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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34화 (34/201)

34화

* * *

“생각보다 넓네.”

김진석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넓은 방에 깜짝 놀랐다. 물론 용병의 쉼터에서 머물렀던 2인실보다는 작았지만 그건 2인실이었다.

기숙사는 1인실인 걸 감안해도 꽤나 컸다. 하지만 그에게 좀 불편한 것이 있었다.

“침대가 작네…….”

용병의 쉼터에서는 둘이 함께 쓰라고 만든 침대가 김진석에게 딱 맞았지만 기숙사는 1인실이었으니 침대가 맞을 리가 없었다.

위에 누워도 발이 삐죽 나오니 분명 편하긴 한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뭐… 그래도 됐어. 문제는 수업인데…….”

노라에게 배우는 건 확정이었고, 다른 교수의 수업은 안중에도 없었다. 기사 학교는 딱히 몇 개의 수업을 들어도 상관이 없었지만 이곳도 마찬가지로 중간, 기말고사가 있었다.

그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낙제생이 된다.

물론 이사장인 엘리온이 시험에 관여하는 것 없이 오로지 교수에게 시험을 맡기기 때문에 낙제생의 처분도 교수에게 권한이 있다.

물론 교수가 아무 말 안 한다고 한들 중간이든 기말이든 두 번 낙제한다면 바로 학교에서 퇴학이다.

만약 여러 수업을 들어서 두 수업에서 한 번에 낙제를 받으면 바로 학교에서 퇴학이다. 학생들은 웬만하면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과연 누군가를 가르친 적이 있을지…….”

* * *

“…뭐야. 거의 창고 아니야?”

노라는 자기가 수업을 할 교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과장 좀 보태서 구석에 거미줄이 쳤다고 하면 믿을 정도로 방치되어 있었다.

“카이 오면 청소부터 시켜야겠네.”

바닥에 먼지가 쌓여 있었고, 노라는 수업 첫날부터 부려 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앞으로 일주일 뒤, 그때부터 첫 수업이 시작된다.

“음~ 기대되네?”

그녀는 일주일 동안 치울 마음이 없었다.

* * *

일주일 중 절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김진석은 딱히 짐이랄 것도 없고, 있어도 어차피 모든 아이템은 인벤토리에 있으니 할 게 없었다.

그래서 김진석은 마침 돈도 별로 없으니 몬스터를 잡아 금화 좀 벌려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기숙사장이 그를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다.

알고 보니 기숙사를 들어오려는 학생들이 김진석의 기행에 죄다 겁에 질려 도망쳐 버린 것이다. 그중에서도 정말 기숙사에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은 목숨 걸고 기숙사에 남았다.

그런데 기숙사장은 김진석이 더 사고 치기 전에 합격시켜 버렸고, 목숨 걸고 남은 몇몇 학생만 기숙사에 들어올 수 있었다.

100명이 들어올 수 있는 기숙사에 신청한 학생이 242명이었는데, 정작 기숙사에 들어온 자는 고작 여덟 명뿐이었다.

그래서 기숙사장은 새로운 시험을 내야만 했다.

쓸데없이 귀찮은 일을 한 번 더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머지 아흔두 명을 받았고,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기숙사에 들어오려던 학생들은 김진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카이라고 했지?”

“…예.”

김진석은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기숙사장이 그를 붙잡았다. 앙골라스는 김진석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젓고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는 얼굴은 아닌데… 됐다. 가라.”

“…예.”

김진석은 별것도 아닌 거로 부르는 게 짜증이 났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안녕?”

“…뭐,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기숙사 밖으로 나와 기사 학교를 나가려고 하는데 정문 앞에 노라가 있었다. 아름다운 붉은 적발이 돋보이는 그녀는 한참 멀리서도 보였고, 김진석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너. 몬스터 잡으러 가지? 몬스터 추천해 줄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김진석은 자신을 감시한 것처럼 정확히 알고 있는 그녀가 의심스러웠다. 노라는 그런 김진석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에게서 옛날의 내가 보여. 하룻강아지 시절에 몬스터만 잡던 내 모습.”

“…23살이지 않나요?”

“여자의 나이는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야.”

처음으로 정색하는 노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김진석이 뭔가를 더 물어보려고 할 때 노라가 먼저 말했다.

“여긴 너무 시선이 끌리네. 이동하면서 말하자.”

* * *

“그런데 넌 기숙사 시험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니?”

둘이 기사 학교 정문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시선이 끌렸다. 정확히는 김진석에게 눈총이 더 많이 왔다.

신분이 귀족인 자들은 딱히 기숙사에 관심이 없었지만 비교적 평범한 사람들에겐 기숙사는 정말 목숨 걸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길을 김진석이 막아 버린 것이다. 게다가 정말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같은 학생을 찔렀다.

이미 기사 학교에 전부 퍼져 버린 소문이었다.

“기숙사장이 허락했으니깐요.”

“그렇다고 같은 학생을 찌르니? 학교 생활할 맘 없어?”

로스트 월드에서도 평범한 학교가 있었고, 꿈만 같은 학교생활이란 단어는 이곳에도 있었다.

“없습니다.”

하지만 김진석에겐 학교생활이란 단어는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학교생활을 한 적도 없었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깐.

“어… 어. 그래.”

오히려 단호한 김진석의 말에 노라가 당황했다.

“…데이트나 갈래?”

“몬스터를 잡는 게 데이트입니까?”

김진석은 그렇게 말했지만 오히려 그런 데이트라면 환영이었다. 여자랑 사귀어 보기는커녕 거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었다.

기껏해야 편의점에 온 손님으로나 대했을 뿐.

물론 그가 쑥맥이라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어떤 몬스터입니까?”

“…어, 내가 알아 뒀는데. 리들리라고 알아?”

리들리, 생김새는 임프와 비슷했다. 빨간색이 아닌 보라색 몸체에 날개가 두 쌍이었고 온몸에는 주름이 있었다.

그리고 주둥이는 도마뱀처럼 길고 이빨은 뾰족했다.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입니까?”

리들리의 레벨은 35. 갈룸보다도 레벨이 높은 몬스터였다.

“그래서 내가 같이 가잖아. 걱정하지 마. 죽을 것 같으면 살려 줄게.”

“…제가 그쪽의 뭘 믿고요?”

“어허, 나 교수님이야~”

노라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뭔가 기분이 좋지 않은 김진석이었다.

리들리는 칼라 성에서 조금 떨어진 평야에 있었다. 하지만 둘이 가는 곳은 평야가 아니었다.

“리들리가 숲에 있다고요?”

“…응? 뭘 놀래.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게임 속에서의 지식으로는 리들리가 한적한 평야에 널려 있겠지만 실제로 살아 있는 리들리가 그런 곳에 멀뚱멀뚱 서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게임 속 리들리는 최소 세 마리씩 뭉쳐 다닌다. 갈룸처럼 몸이 매우 약해 비교적 잡기 쉬운 몬스터에 속한다.

로스트 월드에서는 대부분 날개 달린 몬스터는 몸이 약하다는 평이 있었다.

그런데…….

“놈들 성격이 워낙 괴팍해서 자기들끼리도 잡아먹거든. 그래서 일부 리들리는 숲에서 사는데, 그놈들을 잡으러 또 새로운 리들리가 숲에 들어가고 그런 식이야.”

게임 속과는 많이 달랐다. 게임 속에서도 몬스터끼리 싸우는 경우는 있었지만 같은 몬스터끼리 싸우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게 둘은 리들리가 나오는 숲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분명 둘은 달리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숨이 차기는커녕 평범히 대화까지 나누고 있었다.

“너… 꽤 체력이 좋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죠.”

김진석은 수많은 한계를 넘어왔다. 아니, 사실상 모든 싸움이 그를 한계까지 몰아세웠다. 그때 김진석은 깨달은 것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체력을 관리하는 법. 수십, 수백 번 죽기 직전까지 가 봤고, 그만큼 뛰어난 상황 판단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자신의 체력을 어떻게 해야 보존할 수 있을지, 어떤 공격과 방어를 해야 체력을 가장 적게 쓰는지를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전력으로 뛰고 있었고, 노라는 김진석과는 궤를 달리하는 인물이었으니 30분을 내리 달려 숨이 조금씩 차오르는 그와 달리 노라는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후… 언제 도착합니까?”

“네가 달려가겠다고 했잖아. 거의 다 왔어.”

노라는 거리가 멀어서 말을 타고 가는 걸 제안했지만 김진석은 거절했다. 자신의 체력을 더더욱 키우기 위해서다.

아무리 체력을 관리하는 방법을 안다고 하지만 레벨 업이라는 우연이 아니었다면 쓰러져 죽었을 거다.

그리고 또 하나.

“내 정신력이 너무 나약한 것 같다.”

남이 보면 헛웃음이 나올 거다. 하루 24시간 전체를 몬스터와 싸워 살아남은 그가 이런 말을 하다니.

하지만 김진석은 그 이후 곧바로 기절한 자신이 마음에 걸렸다.

“로스트 월드에 들어온 직후 3일 사이에 기절을 도대체 몇 번이나 한지 모르겠다.”

“뭘 그리 중얼거리니? 다 왔어.”

그때 노라와 함께 김진석은 한 산의 입구에 도착했다.

“사산.”

사(死)산, 일명 죽음의 산. 하지만 사람의 죽음이 아닌 몬스터의 죽음을 의미하는 산이다. 수많은 몬스터가 죽고 죽어 쌓인 몬스터의 피로 인해 만들어진 산으로 그 땅에는 죽음의 기운인 사(死)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좋지 못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돌아가죠.”

“뭐야, 쫀 거야?”

김진석은 노라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사산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사산의 위험성이 아닌 사산에서 살고 있는 어떤 인물의 위험성이다.

네크로맨서. 죽음을 무기로 사용하는 놈은 사산에서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원래 인간이었지만 악마의 힘에 취해 리치로 변해 버린 인물이었다.

일반적인 네크로맨서의 레벨은 45. 이미 그것만으로 노라보다 레벨이 높았지만 사산에 서식하는 네크로맨서는 네임드 네크로맨서다.

레벨은 자그마치 60. 게임 속 스토리에서 후에 칼라 성을 침공하는 몬스터다.

물론 노라는 이런 사실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김진석은 사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이유가 마땅히 없었다. 노라가 장난스럽게 말한 걸 인정해 버리면 이상한 눈으로 보게 될 거다.

“후… 알겠습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김진석은 목숨을 건 도박은 하지 않았지만 사산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로스트 월드의 스토리상 후반에 등장하는 사산의 네크로맨서는 레벨이 60이 맞다.

하지만 그 이유는 사산에서 사기를 계속해서 빨아먹어 진화했기 때문이다. 아직 놈이 네임드 네크로맨서가 아닌 일반적인 네크로맨서라면 할 만했다.

네크로맨서는 죽은 몬스터의 피를 이용해서 몬스터를 죽기 직전의 상태로 소환해 싸우는 몬스터이므로 자기 자신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네크로맨서의 최종 진화 형태인 리치로 변하고 있었을 테니 온몸의 살점이 떨어지고 있을 것이었다.

리치가 되면 온몸이 해골로 변해 마찬가지로 시체를 해골로 일으킨다. 일반 네크로맨서는 그냥 몬스터의 시체만 되살리지만 리치는 시체에 있는 살점을 전부 떼어 낸 해골로 되살린다.

살아생전보다 더 강한 몬스터로 탈바꿈되었지만 네크로맨서는 아니었다. 되살려 봤자 살아 있던 시절보다 훨씬 약해진다.

“만약 지금 놈을 처리할 수 있다면 후에 벌어질 참사를 막을 수 있다.”

“뭘 또 중얼거려. 들어가자.”

* * *

사산은 마치 검은 대지처럼 땅이 새까맸다.

게다가 거기서 자란 나무들도 마찬가지로 새까맸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게 칠흑처럼 새까맸다. 게다가 사기로 보이는 검은 오라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고, 이걸 계속해서 마시면 산 자도 죽은 자로 변할 것만 같았다.

김진석은 몰랐지만 사산은 원래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다. 물론 노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노라는 김진석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 예상해 그의 담력을 시험해 볼 생각이었던 거였다.

그래서 노라는 김진석을 도발했고, 김진석은 마지못해 들어가게 되는 상황이 그려지게 된 것이다.

오해와 오해가 겹쳐 일어난 일이었다.

둘은 그렇게 범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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