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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29화 (29/201)

29화

“만나셨는데도 레온하르트 님은 아무 말씀 안 하시는 것 같은데요?”

“나만 한 재능이 되면 레온하르트 님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거지. 그리고 너도 대충 알지? 나 꽤 세다?”

김진석은 그녀의 말을 듣고 레온하르트에게 물었다.

“저도 기사가 안 돼도 상관없습니까?”

“괜한 걸 가르쳐 줬군, 노라.”

“강제하는 것도 안 좋습니다, 레온하르트 님. 그러면 저처럼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이 도망칠 수가 있어요. 오히려 남고 싶게 하는 게 더 좋은 전략일 겁니다?”

노라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레온하르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라의 말은 아무리 레온하르트라도 재능 있는 자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거다.

당연하겠지만 로스트 월드에서는 젊고 재능 있는 자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자가 후에 어떤 인물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현실에서보다도 더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혼자서 다수의 인원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그게 노라 정도의 레벨이 되면 다르다.

마나도 각성하지 못한 일반 병사는 100명이 몰려와도 노라 하나를 이길 순 없다. 물론 병사들이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훈련받았다면 노라가 질 순 있겠지만 문제는 노라가 이길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거다.

물론 노라 정도의 레벨과 경험이 있다면 말이다.

“후… 그래서 어쩔 겐가? 물론 거절한다고 문제가 될 건 없겠지만 신분증 없이 칼라 성안으로 들어온 책임은 묻겠네.”

협박 아닌 협박이었다. 물론 별거 아닌 죄였지만 레온하르트에게 걸린 이상 쉽게 넘어가긴 글렀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기사단을 구해 준 사람에게까지 모질게 대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 제안, 감사히 받겠습니다.”

* * *

“그런데 레온하르트 님. 저… 카이라는 남자의 어딜 보고 기사로 들이시려는 겁니까?”

“그럼 넌?”

“전 예쁘잖아요?”

“…….”

노라의 말에 레온하르트는 할 말을 잃었다.

“장난입니다. 그래서 이유는요?”

“공용 스킬 카운터. 알고 있지?”

“네, 아무도 쓰지 않는 쓰레기 스킬이잖아요? 저도 그거 몇 번 성공시켜 본 적 없어요. 기껏해야 레벨 낮은 용병 놈들 상대할 때 농락하는 식으로?”

“그렇게 사용한 것이냐…….”

레온하르트는 악동과 같은 웃음을 짓는 노라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렇지. 레벨이 낮은 자들, 정확히는 나보다 레벨이 낮은, 움직임이 예상 가능한 놈들한테나 사용할 수 있지. 그나마 그것도 너나 가능한 거지, 아마 나도 제대로 쓰긴 힘들 테야.”

“어… 뭐, 그렇죠? 저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건 본 적이 없네요.”

고작 0.5초 사이에 일부러 상대의 공격을 허용해야 하는 스킬로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난 안개를 마셔서 그런지 제대로 된 상황 판단이 안 됐고, 이미 카이란 남자에게 제압된 몬스터의 수장에게 징벌을 사용했다. 그 당시 저 남자는 그 몬스터의 수장 옆에 있었고.”

“예? 그런데 저 남자는 어떻게 살아있는 거죠? 설마…….”

“네 예상이 맞다. 카운터란 스킬을 사용해 살아남았지. 갑자기 몸에 푸른 보호막이 생긴 거로 보아 맞을 거다. 징벌에 맞은 그는 온몸이 피 칠갑인 상태였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다행히도 레벨 업을 했고, 그는 살아남았다.”

“그건… 그저 운 아닐까요?”

노라는 레온하르트의 말에 이의를 제기했다.

“운이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카운터란 스킬을 배웠다는 것을 생각하고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자다. 게다가 카이란 남자의 카운터 공격은 꽤나 묵직했지. 너도 그 남자에게서 뭔가 느껴서 같이 다닌 거 아닌가?”

노라는 레온하르트의 말에 자신의 핏빛과 같은, 붉은 적발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어… 같이 다니고 싶어서 다닌 건 아닌데 말이죠……. 뭐, 신경 쓰이는 건 있긴 한데…….”

그녀는 김진석이 소환한 것처럼 보이는 흑호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노라조차도 흑호의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어했다.

처음 광기의 굴에서 칼라 성까지 흑호를 타고 도망칠 때는 정신이 없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칼라 성에서 레온하르트를 구하러 가기 위해 흑호를 타고 광기의 굴로 향했고, 도착했을 때 고작 5분도 지나지 않았다.

노라는 레온하르트의 밑에 있을 때 말을 타는 법을 배웠다. 칼라 기사단이 실제로 타는 말이었고, 당연히 명마도 있었다.

그런 최고의 명마도 칼라 성에서 광기의 굴까지 적어도 30분은 걸릴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 검은 호랑이는 어디서 나타난 거야?”

【 기사 학교 】

김진석은 레온하르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레온하르트는 하루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당연히 절차 같은 게 있을 테고 레온하르트라도 그걸 무시할 순 없었으니 그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괜히 받았나? 아무리 그래도 레온하르튼데 괜찮겠지……?”

다른 인물이었다면 믿기 어려웠겠지만 게임 속에서도 정의롭기로 유명한 레온하르트다. 게다가 노라의 말대로 강제하진 않을 것 같으니 승낙했다.

“기사라… 기사 학교를 말하는 건가?”

기사 학교. 전문적으로 기사를 양성하는 학교다. 로스트 월드에서 기사 학교는 칼라 성에 있는 학교를 포함해 세 군데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칼라 성에 있는 기사 학교는 최고의 기사를 양성한 학교다. 최고의 기사란 바로 가이크.

가이크 성의 성주인 그는 칼라 성에 있는 기사 학교 출신이다. 용병 생활을 하던 그를 레온하르트가 발견하고 키운 것이다.

“기사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람들과 부대끼는 걸 참을 수 있지.”

다른 사람들과 엮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레온하르트의 밑에서 배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김진석은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뭔가 배우는 걸 좋아했다. 정확히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배우는 걸 좋아했다.

그는 대학교는커녕 고등학교, 아니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평생을 뭔갈 배운 적이 없는 그는 기껏해야 한글을 읽을 줄만 알뿐이었다.

처음에는 말을 하고 알아들을 수만 있었던 그는 편의점에서 일하며 가장 먼저 한 것이 글을 배우는 것이었다.

애초에 편의점에서 일하려면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했다.

그런데 그는 재능이 있었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한글을 전부 배웠다. 그때 이후로 그는 공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관심은 게임, 로스트 월드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로스트 월드에 직접 들어온 그는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기에 그의 관심은 강해지는, 싸우는 것으로 쏠렸다.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건 그저 요행이었다.”

김진석이 살아남을 수 있던 건 그저 운이었다. 처음부터 레벨이 20으로 시작했으며 죽을 위기에 처하면 언제나 운으로 살아남았다.

그는 배워야 했다. 싸우는 방법을.

김진석은 투견과 싸움법만 알지, 다른 건 잘 모른다. 그는 그저 생명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살아남은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엄청난 재능이 있었다. 싸움에 대한 재능이. 그걸 발견한 게 레온하르트였고, 이제는 그 재능이 꽃피울 날만이 남아 있었다.

* * *

“우선… 먼저 신분증을 만들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다음 날, 레온하르트가 용병의 쉼터로 찾아왔는데도 이곳에 거주하는 용병들은 딱히 놀라지 않았다. 노라 때문에 그는 자주 들락날락했었으니 말이다.

“따라오게. 가면서 설명해 주겠네.”

김진석과 레온하르트는 용병의 쉼터에서 나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분명 안내 데스크를 보고 있어야 할 노라가 같이 따라나섰다.

“따라오는데… 괜찮은 겁니까?”

“본인이 오겠다는데 굳이 막을 이유가 있나.”

김진석은 노라가 거북했다. 그녀의 강함도 이유가 되겠지만 정확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서였다.

분명 흑호를 봤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김진석을 따라만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게임 속에서는 없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진석은 게임 속 지식을 맹신하지는 않았지만 그 지식 바탕으로 행동을 했는데, 거기서 완벽히 벗어난 강력한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니 부담스럽고 거북할 수밖에.

“자네를 기사 학교에 입학시키기로 했네. 기사 학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겠지?”

“예.”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칼라 성의 기사 학교는 오로지 성적으로만 입학할 수 있는 곳이다. 귀족들도 인맥이 아닌, 오로지 실력으로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김진석이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바로 월반의 존재였다. 성적이 뛰어나다면 학교를 빠르게 졸업할 수 있었다.

“참고로 난 1년도 안 돼서 졸업했어.”

“정확히 320일이었다. 기사 학교가 창립된 이후 3위지.”

노라는 세 번째로 빠르게 졸업한 사람이었다. 김진석은 자신이 얼마의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사 학교는 기본적으로 3년을 다닌다.

죄를 저질러 퇴학만 당하지 않는다면 3년 동안 배울 수 있다는 거다.

싸우는 방법을.

“반년이 최대다. 그 이후로 자네에게 달렸지.”

하지만 레온하르트는 자선 사업가가 아니었다. 정말 자신의 기사로 들이려고 했다면 기사 학교가 아니라 그냥 바로 자신의 기사단에 들였을 것이다.

김진석은 아직 레온하르트에게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 주지 못했고, 그걸 증명하라고 기사 학교에 보낸 것이다.

당연히 기사 학교를 다니려면 금화가 필요했고, 그걸 반년간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다.

칼라 성의 기사 학교를 졸업하면 기회가 주어진다. 어느 기사단으로 들어갈지 말이다. 그래서 학교에 있는 교사들은 대부분 기사단에서 한 위치를 하는 사람들이다.

학교에서 마음에 드는 학생을 발견하면 적극적으로 자기가 속한 기사단으로 들이는 것이 교사의 또 다른 임무였다.

물론 노라처럼 안 들어갈 수도 있었다.

“난 1년 지원해 준다고 하셨는데 1년도 안 돼서 나왔어.”

노라는 엄청난 재능을 가진 것 같았다.

“여기다.”

그때 레온하르트가 말했다. 그가 데려다준 곳은 칼라 성 중심의, 높게 솟아 있는 한 건물이었다.

“지식의 도서관이다.”

지식의 도서관. 그곳은 수많은 스킬이 보관되어 있는 도서관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지식을 공유하는 곳이다.

칼라 성만이 아니라 모든 성과 도시에는 지식의 도서관이 있다. 크기만 서로 다를 뿐 각각의 지식의 도서관에서 정보를 공유한다.

이곳에서 신분증을 만들면 모든 곳에서 그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각인과 확인 특성을 가진 마법사가 김진석의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다.

[LV:28. 카이. 나이 20.

범죄 경력 없음.]

김진석이 진정으로 로스트 월드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스무 살이었어?”

“예? 그렇습니다만…….”

“허…….”

노라와 레온하르트는 김진석의 나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김진석의 액면가는 스무 살로 보이기는커녕 3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이유는 하나. 그의 온몸에 있는 흉터 때문이었다.

로스트 월드에서는 포션으로 모든 흉터가 치료 가능했다. 하지만 김진석의 흉터는 로스트 월드에서 생긴 흉터가 아니라 투견과의 싸움에서 생긴 흉터라 그런지 아무리 포션을 먹어도, 흉터 위에 부어도 치료가 되지 않았다.

김진석의 얼굴에는 그리 큰 흉터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스무 살로 보이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더 원석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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