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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22화 (22/201)

22화

김진석이 여자 용병에게 용병들의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멀리서 흑호가 한 사람을 물고 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당연히 활을 든 용병이었고, 목덜미에 큰 구멍이 난 것으로 보아 이미 죽은 상태인 것 같았다.

여성 용병에게 들을 이야기는 다 들은 것 같고, 김진석은 죽은 용병들의 품을 뒤졌다. 그들이 걸친 아이템을 가져가는 건 위험 요소가 크기 때문에 포션이나 다른 소모품을 가져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하급 포션 몇 개와 하급 포션 두 개, 그리고 그 자신이 주었던 금화 몇천 개가 전부였다.

“가지고 있는 금화가… 14,220개. 고작 2천 금화를 가지고 있었네.”

김진석은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김진석은 이번에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그에게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저 용병들도 자신을 이용하려고 했고, 자신도 그들을 이용하려고 했으니.

위험한 생각이긴 했지만 김진석은 그보다 더한 환경에서 살아왔다. 자신의 또래 아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봐 온 김진석은 언제나 그 뒤에 있던 놈들을 죽여 버리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불가능했기에 경찰에게 신고해 무기한 징역살이라도 하길 바랐을 뿐. 그 결과가 로스트 월드에 들어오게 된 것이지만…….

오히려 로스트 월드가 김진석이 간신히 잡고 있던 고삐를 풀어 버린 것이다.

“너희들이 몬스터보다 잡기 쉽네.”

여성 용병의 뺨을 툭툭 두드리며 말하는 김진석이었다. 여성 용병은 어느새 나타난 거대한 칠흑 같은 호랑이보다 순식간에 자신들을 무력화시킨 김진석을 보며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경험치를 얼마나 주는지 모르겠네. 몬스터랑 비슷하게 주면 너희랑 비슷한 방식을 내가 채용할 수도 있겠는데.”

용병들이 사용했던, 김진석 자신을 꾀어 죽이려고 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았다. 생각보다 용병들이 임프보다도 잡기 쉬운 것 같았다.

“아니… 금화는 꽤 있지만 아이템을 사용하기 어렵겠네.”

용병들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여성 용병은 그저 살려 달라고 빌면서 벌벌 떨고 있었다. 여전히 눈에선 피가 나고 있었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과다 출혈로 죽게 될 것이다.

“용병은 고작 그 정도 상처 가지고 정신을 못 차리나? 어이가 없군.”

아무리 거칠게 살아가는 용병들이라도 눈에 단검이 꽂힌 경험은 없을 것이다. 여성 용병은 억울했지만 눈앞의 김진석을 두려워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성 용병의 눈에는 김진석이 미친 사이코패스처럼 보였다. 게다가 지금은 조그마해진 흑호였지만 도망간 용병을 순식간에 잡아 온 거대한 흑색 호랑이였던 흑호가 얌전히 김진석의 옆에 엎드려 있는 게 더더욱 무서웠다.

김진석은 이미 여성 용병에게 뽑아 먹을 것을 전부 뽑아 먹었으니 그녀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했다.

그냥 죽이는 것도 상관없었지만 뭔가 아쉬웠다.

“너희랑 같이 아이템 파밍 좀 하고 레벨 업 좀 하려고 했더니 참… 쓸모가 없어.”

아무리 김진석이라도 광기의 굴을 혼자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아무리 갈룸이 다른 30레벨의 몬스터보다 약하다고 한들 3티어 몬스터.

아무리 지금 김진석이 포션도 많고 2티어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고 한들 혼자서는 힘들었다. 그래서 용병들을 이용해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고 배신하려고 했는데 먼저 당했다.

“아무리 그래도 제대로 된 레벨은 물어봤어야지. 정말 용병 맞아? 이렇게 허술해?”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간 여성 용병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김진석이었다. 그냥 죽일까 싶어 잠시 여성 용병을 바라보다가 생각난 것이 있었다.

김진석은 다시 이미 죽어 버린 용병들의 품을 뒤졌다.

[부싯돌.

불을 피울 때 사용하는 도구.]

“찾았다.”

김진석은 그걸 찾자마자 바로 최하급 포션 하나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용병 여성에게 뿌렸다.

“끄아악!”

죽어 가던 여성 용병이 끔찍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최하급 포션이라 그런가, 눈이 완벽히 낫진 않았지만 출혈이 멈춘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김진석은 메이스를 집어넣고 맨손으로 비교적 얇은 나무를 주먹으로 쳐 쓰러뜨렸다. 그리고 알맞게 나무를 손으로 찢어 적당한 크기의 횃불을 만들었다.

그 횃불은 조잡했지만 김진석은 상관 안 했다. 어차피 그가 쓸 것이 아니었으니.

팔이 뒤로 묶인 여성 용병의 손에 횃불을 들려 주며 말했다.

“이거 잘 들고 있어. 너를 저 안에 집어넣을 거야. 내가 알기로 저 안의 몬스터가 불에 약하다고 알고 있거든? 이 횃불만 잘 들고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횃불의 끝에 부싯돌을 사용해 불을 지폈다.

김진석이 했던 말은 당연히 거짓말이다. 정확히는 진실이 섞인 거짓말이다.

갈룸은 불에 약하다. 그건 사실이지만 게임 속 이야기. 그래서 화염을 다루는 마법사가 레벨이 낮을 때 필수로 들르는 곳이 광기의 굴이다.

게임 속 설정에서는 갈룸이 지하에 살아 눈이 점점 퇴화해 멀다시피 한 놈들이라 밝은 빛에 약하다고 한다. 그리고 화염에서도 빛이 나니 불이 약점이라고.

이상하긴 했지만 게임에서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김진석은 횃불을 든 여성 용병을 밧줄로 제대로 묶은 다음 광기의 굴로 천천히 밧줄을 풀며 내려보냈다.

광기의 굴은 꽤나 깊었는지 밧줄을 계속해서 풀어야 했다.

고통에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그녀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 * *

30분 정도 지난 후.

김진석은 거대한 바위에 단단히 묶어 뒀던 밧줄을 끌어 올렸다. 아직 묵직한 것으로 보아 제대로 묶여 있는 것 같았고, 밧줄이 요동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살아서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밧줄을 거의 다 올렸을 때쯤 캬아악! 거리는 고블린과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고작 30분인데… 벌써 이렇게 변하나?”

밧줄에는 이미 광기에 물들어 짐승같이 변해 버린 용병 여성이 있었다. 눈이 새빨갰고 입가에는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저 캬아악거리며 김진석을 위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밧줄에 단단히 묶여 그저 소리만 낼 뿐이었다.

김진석은 이미 변해 버린 용병 여성의 몸을 살폈다.

“횃불은 거의 다 타 버렸지만 옷가지나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습격당한 것 같진 않은데.”

그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횃불을 들고 내려보냈는데 그 불 때문인지 갈룸은 그녀를 공격하지 않았다.

“잘만 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하지만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다. 화염 마법사라면 모를까 횃불에 의존하면 횃불이 꺼진 순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김진석 자신도 광기에 잠식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후… 어쩔 수 없지. 돌아가자.”

용병들과 함께 갈룸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갔다. 그들과 같이 사냥하면 경험치도 나눠 먹는지 궁금했지만 어차피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지금 김진석의 레벨인 25에서 던전의 혜택이 적용되는 갈룸을 잡으면 레벨 업을 쉽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김진석은 한숨을 쉬며 돌아가려고 했다.

“카아악!”

“얘는 어쩐담.”

광기에 물들었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김진석은 굳이 죽일 필요가 있나 싶어 발로 차 다시 광기의 굴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렇게 광기에 잠식된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고작해야 일반 밧줄로 여성 용병을 묶어 둔 것.

여성 용병의 레벨은 24. 밧줄 정도는 힘으로 끊을 수 있는 레벨이었다. 하지만 상처로 인한 고통 때문에 제대로 힘을 낼 수가 없었고, 설령 끊는다고 한들 뼛속까지 새겨진 공포로 인해 반항할 생각조차 못했었다.

문제는 지금. 이미 광기로 인해 공포 따위는 없었고, 고통도 없었다. 김진석의 발에 차여 날아가는 순간 팔을 묶어 놨던 밧줄을 순식간에 끊어 내고 김진석의 발을 잡았다.

“윽!”

흑호가 막아 보려 했지만 김진석의 발이 잡힌 순간 전투가 시작된 것으로 판단해 흑호가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변해 버린 여성 용병이 김진석의 발을 잡아 김진석도 중심을 잃고 함께 광기의 굴로 떨어졌다.

* * *

“…미치겠네.”

김진석은 그 떨어지는 찰나에 여성 용병을 쿠션 삼아 땅에 도달했다. 너무 급격하게 떨어졌고, 평균 남성보다 훨씬 큰 김진석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인지 여성 용병은 땅에 닿자마자 바로 즉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떨어지면서 밧줄이 중간에 끊어졌다.

그는 위를 올려다봤지만 안개로 인해 어디서 밧줄이 끊어졌는지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김진석은 레벨이 25인 것과 여성을 쿠션 삼아서 그런지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도 상처 하나 없었지만 문제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캬아악!”

“캬악.”

여성 용병이 내는 것과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떨어지면서 큰 소리가 나 소리를 듣고 오는 것 같았다.

눈이 멀다시피 해서 그런지 청각이 매우 예민한 갈룸들이었다.

김진석은 급히 여성의 옷을 벗겨 부싯돌을 사용해 불을 붙였다. 이미 여성 용병이 들고 있는 횃불은 전부 다 타 버려 사용할 수 없었다.

“캬아아악!!”

그러자 갈룸들이 더더욱 큰 소리를 내었지만 김진석에게 달려들진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주변 안개로 인해 갈룸들의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며 옷에 불을 붙여서 그런지 금방 불이 꺼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행히도 아이템이라 그런지 불은 오랫동안 붙어 있었다. 김진석은 남은 여성의 옷을 벗겨 불을 붙이고 이번에는 멀리 던졌다.

다시 한번 큰 소리를 내며 갈룸이 물러섰지만 그때 잠시 놈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이었지만 비쩍 말랐고 제대로 된 옷가지를 입고 있지 않았으며 머리가 다 빠져 거의 없었다. 피부가 창백했고, 손톱이 길게 자라나 있었다.

“던전에서 나가는 방법은… 따로 모르는데 말이지.”

게임 속에서는 그저 몬스터를 전부 죽이거나 아니면 본인이 죽으면 알아서 던전에서 나가진다. 따로 출구가 있다거나 하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흑호야?”

흑호를 불러 봤지만 녀석은 나오지 않았다. 게임 속에서도 던전에서는 탈것이 소환되지 않는다.

“빌어먹을 현실.”

방법은 없었다.

그때 갈룸 중 한 마리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하지만 옷에 붙은 불 때문일까. 순식간에 김진석을 지나쳐 다시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네발로 기어 다니는 갈룸의 속도는 김진석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그 모습을 보고 김진석은 여성 용병의 눈에서 뽑은 고블린 단검을 갈룸이 아닌 일부러 멀리 던져 봤다.

고블린 단검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단검이 땅바닥에 부딪히며 소리가 나자 갈룸들이 그 단검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리.”

그 김진석의 말소리를 듣고 갈룸이 김진석을 쳐다봤다. 정확히는 김진석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정말 속삭이듯이 말한 김진석이었는데도 갈룸들은 그 소리를 포착한 것이다.

그때 갑자기 위에서 새가 날아들었다. 그냥 평범한 새였고, 안개를 뚫고 들어왔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새가 짹짹거리며 날아다니니 갈룸들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날아다니는 새를 향해 날뛰며 새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새는 당연히도 녀석들을 무시한 채 유유자적 날아다니고 있었다.

김진석은 이때다 싶어 최대한 조심히 인벤토리에서 평범한 검을 꺼냈다. 그리고 그 검을 날뛰고 있던 갈룸을 향해 집어 던졌다.

직경 1미터에 다다르는 검이었지만 김진석의 손에서는 그저 단검과 같았고, 그 검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한 갈룸의 몸통을 정확히 꿰뚫었다.

김진석이 광기의 굴을 한번 오려고 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녀석들은 모든 피지컬이 속도에 치중되어 있는, 마치 유리 대포 같은 놈들이다.

정확히 가슴에 검이 꽂힌 갈룸은 절명해 아이템과 금화를 떨어뜨렸다.

녀석들은 자신의 동료가 죽었음에도 그저 힐끔 쳐다보다가 다시 새를 향해 날뛰고 있었다.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어차피 지금의 김진석은 지팡이를 제외한, 150개가 다 되어 가는 수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

‘기회다. 최대한 많이 죽인다.’

말로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한 김진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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