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38화 (38/201)

38화

레온하르트와 칼라 기사단은 말을 타고 움직였고, 사산에 거의 다 도착할 때쯤.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전투 소리다. 최대한 빨리 간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를 감지한 레온하르트는 말을 더욱 박차며 사산의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엔 엄청난 숫자의, 살점이 떨어진 몬스터들이 단 하나의 뭔가를 공격하고 있었다.

“노라!”

“칼라 기사단! 몬스터들을 도륙 낸다!”

칼라 기사단과 레온하르트는 엄청난 속도로 말을 박차며 노라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제자리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으며 몬스터들을 도륙 내고 있었다.

레온하르트는 어느새 자신의 무기인 성자의 해머를 꺼내 곧바로 해머에 내장된 스킬을 사용했다.

“징벌.”

하늘에서 거대한 해머가 나타나 땅바닥을 내리치며 몬스터들을 짓이겼다. 이번에는 제대로 노라를 빗나가게 조준했다.

그 엄청난 위력에 몬스터들이 주춤한 사이에 칼라 기사단은 몬스터들에게 도착했고, 동시에 살점이 떨어진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도륙 내기 시작했다.

칼라 기사단이 몬스터들을 죽일 때 레온하르트는 노라를 향해 갔다.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몬스터들을 죽인 노라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온몸이 피투성이인, 쓰러진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레온하르트가 다가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날 버리고 도망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나를 지킨 걸까……? 도대체 왜?”

노라는 자신의 감정이 이상한 걸 자기 자신도 알고 있었다. 분명 만난 지 얼마 안 된 자인데 자신을 목숨 걸고 지켜 준 남자에게 이상한 감정이 느껴지고 있는 것을.

레온하르트는 쓰러져 있던 남자에겐 관심도 두지 않고 노라의 상태를 보고 급히 자신의 아공간에서 최상급 포션을 꺼내 노라에게 건네주었다.

노라는 포션을 받아 뚜껑을 열어 입에 머금고 직접 김진석의 입에 넣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김진석의 몸은 전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포션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하나밖에 없었다.

죽은 사람.

그렇게 김진석은 한 번 죽었다.

* * *

게임 속 튜토리얼은 얼마든지 죽어도 다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게이트를 통해 들어온 이곳은 정확히 세 목숨만 주어졌다.

김진석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죽지 않았기에 몰랐던 거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 최초 플레이어에 한해 초기화 대신 바로 시작한다.

[목숨 2/3]

지구에 있는 김진석이 아닌 다른 플레이어들은 튜토리얼에서 죽으면 초기화되며 맨 처음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김진석은 아니었다.

죽은 상태부터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좋은 혜택이지만 어떻게 보면 안 좋을 수도 있는 혜택이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어 버린다면 살아나 봤자 또 죽을 테니.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김진석에겐 아니었다.

* * *

“또… 기절했나.”

김진석은 자신이 죽었는지도 모른 채 깨어났다. 하지만 그건 여전히 눈앞에 떠 있는 검은색 글씨와 푸른색 글씨로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 최초 플레이어에 한해 초기화 대신 바로 시작한다.

[목숨 2/3]

김진석이 그 글씨를 보자 바로 사라졌고, 그는 안도의 한숨보다는 짜증 섞인 말이 먼저 나왔다.

“목숨이 있다는 것부터가 어이가 없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세 목숨 중 한 목숨을 잃어버릴 줄이야.”

뭐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김진석은 학교 기숙사의 침대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김진석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어차피 노라를 두고 갔다면 네크로맨서 질린의 성장이 더욱 가속화됐을 거다.

그리고 질린이 노라의 피로 무슨 일을 벌일지 몰랐다.

아무리 레온하르트와 칼라 기사단이라고 한들 게임 속에서 나온, 힘을 찾은 네크로맨서 질린을 피해 없이 막진 못할 것이다.

아니, 게임 속 네크로맨서 질린은 칼라 성도 막지 못할 괴물이었다. 그래서 플레이어에게 퀘스트를 내주는 것이다.

그때 플레이어의 레벨은 자그마치 50. 하지만 지금 김진석의 레벨은 28이었다.

- 죽음으로 인한 페널티로 레벨이 1 다운.

[LV:27]

아니, 이젠 27이었다.

“후…….”

짜증과 안도의 한숨이 섞인 한숨을 내뱉을 때 방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잘 살아 있군.”

누군가는 기숙사장 앙골라스였다.

노라와 레온하르트는 김진석이 죽은 줄 알고 칼라 성으로 보내 장례를 치러 주려고 했다.

그렇게 칼라 기사단 중 한 명에게 그의 시신을 맡겨 칼라 성으로 돌려보냈는데, 그 기사가 칼라 성으로 돌아가는 도중 갑자기 상처가 전부 치유되며 되살아난 것이다.

그 기사는 김진석의 심장이 다시 뛰고 있는 걸 알아채고 우선 그가 살던 기숙사에 맡겼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네크로맨서! 그는 어떻게 됐습니까?!”

“네크로맨서가 갑자기 왜 나와……? 설마 갑자기 레온하르트 님과 칼라 기사단이 칼라 성 밖으로 나간 이유가… 그거냐?”

김진석은 그의 말에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넌 왜 그런 꼴로……?”

기숙사장이 김진석에게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김진석은 그를 무시한 채 방 쪽 창문을 부수며 외쳤다.

“흑호!”

5층에서 떨어지는 김진석을 흑호가 그림자에서 나와 받았다. 김진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흑호는 이미 목적지를 안다는 것처럼 순식간에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야! 너 무슨……?”

기숙사장은 급히 깨진 창문으로 창밖을 내다봤지만 김진석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뭐야? 도대체…….”

* * *

“괜찮나? 생각보다 친밀한 사이인 것 같았는데.”

레온하르트는 사기를 가득 머금은 네크로맨서의 몬스터들의 공격이 뜸한 틈을 타 숨을 고르며 노라에게 물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숨을 고르고 있었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노라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알 수 없었다. 원래 그녀의 성격이 서글서글해서 다른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냈고, 마찬가지로 김진석에게도 똑같이 대했다.

게다가 외모도 아름다우니 그런 그녀를 수많은 남자 용병이 좋아했었고, 노라는 그런 남자를 자주 이용해 왔다.

남자 용병들은 노라, 자신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런 상황에 왔을 땐 도망가기 바빴다.

결국 노라 혼자서 그 상황을 해결해 나갔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 자신을 좋아하기는커녕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남자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다.

그것도 혼자 도망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매우 화가 나네요?”

거의 1시간 가까이 네크로맨서 질린과 싸워 왔다. 놈의 병력은 거의 끝이 없었고,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지만 몬스터들은 끊임없이 몰려왔다.

노라의 감정이 겉으로 표출되듯이 그녀의 적색 머리카락이 그녀의 마나로 인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때 하필 눈치 없는, 살점이 다 떨어져 해골만 남은, 고블린으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해골이 된 고블린은 자신의 갈비뼈를 직접 부러뜨려 날카롭게 만들어 노라에게 달려들었지만 노라는 역으로 달려들어 고블린의 머리를 붙잡고 땅에 내려쳤다.

순식간에 고블린의 두개골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바로 몬스터들이 전부 해골로 변해 버린 것.

“레온하르트 님! 갑자기 놈들의 기세가 거세졌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네크로맨서 질린의 몬스터들이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강해진 것이다.

게다가 노라에게 두개골이 박살 난 고블린조차도 손가락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칼라 기사단은 몬스터들의 거센 공격에 밀리고 밀리며 입구까지 도망치고 있었다.

“사기를 더 들이마시면 안 돼!”

노라는 사산의 위험성을 직접 몸으로 겪었다. 고작 1시간 남짓 사산에 있었는데도 그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칼라 기사단은 몬스터들을 쫓아 사산까지 들어갔고, 거진 1시간을 넘게 전투를 지속했으니 몬스터가 강해진 것뿐만 아니라 기사들의 몸에도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지는 건 물론이고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거나 팔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말이다.

“사산에서 빠져나와라! 퇴각한다!”

“레온하르트 님!”

레온하르트도 그걸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칼라 기사단에 퇴각 명령을 내렸다. 노라가 처음으로 레온하르트에게 소리쳤지만 그는 완고했다.

“어떤 사이였는지 모르겠지만 네 복수에 내 기사단이 희생되는 꼴을 볼 순 없다!”

“…씨발!”

노라는 정론인 그의 말에 욕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레온하르트도 노라를 아끼고 김진석을 눈여겨봤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문제.

무엇보다 기사단의 목숨이 중요했다.

노라는 어느 때의 김진석과 같이 무기력한 자신이 매우 혐오스러웠다. 짜증이 치솟은 그녀는 먼저 칼라 기사단이 퇴각하는 것을 도왔다.

그때 검은 로브의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네크로맨서!”

노라는 물론이고 이번 사건의 원흉이 네크로맨서인 건 이미 전부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네크로맨서의 모습이 전과 달랐다.

“리치!”

레온하르트는 질린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네크로맨서가 오랫동안 사기를 흡수하면 리치로 진화하게 된다.

겉모습이 해골인 리치는 근육이 없어 근력이 약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그건 리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 질린의 레벨은 55. 불과 김진석이 봤을 때만 해도 레벨이 50이었는데 갑자기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유는 마찬가지로 갑자기 등장한 엄청난 생명력 덩어리들, 바로 칼라 기사단이다. 게다가 압도적인 힘의 레온하르트도 있었으니 질린의 성장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게 된 것이다.

김진석과 노라의 행동이 벌인 나비 효과였다.

“마음에 드는군. 살아생전에도 유명했던 레온하르트를 만날 줄이야.”

질린은 더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 그리고 레온하르트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날 아나?”

“알다마다. 나도 그쪽과 함께 악마와 싸웠었다.”

해골의 모습인 질린은 그때를 회상하듯이 말했다.

“그땐 몰랐지. 악마의 힘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네크로맨서는 몬스터들과 마찬가지로 마법사인 인간이 사기를 계속해서 삼켜 만들어진 몬스터였다.

“그 레온하르트와 기사단을 나 혼자서도 대적할 수 있다니…….”

질린은 자신의 힘에 취한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갑자기 레벨이 5나 오르니 그 어떤 사람이라도 그럴 것이다.

해골이라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니 알 수밖에 없었다.

레온하르트는 칼라 기사단에 눈치를 주며 뒤로 물리고 있었고, 그는 오히려 앞에 나서며 말했다.

“왜 이곳에 나타난 거지?”

“네크로맨서가 나타난 이유는 뻔하지 않나? 뛰어난 소재와 성장을 위해서다. 마치 저 적발의 여성처럼 말이다.”

질린은 칼라 기사단에서 의식을 잃은 기사를 돕고 있던 노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쉽군. 저 여성과 마치 정의의 기사처럼 저 여성을 지킨 거구의 남자, 생명력으로만 따지면 여기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그 남자의 시체를 가져가다니 말이야. 그 남자의 시체를 다시 가져온다면 자네들은 여기서 그냥 보내 주겠다.”

그 말에 노라가 발끈했지만 레온하르트가 손으로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

“…알겠다. 시간이 조금 필요할 거네.”

“좋은 선택이다.”

“레온하르트 님!?”

노라는 레온하르트의 말에 소리쳤다. 하지만 레온하르트도 생각이 있었다.

“사산의 사기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몸에서 빠져나간다. 시간만 벌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어.”

그 말에 노라는 안심했다. 하지만 레온하르트는 뒤에 기사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칼라 성으로 가서 시신을 다시 가져와라.”

“…예?”

“…어차피 몬스터에게 죽은 인간의 시신은 되찾기 어렵다. 나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 말에 노라가 레온하르트에게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

갑자기 리치 질린의 몸에 구멍이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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