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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30화 (30/201)

30화

그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레온하르트가 애초에 칼라 성의 성주라 그런지 그가 원하는 건 거의 모든 걸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레온하르트라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있었다. 바로 기사 학교에 김진석을 입학시키는 일.

자신이 맘대로 입학시키고 퇴학시킬 수 있어도 레온하르트가 그걸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처럼 인재를 발굴하고 기사 학교에 추천했다.

그리고 기사 학교는 그의 사람 보는 눈을 믿고 예외로 김진석을 테스트하기로 했다.

원래는 현실에 있는 학교와 같이 1년에 한 번 학생들을 모집했다. 하지만 김진석과 같은 예외가 있었다.

기사 학교에 있는 교수들은 로스트 월드에 있는 여러 기사단에 있는 유명한 기사들을 초청한 것이다.

당연히 그 유명한 기사들이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공짜로 일하는 건 아니다. 기사 학교에서 따로 급여를 주는 건 없지만 레온하르트처럼 자신의 기사단에서 키우고 싶은 기사들을 추천해 학교에 데려오는 경우가 있다.

즉, 이미 기사인 자들도 기사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수들은 자신들이 있는 기사단으로 학생을 영입하는 역할도 있다. 그래서 교수들은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며 자신들의 기사단을 홍보했다.

가장 먼저 가장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영입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교수로 초청당한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과 힘이 있다는 증거도 돼 너도나도 교수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물론 힘과 능력만 있다고 교수가 되는 건 아니었다. 인성에 문제가 있거나 전과가 있다면 절대 교수로 초청하지 않는다.

말이 벗어났지만 어찌 됐든 기사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교수든, 학생이든 말이다.

레온하르트는 직접 기사 학교까지 김진석을 데리고 갔다.

기사 학교에 갑자기 레온하르트가 나타나자 주변이 웅성거렸다. 레온하르트가 기사 학교에 오는 이유는 딱 하나, 인재를 추천할 때였다.

“레온하르트 님? 뒤에는 노라 님과… 뭐 저리 커?”

“오랜만이신 것 같은데, 누군가를 추천하러 오신 건. 과연 이번에는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을까.”

수많은 학생이 건물의 창문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 채 밖을 보고 있었다. 수업 시간인 것 같았지만 교수들도 그걸 말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도 레온하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몸이 너무 쓸데없이 크군.”

“얼굴에 흉터가 있는 거로 보아 부유한 자제는 아닌 것 같네.”

교수들은 본격적으로 레온하르트가 데려온 김진석을 분석하고 있었다. 기사 학교에서 레온하르트는 가십거리인 것 같았다.

레온하르트는 물론이고 김진석도 그 시선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은 채 학교로 들어갔다.

* * *

“오랜만이군.”

“오랜만이네, 레온하르트.”

레온하르트와 한 아름다운 남자가 대화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아름다운, 허리까지 오는, 여성보다 더 긴 은발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자네 뒤에 있는 자는… 이번에는 어떤가?”

은발의 남성, 그는 바로 엘프였다. 레온하르트에게 거침없이 말하는 그 남자는 레온하르트보다 나이가 더 많은 자였다.

“엘리온, 솔직히 잘 모르겠네.”

“…자네가?”

엘리온, 그는 기사 학교의 이사장이었다. 오래전부터 레온하르트와 아는 사이였던 그는 악마가 침공했던 당시 함께 싸운 전우였다.

엘리온의 레벨은 57. 레온하르트에 비견될, 괴물 같은 레벨이었다.

“이상한 일이군. 언제나 인재를 데려올 때는 실력을 검증하고 데려온 거 아닌가? 그래서 우리 테스트도 사실상 형식이었지. 매번 가볍게 통과했었으니깐. 노라처럼 말이야.”

“오랜만이에요, 엘리온 이사장님?”

엘리온은 턱 끝으로 노라를 가리켰고, 노라는 엘리온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특수한 상황이라서 말이야.”

레온하르트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네가 은혜를 입었으면 그저 보상만 해 줬을 거 아닌가? 뭔가 있는 거지? 저 친구에게.”

엘리온은 김진석을 보며 말했고, 김진석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카이라고 합니다.”

“…카이? 좋은 이름이네.”

레온하르트는 둘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칼라 성에 몬스터들이 쳐들어온 건 알고 있나?”

“그리 종을 울려 대는데 모를 리가. 나도 성벽 위에서 직접 봤는데, 칼라 기사단이 놈들의 뒤를 쫓아가지 않았나?”

레온하르트와 칼라 기사단이 주저 없이 성을 두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건 엘리온의 존재 때문이었다.

“기사들이 말하길 레벨이 중구난방인 놈들이었지만 제일 강한 놈은 30이 넘는다고 하더군. 그런데 놈의 수장으로 보이는 몬스터를 이자 혼자서 제압했다.”

“허… 대단하군. 레벨이 몇인가?”

“28이다.”

“…뭐?”

엘리온은 그게 사실이냐는 듯 레온하르트를 바라봤고, 레온하르트는 김진석을 향해 신분증을 꺼내 보이라고 말했고, 김진석은 인벤토리에 넣었던 신분증을 주머니에서 꺼내는 척하면서 보여 주었다.

그걸 본 엘리온은 잠시 침묵하더니 노라에게 물었다.

“노라, 너는 레벨이 45 이상인 몬스터를 죽일 수 있나?”

갑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지금이라면 말이죠.”

“…꽤나 좋은 물건을 구했나 보군.”

“덕분에 빚도 졌지만 말이에요.”

노라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고, 엘리온도 질문을 할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너에게 물은 내 잘못이다. 질문을 달리하지. 이곳에서 훈련을 받지 않고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그것도 보스급 몬스터로 추정되는 몬스터를 잡을 수 있겠나?”

이미 노라는 재능을 만개했고, 그녀의 나이는 23살로 더 성장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것도 전부 기사 학교에서 배운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 그녀가 과연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그것도 보스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까?

“아마… 힘들겠죠.”

“아니,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자기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는 쳐다도 보지 말라, 니깐.”

당연히 목숨은 중요했지만 기사 학교에 다니는 뛰어난 인재들의 목숨은 더더욱 소중했다. 그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건 자만심을 가지지 말라다.

기사 학교에서는 실전으로 몬스터와 싸우게도 시키며 그렇게 되면 당연히 레벨 업을 한다.

교수와 함께 다니기 때문에 안전하게 레벨 업을 쉽게 하게 되면 몬스터를 가볍게 보는 학생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많은 희생자가 생겨날 것이다. 실제로도 기사 학교가 생긴 초기에는 많은 학생이 죽었다.

“그런데 저 남자는 분명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게 분명한 몬스터를 망설임 없이, 그것도 놈들의 소굴로 들어갔다고 했지. 일면식도 없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야.”

김진석은 그저 자신의 이득과 후에 벌어질 참사를 막기 위해 한 일이었지만 엘리온은 김진석을 정의로운, 마치 레온하르트를 비춰 보는 듯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사람은 잘 본 것 같군. 레온하르트는 사람의 인성을 보는 눈은 거의 없으니깐.”

레온하르트의 사람을 보는 눈은 그저 그자의 재능과 힘을 평가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중에서는 범죄의 길로 빠진 이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런데 굳이 우리가 테스트할 필요가 있나?”

엘리온은 김진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레온하르트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그를 바라봤고, 엘리온은 노라를 보며 말했다.

“노라, 일부러 데려온 것 아닌가?”

“모르겠군. 저 남자가 맘에 들어서 그냥 온 거 같은데.”

“호, 처음이군. 노라가 남자에게 관심을 가진 건 말이야.”

노라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고,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은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의 연애 소식을 들은 것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냥… 뭔가 거슬려서요.”

노라의 이상한 말에 할아버지 둘은 의문을 가졌지만 엘리온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이참에 네가 테스트해 봐라. 웬만한 교수들보다 노라, 네가 훨씬 강하지 않나?”

“제가 귀찮게 왜 그래야 하죠?”

“음? 관심 가지고 있는 남자가 아니었니?”

“진짜 제가 관심 가지고 있어도 공짜로 해 줄 이유는 없는데요?”

노라는 애초에 용병 생활을 한 터라 금전 문제에서는 매우 빡빡했다. 엘리온은 누가 봐도 그러니 남자가 안 생긴다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빚, 내가 대신 갚아 주지.”

“…에?”

그런데 예상외의 말에 노라와 레온하르트조차도 깜짝 놀랐다.

“그렇게 오냐오냐해 주면 안 돼!”

“대신 조건이 있다.”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이 차례대로 말했다. 레온하르트는 우선 들어 보자는 식으로 태도를 바꿨고, 엘리온이 말을 이었다.

“3개월, 교수. 어떤가?”

“…3개월이나요?”

“네가 진 빚이 적어도 15만 금화는 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아니었나?”

“…어떻게 아셨어요?”

엘리온과 노라의 말에 레온하르트는 깜짝 놀랐다. 물론 김진석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레벨 40 때 사용할 수 있는 스킬, 기교와 마찬가지로 40 때 사용할 수 있는 무기, 독거미의 단검 때문이다.

적어도 하나에 10만 금화 가까이하는 아이템이니 아무리 그녀라도 사는 건 힘들었을 거다.

“다 아는 방법이 있지. 그래서 어쩔 텐가? 한다고 하면 용병의 쉼터에서 일할 필요 없이 바로 전부 갚아 주지.”

“노라를 교수로 초청하는 건 알겠는데, 굳이 금화를 갚아 주는 이유가 있나? 그것도 자네의 사비로?”

레온하르트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엘리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교수들에게도 일급이 나오지 않는데 이사장이라고 나올 리가 없었다.

교수들은 3년에 한 번씩 바뀌었지만 이사장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칼라 성의 기사 학교가 창립된 순간부터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사장직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

무일푼으로 오랫동안 살아온 엘리온에게 무슨 금화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건 순진한 레온하르트의 생각이었다.

“너처럼 청렴결백하지 않아, 나는.”

칼라 성의 기사 학교는 유명한 만큼 수많은 기사단이 교수로 초청당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당연히 기사 학교에서 가장 높은 직인 이사장에게 선물이 날아왔다. 자신의 기사단을 잘 봐 달라고.

어느 인물이 좋고 나쁜지 등 자기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주며 무상으로 선물을 보냈다.

즉, 뇌물이다.

“하지만 걱정 말게. 그것으로 인해 교사를 선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엘리온은 뇌물을 돌려주기는커녕 전부 받았지만 그로 인해 교수를 선택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노라와 레온하르트마저도 그를 의심했지만 유일하게 의심하지 않은 인물은 김진석이었다. 레온하르트만큼이나 청렴결백하게 사는 엘리온이었다.

하지만 둘의 기준이 달랐고, 레온하르트는 융통성 없이 그 어떠한 죄도 용납하지 않았지만 엘리온은 조금 달랐다.

엘리온은 법에 접촉되더라도 좋은 일에 쓴다면 얼마든지 허용할 사람, 아니 엘프이다.

기사 학교가 완벽히 돌아가는 이유는 엘리온이 자신이 받은 선물을 거침없이 투자하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할게요.”

“좋은 선택이네. 그래서 바로 일을 주지. 카이라고 했지? 저 남자를 먼저 테스트해 봐.”

레온하르트는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된 일에 어리둥절했지만 노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식으로 확인하나요?”

“그것도 전적으로 자네에게 맡기지. 레온하르트, 동의하나?”

“…그러지.”

* * *

“노라 씨… 아니, 이제는 선생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교수님이라고 불러.”

노라와 김진석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곳은 기사 학교의 거대한 운동장이었다. 게다가 학교의 이사장인 엘리온과 칼라 성의 성주인 레온하르트가 나서서 둘을 보고 있었으니 노라와 김진석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묘하게 노라는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그렇잖아? 한낱 용병인 내가 교수가 되다니. 기사 학교가 엄청나게 뒤집힐걸? 기사 중에서도 엘리트들이 교수가 됐는데 말이야.”

그 어떠한 범법도 저지르면 절대 교수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불법적인 일을 도맡아 하는 용병이 갑자기 교수가 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라… 교수님은 딱히 문제가 없을 겁니다. 용병이라는 것을 빼면 말이죠.”

김진석은 게임 속 로스트 월드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노라라는 존재를 잘 몰랐지만 그녀를 믿는 엘리온과 레온하르트에 대해선 잘 알았다.

절대 그녀가 용병 생활 중에서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 믿고 있었다. 아니었다면 레벨이 41이나 되는 그녀가 용병의 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리가 없었으니깐.

“지금부터 아부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단다?”

그렇게 말하는 노라였지만 입가의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그녀를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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