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32화 (32/201)

32화

“…너도 아공간이 있구나?”

아공간. 김진석이 알고 있는, 게임 속 이야기인 인벤토리도 이 세계에 존재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전부 가질 수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선택받은 자만이 가지고 있었다.

김진석은 더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는 척할 필요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인벤토리에서 평범한 세트를 전부 꺼냈다.

그런데 그 숫자는 노라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

대략 150개.

원래 200개는 있었는데 50개는 정도는 갈룸들과 전투하던 때 부서져 없어진 것이다.

무구점의 수염 덥수룩하게 난 아저씨도 눈이 동그래진 채 김진석이 계속해서 나열하는 아이템을 바라봤다.

“…기사단에서 한꺼번에 청구했을 때 본 적은 있어도 혼자서 이 정도를 가져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지. 어디 전쟁 났는데 살아남기라도 했나?”

김진석의 외모만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만 같았다. 마치 갓 전쟁에서 살아나와 얼굴의 흉터조차도 지우지 못한 거라고 보이기에.

무구점 아저씨는 배가 불뚝 나와 있었고, 땀을 뻘뻘 흘리며 김진석이 꺼낸 아이템을 하나하나 전부 감정했다.

“대략 9,600금화 정도가 나오는군. 대형 거래니 인심 써서 10,000금화로 깔끔하게 해 주겠네.”

고작해야 개당 100금화도 되지 않았다. 게임 속에서도 아이템을 상점에 파는 건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평범한 무구를 상점에서 사면 적어도 1천 금화는 하는데, 그대로 팔면 100금화도 안 하다니. 바가지나 다름없었지만 당연히 이유는 있었다.

몬스터를 잡고 나온 아이템은 대부분 하자가 있다. 내구도가 멀쩡하지 않다거나 하는 이유가.

게다가 김진석은 대부분 그 무기를 직접 사용해서 내구도가 더더욱 처참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게 적정 가격인지 몰랐으니 그래서 선생님을 데려온 거다.

김진석은 노라를 흘끔 쳐다봤고 노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아저씨, 생긴 건 이래도 신용은 괜찮아. 나쁘지 않은 가격이네.”

적어도 2만 금화는 받을 줄 알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게임 속에서도 인벤토리에는 한계가 있었고, 아직 꽉 차진 않았다지만 언제 다 찰지 몰랐다.

그래서 악성 재고다.

“좋습니다. 팔겠습니다.”

“좋은 선택이군. 그러고 보니 이번에 레온하르트 님이 데려온 자가 그댄가?”

어느새 김진석의 정보가 칼라 성 전체에 퍼진 상태였다. 김진석은 귀찮아지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 * *

“…넌 진짜 정체가 뭐니?”

이번에는 노라를 데리고 지식의 도서관에 왔다. 돈이 생겼으니 이제는 스킬을 얻어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스킬에 대한 지식은 김진석을 따라갈 자가 없을 거다.

하지만 고민이 있었다.

많은 스킬을 배워야 할지, 아니면 비싸고 좋은 스킬을 적게 배워야 할지 말이다.

여러 스킬을 배우는 건 그만큼 여러 상황을 대처할 수 있다는 거지만 그만큼 생각할 게 많아져 머리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강력한 스킬 몇 개를 배우면 그만한 파괴력이 생기겠지만 여러 상황을 대처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노라, 당신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교수님.”

“…노라 교수님.”

그제야 노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더 교수 직책을 맡은 게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내 추천은 강력한 스킬을 배우는 거. 네가 뭔 스킬을 배울지 모르겠지만 스킬 하나만 잘 배워서 잘 써먹기만 한다면 평생을 사용할 수 있어.”

대표적으로 지금 노라가 사용하는 스킬, 기교. 10만 금화에 가까운 스킬인 기교는 그 성능에 비해 싼 수준이었다.

이곳은 현실이다.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가 빨라지면 당연히 좋을 거다.

그런데 자신의 몸이 거기에 적응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노라는 기교와 독거미의 단검을 사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사용하지도 못했었다.

그걸 처음으로 사용한 게 바로 김진석의 앞에서 갈룸의 왕에게다.

그녀는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갈룸의 왕의 손을 순식간에 잘라 버린 적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기교 스킬을 사용했다고 한들 그리 큰 차이가 없다.

게임 속에서는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가 퍼센트로 오르기 때문에 기본 신체 능력이 평범한 사람은 당연히 그리 높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레벨이 41이나 되는 노라가 사용하게 되면 신체 능력이 미친 듯이 상승한다.

그런 그녀는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바로 자신의 속도에 적응하고 공격까지 했다. 그 또한 그녀의 재능이었다.

말이 길어졌지만 즉, 요점은 강한 스킬 하나만 잘 사고 그 스킬을 잘 운용할 수만 있다면 평생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문제는…….

“근데 넌 직업이 뭐니?”

기교는 노라의 직업, 도적이 사용하는 스킬이다. 김진석이 배운 스킬과 같은, 공용으로 배울 수 있는 스킬이 있지만 효과가 미미할 뿐이었다.

물론 김진석은 그 스킬 덕분에 살아났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게 전부. 그 스킬에 몬스터가 죽은 적은 거의 없었다.

“플레이어입니다.”

“플레이어? 처음 들어 보는 직업이네. 지식의 도서관에는 정보가 있으려나?”

로스트 월드에서는 수많은 직업이 존재했고, 숨겨진 직업도 많았다. 아마도 김진석 그도 모르는 직업이 있을 거다. 그 증거로 김진석의 가명, 카이의 직업인 카인.

김진석도 카인이란 직업을 정말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몬스터를 죽일 당시에 어떻게 죽였냐에 따라 직업이 정해지는데, 김진석은 단검으로 몬스터를 죽였다.

하지만 그냥 단검으로만 죽인다면 노라와 같은 도적으로 전직하게 되지만 김진석은 단검을 던져서 몬스터를 죽였다.

특이하게도 활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카인이었는데, 단검을 던져서 몬스터를 죽여야 전직하는 특수 직업이었다.

김진석도 정말 우연히 전직하게 된 것이다.

“저도 처음 듣는 직업인데, 찾아도 안 나올 겁니다.”

“…응? 네가 뭔데 그걸 어떻게 알아?”

김진석은 아차 싶었지만 태연하게 대답했다.

“제 직업인데 저도 모르니깐요?”

“어… 뭐, 그럴 수 있지. 그럼 직업 스킬은 어떻게 배운담?”

노라는 심심한 건지, 아니면 자기의 첫 학생이라 잘 대해 주는 건지 몰랐지만 그녀는 자기 일인 마냥 성심성의껏 도와주고 있었다.

나서서 김진석이 배울 수 있는 스킬이 뭐가 있는지 지식의 도서관을 둘러보고 있었고, 혹시 모를 플레이어란 직업에 관한 정보가 있는지 찾아 주고 있었다.

김진석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우선 자신이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금화 42,350개.]

원래 가지고 있던 금화의 네 배 가까이 불어났다. 악성 재고를 팔아 1만 금화를 벌었고, 레온하르트가 자신의 기사단을 구해 준 보답으로 2만 금화를 더 준 거다.

꽤나 많은 금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스킬북의 가격을 생각하면 많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때 노라가 스킬북을 손에 쥔 채 돌아왔다.

“너 이거 배울 수 있어? 한번 배워 볼래?”

[이레이저.]

이레이저. 노라의 직업군인 도적이 배울 수 있는 중요 스킬 중 하나이다. 적 한 명의 뒤로 가 단검으로 목을 베는 스킬로 공격력이 매우 뛰어나다.

도적 직업은 초반에 저 스킬로 먹고 산다고 할 정도로 도적의 밥줄 스킬 중 하나. 배울 수 있는 레벨은 25.

“몇 금화입니까? 아니, 그 전에 그렇게 마음대로 가져올 수 있는 겁니까?”

“엉? 별 상관없어. 내가 이걸 손에 든 순간부터 이미 기록되어 있으니깐. 멋대로 사용해도 제대로 가격만 치르면 상관없어.”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한다.

“배워 보겠습니다.”

김진석은 노라에게 이레이저 스킬북을 받아 읽는 척을 했다. 노라에게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스킬을 배우는 게 이런 방식이었으니.

그 모습에 노라는 별말을 안 했고, 이내 스킬북이 김진석의 손에서 사라지며 푸른색 글씨가 나타났다.

[이레이저를 습득.

이레이저 LV:1: 순식간에 상대의 뒤로 돌아 단검으로 목을 긋는다. 공격력 400%, MP 소모 5, 쿨타임 10초]

“…설마 배웠니?”

노라도, 김진석도 자신의 눈앞에 보인 상황을 의심했다. 직업 스킬을 다른 직업이 배우다니. 절대 이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

“…나한테 사용해 볼래?”

노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노라는 단검을 손에 들고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라 자신의 단검을 건네주었다.

“이레이저.”

분명 상대를 절멸시키는 기술이지만 어차피 노라에게 통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고, 노라 역시 피할 자신이 있어 한 말이다.

김진석이 말함과 동시에 김진석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마치 물 흐르듯이 움직인 김진석은 체조하는 것처럼, 그 거대한 몸으로 뛰어올라 노라의 뒤에 착지하면서 동시에 단검을 목에 찔러 넣으려 했다.

물론 노라는 그 모습을 전부 지켜봤고, 고작 손등으로 김진석이 쥔 단검을 쳐 내며 떨궜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이런 광경은 내 생애 처음 보네.”

노라의 입은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 사산 】

노라의 추천으로 배운 스킬은 이러하다.

[슬라이서 LV:1: 달리면서 단검으로 넓게 벤다. 공격력 200%.]

[스텝 LV:1 {최대}: 순식간에 옆으로 움직인다.]

[단검 마스터리 LV1: 단검 사용 시 공격력 1%, 공격 속도 0.5% 증가.]

[어썰트 LV:1: 빠른 속도로 상대에게 달려가 붙잡아 단검으로 총 15회 공격. 1회당 공격력 30%.]

[은밀한 발소리 LV:1 {최대}: 발소리를 없앤다.]

[소드 댄스 LV:1: 360도로 몸을 돌리며 사방을 사정없이 벤다. 3초 지속. 공격력 400%.]

이레이저까지 합치면 자그마치 일곱 개의 스킬. 그중 두 가지는 패시브 스킬이었고, 나머지 다섯 개는 공격형 스킬이었다. 공용 스킬과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이겠지만 그건 공격력뿐이었다.

단검 스킬이라 공격 속도가 훨씬 빨랐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검은 1미터가 넘어갔지만 노라가 준 단검은 50센티 수준이었다.

무게가 훨씬 가벼운 쪽이 당연히 공격 속도가 빨랐다.

“그런데 왜 도적 스킬만 준 거죠?”

“내가 도적이니깐?”

“…아.”

아무리 노라라도 다른 직업의 스킬 따위는 잘 몰랐다.

“그리고 넌 내 학생이잖아. 내 학생에게는 내 스킬을 알려 줘야지.”

“음……?”

김진석은 뭔가 이상했다.

“제가 꼭 노라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다는 말 같네요?”

“…어?”

김진석은 학교에 입학했을 뿐이지 꼭 노라의 수업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그도 원하는 교수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으니깐.

“너… 내 수업 안 들을 거야?”

“…교수님이 제가 듣고 싶은 수업을 하시면요?”

그렇게 말했다지만 김진석은 노라의 수업을 듣겠다고 마음에 정해 두었다. 이유는 당연했다.

“아… 진짜 안 들어 줄 거야? 너마저 안 들으면 아무도 내 수업 안 들어 줄걸?”

“…무슨 수업입니까?”

기사 학교에 입학이 확정 난 순간 김진석은 다른 교수의 수업을 확인했다. 하지만 김진석이 기대한 수업은 없었다.

수업의 제목은 각기 달랐지만 대충 요약해 보자면 검을 다루는 방법, 방패로 상대의 공격을 막는 방법, 효과적으로 스킬을 배우는 방법과 몬스터에 대한 지식 등등.

대표적으로 무구를 다루는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몬스터에 대한 지식은 그나마 배울 만한 것 같았지만 김진석에겐 이미 모든 몬스터에 대한 지식이 머리에 담겨 있다.

효과적으로 스킬을 배우는 방법은 모든 스킬을 배울 수 있는 김진석에겐 아무 의미도 없었다.

하지만 노라는 달랐다.

“어… 사람을 다루는 방법?”

어린 나이부터 용병으로 지낸 그녀는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잘 알았다. 이 세계에선 몬스터보다 사람이 더 위험했다.

어차피 몬스터는 사람을 죽이려고 들지만 사람들의 속내는 어떨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노라는 재능이 뛰어나 그걸 배우고 싶다는 마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노라가 그런 걸 알려 줄 리가 없다.

천재는 남을 가르치지 못한다고 했었나. 노라가 그런다는 보장은 없지만 김진석의 감이 그렇게 외쳤다.

“딱 제가 원하는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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