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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25화 (25/201)

25화

* * *

김진석은 광기의 굴에서 간신히 나올 수 있었다.

모르는 남성 용병 세 명과 용병의 쉼터에서 볼 수 있었던 여성, 노라가 있었다. 그런데 남성 용병 세 명은 근처에서 헛구역질하고 있었다.

아마도 안개를 마셨다가 광기의 굴에서 빠져나오면서 오는 후유증인 것 같았다.

김진석 본인은 아무 이상이 없어서 그렇게 예상할 뿐이었다. 우선 왠지 모르겠지만 노라가 저들을 이끌고 온 것 같았고, 도움을 받았으니 감사 인사를 전했다.

“…무슨 일이 있던 거니?”

여전히 노라는 반말을 유지했지만 당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래도 그녀는 최대한 평정심을 가장한 채 물어 오고 있었다.

“쟤네는 왜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데 넌 왜 괜찮은 거지?”

김진석은 그녀의 말에 남성 용병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고작 셋이서 갈룸들을 비교적 쉽게 죽여 나간 것은 이유가 있었다. 레벨이 30인 용병도 있었고, 나머지 둘은 28, 29로 꽤나 높았다.

하지만 그들은 고작 10분, 광기의 굴에 10분 있다가 나왔는데 땅바닥에 헛구역질하고 있었다. 초짜인 김진석은 멀쩡한데 말이다.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뒤늦게 푸른색 글씨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광기의 굴.

악마가 만들어 낸, 인간을 잡아내는 함정이다.

악마의 마법으로 생겨난 안개를 마시는 순간 광기에 빠져 결국 몬스터로 변한다.]

“광기의… 굴?”

그런데 푸른색 글씨는 김진석에게만 보이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노라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푸른색 글씨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근처에 있던 남성 용병들도 헛구역질을 멈추고 마찬가지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광기의 굴이 뭐지? 아래에서 뭘 보고 온 거야, 넌?”

그런데 그들은 김진석과 같은 글씨를 보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남성 용병들은 입가에 침 자국이 있긴 했지만 멀쩡해진 채 노라의 근처로 모여 김진석을 바라봤다.

이번에도 김진석이 뭔갈 말하려고 할 때 광기의 굴 아래에서 엄청난 괴성이 들렸다.

우워어!

그 소리는 김진석이 외친 소리랑 비슷했지만 소리의 크기가 차원이 달랐다. 광기의 굴 밖인 이곳까지 쩌렁쩌렁하게 들릴 정도로 말이다.

“…무슨 소리지?”

“저 안에 있는 몬스터의 소리입니다.”

김진석이 노라에게 존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을 도와주기도 했지만 그보다 월등히 강력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쪽 분들은 보셨겠지만 인간이 몬스터로 변한 것입니다. 안개를 들이마시면 변하는 것 같군요.”

“맞아, 네발로 기어 다니긴 했지만 피부가 창백하고 손톱이 긴 것 말고는 인간과 똑같이 생기긴 했어. 그런데 그게 인간이 변한 거라고?”

남성 용병이 김진석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에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저도 그렇게 들었을 뿐입니다. 저 용병들의 대장에게요.”

김진석이 가리킨 건 남성 용병들의 시체였다. 세 명의 남성 용병은 시체를 치우지도 않고 광기의 굴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로 인해 자신을 도와준 것 같았다.

“니라가?”

“…이름이 니라입니까? 잘 모르겠지만 네, 맞습니다.”

물론 알고 있었지만 김진석은 모른 체했다. 어차피 죽은 자들이라 저들에게 떠넘기면 알 방법은 없을 거다.

“그 여성 용병이 본인들이 처음 발견한 던전에서 한탕 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들의 동료가 죽어 가면서 알게 된 정보 같은데, 그 이후에 저를 보내 몬스터의 정확한 힘을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과 조금 다르지만 상관없다.

“…한 명 부족하다고 생각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나……. 그래서 너를 죽이려고 한 건가?”

“맞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왜 죽은 거지? 용병이야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직업이고, 이 연놈들은 질이 더 나쁜 놈들이라 상관은 없다만.”

그녀는 딱히 김진석을 힐책하는 기세가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의문인 것 같았다.

“질이 나쁜 만큼 실력이 있는 놈들인데 너한테 당할 것 같지는 않은데…….”

노라는 김진석을 그저 애송이로만 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병 행세를 하는 놈들은 다 똑같았기에. 그런데 김진석이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남성 용병 세 명이 대신 말해 줬다.

“아니던데? 저 아래에서 몬스턴지 뭔지 모를 놈들이랑 싸우는 거 봤는데 장난 없던데? 나보다도 잘 싸우는 것 같더라.”

그렇게 말하는 남성은 레벨이 30인 용병이었다.

저들은 밧줄을 타고 올라갈 때 김진석이 싸우는 모습을 언뜻 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김진석이 갈룸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던 것이다.

그런데 광기의 굴 안에서 계속해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해서 쿵쿵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그때 광기의 굴의 절벽 끝에서 손이 하나 올라왔다. 그 거대하고 창백한 손은 김진석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도망쳐!”

“…뭐?”

하필 광기의 굴 근처에 있는 남성 용병들이었고, 김진석은 도망치라고 외쳤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발목이 잡혀 빨려 들어가듯 광기의 굴로 떨어졌다.

뒤늦게 노라가 그들에게 손을 뻗었지만 김진석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그것보다 앞을 먼저 보세요.”

어차피 광기의 굴에서 출입구를 찾지 않는 이상 그들은 죽은 사람이다. 아니, 찾아도 쏟아지는 갈룸들을 막을 순 없겠지.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눈앞에 나온 놈이다.

갈룸의 왕, 놈이 광기의 굴에서 빠져나왔다. 무릎과 발바닥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저 각력으로만 나온 것 같았다.

그마저도 순식간에 치유됐다.

“레벨 41인 몬스터입니다.”

“…뭐? 넌 어떻게 저 안에서 살아나온 거야?”

“저놈은 보스 몬스터 격인…….”

김진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갈룸의 왕은 또다시 엄청난 속도로 땅을 박차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도 눈에 제대로 잡히지 않을 수준의 속도였지만 김진석의 옆에는 노라가 있었다.

노라는 그 몸에서 낼 수 없는 괴력으로 김진석을 밀쳐 내고 어느새 손에 들린 두 개의 단검으로 달려드는 갈룸의 왕의 손을 잘라 냈다.

그 잘린 손은 김진석의 눈앞에 떨어졌는데도 갈룸의 왕은 손이 잘린 것에 당황하지 않고 앞의 여성이 생각보다 강한 것 같아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대단하군.”

웬만하면 잘 놀라지 않는 노라였지만 오늘은 놀랄 일이 많은 것 같았다. 그녀는 갈룸의 왕의 말에 단검을 떨어뜨릴 뻔했지만 간신히 붙잡고 갈룸의 왕을 바라봤다.

“몬스터가… 말을 한다고?”

“웃기는군. 인간만 말을 해야 한다는 기준이라도 있나?”

갈룸의 왕은 어이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저 단어 몇몇 개를 구사하는 것이 아닌 완벽한 어휘력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동안 갈룸의 왕의 손은 어느새 거의 다 자라나 있었다.

노라는 당황했지만 단검을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여유를 잃지 않았다. 노라의 레벨도 갈룸의 왕과 같이 41. 무시무시한 레벨이었다.

사선을 수십, 수백 번을 넘으며 살아남은 그녀는 용병 계에서도 전설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그녀에게 맡겨 둘 순 없었다.

“돕겠습니다.”

“됐다, 몸만 큰 꼬맹아. 네가 상대할 만한 놈이 아니야.”

노라의 말은 정확했다. 광기의 굴 안에서라고는 하지만 김진석은 놈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보스 몬스터는 일반적인 몬스터와는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다.

“놈은 보스 몬스터입니다. 레벨이 같다고 손쉽게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닙니다.”

“…응? 내 레벨은 어떻게…….”

그때. 갈룸의 왕은 손이 전부 다 나았을 때. 놈이 달려들 자세를 취한 순간.

“기교.”

김진석이 간과하고 있는 것 한 가지, 그녀는 용병이다.

노라가 말하자 그녀에게 초록색 연기가 나오더니 그녀에게 들어갔다. 기교. 단검을 사용하는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자가 버프형 스킬이다.

레벨 40이 됐을 때 배울 수 있는 스킬인 기교는 자신의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를 크게 늘려 주는 버프다.

갈룸의 왕이 달려들기도 전에 노라가 먼저 갈룸의 왕에게 달려갔다.

그 속도는 갈룸의 왕보다 더 빠르면 빨랐지 느려 보이진 않았다. 갈룸의 왕은 노라의 속도에 반응해 두 손으로 막아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두 손 전부가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가슴에는 크게 X 자로 상처가 생겨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김진석은 그 말도 안 되는 위력에 그녀의 단검을 보았는데, 어딘가 익숙했다.

“독거미의 단검.”

노라가 들고 있는, 초록색과 검은색이 절묘하게 섞인 단검.

저 무기 또한 40레벨에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공격할 시 확률적으로 상대에게 상태 이상 독을 거는, 매우 희귀하고 좋은 아이템이다.

기교와 독거미의 단검. 절대 그녀의 레벨인 41에서 쓸 수 있는 아이템과 스킬이 아니다.

이유는 당연히 매우 비싸기 때문에.

“성능 확실하네. 빚까지 지면서 샀는데 말이지.”

레벨이 41이나 되는 그녀가 용병의 쉼터에서 일하는 이유가 밝혀졌다.

그런데 그때.

크아아악!

갈룸의 왕이 두 손이 없어진 채 땅바닥에 엎어져 소리치고 있었다. 어느새 가슴의 상처는 전부 나아 있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광기의 굴 안에서 갈룸의 왕이 나오기 전에 나던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찰박찰박.

물기가 있는 무언가를 발로 밟으며 나는 그 소리는 미친 듯이 나고 있었다. 김진석은 그 소리에서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도망쳐야 할 것 같습니다. 놈들이 뛰쳐나올 겁니다.”

김진석이 말함과 동시에 광기의 굴 절벽에서 창백한 피부를 가진 손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었다.

아마도 갈룸의 왕의 부름에 답해 필사적으로 광기의 굴을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광기의 굴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놈들의 몸이 성하진 않았다.

게임 속에서도 이런 이벤트는 없었지만 이젠 비교하기도 입이 아플 수준이다.

“…어디로?”

노라도 김진석의 의견에 동의했다. 갈룸의 왕조차도 그녀에겐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질보단 양이라고.

게임 속에서나 질이 양을 이기겠지만 현실은 아니다.

“당연히 칼라 성입니다.”

도망칠 곳은 칼라 성밖에 없었지만 노라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었다. 어느새 광기의 굴에서 빠져나온 갈룸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놈들 전부 몸이 성하지 않았지만 숫자가 워낙 많았다.

“흑호!”

하지만 김진석에겐 흑호가 있었다.

흑호는 김진석의 그림자 속에서 뛰쳐나오며 울부짖었다.

크르렁!

4미터 크기의 흑호의 위압감이 갈룸들을 짓누르고 있었고, 그사이에 김진석은 흑호의 등에 올라탔다.

노라는 갑자기 나타난 흑호를 보고 놀라 경계했지만 김진석이 그런 흑호에 올라탄 것을 보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김진석은 그녀에게 뭔갈 설명할 시간도, 그녀를 뒤에 태울 시간도 없었다.

“물고 데려가자. 칼라 성으로.”

김진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흑호는 노라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목 뒷덜미를 물고 칼라 성으로 달려 나갔다.

“…윽!”

한발 늦게 노라가 반응했지만 흑호에게 물려서 이미 멀리 나아가고 있었다.

김진석이 공격당하면 바로 흑호가 사라지겠지만 갈룸으로도 흑호의 속도는 눈에 담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갈룸의 왕이 간신히 흑호가 어디로 달려 나갔는지는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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