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내게 원하는 건 뭐지?”
김진석은 굳이 그런 사실을 자신에게 알려 준 용병들을 이상하게 여겼기에 아예 돌직구로 물어봤다.
“너, 꽤나 강해 보이는데 우리 파티에 들어오는 건 어때? 피비린내가 나지만 너에게서 나는 건 신선한 피의 냄새야. 그 정도는 씻으면 사라지지만 우리에게서 나는 냄새는 아주… 찐하거든.”
용병 중 단검 두 개를 든 여성이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김진석이 초짜라는 걸 알았던 이유가 피 냄새 때문인 것 같았다.
“왜 굳이 용병 행세를 하는 거지? 하고 많은 직업 중에?”
“뻔하지. 강해 보이고 싶어서야. 자주 만나 봤잖아?”
“그렇긴 한데 그런 놈 중에서 진또배기인 것 같은데? 몸 봐, 몸. 장난 아니야. 거의 하프 오우건데?”
김진석은 딱히 별말을 안 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있는 용병들이었다. 그때 김진석이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다.
앞에서 용병들이 떠들든 말든 김진석은 토카 스프와 꿔카 고기를 먹었다. 그런 김진석을 본 용병들은 서로를 뻘쭘하게 바라봤다.
그런데 김진석이 다 먹을 때까지 보고만 있었고, 김진석이 음식을 완벽히 먹는 것을 다 보자마자 여자 용병이 말했다.
“배 속에 거지가 들었어? 무슨 그렇게까지 먹어? 숙박은 몰라도 음식은 완전 바가지야, 여기. 50금화는 솔직히 심하지 않아?”
김진석은 게임 속에서 거의 모든 아이템의 가격을 알고 있었지만 음식을 먹진 않았으니 음식의 가격은 몰랐다.
“그럴수록 더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렇다고 김진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들어올 거야?”
“들어가면 내게 무슨 이득이 있지?”
김진석은 용병들에게 역으로 물었다. 용병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몬스터들이 너랑 1:1로만 싸워 주진 않잖아. 사람이 많으면 좋다고?”
“그만큼 몫이 나뉘겠지.”
“오, 그래도 그 정도 머리는 있는 것 같네. 하지만 우리는 달라. 하는 만큼 받는다, 가 우리 모토거든. 우리가 뭐 기사 나리도 아니고 그냥 맘에 안 들면 나가도 돼. 어때?”
그렇게 말하는 용병 여성의 얼굴은 꽤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김진석은 이미 그녀의 상태창을 본 상태다.
[LV:22. 나자. 거짓을 고하는 자.
[매혹]
거짓을 고하는 자. 그게 그녀의 칭호다.
로스트 월드에서는 스토리 진행을 할 때 선택지가 주어진다.
물론 그 어떠한 선택을 골라도 결과는 똑같지만 가는 과정이 달라져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MMORPG 게임에서 선택지가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중 대부분이 거짓과 진실을 선택하는 것인데, 쉰 번 넘게 거짓을 선택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가 거짓을 고하는 자이다.
물론 칭호를 장착하는 건 본인의 선택이지만 여기선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세상에서 거짓말을 쉰 번도 안 해 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쉰 번이라고 보면 많아 보이지만 거짓말을 한 숫자라고 생각하면 절대 많은 숫자가 아니다.
하지만 저 여성 용병을 제외하고 다른 용병에게는 거짓을 고하는 자 따위의 칭호는 보이지 않았다.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지만 용병 여성에게만 있는 것으로 보아 절대 평범한 거짓말로는 저 칭호가 얻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고유 스킬 매혹. 고유 스킬이란 특정 종족이나 인물에게 부여되는 스킬이다. 지금 김진석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같은 스킬이라고 보면 된다.
갑자기 김진석 그의 눈에 저 용병 여성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미 모든 상황을 파악한 그는 고작해야 당사자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전부인 스킬에 당할 리가 없었다.
그들의 수법을 전부 파악한 김진석은 한숨을 쉬며 거절하려고 했을 때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게 있었다.
“좋아, 들어가지. 하지만 조건이 있다.”
“……? 조건?”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는지 용병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들어간다는 말에 스킬이 통한 줄 아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 좀 사다 줄 수 있나? 값은 얼마든지 치르지.”
“스킬?”
김진석의 말에 다시 당황하는 그들이었다. 정확히는 당황보다는 황당이었다.
“네가 사면 되는 거 아닌가?”
“몬스터와 싸우는 도중에 신분증을 잃어버려서 말이야. 제대로 된 스킬이 없다 보니 싸우기 힘들더군.”
김진석은 이 세계에서 신분증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다 보니 그저 그렇게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스킬이 없다는 말에 용병들은 김진석이 멍청한 놈이라는 생각을 멈출 순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김진석의 말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500금화를 주지. 그리고 스킬을 사다 주면 500금화를 더 주겠어. 전사 스킬을 사 와. 당연히 스킬에 대한 대금은 치르겠다.”
고작 스킬만을 구매하고 오는데 자그마치 1,000 금화다. 용병이 그런 돈이 너에게 어디 있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주머니에서 꺼내는 척하면서 인벤토리에서 1,000금화를 꺼내 보여 주었다.
“금화는 걱정하지 말고 알아서 사 와.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이라도 상관없다.”
그렇게 말하며 보따리로 된 500금화를 여성 용병에게 던져 주었다. 당연히 김진석이 가지고 있는 스킬 따위는 없었지만 아예 스킬이 없다는 게 들통나면 이상한 눈길을 보내올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수상한 눈길을 지울 순 없는 용병들이었지만 눈앞에 500금화가 있으니 그걸 들고 밖으로 나갔다.
“303호로 찾아와.”
밥을 먹고 있을 때 노라가 찾아와 303호의 열쇠를 주었고, 김진석은 누가 봐도 호구 잡았다는 표정으로 좋다고 나가는 용병들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이 있는 곳으로 갔다.
* * *
“겉과 속이 전혀 다르네.”
분명, 이 여관은 겉으로 보았을 땐 낡아 제대로 된 시설이 있을까 싶었는데 안은 전혀 달랐다.
김진석이 배정받은 303호는 호화롭진 않았지만 모든 게 갖춰진 곳이었다. 게임 속 세계라 그런지 여관 같은 곳에 호텔에서나 볼 법한 미니 냉장고와 그 안에 음료수가 있었다.
물론 음료수는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마법과 기사가 있는 세계에 냉장고라니. 하지만 게임 속 세계니 김진석은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침대도 있었는데, 퀸사이즈 침대로 적어도 두 명이 누워도 남을 수준의 침대가 있었다. 냉장고에 있는 음료도 전부 짝지어 두 개씩 있는 것으로 보아 2인실인 것 같았다.
“제일 좋은 거 달라고 했더니… 아니, 내 잘못이군.”
애초에 몇 인실을 달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뭔가 따질 수도 없을 거다. 김진석은 더럽고 냄새나는 몸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나 변기가 있는 건 더는 신경 안 쓰기로 했다.
“흑호야?”
김진석은 개운한 몸으로 나와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조용히 흑호를 불렀고, 흑호는 김진석의 그림자에서 나왔다.
“넌 도대체 어디 있다가 나오는 거니?”
어느새 새끼 호랑이로 변해 김진석과 같이 누워 있는 흑호였다. 김진석은 천천히 흑호를 쓰다듬어 주면서 용병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돈이 많다는 것에 의문을 품겠지만 그렇다고 귀족으로 생각하긴 어렵겠지. 만약 정말 귀족이라면 용병으로 위장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
당연히 로스트 월드의 세계에도 귀족이 있다. 하지만 개념은 현대와 비슷하다. 그저 돈이 많고 땅을 가졌을 뿐 평민들이 벌벌 떠는 존재는 아니다.
물론 영지를 가졌거나 성을 가진 자들은 사실상 그 땅에선 대통령으로 봐야 하니 그들에게는 사람들이 마땅한 대우를 해 준다.
현실에서도 부자가 거지 행세를 하는 일도 있듯이 로스트 월드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자들도 용병으로 위장하진 않는다.
용병은 마치 과거의 망나니와 다름없었으니.
“문제는 스킬인데… 내가 배울 수 있을까?”
우선 용병들에게 전사 스킬을 사 오라고 했지만 어떻게 될지 몰랐다. 마법사나 다른 직업의 스킬도 사 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더더욱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누가 봐도 김진석 자신은 평범한 전사로 보였으니. 물론 공통된 스킬이 있긴 하지만 그건 몬스터와의 싸움에 도움이 되진 않는 스킬이다.
그렇게 누워서 흑호를 쓰다듬으며 생각하다가 몸을 단장하고 배부르니 침대의 마수를 이길 수 없어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 갈룸의 왕 】
김진석은 흑호가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와 동시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쾅쾅!
방문을 부술 기세로 두드리고 있었고, 김진석은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사 왔는데… 잤어? 팔자 좋게? 우리 보내 놓고?”
김진석은 뒤를 바라봤다. 미처 흑호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알아서 사라진 상태였고, 침대의 이불을 정리하지 않은 걸 보고 용병들이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래도 용병이라고 관찰 능력은 뛰어난 것 같았다.
“잘 수 있을 때 자야지. 한번 볼 수 있나?”
그들은 오히려 당당한 김진석의 태도에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품속에서 여러 권의 책을 꺼내며 말했다.
“타격 마스터리, 참격 마스터리, 차지 어택, 더블 슬래시, 카운터다. 전부 합쳐서 5천 금화다.”
그렇게 말하며 용병들은 씨익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진석이 말했었다. 자신이 배운 스킬이라도 상관이 없다고. 그래서 저들이 저 스킬북을 사 온 것이다.
저 다섯 개의 스킬은 전사가 가장 기본적으로 배우는 스킬이다. 물론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1레벨부터 배울 수 있는 스킬임에도 1레벨부터 돈을 열심히 모은다면 15레벨쯤에야 저 스킬들을 전부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말로는 돈만 있다면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용병들은 김진석이 금화가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이 스킬들을 배웠을 거로 생각해 일부러 이런 스킬북을 사서 온 것이다.
물론 김진석은 용병들이 그의 말을 순순히 따라 줄 리가 없었다고 생각했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5,500금화가 든 보따리를 그들에게 던졌다.
“수고했어.”
“너… 이거 가짜 아니지?”
오히려 너무나도 당당히 금화를 준 게 이상해 용병들은 금화를 만져 보며 확인하고 있었다. 그 말에 김진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그래서… 이렇게 급하게 동료를 모집하려는 이유는 뭐지?”
당연히 김진석을 등쳐 먹으려고 하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런 것치고는 김진석이 부탁하는 말도 다 친절하게 들어주는 용병들이었다.
물론 김진석이 금화를 생각보다 많이 주긴 했지만 아무 군말 없이 들어 주는 것은 이상했다.
“…이번에 사실 새로운 던전을 발견했거든. 그런데 우리끼리는 조금 힘든 것 같아서 말이야. 다른 놈들이 발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독점해야지. 안 그래?”
“그런데 굳이 나를?”
“뭐… 너도 알겠지만 용병들은 믿을 족속이 못 되거든. 그나마 초짜로 보이는 너는 용병 물을 덜 먹었으니……?”
김진석은 그 말에 숨겨진 뜻을 얼마든지 알 수 있었다. 덩치만 큰 호구로 보고 있다는 걸.
하지만 김진석은 마저 그 호구 연기를 계속하기 위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제 가나?”
“음… 너도 준비할 게 필요하니 내일 오전에 가면 될 것 같네.”
김진석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보고 나가라고 손짓했고, 용병들은 표정이 살짝 안 좋아지긴 했지만 뒤로 돎과 동시에 웃는 모습을 김진석은 포착했다.
“잠깐.”
“…응?”
용병들이 문을 나가기 직전에 김진석은 그들을 불러세웠다.
“혹시 던전의 이름을 알 수 있나?”
“별것 아니지. 광기의 굴이다.”
“광기의 굴이라…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