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어딨는지 어떻게 찾지?”
김진석이 찾고 있는 몬스터의 이름은 임프. 놈들은 조그마한 악마들이다. 물론 로스트 월드를 침공한 악마들이랑은 비교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약한 놈들이다.
고블린보다 작은, 1미터도 안 되는 놈들이고 조그마한 날개도 가져 날아다닐 수도 있는 몬스터다.
레벨은 딱 20.
고블린과 비슷한 레벨이다. 하지만 다른 건 2티어 아이템을 준다는 거다. 고블린들도 마찬가지로 2티어 아이템을 주긴 주지만 확률이 극히 희박했다.
증거로 수많은 고블린을 잡았지만 거대 고블린들이 준거라고 추정되는 2티어 상위 아이템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다.
그렇기에 김진석은 임프를 잡아야 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넓디넓은 광활한 평야에서 임프가 어디 있을지 찾기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원래… 갈대밭이 있었나? 이렇게 높이?”
김진석의 거구도 다 가릴 만큼의 갈대가 높이 자라나 있었다.
로스트 월드의 본인 캐릭터를 보는 시점을 탑 뷰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다.
위에서 봤을 땐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직접 보니 제대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위험한데. 임프가 있어도 확인할 방법이 없겠어.”
기습당하기 딱 좋은 곳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날도 저물어 가고 있었다.
“숲으로 돌아가자, 흑호야. 지금 사냥하기에는 위험해.”
숲에는 모였던 고블린들을 죄다 죽여서 그런지 오히려 숲이 더 안전했다. 김진석은 아쉽지만 대책도 마련할 겸 숲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진석은 긴장하며 뒤돌아봤다. 하지만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갈대를 뚫고 나온 건 조그마한 생쥐였다.
안심하려던 찰나에 새빨간 무언가가 생쥐를 덮쳤다. 생쥐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죽었고, 덮친 것은 바로 임프였다.
순식간에 생쥐를 먹어 치운 임프는 입가에 피를 묻힌 채 김진석을 바라봤다.
임프의 생김새는 기괴했다. 인간과 고블린을 섞은 것과 비슷한 생김새로 얼굴은 한껏 찡그린 인상에 온몸의 피부가 새빨갰다.
게다가 등에는 조그마한 날개도 있어 속도 또한 엄청나게 빠르다. 고블린과 비슷한 레벨이지만 훨씬 상대하기 어려웠다.
김진석은 급히 인벤토리에서 갑옷을 꺼내 입고 오른손에는 고블린 몽둥이, 왼손에는 고블린 장인 방패를 끼웠다.
그리고 고블린보다 임프가 잡는 게 더 까다로운 이유가 있었다.
끼에엑!
생쥐를 잡아먹은 임프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김진석은 그걸 보자마자 바로 임프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임프는 소리치느라 김진석의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해 몽둥이에 맞고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임프도 레벨이 20이었고, 제대로 된 아이템도 없는 김진석의 공격에 바로 죽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게 김진석이 도망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나가떨어진 임프는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빌빌거리고 있었지만 김진석은 놈에게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
그 주위로 갈대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기에.
사방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애초에 임프는 네다섯 마리가 몰려다니는 몬스터다. 그래서인지 같은 레벨이 20레벨인 고블린보다 조금 더 약했다.
김진석도 그걸 염두에 두고 임프를 잡으러 온 것이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절대 네다섯 마리의 숫자가 아니었다.
“소리치는 패턴 따위는 없었는데 말이지…….”
김진석은 흘러들어 오는 불안감에 괴성을 지르는 임프를 공격했지만 이미 늦어 버린 뒤였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임프들이 날아들었다.
김진석은 날아드는 임프들을 몽둥이로 쳐 냈다. 눈앞에 보이는 임프들만 해도 수십 마리였는데, 사방에서 들려오는 괴성은 멈추지 않았다.
웬만하면 흑호의 힘을 빌리지 않겠다고 말한 김진석이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흑호가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그런데 어느새 흑호가 사라진 상태였다. 날아오는 임프를 다시 한번 쳐 낸 김진석은 흑호가 사라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빌어먹을. 이럴 때만 게임인가…….”
흑호가 갑자기 도망갔을 리가 없었으니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원래 로스트 월드에서는 플레이어가 공격당하면 탈것에서 내려지며 사라진다.
그 잠시 말하는 사이에 임프들은 김진석에게 달라붙어 갑옷을 물어뜯고 있었다. 발목을 노리는 임프들은 밟아 죽이고 고작 팔꿈치를 가리는 게 전부인 방패는 오히려 도움이 안 돼 인벤토리에 집어넣을 시간도 없어 임프들에게 벗어 던져 버렸다.
임프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고, 갑옷도 순식간에 부서졌다. 임프들은 그 날카로운 이빨로 김진석의 살점을 물어뜯었다.
김진석은 비명이 나오는 걸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 아니, 이빨조차도 지금은 사용해야 했다.
그는 급히 부서진 기사 갑옷을 다시 인벤토리에서 꺼내 입었고, 오른손에만 들고 있는 고블린 몽둥이를 하나 더 꺼내 왼손에도 들어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하지만 양손에 순식간에 달라붙어서 고블린 몽둥이를 휘두르기 어려워졌고, 그사이에 얼굴을 물어뜯으러 날아오는 놈들도 있었다.
김진석은 마찬가지로 이빨을 사용해 놈들을 물어뜯었다. 손에도, 발에도 놈들이 달라붙어 갑옷을 물어뜯고 있었으니 쓸 수 있는 수단은 이빨뿐이었다.
그는 마치 짐승처럼, 그가 가장 오랫동안 싸웠고 어쩌면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 투견과 같이 상대를 죽이는 것에만 집중했다.
* * *
“리안 님, 뭔가 알아내신 게 있으십니까?”
리안 카시는 고블린 숲을 나와 말리 성으로 돌아갔다. 성 앞에서 경비병이 리안을 반겼다. 전에 이덴과 제리의 얘기를 들려줬던 경비병이었고, 리안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고블린 족장이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말하며 리안은 고블린 부락에서 주웠던 갑옷 파편을 보여 주었다.
“거대 고블린이 사용하는 갑옷이다.”
“허… 진짜였군요. 그래서 그 고블린 족장을 죽이신 건가요?”
그 말에 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내가 갔을 때는 흔적뿐이었어. 제일 먼저 흔적을 발견한 둘, 그 둘 이름을 알려 줄 수 있나?”
경비병은 그 말에 놀랐지만 리안의 질문에 대답했다. 리안은 알겠다고 말하며 말리 성으로 들어가려 할 때 경비병이 말했다.
“아, 그리고 말리 평야, 그곳에서 이상 현상이 발견됐다고 하네요. 갈대밭에서 비정상적으로 많은 임프가 나온다고. 그래서 칼라 성의 영주님이 출입을 금지했다고 하더군요.”
리안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고블린 숲도 출입 금지를 명하며 말리 성으로 들어갔다.
* * *
처절한 전투는 밤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임프들은 밤에도 끊임없이 김진석을 덮쳐 왔지만 다행인 것은 놈들의 안광도 붉은빛으로 빛나 어둠 속에서도 잘 보였다는 거다.
김진석은 입에서 포션을 땔 일이 없었다. 포션을 안 마실 때는 입에 언제나 임프의 살점이 있었다.
분명 몬스터가 죽으면 빛으로 사라지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아침까지 전투가 이어졌다.
김진석은 도대체 자신이 몇 시간을 싸웠는지 몰랐지만 주변이 밝아지고 해가 뜨는 것으로 밤새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다 부서진 기사 갑옷은 정말로 다 부서진 지 오래였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과다 출혈로 죽을 수준이었는데 김진석은 버텨 냈다.
김진석이 다른 사람보다 정신력이 뛰어나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가 아침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푸른색 글씨 덕분이다.
해가 떠오르고 김진석이 달려드는 마지막 임프를 고블린 몽둥이로 때려죽였을 때.
그의 눈앞에 계속해서 보였던 푸른색 글씨가 또다시 나타났다.
[레벨 업. 현재 레벨 25.
천 마리의 임프를 죽여 업적, 임프 살해자를 달성했습니다.]
온몸의 상처가 사라졌고, 동시에 갑자기 임프들의 공격이 뚝 끊겼다. 김진석이 버틸 수 있었던 건 레벨 업으로 인해 치유되는 상처 덕분이었다.
포션은 진작에 동난 지 오래고, 바닥에는 수많은 아이템과 금화가 떨어져 있었지만 주울 수 없었다.
그거 잠깐 눈을 돌리면 그사이에 자신의 팔을 물어뜯고 있는 임프를 볼 수 있었기에.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전투도 아침이 되니 멈췄다.
김진석은 레벨 업을 해 치유되었지만 아직 몸은 전투 중으로 판단해 긴장으로 수축된 근육을 풀어 주며 상황을 보고 있었다.
아직도 많은 임프가 남아 있었지만 놈들은 김진석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진석은 푸른색 글씨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임프 살해자.]
업적. 로스트 월드에서도 딱히 아무 쓸모가 없고, 그저 업적이었다. 특이한 점은 칭호와 같이 캐릭터 위에 표시를 띄울 수 있는 게 전부였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내가 임프 살해자라 그런 건가.”
김진석은 임프의 피로 적셔진 고블린 몽둥이를 들고 임프들에게 다가갔다. 임프들은 김진석이 다가온 만큼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을 보이는 임프들이었다. 김진석은 고블린 몽둥이를 임프들에게 집어 던졌다.
한 마리가 그 몽둥이에 직격당했고, 운이 없게도 놈은 이미 상처를 입은 녀석이라 그 몽둥이에 맞아 죽어 버렸다.
동시에 그 몽둥이도 부서졌고, 빛으로 변해 사라지기 전에 몽둥이의 파편이 임프들에게 튀었다.
임프들은 그 모습에 기겁하면서 날개를 펼쳐 도망쳐 버렸다.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말이다.
밤새 싸우며 갈대밭인 이곳은 피로 물들었다. 주변에는 제대로 된 갈대가 없었고, 적어도 그의 근처에 있는 갈대는 전부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갈대는 임프의 피인지 김진석의 피인지 모를 피로 물들어 있었다. 김진석은 멍하니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사라졌던 흑호가 다시 나타났다.
흑호는 잠시 김진석을 바라보다가 흩어져 있는 금화와 아이템을 김진석의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거의 보이지 않는 속도로 흑호는 아이템과 금화를 쓸어 담았다. 싸우면서 갈대밭 속으로 사라진 아이템조차도 주워 왔다.
흑호가 전부 주워 올 때까지도 김진석은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데 갈대가 갑자기 흔들리며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흑호는 김진석을 바라봤는데, 김진석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김진석의 숨소리가 일정했다. 마치 기절한 것처럼, 말이다.
흑호는 그걸 깨닫자마자 바로 모습을 변화시켰다. 검은색 귀여운 새끼 호랑이의 모습이었던 흑호는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점점 커지더니 이내 4, 5미터 크기의 호랑이로 변했다. 칠흑같이 새까만 가죽에 하얀색 줄무늬가 있는 거대한 호랑이로 말이다.
흑호의 그림자는 흑호가 가만히 있는데도 계속해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런 흑호는 그 거대한 입으로 김진석을 물어 다시 고블린 숲으로 향했다.
【 용병 】
“뭐지?”
“왜. 뭐가.”
“아니… 아니야. 기분 탓인 것 같네. 뭔가 지나간 것 같은데.”
“잡담은 그만.”
칼라 성에서 파견된 기사단이었다. 칼라 성은 말리 평야 근처에 있는 성으로, 말리 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곳이다.
그들은 칼라 성의 성주가 말리 성의 평야에서 임프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나온다고 소식을 받아 그들을 파견한 것이다.
기사단장 한 명과 정예 기사 다섯 명, 수습 기사 스무 명이 파견된, 꽤 큰 기사단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꽤 깊숙한 곳까지 왔는데도 임프는커녕 다른 생명체도 발견하지 못했다.
“임프가 많이 출몰한 건 맞는 것 같군. 그 흔한 생쥐 하나 없다.”
그들은 시야를 가리는 갈대를 전부 칼로 자르며 나아갔다. 기이하게도 그 갈대들은 전부 잘라도 하루가 지나면 전부 자라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갈대를 빠짐없이 전부 자르며 나아가고 있을 때 갑자기 수많은 임프가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전투 준비!”
가장 앞에서 나아가고 있던 기사단장은 임프들을 보자마자 바로 소리쳤다. 정예 기사와 수습 기사도 바로 칼을 뽑았다.
그런데 임프들은 그들을 신경도 안 쓰고 날아갔다. 마치 뭔가에 겁먹은 것처럼, 뒤에 포식자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사단은 자신들을 쳐다도 안 보고 날아가는 임프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어쩌죠?”
“…우선 더 들어가 본다. 지나가는 임프들의 숫자만 봐도 많으니 임프를 잡아먹는 포식자가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 * *
“…이게 무슨……?”
그들이 발견한 것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갈대가 원으로 쓰러져 있었고, 그 안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피로 된 운석이 떨어졌다면 이런 모양새가 될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기사단장은 고개를 저으며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냄새를 맡으며 확인했다.
“임프의 피인 건 확실하다. 그런데 다른 피도 섞인 것 같다.”
그렇게 기사단은 기이한 현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