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21화 (21/201)

21화

용병들이 나가고 잠시 잔 줄 알았지만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어느새 흑호는 다시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었고, 김진석은 흑호를 잠시 바라보다가 광기의 굴이라는 던전에 대해 생각했다.

로스트 월드에는 던전이라는 곳이 있다. 그 던전은 몬스터들의 서식지라고 보면 된다. 그렇게 보면 고블린 숲도 던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던전은 엄연히 다르다.

게임 속 세계, 로스트 월드의 던전은 하루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 던전의 최종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나오는 방식이다.

게임 속에서는 던전으로 들어가면 로딩 창이 나오며 로딩을 진행하는데, 현실은 어떻게 될지 예측이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고블린 숲과 같은 필드와 다르게 던전은 많은 경험치를 주기에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김진석은 광기의 굴이라는 곳을 당연히 가 본 적이 있다.

“광기의 굴,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은 광기에 휩싸인다.”

악마들이 그곳에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전부 광기에 휩싸였다.

그 굴은 비명의 숲과 같이 안개에 휩싸여 있었고, 그 안개를 한 번이라도 들이마시는 순간 사람이 돌변한다.

어떤 이는 엄청난 식욕에, 어떤 이는 엄청난 탐욕에, 어떤 이는 엄청난 살인 충동에 빠진다.

그리고 그 굴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매우 기괴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광기의 굴은 마치 싱크홀처럼 깊게 파여 있었고, 한번 빠지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빠져나가기 매우 힘들었다.

그 안에 갇힌 인간들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안개에 휩싸여 모습이 점점 변해 갔다. 그 몬스터의 이름은 갈룸.

게다가 누가 봐도 골룸과 비슷한 모습이라 오마주한 것 같은 이름과 모습이었다.

갈룸의 레벨은 30.

용병들이 잡기에는 확실히 힘든 몬스터였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광기의 굴은 그 근처에서 사람들이 실종된다고 해서 플레이어가 해결하러 가서 처음으로 발견한 곳이다. 그런데 어떻게 용병이?”

그렇지만 이곳은 현실. 얼마든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플레이어만이 그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 용병들은 어떻게……?”

플레이어가 광기의 굴에서 정신이 멀쩡할 수 있었던 것은 천사가 힘을 줬기 때문이라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용병들이 어떻게 그 굴을 알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생각을 뒤로 한 채 우선 김진석은 그들이 가져다준 스킬북을 바라봤다.

[타격 마스터리.

타격 공격의 무기를 사용할 때 공격력이 올라가는 패시브형 스킬이다.]

[참격 마스터리.

참격 공격의 무기를 사용할 때 공격력이 올라가는 패시브형 스킬이다.]

타격은 메이스와 같은 둔기를 사용할 때, 참격은 검과 같은 날이 선 무기를 사용할 때 적용이 된다.

정말 공격의 기본이 되는 패시브 스킬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하지? 그냥 읽으면 되는 건가?”

김진석은 스킬북의 표지를 바라봤다. 정말 밋밋하게도 파란색인 배경과 하얀색 글씨로 스킬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는 천천히 첫 장을 열었다.

“…뭐지?”

그런데 아무리 페이지를 넘겨 봐도 전부 공백이었다. 혹시 뭔가 싶어 끝까지 넘겨 봤지만 정말 끝까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

[타격 마스터리를 획득합니다.]

“그냥 읽은 척만 하면 되는 건가?”

김진석은 획득했다는 푸른색 글씨를 보고 자신의 상태창을 바라봤다.

[LV:25 김진석. 임프 살해자.

[감정]

타격 마스터리 LV1: 타격 공격의 무기를 사용할 때 공격력 +1 공격 속도 +1%]

고유 스킬과 달리 스킬북으로 배운 스킬은 설명이 있었다. 타격 마스터리가 올려 주는 스텟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타격 마스터리에는 레벨이 있었다.

타격 마스터리뿐만이 아니라 고유 스킬을 제외한 모든 스킬에는 레벨이 있다. 그 레벨을 올리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 스킬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

플레이어들은 이걸 숙련도 시스템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무턱대고 허공에 사용하거나 해서는 레벨, 숙련도가 오르지 않았고 몬스터에게 사용하면 올랐다.

물론 이런 공격형 스킬만 해당한다.

타격 마스터리의 경우 타격 무기를 사용해 몬스터를 공격하거나 죽이면 경험치를 얻는다. 참격 마스터리도 마찬가지.

액티브형 스킬 차지 어택, 더블 슬래시, 카운터의 경우는 몬스터에게 사용해야 레벨 업이 가능하다.

우선 김진석은 용병들이 사 온 스킬북을 전부 읽었다.

[LV:25 김진석. 임프 살해자.

[감정]

타격 마스터리 LV1: 타격 공격의 무기를 사용할 때 공격력 +1, 공격 속도 +1%

참격 마스터리 LV1: 참격 공격의 무기를 사용할 때 공격력 +1, 공격 속도 +1%

차지 어택 LV1: 2초간 기를 모아 공격한다. 공격력 300%, MP 소모 5, 쿨타임 15초.

더블 슬래시 LV1: 참격 무기로 2번 연속 공격한다. 1타당 공격력 70%, MP 소모 5, 쿨타임 12초.

카운터 LV1: 사용 시 0.5초간 최대 체력 50%에 해당하는 보호막을 얻으며 공격을 받으면 반격한다. 공격력 400%, MP 소모 1, 쿨타임 30초.]

상태창이 매우 풍부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내는 카운터란 스킬이 제일 강력했다.

하지만 그만큼 사용하기 어려운 스킬이다. 고작 0.5초 안에 스킬을 사용하고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 내야 했으며 받아 내더라도 반격이 확정적으로 맞는 게 아니었다.

물론 컨트롤이 뛰어난 플레이어들은 카운터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효율이 좋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원래는 열 개의 스킬 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상태창이 있듯 스킬창이 있었고, 그 스킬창에 스킬을 등록을 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빼고 끼는데 자유롭긴 했지만 열 개의 스킬만 사용할 수 있으니 그곳에 고작해야 카운터란 스킬을 채용하는 플레이어는 거의 없었다.

물론 패시브형 스킬은 전부 다 적용이다. 하지만 지금 김진석이 배운 액티브형 스킬은 후반으로 가면 전부 안 쓰는 스킬이다. 그런데…….

“스킬에 제한이 없다면…….”

그리고 자기가 배운 그 모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면.

“좋군.”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내 MP, 마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는 건데……. 그리고 쿨타임 계산도 힘들고.”

게임이었다면 상태창에 MP와 HP가 전부 표시되어야 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게다가 모니터에서 눈만 살짝 돌리면 스킬의 쿨타임을 볼 수 있었지만 이곳은 아니다.

“현실인데 쿨타임이 왜 있어. 마나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어야지…….”

불합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실이기 때문에 이점도 있었으니. 게다가 마나 회복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도 몰라 조금 갑갑한 상태였다.

김진석은 스킬의 위력이 어떤지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방 안에서 사용하다가 여관의 물건을 부술 수가 있었고, 이미 밖은 깜깜해진 상태였다.

“충분히 쉬긴 했지만… 오늘까지만 더 쉬자.”

* * *

다음 날 아침.

쾅쾅쾅!

또 방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고 있었다. 김진석은 이미 진작에 준비를 마치고 가죽 갑옷과 무기를 착용한 채 기다리고 있었고, 방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다 방문 부서지면 책임지나?”

“고작 이 정도로 부서지면 문제 있는 거지. 준비는 다 했지?”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용병들과 함께 용병들의 쉼터를 떠났다.

“이곳이다.”

김진석과 용병들이 도착한 곳은 사람들의 인적이 전혀 없는, 폐허가 된 마을이었다.

“악마들에 의해 사라진 마을이다. 조심히 우릴 따라와. 발을 잘못 디뎌서 빠지면 우린 못 구해 준다.”

용병들은 으름장을 두며 김진석에게 말했지만 당연히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갈룸이 30레벨이긴 하지만 2티어 아이템을 준다.

30레벨이라 경험치를 많이 주기도 하지만 그에 비해 갈룸은 그리 강하지 않다. 2티어 아이템을 주고 경험치를 많이 주는 이유는 그저 던전이란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30레벨이라고 희박한 확률로 3티어 아이템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용병들의 말과 같이 광기의 굴로 들어가는 입구는 여러 개다. 모니터에서 보는 거와 현실에서 직접 보는 건 차이가 있어서 위치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입구가 여러 개인 건 알고 있다.

그렇기에 김진석은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얌전히 용병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 무슨 몬스터가 살고 있는지 알고 있나?”

“아니, 그런데 근처에 가니 푸른색 글씨가 알려 주더군.”

용병의 말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그들에게도 푸른색 글씨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

그렇다고 그걸 물어보면 명백히 이상한 놈으로 낙인찍힐 수 있었으니 조용히 용병들을 따라갔다.

그렇게 천천히 걷고 있을 때.

“이곳이다.”

그 말에 김진석은 주변과 아래를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에는 우리도 몰랐다. 정말 우연히 발견했지.”

그렇게 말하며 용병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돌멩이를 하나 주어 앞으로 던졌고, 돌멩이가 땅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땅이 꺼졌다.

마치 싱크홀처럼 가로세로가 4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거대한 구멍이 갑자기 생겼다.

김진석이 그 구멍을 확인하려 다가가려고 할 때.

뒤에서 칼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김진석은 앞으로 굴렀다. 머리가 스치는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고, 절벽 끝에서 간신히 멈췄다.

“오, 이걸 피하네? 반응 속도 하나는 대단하네.”

“…무슨 짓이지?”

김진석은 당연히 그들이 배신할 걸 예상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적어도 던전을 공략한 다음 자신을 공격하고 전리품을 독식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아, 우리 동료가 여기 떨어져 죽었거든. 그 덕분에 이곳이 던전이란 걸 알았어. 그런데 너무 순식간에 죽어 버려서 몬스터가 얼마나 강한지 잘 모르겠거든. 그리고 애초에 안개에 가려져 있어서 안 보였지. 그렇다고 이곳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네가 좀 확인해 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용병들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동료가 죽었다는 말도 그냥 웃으며 하고 있었다.

“원래 용병이란 족속은 다 그런가?”

“아니? 사람이 다 그렇지, 뭐. 돈만 벌 수 있다면 뭐든 하는 게 사람이 아닌가?”

김진석은 한숨을 쉬었다. 용병들은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쓰레기였다. 김진석은 자신의 계획이 틀어져 확 기분이 나빠졌다.

“하… 쓸모없는 새끼들.”

“…뭐?”

그와 동시에 품속에 숨겨 두었던 마지막 고블린 단검을 던졌다. 먼저 공격할 줄은 몰랐던 것일까. 앞에 나서던 여자 용병은 날아오는 고블린 단검을 미처 파하지 못했다.

“꺄아악!”

참격 마스터리 때문일까, 아니면 자주 던지다 보니 익숙해진 것일까. 그 단검은 여자 용병의 눈에 정확히 꽂혔다.

“개새끼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지만 남은 남자 용병 세 명이 전부 달려들었다. 김진석은 어느새 기사 갑옷을 입은 상태였고, 손에는 거대 고블린의 메이스를 들고 있었다.

한 명의 용병이 먼저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김진석은 이미 상태창을 통해 용병들의 장비를 전부 확인했다.

그들은 고작해야 1티어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갑옷의 성능을 믿고 화살 정도는 막아 낼 줄 알았다. 그런데 김진석은 초인적인 반응 속도와 동체 시력으로 자신도 모르게 날아오는 화살을 메이스로 쳐 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용병이 창을 찔렀지만 김진석은 메이스를 들지 않은 남은 손으로 창을 잡아냈다.

그리고 바로 화살을 쳐 낸 메이스로 창을 든 용병의 머리를 내려쳤다. 신체 파편이 튀었지만 김진석은 무시한 채 머리가 없어진 신체를 발로 찼다.

뒤이어 공격해 오는 검과 방패를 든 용병에게 머리가 없어진 신체가 부딪혀 뒤로 넘어졌다.

용병은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어느새 다가간 김진석은 메이스로 순식간에 머리를 부숴 버렸다.

순식간에 남자 용병 두 명을 죽이고 여자 용병 한 명을 무력화시킨 김진석이었다. 그는 다시 날아올 화살을 대비해 활은 든 용병을 바라봤는데, 어느새 도망가고 있었다.

“쯧.”

김진석은 혀를 차고 단검에 눈이 꿰뚫린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 용병 여성은 어느새 단검을 눈에서 뽑아냈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포션을 먹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걸 본 김진석은 바로 달려가 포션을 발로 차 버렸다. 그리고 여성의 옷을 뒤졌다. 하지만 원하는 걸 발견하지 못했고, 다른 죽어 버린 용병에게 다가갔다.

“찾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바로 밧줄. 어차피 광기의 굴로 내려가려면 필요할 거로 생각했다. 김진석은 그 밧줄을 꺼내 여자 용병을 묶었다.

묶는 법 따위는 잘 몰랐지만 무릎을 꿇리고 팔을 뒤로 꺾어 묶었다.

여자 용병은 아무 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니라.”

“……! 어떻게 내 이름을?!”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용병들의 생태계를 말이야.”

김진석은 가짜 신분증을 만들기 전까지 용병으로 살아가려고 결정했다. 하지만 고작 이런 놈들에게도 들켰으니 제대로 된 지식이 필요했다.

로스트 월드에서는 이런 용병들의 생태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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