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꺼져, 기생충 같은 것들아.”
김진석과 노라는 항상 붙어 다녔다. 수업할 때를 제외하고도 밥을 먹거나 생활을 같이했다.
김진석이 혼자 있던 이유는 그저 그녀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내가 있을 때 어디 해 보지 그래?”
노라의 말에 교수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이미 김진석은 그들의 상태창을 전부 확인해 봤고, 그중에는 노라보다 레벨이 높은 자도 있었다.
하지만 노라랑 부닥치면 좋은 일은 없으니 알아서 물러나는 거다.
“싱거운 새끼들.”
노라는 콧김을 내며 말하고 있었다. 김진석은 그런 노라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노라는 슬그머니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갈 거야?”
“기사단 말입니까?”
“응, 그래도 회색 늑대 기사단은 그나마 꽤 유명한 기사단인데.”
회색 늑대 기사단. 김진석이 그들의 상태창을 확인했을 때 레벨이 45인 교수가 있었는데, 바로 그가 회색 늑대 기사단 소속이었다.
참고로 노라의 레벨은 41이었다가 사산 사건 이후 레벨이 42로 올랐다.
“별로요.”
“…왜?”
왜, 라고 물어보니 딱히 할 말이 없는 김진석이었다. 고작 저런 기사단에 들어가려고 이 학교에 온 것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기사단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김진석은 끊임없는 싸움을 원했다. 레벨 업을 원했다.
정확히는 해야만 했다. 그가 죽지 않기 위해서.
“…강해지기 위해선 기사단이란 울타리는 제겐 비좁습니다.”
“칼라 기사단도?”
“가이크 기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진석의 자신감 섞인 말에 노라는 어이가 없었다. 다른 일반인들은 노라가 알고 있는 김진석의 레벨인 28도 우러러본다.
물론 28이 높은 레벨은 아니다. 실제로 가장 레벨이 높다고 알려진 가이크의 레벨이 72였으니 거의 세 배 높은 레벨이었다.
그가 규격 외이긴 하지만 노라만 하더라도 김진석 열 명이 덤벼들더라도 이겨 낼 수 있다. 아니, 이제는 다섯 명 정도다.
그런 김진석이 가이크 기사단도 자신에게는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무슨 자신감이니?”
* * *
“엘리온 님!”
“…음?”
엘리온은 이사장실에서 언제나처럼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들어오라고 말했고, 교수가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가 아니었다.
꽤나 많은 교수가 엘리온을 찾아온 것이다.
“카이 학생, 그렇게 내버려 둘 겁니까?”
“다짜고짜 뭔 소리지?”
엘리온은 어리둥절한 채 교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수들은 화가 난 모습이었다. 그 화는 엘리온을 향한 게 아닌 다른 자였다.
“그 용병 년……!”
“그만!”
그때 엘리온이 불같이 화냈다. 언제나 아름다운 외모와 선한 웃음을 짓던 엘리온이 화를 내니 교수들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그대들과 같은 교수네! 존중하게!”
“…죄송합니다.”
처음 보는 엘리온의 화난 표정에 교수들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노라 교수, 그자에게 카이 학생을 맡길 겁니까?”
“그녀는 카이 학생을 망치고 있습니다!”
교수들은 노라에게 뭐라 할 수가 없으니까 엘리온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게 있었다.
노라가 그렇게 했기에 김진석이 성장하는 걸 교수들이 볼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원한 게 김진석이다.
아무리 엘리온이라도 자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노라가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알고 있었으니 교수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다른 교수의 수업엔 참견하지 말란 얘길 까먹었나?”
“그래서 참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버려 둔다면 카이 학생의 정신이 금방 무너질 겁니다!”
“카이 학생의 잠재력은 말도 안 됩니다! 그렇게 두면 안 됩니다!”
교수들은 김진석의 정신력을 걱정하고 있었다. 항상 온몸에 상처가 있었고, 그에는 당연히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 고통에 무너지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가 표면적인 이유였다.
당연히 그들의 목적은 김진석을 노라의 마수에서 꺼내 자신의 기사단에 집어넣으려는 속셈이었다.
물론 엘리온도 그 속셈을 알고 있었다.
“잠재력은 알고 있으면서 지금 그의 능력은 전혀 모르고 있군.”
“…예?”
엘리온은 김진석이 싸우는 걸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노라가 그를 시험할 때?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 레온하르트에게서 들은 얘기는 차원이 달랐다.
김진석은 사산에서 죽기 전까지 노라를 지켰다. 하지만 당연히도 곱게 버텼을 리가 없었다.
온몸이 독에 중독되어 사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고슴도치처럼 단검이 급소를 빼고 전부 박혀 있었다.
바닥에는 네크로맨서의 몬스터가 피를 흘릴 리가 없는데도 사람 몸에서 나올 만한 수준이 아닌 피가 땅을 적시고 있었다.
게다가 레온하르트가 사산의 정리를 끝마칠 때 김진석의 신체 파편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발견됐다.
칼라 기사단에서 사상자는 없어도 부상자는 있었지만 영구적인 신체 손실은 없었다. 사실상 김진석의 신체 파편이 맞았다.
손가락은 물론이고 거무죽죽한 피부들이 그냥 땅바닥에 널려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김진석은 노라를 포기하지 않고 견뎌 낸 것이다. 원래는 포션으로도 영구적인 신체 손실은 회복되지 않지만 플레이어인 김진석의 레벨 업은 달랐다.
아마 그의 정신력은 여기 있는 전부를 더해도 부족할 것이다.
“됐네. 그대들의 눈이 고작 그 정도라는 거겠지. 기사 학교 수준이 많이 떨어졌군.”
엘리온의 폭언에 교수들은 할 말을 잃었다.
“나가게. 그리고 다신 이딴 일로 나를 찾아오지 말게.”
“…알겠습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됐던 교수들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이사장실을 나갔다.
【 모의전 】
“…어떻게 하죠?”
교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명의 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김진석의 거구에도 밀리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엘리온 님이 저렇게 완고하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네. 내 불찰이야.”
“살란 교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살란. LV:45]
그는 노라가 말했던 회색 늑대 기사단의 기사단장, 살란이었다. 교수 중에서 세 번째로 강력한 자였고, 그는 기사 학교에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었다.
회색 늑대 기사단은 김진석이 모르긴 했지만 이 세계에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기사단이었다.
살란이 점찍은 학생이 있으면 다른 교수가 회색 늑대 기사단을 소개해 주었고, 그 학생이 회색 늑대 기사단에 들어가면 보수를 주는 형식이었다.
그리 위세가 강하지 않은 교수들을 포섭해 자신의 세력을 만들었고, 그렇게 자신의 기사단을 불려 나갔다.
그때 곁에서 알랑방귀를 뀌던 한 교수가 말했다.
“모의전은 어떻습니까?”
“…모의전?”
기사 학교에도 모의전은 있었다. 실전과 같이 싸우는 방식인 그건 대부분 같은 반의 학생끼리 모의전을 했다.
하지만 다른 교수의 학생과 싸움도 가능했다. 물론 교수의 허락하에 말이다.
그런데 알랑방귀를 뀐 교수가 한 말은 조금 달랐다.
“교수끼리의 모의전도 옛날에 한 적이 있습니다. 힘을 보여 준 다음 자신의 수업으로 오라는 홍보 형식으로 말이죠. 그 용병… 노라 교수님과 살란 님의 힘을 보여 주면 카이 학생의 인식이 바뀔 겁니다.”
“흠… 나쁘지 않군.”
* * *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있어?”
노라와 김진석은 언제나처럼 훈련장에 왔는데, 전에 보았던 회색 늑대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교수 살란이 있었다.
그 살란이 갑자기 모의전을 제안했지만 노라는 자기가 왜 하냐고 물어봤다. 물론 살란은 그 대답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최근에 빚을 다 갚았다지. 그렇다면 금화는 별로 없겠군.”
“…그런데?”
노라는 일부러 뜸 들였다. 그런 노라를 김진석은 옆에서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라는 평상복에 1만 금화 가까이 태웠다.
물론 그것도 돈이 없다는 노라라서 그런 거다.
“1만 금화를…….”
“콜!”
살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라는 외쳤다. 살란도, 같이 온 주변의 교수들도 어이가 없어 했다. 하지만 김진석은 그들이 더 어이가 없었다.
“고작 모의전에 1만 금화를……? 무슨 속셈이 있나?”
고작 한 번 싸우는데 1만 금화를 얻을 수 있다니… 상상을 초월했다. 아마 회색 늑대 기사단의 단장인 살란은 그만한 금화를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자인 것 같았다.
그런데 노라는 더욱 상상을 초월했다.
“항복!”
“…예?”
살란은 모의전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달려들었는데, 갑자기 노라가 항복을 외친 것이다. 그 모습에 살란은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뭘 봐. 항복이라고.”
교수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그들이 혐오하던 용병. 용병이 바로 그녀였다.
기사들인 교수들은 모의전을 받으면 거절할 순 있어도 허락해서 싸우게 된다면 최선을 다한다.
그들에겐 항복이라는 개념 따위도 없었다.
노라가 살란에게 선불이 아니면 안 싸우겠다고 한 이유가 있었다.
“니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 당사자에게 거절당했다고 꼭 이렇게 치졸한 방식을 선택해야겠어? 자칭 기사님들아?”
노라는 일부러 그들의 속을 긁고 있었다. 김진석은 그제야 교수들이 뭘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살란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이 붉게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라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어차피 볼일은 내가 아닌 학생한테 있으니… 네 학생, 내 학생끼리 모의전 하는 건 어때?”
“…음?”
살란은 노라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이 학생과… 내 학생들 말인가?”
“그래, 어때?”
“그게 내게 무슨 이득이 있지?”
“네가 원하는 게 카이에게 잘 보이는 거 아니었어? 네가 가르친 애들이 잘나면 카이도 다시 보겠지?”
그렇게 말한 노라는 김진석을 바라봤다. 살란은 그녀의 말에 동의했지만 자신에게만 이득이 되는 제안을 노라가 할 리가 없었다.
“2만 금화. 카이가 이기면 4만 금화, 너희가 이기면 1만 금화만 줘.”
“…알겠다.”
* * *
“굳이 저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가 있나요?”
김진석은 그냥 직설적으로 노라에게 물었다. 그녀는 분명 김진석이 살란, 회색 늑대 기사단으로 가는 거 아닌지 걱정했었다.
물론 금화가 많이 걸려 있긴 하다. 노라는 그들의 속셈을 이미 알고 있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페이스였다.
“카이, 어차피 학생들 수준 너 봤지?”
“예?”
“저 정도면 살기 지울 수 있지?”
노라의 수업을 들은 지 2주. 아직도 살기를 제대로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첫 1주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노라가 보기에는 아직도 부족했다.
전투의 재능이 뛰어난 김진석이 이러는 이유를 노라는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김진석보다 훨씬 강해서.
“너 정도면 웬만한 교수도 이길 텐데 학생 정도는 안 죽이고도 제압할 수 있잖아?”
하지만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었나. 김진석은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 따위는 몰랐다.
기숙사장의 시험에서 죽이긴 그러니 차선으로 단검으로 배를 찌른 선택을 한 게 김진석이다.
“가능할까요?”
“안 돼도 되게 해. 이것도 수업이야. 네가 이기면 반 때줄게.”
막무가내로 말하는 노라를 당해 낼 수 없는 김진석은 한숨을 쉬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