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늑대 인간.”
“…예?”
늑대 인간은 대표적인 인간으로 변하는 몬스터다. 정확히는 인간의 모습에서 늑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들은 최소 레벨이 60인 매우 강력한 몬스터였다. 그리고 나중의 이야기지만 로스트 월드에서는 플레이어가 레벨이 60에 다다랐을 때 그들의 왕국에 침입하게 된다.
그 왕국은…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땐 끔찍했다.
“저기…….”
“…응?”
그때 김진석에게 남자가 물어 왔다.
“혹시… 용병님…인가요?”
용병, 로스트 월드에서 그들을 부르는 말은 다른 말로 범죄자다. 돈을 받고 무슨 일이든 하는 직종을 이곳에선 용병이라고 부른다.
몬스터를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청부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몸에는 김진석과 같이 언제나 피비린내가 따라다닌다.
김진석을 용병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진석은 딱히 별말을 하지 않고 감사함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줄의 옆으로 빠져 성문 앞으로 향했다.
칼라 성의 성문 앞에는 경비병과 마법사로 보이는 자가 칼라 성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마법사로 보이는 자가 들어가려는 사람의 앞에 서서 뭔가 웅얼거리더니 푸른빛이 들어가려는 사람에게 서렸다.
“통과.”
마법사가 말한 걸 듣고 경비병이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그렇게 여러 번 진행하더니 마법사가 지쳐 성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마법사가 나와 똑같이 다시 진행했다.
“뭔가… 감정 같은 걸 하는 건가?”
그때 갑자기 푸른색 글씨가 눈앞에 나타났다.
[LV:32 마법사 일라이.]
“…뭐지?”
맥락상 이 푸른색 글씨가 알려 주는 건 경비병 옆에 있는 마법사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감정?”
그 말과 동시에 푸른색 글씨가 다시 갱신되었다.
[LV:32 마법사 일라이.
[확인] [화염]
상태창 아래에 글씨가 추가되었다. 김진석은 그제야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새로 받은 스킬인 것 같은데… 상대방의 상태창이 보이다니. 만약 몬스터도 보인다면… 최고군.”
하지만 김진석의 문제는 해결되긴 힘들어 보였다.
“경비병이라면 뇌물이 잘 먹히겠지만… 마법사들은 힘들다.”
플레이어들도 마법사가 되기 위해 한참을 찾았다. 처음 몬스터를 잡을 때 무기에 따라 직업이 확정되는 방식이어서 그 누구도 별 능력치도 없는 지팡이로 몬스터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마법사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마법사는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전부 마법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다.
물론 그들도 사람이라 뇌물이 통하긴 하겠지만 그 뇌물의 크기가 경비병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금화 12,000개를 봤을 땐 많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물론 절대로 적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김진석과 비슷한 생각을 한 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그는 두 눈으로 확인했다.
“원래라면 이 정도 돈으로도 눈 감아 줬겠지만 영주님이 무슨 일이 벌어지면 우리부터 족친다고 했거든. 미안해.”
경비병에게 뇌물을 주려고 한 인물은 원래부터 경비병과 친한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칼라 성의 영주가 무슨 말을 한 건지 경비병은 그 뇌물을 거절했다.
그때 준 돈이 고작해야 100금화.
지금 김진석은 경비병 100명을 매수할 돈이 있지만 문제는 마법사다. 마법사는 경비병이 뇌물을 받든 말든 상관을 안 하고 사람인지 확인 작업을 진행했다.
눈앞의 일라이란 마법사가 세상 살기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게다가 마침 마법사를 매수하기 딱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경비병에겐 더 많은 돈을 주면 되겠지.
그렇게 김진석은 다시 줄의 맨 끝으로 돌아가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 * *
“다음! …음?”
김진석의 앞 남자는 계속 김진석이 바로 뒤에 있자 계속 불안해하다가 경비병의 말이 떨어지자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병은 바로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진석의 얼굴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뭔 놈의 피비린내가…….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용병인가?”
앞에 남자와 똑같은 오해를 한 경비병이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딱히 그 오해를 정정하지 않았고, 경비병에게 말했다.
“보는 바와 같이. 몬스터와 싸우다가 신분증을 잃어버렸는데, 저 마법사 확인만 받고 들어가면 안 되나?”
용병이란 자들이 존댓말을 하진 않을 테니 김진석은 반말로 경비병을 대했다. 그리고 저 마법사에게 있는 스킬 확인.
저건 기껏해야 인간인지, 아니면 몬스터인지 확인하는 게 전부일 것이다.
“나도 그게 되면 참 편할 텐데 말이지. 미안하지만… 응?”
김진석은 슬며시 주먹을 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경비병은 김진석이 갑자기 주먹 쥔 손을 내밀자 깜짝 놀라 칼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김진석은 미동도 없이 경비병의 손을 바라봤다. 경비병은 그 눈짓에 자신의 손을 힐끔 바라보더니 마찬가지로 김진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진석은 그 손 위로 주먹을 쥔 손을 풀었고, 그 안에서 금화가 쏟아져 나왔다.
“1천 개다.”
금화 1천 개. 많다고도 하긴 어렵지만 고작 경비병에게 주는 금화치고는 많은 편이다. 경비병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손 위에 올라온 금화 1천 개를 바라봤다.
김진석은 이미 경비병의 능력을 확인해 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능력이 없었다.
마나를 각성한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경비병 중에서도 말단. 1천 개의 금화면 아마 그의 6, 7개월 치 월급일 것이다.
그냥 눈 하나 딱 감아 주는 것으로 반년 치 월급을 받을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이 그의 뇌를 지배하고 있을 때.
“아무리 그래도 내가 뻔히 있는데 말이지.”
세간에 관심이 전혀 없어 보이는 마법사가 말했다. 아무리 용병이 막 나간다고 한들 마법사에게까지 반말은 하지 않을 테니 김진석은 그에게 존댓말을 했다.
“당연히 마법사님에게 줄 물건도 있지요.”
김진석에겐 평범한 지팡이가 엄청나게 많았다. 하지만 눈앞의 마법사는 레벨이 32나 되는 마법사. 그 정도 아이템 가지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진석에게 평범한 지팡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블린 족장의 지팡이입니다. 희귀한 물건인 것은 마법사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요.”
“…뭐? 이리 줘 봐!”
다행히 그는 고블린 족장의 지팡이가 얼마나 좋은 물건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김진석은 주머니에서 꺼내는 척하면서 고블린 족장의 지팡이를 꺼냈고, 마법사는 김진석의 손에 들려 있는 지팡이를 확! 채갔다.
“이… 귀한 걸 어디서 났지?”
“동료 중에서 꽤 강한 마법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수의 임프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죽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숨었다가 나와 시체를 뒤졌더니 이런 물건이 있더군요.”
김진석의 말에 마법사는 역겹다는 식으로 김진석을 바라봤지만 다시 지팡이를 살펴보더니 헤벌쭉 웃었다.
그러다 바로 웃음기를 지우더니 마법사가 말했다.
“이번 한 번만이다. 다음은 없어.”
“감사합니다.”
김진석은 그렇게 당당히 성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뒤를 바라보니 경비병과 마법사가 금화와 지팡이를 보며 웃고 있었다.
* * *
[금화 12,420개.]
“어차피 신분증이 없는 이상 숙박 같은 걸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금화는 많지만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다. 당연히 무기나 아이템을 구매할 순 없었고, 스킬도 마찬가지.
“그럼 잠이라도 잘 자야지. 좋은 곳을 찾아보자.”
게임 속에서는 당연히 잠을 잘 필요가 없으니 숙박 시설이란 걸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숙박 시설이 없을 린 없었다.
그들도 사람들이니 기본적으로 의식주가 있을 것이니 숙박 시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숙박 시설에 질도 각각 다 다를 것이다.
거의 2시간 동안 칼라 성을 뒤진 결과 한 숙박 시설을 찾았다. 숙박 시설을 못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같이 하자가 있었다.
벌레가 있다거나 음식이 별로라거나 말이다. 게다가 아직도 숙박 시설을 구하지 못해 피비린내가 그대로 나 용병으로 보이는 김진석을 반기는 시설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발견한 숙박 시설은 일반적인 숙박 시설 같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나게 낡아 보이는 시설이었는데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김진석은 그 수상한 여관의 간판을 바라봤다.
“용병의 쉼터. 직관적인 이름이네.”
용병이 오가는 곳인 것 같았다.
다른 얘기긴 하지만 용병이었다가 범죄를 일으키고 추방되거나 도망간 이들이 모인 곳이 아디스다.
김진석은 심호흡한 뒤 용병의 쉼터로 들어갔다.
안은 시장통이나 다름없었다. 김진석이 들어온지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고, 김진석도 그들을 무시하고 바로 안내 데스크라고 적혀 있는 곳으로 직행했다.
대부분의 숙박 시설에는 서비스직이라 그런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대부분이었지만 이곳은 젊긴 했지만 아름다운 여성은 아니었다.
분명 이쁘긴 했지만… 뭔가 야성미가 넘친다고 해야 하나.
“뭐가 이렇게 커?”
다짜고짜 김진석에게 반말하는 안내 데스크의 여성이었다. 여성의 키는 여성 중에서도 큰 키에 속하는 170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190이 넘어가는 김진석의 거구에는 한없이 작아 보였다.
“숙박 되나?”
“되긴 하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네? 어디서 왔어?”
“굳이 말해야 하나?”
“…아니, 딱히?”
안내 데스크의 여성의 얼굴 전체를 가로지르는 큰 자상의 흉터가 있어 인상이 꽤 사나워 보였다.
그녀 또한 용병인 것 같은데, 얼굴의 흉터와 성격으로 보아 강력한 자인 것 같았다.
하지만 김진석의 머릿속에 저런 NPC는 없었고,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감정.”
[LV:41. 노라.]
레벨이 자그마치 41. 고작 숙박 시설에서 데스크나 보고 있을 인물이 아니다. 입을 함부로 놀리면 위험하겠지만 김진석은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숙박은 어떤…….”
“제일 좋은 거로. 하루만.”
“꽤 비쌀 텐데. 돈은…….”
“음식도 부탁하지. 메뉴판이 따로 있나?”
안내 데스크의 여성 노라는 김진석을 흥미 깊은 눈으로 바라봤다.
“숙박은 하루에 500금화. 음식은 토카 수프와 꿔카 고기를 기막히게 해. 음식은 50금화만 줘.”
“음식은 바로 부탁하지.”
김진석은 그 자리에서 바로 550금화를 지불하고 테이블 빈자리에 앉았다.
이곳을 찾느라 시간을 꽤 보냈고, 애초에 맨날 생고기만 먹어서 그런지 제대로 된 음식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흑호에게도 먹이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았고, 새까만 새끼 호랑이의 형태를 한 흑호는 주변의 시선을 살 테니 녀석에게는 미안하지만 사라져 있는 것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흑호는… 아무것도 먹을 필요가 없나?”
심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야. 그 노라한테 그렇게 대하다니, 대단한걸?”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는 한 무리의 용병들이 있었다. 김진석은 대놓고 용병들을 뭔 수작이냐고 쳐다봤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노라 몰라, 노라? 그쪽이 말을 건 저 여성. 레벨이 40이나 돼. 네가 레벨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딱 봐도 초짜 같은데 조심해야지.”
김진석 자신은 몰랐지만 용병들은 김진석이 초짜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용병들은 남성 셋과 여성 하나로 구성된 이들이었다. 김진석은 다시 나지막이 감정, 이라고 말해 그들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용병들은 평균 레벨이 25 정도였다.
게다가 마법사만 없을 뿐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의 분배는 깔끔했다. 한손검과 방패, 활, 창과 단검 두 개를 든 그들이었다.
게임상에서 직업은 전사, 궁수, 창술사와 도적의 포지션으로 나쁘지 않은 파티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