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5화 (15/201)

15화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김진석은 마냥 좋다는 듯 옷소매로 흑호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옷소매가 더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 로스트 월드에선 새끼 흑호처럼 아이템과 골드를 주워다 주는 펫이 존재했다. 거의 모든 MMORPG에는 펫이 존재할 거다.

당연히도 플레이어의 편의성을 돕기 위해서다.

하지만 펫은 유료 상점에서만 살 수 있다. 유료 상점이란 게임 재화가 아닌 현금으로만 살 수 있는 상점을 말한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았고, 로스트 월드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펫 만큼은 산다.

물론 탈것도 유료 탈것이 있었지만 그건 그저 멋을 위한 거지 펫 만큼은 아니었다. 그런데 탈것과 펫 역할 둘 다 할 수 있는 흑호는 처음에 나왔을 때 말이 많았다.

하지만 PVP 랭킹 1위만이 사용할 수 있고 랭킹 1위만이 가질 수 있었으니 그 논란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유료 상점이 있을 리가 없잖아.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흑호야.”

흑호는 여전히 꼬리를 흔들며 김진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김진석은 아빠 미소를 지으며 녀석을 쓰다듬어 주다가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정말 흑호가 전부 죽였다면 아이템을 전부 수거했을 거다. 흑호의 레벨은 잘 모르겠지만 고블린 족장도 죽일 정도면 절대 낮은 레벨은 아닐 거다.

[금화 1,232개.

고블린 몽둥이 32개.

고블린 장인 방패 5개.

다 부서진 기사 갑옷 13개.

기사 갑옷 3개.

거대 고블린의 메이스 2개.

고블린 족장의 머리 1개.

고블린 족장의 지팡이 1개.]

이외의 수많은 잡템이 있었다. 하지만 김진석이 사용할 수 있는 건 고블린 몽둥이와 방패, 그리고 다 부서진 기사 갑옷뿐이었다.

기사 갑옷과 거대 고블린의 메이스는 레벨 제한이 25라서 지금 김진석이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름이 특이하지만 김진석에겐 딱히 별 쓸모가 없는 아이템 두 개가 있었다.

“고블린 족장의 머리, 확률적으로 뜨는 아이템인데 떴네. 지팡이는 내가 쓰질 못하니 별 쓸모가 없고.”

고블린 족장의 지팡이는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고블린 족장의 머리. 고블린 족장을 잡았다는 증표로 마을에 가서 특정 상인에게 징표로 교환할 수 있다.

징표란 로스트 월드의 수집 아이템 중 하나이다. 게임 속에서 그 게임을 잘하거나 오래 했다고 하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이 말하길 고였다, 혹은 고인물이라고 한다.

월드의 징표라고도 불리는데, 이 징표가 많으면 많을수록 고인물이라고들 말한다. 당연히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증표를 모으면 모을수록 NPC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작게는 그들의 말투가 바뀌거나 크게는 상점에서 파는 아이템의 가격이 싸진다.

하지만 그 폭이 크지 않아서 할 사람만 하는 게 증표를 모으는 거다. 즉, 지금 김진석에겐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는 거다.

“그래도 버리는 건 아까우니 가지고는 있자.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김진석은 기특한 흑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음 계획을 정했다.

* * *

말리 성의 경비병은 말리 성의 성주인 리안, 리안 카시를 찾아갔다.

“성주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지?”

리안은 허리까지 오는 금발을 가진 여성이었다. 키도 172로 여성치고는 큰 키였고, 말리 성의 성주답게 레벨은 52였다.

성주가 되고서도 계속해서 훈련하고 몬스터들을 죽이며 성장하는 그녀는 그녀 혼자서도 고블린 족장과 그를 지키는 고블린들을 죽일 수 있는 실력자였다.

완벽한 몸매의 소유자였고, 그녀에게 대시를 하는 남성들도 많았지만 그녀는 전부 거절했다. 이유는 지금 그녀가 하는 일과 같았다.

지금 그녀는 수많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말리 성은 가이크 성 이상으로 일들이 많았다. 아니, 가이크 성은 사실 일은 많이 없었다.

강력한 괴수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인물들이 많았기에 비교적 쉽게 막아내기 때문에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말리 성에서는 수많은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대부분 그 일들은 사람과 관계되어 있다.

가이크 성은 약육강식과 다름없다. 약하면 죽는 그곳은 도둑질과 같은 일반적인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로스트 월드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몰려든 곳이라 자칫하면 전 세계의 사람들과 척을 지게 될 수도 있는 곳이 바로 가이크 성이다.

하지만 말리 성은 그렇지 않다. 평범하다고 말하기에는 거대한 성, 도시였지만 그만큼 사건 사고들이 빈번히 일어난다.

그리고 그걸 전부 해결해야 하는 것이 리안, 그녀의 의무다. 연애 따위를 할 시간도 없는 그녀였다.

문제는 그녀의 집안이 유서 깊은 군인 가문이라는 것이었다. 과거 악마들과 싸울 당시 그녀의 가문이 엄청난 활약을 했다.

게다가 그녀는 카시 가문의 막내딸이었다. 그렇기에 집안에서 계속 혼담을 주선하지만 그녀가 전부 거절했다.

고작 막내딸이 그걸 거절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리안 카시는 그럴 수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도움 없이 성장해 왔고, 결국 말리 성의 주인까지 될 수 있었으니깐.

적어도 지금은 리안 카시, 그녀 덕분에 카시 가문을 아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고블린 숲에서 이변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무슨 이변?”

경비병은 리안에게 이덴과 제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했다.

“…고블린 족장?”

“그들이 말하기는 그랬습니다. 기사 학교와 마법 학교를 다닌 아이들이었으니 그들의 말은…….”

“아니, 무시할 순 없겠지. 가이크 성의 이야기는 들었을 테니 말하지 않겠다. 그런 사건도 일어났는데 고블린 족장이 갑자기 나타났을 수도 있지.”

“…예.”

리안은 그 수많은 서류를 대부분 정리했고, 남은 하나의 서류마저도 정리를 끝마쳤다. 그리고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내가 직접 가지.”

“…예?”

“직접 가겠다고.”

“아니… 예? 그냥 저희를 보내셔도 됩니다. 고작 학생들의 말에…….”

“아니, 마침 일도 끝났겠다 산책 겸 내가 가지.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예, 알겠습니다.”

경비병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다.

“아니, 뭔 고블린 숲을 산책하러 나간담……. 하긴, 성주님도 괴물이긴 하지?”

* * *

“시간이 꽤 지난 것 같네. 피가 전부 말라붙었어.”

리안 카시는 고블린 숲을 들어서자마자 피 냄새를 맡고 바로 고블린이 전부 죽은 고블린 부락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피로 난장판이 된 고블린 부락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 경비병이 말하길 고블린들이 세력 다툼을 일으킨 것 같다고 했지. 하지만 둔기나 칼에 베여서 튈 피가 아니다.”

리안이 말한 건 이와 같았다. 고블린들이 서로 싸워서 생길 핏자국이 아니라는 거다.

“너무 지저분해. 마치 뭔가에 물어뜯긴 것처럼…….”

리안은 계속해서 부락을 둘러보는데, 발견한 것이 있었다.

“갑옷 파편?”

핏자국 사이에 갑옷의 파편과 같은 것이 보였다.

“고블린 족장이 있었던 건 확실하군.”

고블린 족장이 갑옷을 입진 않았지만 그를 호위하는 고블린들이 갑옷을 입는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또 있었다.

“고블린 족장이 있다면… 고블린들이 세력 다툼을 할 리가 없는데 말이지.”

고블린 족장이 있다면 고블린들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 고블린 족장보다 레벨이 낮은 모든 고블린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가이크 성과 같이 이상 상황이다. 위험하군.”

리안 카시는 갑옷 파편을 들고 고블린 숲을 나섰다. 하지만 그녀가 못 보고 지나친 것이 있었다.

피가 흘러서 덮어지긴 했지만 희미하게 인간의 발자국이 보였다는 것을.

* * *

김진석은 현재 흑호와 함께 걷고 있었다. 아무리 흑호가 탈것이라고 하지만 평상시에도 계속 타고 다닐 이유는 없었다.

“우선 말리 성 근처에서 레벨 업을 할 수밖에 없어.”

말리 성은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도시라 그런지 근처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도 대부분 레벨이 낮다.

하지만 지금 김진석의 레벨인 21부터 다른 도시나 마을로 떠나게 된다. 로스트 월드에서는 본인보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를 잡으면 경험치를 적게 주고 아이템도 잘 안 준다.

문제는 그렇다고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함부로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고작 경험치 조금 더 얻겠다고 목숨을 걸 순 없다.”

아무리 지금 흑호가 있다고 함부로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시도하는 건 미친 짓이다.

“그러고 보니, 너 레벨이 몇이니?”

김진석은 흑호의 레벨이나 상태를 확인해 보기 위해 쳐다봤지만 푸른색 글씨가 알려 주는 건 딱 하나였다.

[탈것. 로스트 월드에 하나뿐이다.]

설명은 그게 전부였다. 레벨이란 개념을 탈것은 부여받지 못한 것 같았다.

푸른색 글씨를 보고 김진석은 흑호를 믿고 뭔가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완벽히 없어졌다.

“그래도… 20레벨 정도 되는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데 말이지…….”

다행히 지금 김진석이 사용할 수 있는 방어구와 무기, 아이템들이 있었다. 부서진 기사 갑옷과 고블린 몽둥이. 고블린 장인 방패뿐이었지만 그래도 있다는 게 중요했다.

“거대 고블린 놈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템이 고작 이것밖에 없다고?”

그렇다고 흑호가 놓치고 온 것은 아니다. 김진석 자신도 혹시 모를 아이템이 떨어졌을지 몰라 전부 확인하고 왔으니깐.

아쉬운 마음으로, 김진석은 고블린 족장의 지팡이를 확인했다.

[고블린 족장의 지팡이. 레벨 제한 27.

고블린 족장이 사용하던 지팡이다.

고블린들에게 힘을 복 돋아 주는 힘이 있다.

근처 고블린에게 HP +50

사용자에게 MP +100 내구도 100/100]

고블린을 잡을 때는 아무짝에, 아니 오히려 안 좋은 물건이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꽤 좋은 아이템이다.

초반에 MP를 올려 주는 아이템은 극히 드물었으며 심지어 100이나 올려 준다. 지금 김진석의 레벨인 21에는 평균 MP가 200~300 정도 하니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많이 올려 주는 거다.

“문제는 그림의 떡이라는 거지.”

레벨 제한도 레벨 제한이지만 지금 김진석에게 MP나 HP를 수치상으로 보여 주는 게 없었다. 포션을 먹어도 그냥 상처가 회복되는구나, 라고 생각할 뿐 정확히 얼마나 회복되는지 모른다.

그리고 하나 더, 김진석에겐 크나큰 단점이 있었다.

“직업이 없으니 스킬이 없다. 아니, 있긴 하지만 21레벨인 지금도 그 어떠한 스킬 하나 주지 않았어.”

로스트 월드는 흔히 MMORPG에서 볼 수 있는 스킬창이라는, 스킬을 배우는 인터페이스가 따로 없다.

그저 특정 레벨이 되었을 때 스킬이 주어지거나 아니면 특정 마을의 NPC에게서 스킬을 살 수 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플레이어란 직업은 레벨이 21이 될 때까지 아무런 스킬이 없었다.

“뭐 이런 쓰레기 캐릭터가 있어? 스킬 하나 없이 어떻게 몬스터를 죽여 레벨 업을 하라는 거야.”

여전히 불합리한 현실이었다. 물론 김진석은 해냈지만 전부 운이 좋아서였다.

우선은 레벨에 맞는 아이템을 얻어야 했다.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은 기껏해야 중급 1티어 정도 아이템 수준이었다.

오히려 더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지만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대한 고블린이 얼마나 강력한 몬스터였는지 설명하는 아이템이었다.

[기사 갑옷. 레벨 제한 25.

수습을 마친 정식 기사가 사용하는 갑옷이다.

방어력 40. 내구도 80/100]

[거대 고블린의 메이스. 레벨 제한 25.

상대를 부수기 위해 제작된 메이스. 공격력이 뛰어나다.

공격력 40. 내구도 70/100]

비록 내구도가 조금 달아 있지만 여러 개가 있어서 상관없었다. 하지만 레벨 25까지는 너무 멀었다.

그렇다고 계속 고블린 몽둥이만 들고 싸울 순 없으니 적당한 레벨의 몬스터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 몬스터는 말리 성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김진석은 흑호와 함께 녀석들을 찾으러 가고 있었다.

고블린 숲을 나와 말리 성에서 반대로 걸으며 가진 아이템을 확인하며 가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 걷자 넓은 들판이 나왔다.

김진석이 잡으러 가는 몬스터는 넓은 들판에 무작위로 생성되는 몬스터다. 그리고 당연히 그 몬스터는 그 들판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게임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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