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저년이 교수가 된다고? 이사장님이 미치셨을 리가 없는데…….”
“기사 학교를 나와서 용병 일은 하는 학교의 수치 같은 년.”
바로 기사 학교의 교수들. 예상대로 용병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좋지 않았고, 그건 교수들에 한해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로스트 월드에서는 용병들에 대한 시선이 매우 좋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들과 달리 학생들이라고 모든 학생이 노라를 안 좋게 보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고작 용병 일을 하면서 저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걸까?”
“저분이 3위지? 1년도 안 돼서 졸업한 사람. 대단하네. 난 이미 2년 동안 다니고 있는데…….”
학생들은 용병이면서도 교수급으로 강한, 혹은 더 강한 노라의 힘과 1년도 안 돼 졸업한 비결을 궁금해했다.
“그래서… 테스트는?”
“1분. 딱 1분만 버티면 통과야.”
김진석이 무언가 더 물어보기도 전에 갑자기 노라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김진석은 의도치 않은 갈룸의 왕의 훈련 덕분에 빠른 속도에는 익숙해졌다.
노라는 기사 학교에서 지원하는 나무 단검, 김진석은 마찬가지로 기사 학교에서 지원한 1.5미터 길이의 나무 검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김진석은 감각적으로 바람이 느껴지는 방향이 다르다는 걸 확인하고 방패를 우측으로 휘둘렀다.
퍽!
방패에 무언가 박히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김진석은 방패를 비틀며 방패를 고정했던 줄을 손에서 빼내 멀리 던져 버렸다.
“…제법인데?”
김진석의 예상대로 방패에는 노라의 단검이 박혀 있었고, 방패를 비틀어 빼 노라가 단검을 손에서 놓치게 한 다음 멀리 던져 버린 것이다.
졸지에 노라는 맨손으로 변했고, 김진석에겐 나무 검이 있었다.
하지만 맨손이라고 노라를 이긴 건 아니었다. 그녀는 맨손만으로도 충분히 김진석의 목을 꺾고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였다.
“불공평하다고 하진 않겠죠.”
“그럴 리가. 음… 진심으로 해도 되지?”
그녀는 김진석의 말을 듣기도 전에 스킬을 사용했다.
“기교.”
마찬가지로 노라는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이번에는 김진석의 감각으로도 그녀를 찾아낼 수 없었다.
주변은 공기가 멈춘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운동장 안은 고요했다.
그 잠깐 사이에 김진석은 수를 생각해 냈다. 바로 레온하르트의 눈을 보는 것. 그는 자신과 다르게 노라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분명 그의 눈은 노라를 보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 레온하르트의 눈을 보니 그는 김진석,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정확히 김진석의 목덜미 뒤를 보고 있었다.
김진석은 그걸 본 즉시 고개를 숙이며 뒤를 돌아 나무 검을 휘둘렀다.
노라는 김진석이 자신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판단해 웃으며 숨겨 둔 나무 단검을 꺼내 김진석의 목덜미를 겨눴는데, 갑자기 그가 고개를 숙이고 나무 검을 휘두른 것이다.
물론 김진석의 불의의 일격을 가볍게 피하는 노라였지만 그녀는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김진석은 고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있어서 그런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그는 소매로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1분… 지나지 않았습니까? 교수님?”
“…그래.”
둘의 전투가 끝났음에도 운동장은 여전히 고요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저 남자, 레벨이 몇이야? 레벨 40이 넘는 그녀의 공격에 반응하다니?!”
교수진들은 물론이고 학생들도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노라의 속도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고, 일부 교수진들만이 노라의 속도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의 의견은 달랐다.
“방금 봤나? 분명 노라의 속도에 반응하지 못했지만 자네의 눈을 봤어.”
“…내가 제일 눈여겨봤던 이유다. 엄청난 반응 속도와 상황 판단이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대단하다.”
둘은 정확히 김진석의 판단을 알아보았고, 레온하르트는 그에게 극찬을 금치 못했다.
“…자네가 누구를 그리 칭찬하는 건 노라 이후에 오랜만이군.”
엘리온은 레온하르트의 말에 놀랐다. 그는 함부로 누군가를 칭찬하지도, 평가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워낙 유명하고 강했던 레온하르트였기에 누군가를 평가하면 그자는 평생 그걸 생각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자의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함부로 누군가를 평가하지 않았다. 뼛속까지 남을 생각하는 레온하르트였다.
* * *
순식간에 테스트가 끝나 버렸다.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고, 김진석과 노라도 그저 뻘쭘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끝난 겁니까?”
“나도 모르겠는데.”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때쯤 엘리온이 소리쳤다.
“구경은 끝이다! 다들 들어가! 교수님들도 이제 수업하세요!”
사방에서 원성이 터져 나왔지만 엘리온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교수들도 고개를 흔들고 학생들을 통솔하에 학교로 집어넣었다.
전부 정리가 되자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은 뻘쭘하게 서 있는 둘에게 다가왔다.
“…제 나름대로 확인할 결과는 나쁘지 않았는데…….”
“합격인가?”
노라가 먼저 말했고, 엘리온이 그녀에게 물었다.
“합격이면… 바로 입학시키는 건가요?”
“그렇지. 자네도 이 학교의 교수이니 그럴 재량은 돼.”
엘리온은 이미 그녀를 교수로 채택했으니 그녀에겐 교수로서 권리가 있다는 거다. 즉, 노라에겐 김진석을 입학시킬 권리가 있다. 딱 한 명만 말이다.
“불합격이면 저에게 오는 페널티가 있나요?”
“아니, 빚은 전부 갚아 주고 교수로 그대로 채용하지.”
레온하르트는 못마땅했지만 엘리온의 말이었기에 믿고 기다려 줬다.
“합격입니다.”
“다행이군. 너의 눈이 옹이구멍이었다면 내가 교수로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
노라의 말에 엘리온이 아닌 레온하르트가 대신 말했다. 엘리온은 레온하르트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노라, 네가 불합격시켰어도 레온하르트가 강제로 입학시켰을 거다. 이미 눈이 돌아갔어, 이놈.”
“카이라고 했지.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지만 혹시 이름 전부를 알 수 있나?”
레온하르트는 과장 보태 눈이 빤짝거리며 김진석에게 질문했다. 김진석은 이상한 말이었지만 그의 말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김진석은 분명 자신의 이름을 카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도 레온하르트가 그의 이름 전부를 묻는 건 혹시 김진석이 귀족인지 의심하고 있는 거다.
말리 성의 성주 리안 카시처럼 말이다. 그녀는 유명한 귀족이었고, 카시 가문의 일원이었다. 김진석에게도 그런 가문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제 신상을 자세히 알려 드리긴 어렵습니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이름은 그게 전부입니다.”
레온하르트는 그의 말에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김진석이 귀족의 자제였다면, 레온하르트가 멋대로 기사단에 들인다면 그 가문에서 말이 나올 게 짜증 난 거다.
다른 이였다면 꽤나 귀찮아지겠지만 레온하르트는 그저 짜증 난다, 이게 전부였다. 그가 원하면 웬만한 귀족 가문은 소리소문없이 보내 버릴 수도 있었으니깐.
당연히 레온하르트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었고, 그런 그의 성격을 아는 귀족 가문들이 그를 귀찮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선을 넘는다면 레온하르트가 가만히 있진 않겠지만 영악한 귀족들은 절대 그 선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싸우는 걸 배운 적이 있나?”
“아뇨, 없습니다.”
“자네가 가지고 있었던 아이템은 어디서 얻었나?”
“몬스터를 죽여서 얻었습니다.”
레온하르트는 계속해서 여러 가지를 김진석에게 물었고, 김진석은 거침없이 모든 질문에 대답했다.
딱히 어려울 것 없는 질문이었고, 내버려 두면 끝도 없이 물을 것만 같은 분위기에 엘리온이 박수를 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만. 여기 계속 세워 둘 텐가? 자네. 혹시 묵는 공간이 있나?”
“…아뇨, 없습니다.”
용병의 쉼터가 있었지만 바가지 쓴 거나 다름없는 최고급 2인실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니깐. 물론 그 생활이 나쁘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돈이 나갔고, 그 돈은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었다.
“학교 기숙사에 들어오게. 마침 1년이 지나 기숙사의 학생들을 전부 재심사를 해야 하니 그때 신청하게.”
기사 학교의 기숙사도 당연히 돈을 받진 않았지만 기숙사에 학생 전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고작해야 학생 1/10밖에 수용할 수 없었으니 먼저 상위 10퍼센트의 학생에게 기숙사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들이 거절한다면 그제야 다른 학생들이 기숙사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지는 거다.
하지만 기숙사는 그리 좋은 시설은 아니었고, 학교에는 많은 귀족 학생이 있었다. 그들은 기숙사보다 근처에 집을 사 그곳에서 사는 걸 선호했다.
그리고 그건 귀족에게만 적용되는 것.
귀족뿐만 아니라 많은 평범한 사람이 기사 학교에 다녔고, 그들은 전부 기숙사에 들어가는 걸 선호했다.
그들은 집에서 떠나 칼라 성으로 왔고, 필사적으로 기숙사에 들어가길 원했다.
게다가 들어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1년마다 재심사가 있었고, 마침 김진석이 입학한 시기와 맞물렸다.
“아직 조금 남았지 않나?”
“조금 이르게 하지, 뭐. 이 정도는 이사장 권한으로 가능해.”
레온하르트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엘리온을 바라봤지만 그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저는요?”
“…교수에게는 기숙사를 준 적이 없는데? 어차피 자네는 용병의 쉼터에서 지내고 있지 않나?”
“쯧.”
노라는 마찬가지로 엘리온에게 물었지만 그는 이미 노라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다.
“그 비용도 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예스!”
엘리온의 말에 노라는 귀엽게 두 손을 꽉 쥐며 말했다. 어지간히도 돈을 소중히 하는 그녀였다.
“금방 다시 부를 테니 우선 노라와 함께 용병의 쉼터로 가게.”
* * *
“너나 나나 이게 무슨 횡재니? 갑자기 난 교수가 되고, 넌 학생이 된다고?”
노라는 생각보다 수다쟁이였다.
“아니, 그런데 뭘 가르쳐야 한담? 넌 뭘 배우고 싶니?”
기사 학교는 학생들을 전적으로 교수들에게 맡겼다. 교수들이 뭘 가르치든 그건 교수 마음이다.
그리고 그 교수를 선택하는 건 학생의 마음이다.
기사 학교의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걸 배우고 성장하고, 교수는 원하는 걸 알려 준다. 하지만 당연히도 교수가 인기가 없다면 그들도 얼마든지 학교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교수들도 학생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들를 곳이 있습니다.”
“…응? 그래, 같이 갈까?”
“감사합니다.”
김진석은 오히려 노라에게 권하려고 했는데 역으로 그녀가 물어 와서 곧바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어디론가 향했다.
* * *
“…도대체 무슨 일을 벌였니?”
김진석이 들른 곳은 무구점이었다. 무기와 방어구를 파는 아이템 상점이다. 사는 게 가능한 만큼 파는 것도 가능했다.
게임 속에서의 이야기였지만 죽이기 전 여성 용병에게 알아낸 바로는 팔기도 가능하다고. 이미 이 세계의 기본적인 지식은 그 여성 용병을 통해 전부 알아냈다.
그리고 거기서 가지고 있던 수많은 악성 재고를 꺼냈다.
바로 평범한 세트.
광기의 굴 아래에서 엄청나게 던져대서 몇 개 없었지만 레온하르트에게 부탁해 전부 받을 수 있었다.
기사들이 그 아래에서 무기를 전부 놓고 싸워서 그런지 김진석의 아이템과 섞여 있었고, 회수하는 과정에서 챙겨 놓았던 거다.
그 많았던 아이템이 김진석의 아이템이 맞는지 레온하르트는 의심했지만 김진석은 정확히 자신의 없어진, 평범한 무구의 종류와 숫자를 말했고, 그건 레온하르트가 확보한 아이템의 숫자와 정확히 똑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