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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23화 (23/201)

23화

결국엔 새는 날아다니다가 갈룸에게 잡아먹혀 버렸다.

그사이 김진석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적어도 스무 마리 이상의 갈룸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안개에 뒤덮여 몇 마리가 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에 금화와 아이템들이 떨어져 있었지만 김진석은 그 아이템들을 주우러 갈 수가 없었다. 살짝 움직이는 발소리조차 잡아내는 갈룸들이었다.

김진석은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오랫동안 있다 보니 머리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 식은땀을 닦는 것조차 조심히 하고 있었는데, 미처 닦지 못한 땀이 흘러 땅에 닿았다.

찰박, 하며 고작 땀 한 방울뿐이었는데도 갈룸들은 눈을 김진석에게 돌렸다.

다행히 달려들진 않았지만 그건 시간문제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녀석들의 공격 방식은 임프나 고블린보다 더욱 단순하다는 것이었다. 그저 상대를 죽이기 위한 그런 움직임. 김진석에겐 매우 익숙한 움직임이다.

바로 투견.

그보다 훨씬 빠른 갈룸이었지만 어차피 방법 따위는 없었다. 김진석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갑옷과 거대 고블린의 메이스를 착용한 다음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소리쳤다.

“우워어!”

이판사판으로 광기의 굴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치며 김진석은 먼저 눈앞에 보이는 갈룸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오히려 청각이 예민한 탓일까. 갈룸은 그 흉측한 얼굴을 찌푸리고 귀로 보이는 것을 손으로 막고 있었다.

이때다 싶어 김진석은 갑옷을 철그럭거리며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눈앞에 보이는 갈룸에게 달려 나갔다.

그런데 그때 바로 앞 안개를 뚫고 한 갈룸이 김진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이미 예상하였고, 또다시 크게 소리쳤다. 갈룸은 날아드는 동시에 인상을 찌푸리며 김진석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김진석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몸을 비틀어 거대 고블린의 메이스를 위로 쳐올렸다. 갈룸은 메이스를 맞고 몸이 기역 자로 꺾이더니 하늘로 올라갔다가 떨어졌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갈룸은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하지만 오히려 비명도 못 지른 게 독이 된 것인지 동시에 세 마리의 갈룸이 김진석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녀석들이 노리는 곳은 전부 똑같았다. 분명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인데 하나같이 전부 김진석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김진석은 바로 몸을 숙이며 세 마리의 공격을 피해 냈고, 동시에 팔을 뻗어 그중 한 마리의 발을 잡았다.

녀석은 발버둥 쳤지만 김진석은 엄청난 힘으로 놈을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하지만 그걸로 죽지 않았고, 김진석은 바로 놈의 머리를 밟아 터트렸다.

순식간에 두 마리의 갈룸을 죽였지만 주변에서 나는 소리는 전혀 줄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갈룸도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함부로 덤비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진석은 갈룸을 상대해 보고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레벨은 강함의 지표를 나타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이건 오로지 현실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게임 속에서는 고작 레벨 25인 김진석이 아무리 방어력이 약하다고 한들 레벨 30인 갈룸을 한 방에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여유를 되찾은 김진석은 아직 광기의 굴에 갇힌 상태임에도 웃을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 아는 사람이 봐도 광기의 굴 안에서 웃고 있는 김진석을 보면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가 웃는 이유는 하나였다. 즐거워서. 정말 재밌어서 웃는 것이다.

“즐거울 수밖에. 지루한 편의점에서 날 구해 준 게 게임 로스트 월드였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즐길 수 있다니, 그리고 그만큼 내가 강해질 수 있다니. 최고잖아?”

김진석, 그는 더는 불합리한 현실 탓을 하지 않았다.

진짜 현실인 편의점 생활을 할 때는 정말 지루함의 나날이었다.

그런데 게임 속 세계, 로스트 월드에서의 현실은 불합리할 때도 많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김진석 그에게 더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레벨 업. LV:26]

온종일 긴장하며 갈룸에게 무기를 던지며 죽여 온몸의 근육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레벨 업으로 인해 전부 사라졌다.

“던전이긴 한가 보네. 이렇게 레벨 업이 빠른 걸 보면.”

그때 갈룸 한 마리가 또 달려들었지만 이번에는 거대 고블린의 메이스로 가볍게 쳐 낼 수 있었다.

그저 공격을 흘릴 뿐이라 갈룸은 죽지 않았지만 타격이 큰 것 같았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몸을 부들거리고 있었다.

김진석은 그걸 보고 이상한 점을 느꼈다.

“…개체마다 다 다른 것 같은데.”

처음 스무 마리를 무기를 던져 죽일 때도 그랬다. 같은 검을 던져 맞췄는데도 죽는 놈이 있었고, 아닌 놈이 있었다.

지금도 비슷했다. 전력으로 땅바닥에 내려친 놈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눈앞의 이놈처럼 부들거리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어나려는 모습을 보여 김진석이 다가가 발로 머리를 밟았다. 그런데 지금 이놈은 정말 가볍게 공격을 흘리려고 친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김진석은 단 한 번도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스킬을 사용할 새도 없었고, 쓸 생각도 못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더블 슬래시였지만 거대 고블린의 메이스는 타격형 무기라 참격 무기 제한인 더블 슬래시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잠시 놈들이 덤벼들지 않을 때 눈앞에 쓰러져 있는 놈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감정.”

[갈룸. LV:18]

“…맞나 보군.”

자신이 생각했던 예상이 딱 들어맞아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광기의 굴에 빠져 갈룸이라는 몬스터가 되는 거다.

바로 인간이.

당연히 그 인간들은 레벨이 같지 않았다. 게임 속 세계에서는 모든 갈룸이 레벨이 30이었지만 이곳은 들어왔던 인간의 기준으로 레벨이 잡히는 것 같았다.

이제야 김진석은 갈룸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게임 속에서는 전부 똑같이 생겼지만 눈앞의 갈룸들은 비슷하지만 전부 달랐다.

여성과 남성이 나누어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몸의 크기도 달랐다. 지금에 와서야 알아차린 것이 더 이상할 정도로 갈룸들은 전부 달랐다.

그때 유난히 큰 갈룸이 김진석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달려드는 갈룸을 빤히 쳐다보다가 정말 코앞에 다가온 순간 말했다.

“카운터.”

그렇게 말한 김진석의 몸에서 푸른색 보호막 같은 게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갈룸의 공격이 김진석의 갑옷에 닿았다.

그때 갑자기 김진석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분명 갈룸이 공격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고, 순식간에 김진석의 손이 반응하더니 들고 있던 거대 고블린의 메이스로 녀석을 공격했다.

[갈룸. LV:30]

원래 갈룸이 놈의 레벨과 같았지만 김진석의 번개 같은 공격에 맞은 갈룸은 다른 놈들과 같이 한 번에 죽어 버렸다.

“기분이… 약간 더럽네.”

자신의 몸이 저절로 움직여지는 경험은 그리 좋지 않았다.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건 생각보다 기분이 더러웠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을 순 없었다. 자그마치 레벨 30인 갈룸이 한 번에 죽는 건 그만한 위력이 있다는 소리니깐.

게다가 갑옷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꽤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사용법을 몰라 우선 외쳤는데 사용된 것을 보고 김진석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김진석은 이번에는 다른 스킬을 사용해 보기 위해 거대 고블린의 메이스를 집어넣고 아직 남아 있는 평범한 검을 꺼냈다.

여유롭게 꺼내 들었는데도 갈룸들은 덤벼들지 않았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듯이 그저 김진석을 둘러싸고 있었고, 이내 놈들의 뒤에서 제각기 다른 갈룸들이 나왔다.

[갈룸 LV:27]

[갈룸 LV:28]

[갈룸 LV:30]

[갈룸 LV:28]

총 네 마리의 갈룸이 나왔는데, 전부 레벨이 김진석보다 높았다. 아마도 이곳에서 행동 대장 역할을 하는 놈들인 것 같았다.

지금껏 보았던 갈룸들은 삐쩍 말라 있었는데 방금 김진석의 카운터에 죽은 갈룸과 앞에 나온 네 마리의 갈룸은 건장한 인간과 같았다.

인간과 다른 건 희멀건 눈과 길게 자라난 날카로운 손톱뿐이었다.

“설마 스킬을 사용하는데 굳이 외칠 필요는 없겠지?”

사용법을 몰라 직접 입으로 외쳤는데 게임 속에서도 캐릭터가 직접 외치진 않았으니 상관이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굳이 기다릴 필요 없이 김진석이 먼저 달려갔다.

그런데 녀석들은 마치 보이는 것처럼 바로 흩어졌다. 하지만 김진석은 오로지 한 놈만 보고 있었다.

저놈 중 가장 레벨이 높은 30인 녀석만 보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스킬을 사용하겠다는 마음으로 평범한 검을 휘둘렀다.

김진석은 검을 아래에서 위로, 사선으로 휘둘러 갈룸에게 적중시켰는데, 놈의 상처에서는 피가 X 자로 솟구치고 있었다.

더블 슬래시.

하지만 생각보다 놈이 강했는지 한 번에 죽지는 않았지만 당장에 움직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산개했던 갈룸 중 두 마리가 김진석에게 달려들었지만 김진석은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보지도 않고 더블 슬래시에 맞은 갈룸을 잡아 옆으로 던졌다.

그곳엔 공격하려던 갈룸 한 마리가 있었고, 정확히 김진석이 던진 갈룸이 놈에게 맞아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김진석의 등은 무방비 상태였고, 순식간에 다른 갈룸이 달려들어 공격하는 순간 또다시 갑옷에 푸른 방어막이 생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격한 갈룸이 튕겨 나갔고, 김진석은 아무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니, 취할 수 없었다.

“내가 공격할 수 없을 때는 그저 튕겨 나갈 뿐인가.”

애초에 공격을 취할 수 없는 자세였다. 튕겨 나간 갈룸은 아무 타격 없이 벌떡 일어났다.

김진석은 그 모습을 잠깐 보다가 우측으로 평범한 검을 던졌다.

카아악.

그 평범한 검은 어느새 안개 속에서 숨어 다가오던 갈룸 한 마리에게 정확히 향했고, 놈의 한쪽 팔이 잘려 나갔다.

기감이 극도로 확장된 상태인 김진석은 갈룸과 같이 아주 조그마한 소리에도 반응할 수 있었고, 살금살금 다가오는 발소리에 평범한 검을 던진 것이다.

그래도 정확한 위치까지는 몰랐기에 한쪽 팔을 자르는 것에 그쳤다.

그때 김진석의 카운터에 튕겨 나간 갈룸이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김진석의 손에는 어느새 거대 고블린의 메이스가 들려 있었고, 달려드는 놈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그 갈룸은 달려드는 속도 그래도 머리가 터져 나가 빛으로 변해 죽어 버렸다.

한쪽 팔이 잘린 갈룸은 남은 두 마리에게 다가가 함께 모였다지만 남은 두 마리도 멀쩡하지 못했다.

그나마 한 마리는 다른 갈룸에게 몸이 정통으로 맞았을 뿐이었지만 같은 종족인 갈룸이 허무하게 죽어 나가는 것을 봐서 그런지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김진석은 씨익 웃으며 한 발짝 다가가려고 하는 순간.

“어이! 거기 살아 있는 사람 있어?!”

광기의 굴 위쪽에서 누군가 말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김진석에게도 익숙했다.

“용병의 쉼터… 노라?”

용병의 쉼터에서 안내했던 여성의 목소리였다. 레벨도 높아서 김진석은 기억하고 있었다.

“니라가 데리고 나갔던 사람이 대부분 실종된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말이야. 그 동료 세 명의 시체만 있고 니라랑 같이 갔던 큰 아이의 시체는 안 보여서 말이야. 그래서! 있는 거야?! 내려간다?!”

그 뒷말을 듣고 김진석은 급히 소리쳤다.

“내려오면 안 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밧줄이 내려오고, 동시에 가죽 갑옷을 입은, 용병으로 보이는 인물 몇 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뭔 놈의 안개가… 저건 몬스터야, 뭐야?”

“당장 올라가! 당장!”

총 세 명의 용병이 내려왔고, 여성은 없는 거로 보아 노라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저들의 레벨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김진석 자신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전부 변하고 있었다.

아니, 김진석 자신을 제외하는 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30분은 훨씬 지나긴 했지만 그가 특출 나서 광기에 잠식되는 것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김진석이 다른 용병들에게 잠시 신경이 쏠린 사이 다친 갈룸 세 마리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다른, 비교적 약한 갈룸들이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하고 갑자기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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