에겐 한걸음에 달려들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무턱대고 달려들 순 없었다. 압도적인 그녀의 레벨은 물론이고 활이 아닌 단검을 사용하기도 하는 다이아였다.
“먼저 공격합니다?”
여유로워 보이는 다이아는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김진석은 그때까지도 움직이지 않았다.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 피하려고.
그는 자신의 반응 속도와 신체 능력을 믿었고, 아직 능력을 숨기고 있는 다이아를 믿었다.
그리고 그건 정확했고, 날아오는 화살을 단검으로 쳐 내며 곧바로 달렸다.
“어썰…….”
스물한 명의 학생과 싸울 때조차도 사용하지 않았던 스킬을 사용하면서까지 달려 나갔지만 이미 그녀의 손에는 또 하나의 화살이 시위에 걸려 있었다.
“속사.”
김진석의 발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왔다.
카인이 아닌 다른 활을 쓰는 직업, 궁수.
궁수가 가장 먼저 배우는 기본적인 버프 스킬, 속사. 궁수의 공격 속도를 올려 주는, 아주 좋은 스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다이나믹하게 1초 만에 두 번의 화살을 쏘게 해 주는 스킬은 아니다.
공격 속도가 퍼센트로 오르는 스킬. 즉,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뒤따라 줘야 한다.
그녀는 힘을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두 번째의 화살은 정확히 김진석의 오른쪽 어깨에 적중했다.
“더 하실… 음?”
무기를 드는 오른쪽 어깨를 맞은 김진석은 제대로 된 전투 진행이 불가하다고 생각해 심판은 아쉬운 표정으로 김진석에게 물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신음은커녕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다행히 화살은 관통하지 않았다. 나무 화살이라 그런지 관통력이 강하진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이아는 그런 김진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이 정도로 항복했다면 실망했을 거다.
김진석은 피가 철철 나오는 어깨를 잡으며 다이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를 죽이실 생각입니까?”
“네? 아뇨?”
다이아는 김진석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고, 김진석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왜요?”
천연덕스러운 그녀의 반응에 김진석은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기사 학교에서 다이아의 역할은 이런 게 아니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며 학교에 녹아들어 학생과 교수 전체를 감시하는 역할이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시간 끄는 건 아니죠?”
시간 끌어 봤자 출혈이 있는 김진석에게 안 좋았다. 김진석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김진석이 이렇게 다가오면 모든 학생이 긴장했었다. 하지만 다이아는 제대로 된 자세도 안 잡고 여유로워 보였다.
심판을 지나쳐 다이아의 코앞까지 걸어가 물었다.
“제게 무엇을 원하는 겁니까?”
“…응?”
김진석은 다이아의 얼굴 앞까지 다가가 속삭였다.
“엘리온 님도 모르시는 것 같은데, 당신 독단입니까?”
“…뭐?”
그제야 다이아의 웃음 가면이 깨졌다.
“어차피 제가 당신을 이길 가능성은 없으니… 최선은 다하겠습니다.”
“당신…….”
김진석은 그 말과 동시에 단검을 휘둘렀다. 불시의 기습이었지만 다이아는 가볍게 몸을 놀려 피해 냈다.
물론 김진석은 그 공격이 맞을 거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거리를 벌리지 못하게 최대한 따라붙었다.
활을 사용하게 된 순간 김진석은 아무것도 못한다.
다이아는 급히 뒷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내 대응했다.
반응 속도, 신체 능력 그 어느 것도 김진석이 나은 게 없었다.
하지만 둘은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레벨만 따지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딱 하나.
2주 동안 받았던 노라의 수업 덕분이다. 노라의 수업은 살기를 지우는 것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실전이었다.
노라가 단검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 주었고, 김진석은 그걸 직접 노라에게 사용했다.
적어도 눈앞의 다이아는 노라보다 단검을 잘 다루진 못했다.
하지만 김진석이 우위를 점한 건 처음 2분이 전부였다. 모든 것이 김진석보다 뛰어난 다이아는 금방 김진석의 움직임에 익숙해졌고, 이내 그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다이아의 얼굴에서 당황이 사라지고 여유가 생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김진석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때 아주 살짝 방심한 다이아가 단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걸 김진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패링.”
김진석의 손에는 어느새 훈련장에서 주는 나무 단검이 아닌 패링 대거가 들려 있었고, 그에 내장되어 있는 스킬을 사용했다.
[내장 스킬 패링: 상대의 공격을 완벽히 튕겨 낼 시 상대를 1초간 기절에 빠트린다.]
게임 속에서는 상대를 기절에 빠트린다. 이곳에서는 어떻게 발동할지 아무도 몰랐고, 실제로 김진석도 처음 사용해 보는 것이다.
김진석은 다이아가 자기도 모를 정도로 가볍게 휘두르는 단검을 정확히 캐치해 숨겨 놨던 패링 대거를 꺼내 다이아의 단검을 쳐 냈다.
그와 동시에 김진석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 속도는 다이아조차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런데 김진석의 패링 대거가 정확히 다이아의 목을 노렸다. 그건 다이아도, 김진석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절체절명의 순간.
“아쉽군. 실격이다.”
[리안. LV:45]
김진석의 손목을 붙잡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심판. 정예 기사 중에서도 레벨이 45나 되는 괴물 같은 자였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얼굴에서 땀 한 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훈련장에서 주는 무기가 아닌 다른 무기의 사용은 실격이다…만 그래도 대단했다.”
리안은 아쉽지만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김진석을 바라보다가 다이아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동자는 동그래져 있었다.
심판 리안은 눈앞에서 김진석과 다이아의 싸움을 바라봤다. 둘 다 전혀 학생으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웬만한 교수들은 둘의 앞에서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것이다.
특히 다이아. 그녀의 화살은 리안조차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승자! 루비!”
그렇게 김진석의 훈련과 노라의 수업이 끝났다.
* * *
“엘리온, 다이아가 왜 저기 있지.”
레온하르트는 다이아의 역할을 대충은 알고 있었다. 다이아 같은 자가 있어야 학생과 교수를 제대로 알 수 있었으니깐.
학교에는 다이아뿐만 아니라 같은 역할을 하는 엘리온 휘하에 있는 자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쥐 죽은 듯,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학교를 감시하는데 이렇게 나서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도 모르겠네. 다이아는 자기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하는 성격이긴 하다만… 카이 학생의 뭐가 그녀의 호기심을 이끌었는지는 잘 모르겠네.”
엘리온은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둘은 다이아를 말리진 않았다.
둘이 나서서 모의전에 개입한다면 다이아도 평범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학생 전부에게 알리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깐.
그렇게 둘은 숨을 죽인 채 둘의 모의전을 바라봤다.
그런데 다이아가 처음부터 화살을 김진석에게 쏘아 냈다. 전혀 봐줄 생각이 없는 다이아를 보고 둘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바람을 뚫고 날아가는 화살의 모습은 아무리 학생의 수준이 아닌 김진석이라도 막기 쉬워 보지이진 않았다.
그런데도 김진석은 화살을 튕겨 냈다. 하지만 다이아는 스킬을 사용하면서까지 김진석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쏘아 냈고, 결국엔 김진석의 어깨에 적중했다.
심판이 모의전의 중지를 권했지만 김진석은 개의치 않고 화살을 뽑아내며 천천히 다이아에게 걸어갔다.
입 모양이 움직이는 거로 보아 뭔갈 말하고 있었는데 일부러 작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다이아의 놀란 표정이 보이더니 갑자기 김진석이 달려들었다.
“무슨 얘길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처음 보는 다이아의 표정이로군.”
레온하르트는 당황한 채 김진석의 단검을 막고 있는 다이아의 표정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실실대며 웃고 실없어 보이지만 그건 겉으로만 그랬다.
속은 냉혹한 암살자처럼 기사 학교에 도움이 안 되는, 아니 해를 끼치는 자는 가차 없이 목숨을 앗아 갔다.
그런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단검으로 김진석의 단검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으며 가면을 다시 쓰기 시작할 때. 갑자기 김진석이 돌발 행동을 했다.
나무 단검이 아닌 제대로 된 아이템을 꺼내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김진석의 공격이 다이아의 목에 닿기 직전.
심판이 김진석을 저지했다.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은 스킬을 쓰기 직전에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심판이 김진석의 실격이란 말을 끝으로 기사 학교가 세워진 이후 사상 최대로 컸던 모의전은 이렇게 끝이 났다.
* * *
학생들과 교수들이 돌아가고, 엘리온은 레온하르트와 함께 자신의 여동생인 다이아를 이사장실로 호출했다.
“부르셨나요?”
다이아는 언제나처럼 실실 웃으며 이사장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가면을 자주 본 둘에겐 가면에 금이 간 것이 눈에 보였다.
“다이아, 네가 멋대로 행동한 거에 책임은 묻지 않겠다.”
“…예?”
다이아는 엘리온이 아닌 레온하르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 게 믿기지 않았다. 둘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결과만 따지자면 네가 카이 학생에게 졌다. 물론 둘이 다 제대로 된 무기를 들었다면 결과가 달라졌겠지만 그것부터 따지기엔 많은 게 있지.”
레온하르트는 냉정하게 말하고 있었다. 레벨부터가 20이 차이가 나는데, 다이아가 맨손으로 싸워도 김진석을 이길 레벨이었다.
“넌 지금 고작 학생에게 죽을 뻔했어. 뭐라 변명하든 그 결과는 변하지 않아. 네 자질이 의심되는데.”
엘리온은 다이아의 자질을 자신이 제일 잘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다이아는 자신의 가면을 제일 잘 아는 엘리온과 레온하르트의 앞에서 가면을 벗었다. 웃음기를 지운 그녀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제게 뭘 원하시죠.”
차가운 목소리는 다이아의 가면인 루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둘은 그녀의 본모습을 알고 있었다.
“자네가 그 학생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가 뭐지?”
레온하르트는 다이아가 김진석과 모의전을 한 근본적인 이유를 물었다. 엘리온도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갑자기 다이아가 김진석에게 관심을 가졌을까.
그건 간단했다.
“그는 학생의 배를 찌르고 그 위에 포션을 부었습니다. 그건 뒷세계에서 알 사람만 아는 고문 방법입니다. 그는 절대 평범한 학생이 아닙니다.”
기숙사장의 시험에서 있었던 일. 당연히 다이아도 알고 있었다.
레온하르트와 엘리온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고문 방법인 것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둘은 김진석의 심성을 알고 있었다.
“평범한 학생이 아닐지언정 나쁜 자는 아니다. 레온하르트라면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달라.”
“크흠…….”
레온하르트는 전적이 있었지만 엘리온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이아의 의심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제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단검은 절대 제 목 앞에서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심판분이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겁니다. 그리고 용병 노라, 그녀와 친밀한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다이아의 의심은 타당했다. 그녀는 완고했고,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은 그녀를 설득시킬 방법은 없었다.
“…정 그렇게 불안하면 그의 옆에 있게. 반을 바꿔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