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이해할 수 없었다. 얼핏 봤지만 저 남자가 입은 갑옷은 꽤 대단한 것 같았다. 물론 불에 대한 내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가 마법을 날려도 된다고 했는데도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니 김진석은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실제로 저 갑옷을 입은 남자는 위험했다. 갑옷이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충격을 다 막아 줄 순 없을 것이다.
물론 세계가 세계인 만큼 그런 갑옷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 남자의 표정을 보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멀리서도 보일 만큼 남자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진석에겐 저들을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김진석은 새끼 회색 멧돼지를 잡고 나온 아이템을 살펴봤다.
[금화 70개.
최하급 포션 1개.
고블린 몽둥이. 내구도 9/10]
“쯧, 이번에도 운이 좋을 리가.”
금화 스무 개와 최하급 포션 한 개뿐이었다. 그래도 포션이 뜬 건 좋았다. 다쳐도 치료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건 꽤 중요한 거니깐.
“으아악!”
그때 회색 멧돼지 성체 두 마리의 돌진을 맞고 갑옷을 입은 남성이 넘어졌다. 투구가 없었던 그는 얼굴이 그대로 회색 멧돼지들에게 노출되었고, 회색 멧돼지들은 자신의 어금니로 얼굴을 찔러 버리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마법사 여성은 결심했는지 처음 날렸던 것보다 조금 더 큰 화염의 구를 회색 멧돼지들에게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리 좋은 선택이 되지 못했다. 회색 멧돼지의 돌진을 맞고 넘어져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하던 남성도 그대로 화염구에 노출된 것이다.
퍼퍼펑!
생각보다 마법사 여성의 레벨이 높았는지 회색 멧돼지 성체 둘이 화염구에 맞아 몸이 터지며 죽어 버렸다.
마찬가지로 누워 있던 갑옷을 입은 남성에게도 피해가 갔다. 확실히 그냥 던지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는지 갑옷은 멀쩡했다.
하지만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었고, 얼굴의 피부 전체가 살짝 녹아내렸다.
“끄아아악!”
여성은 그 모습을 보고 똑같이 소리쳤다.
“꺄아아악!”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김진석은 혀를 찼다. 그래도 그 이후에 바로 여성은 남자가 매고 있던 배낭을 열고 붉은 포션을 꺼내 그의 입에다가 강제로 집어넣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있었는지 남자는 입에 들어오는 액체가 포션이란 걸 인지하고 질질 흘리고 있었지만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녹아내린 상처가 그리 쉽게 낫진 않았고, 여성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군.”
김진석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인벤토리에서 최하급 포션을 꺼내 얼굴이 녹아내린 남자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그와 동시에 김진석은 그곳을 벗어났다.
“너희 덕분에 그래도 금화 스무 개는 벌었으니깐 그에 대한 대가다. 그래도 생각보다 회색 멧돼지가 쉽게 잡히는 것을 보았으니깐 혼자서 해 볼 만할 것 같은데.”
* * *
“무슨……?!”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유리병과 같은 것이 갑옷을 입은 남자, 제리의 얼굴에 정확히 명중해 깨졌다.
그와 동시에 제리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살려 줘… 제발…….”
그에 마법사 차림의 여성, 이덴은 제리가 가져온 배낭을 급하게 뒤져 봤지만 포션은 아까 제리에게 강제로 먹인 하급 포션 하나가 전부였다.
“왜 포션을 하나밖에……?!”
이번 여행은 자기에게 맡기라면서 제리가 모든 준비를 하겠다고 말해 이덴은 그 말을 믿고 그에게 모든 걸 맡겼다.
이덴과 제리는 칼라 성에 있는 기사 학교와 마법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둘은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였고, 평범한 마을 사람에 불과했지만 둘의 재능은 절대 평범치 않아 당당히 학교에 입학해 생활하고 있던 것이다.
이덴과 제리의 레벨은 20. 설령 고블린이 나와도 할 만한 레벨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이지만…….
“제리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교수님 말씀을 들을 걸 그랬어…….”
이덴은 제리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말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분명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는 몬스터는 절대 잡을 생각은커녕 다가가지도 말라고 가르쳤다.
몬스터들은 모두 인간을 죽이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자신의 공격으로 인해 제리에게 큰 상처를 입힌 게 더 두렵고 죄책감이 들었다.
제리의 숨이 멎은 것처럼 고통의 소리가 없어졌고, 이덴은 고요한 상황에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그때 우는 도중에 어디선가 숨소리가 들려왔다.
“…어?”
그 숨소리는 제리에게서 들려오는 것이었고, 어느새 제리의 얼굴은 다 나아 있었으며 기절한 채 조용히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녀는 다시 제리를 붙잡고 흐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제리가 살아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찾아오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누가 유리병을 던진 거지?”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이덴은 의문이 생겨났다. 누군가가 제리의 얼굴에 유리병을 던졌다는 것이 생각났다.
“유리병 안에는 붉은색 액체가 있었지……. 설마 포션이었나? 마시지 않고도 뿌려도 되는 거였어?!”
그리고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회색 멧돼지와 고블린의 개체 수가 엄청나게 많은 곳인데… 왜 아무것도 안 오지?”
체감상 한참을 울었던 것 같은데 회색 멧돼지도, 고블린도 나타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숲에 뭐가 있는 거야?”
【 흑호 】
“괜히 도와줬네. 후…….”
김진석은 지금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처에 있었다. 고블린 부락에 숨어든 것이다. 물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회색 멧돼지를 찾아 돌아다녔다. 문제는 김진석이 숲에서 본 회색 멧돼지들은 전부 다섯 마리 이상이 모여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 갑옷을 입은 남자와 마법사 차림의 여자가 운이 좋았던 것을 김진석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래서 김진석은 가장 위험하지만 성공한다면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선택했다.
바로 고블린 부락을 찾는 것.
고블린은 회색 멧돼지를 사육한다. 로스트 월드 게임 속에서도 고블린 부락에 가면 항상 멧돼지와 함께 전투를 치렀고, 그 뒤 부락 안까지 들어가면 회색 멧돼지의 새끼들이 모여 있는 사육장을 보게 된다.
만약 그 사육장을 찾게만 된다면 대박이다.
“그 멧돼지들을 죽이고 장비를 얻는다면 고블린과도 할 만은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한 김진석은 지금에 와서 후회하고 있었다.
고블린 부락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저 고블린을 찾아 그 뒤를 쫓아가 찾아낸 것이다. 물론 그것 또한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김진석은 고블린 부락을 찾아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정말 운이 좋게도 부락 안에는 고블린들이 별로 없었고, 김진석은 최대한 몸을 숨기고 고블린 부락 안으로 숨어들어 간신히 사육장을 찾았다.
하지만 운은 거기서 다한 것 같았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수많은 고블린이 부락 안으로 몰려들고 있던 것이다.
김진석은 사육장 안, 회색 멧돼지들에게 먹이로 주는 네모난 사료통 안으로 급히 숨었다.
건초 같은 것들이 있어 안으로 파고들어 가 건초를 그 위에 덮었다.
“그냥 둘을 이용했어야 했나? 미치겠네…….”
김진석은 사료통에 숨어 바깥에 모여드는 고블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고블린 사이에서도 아주 거대한 고블린이 있었다.
“고블린 족장… 생각해 보니 필드 보스를 생각하지 않았네……. 미치겠군.”
필드 보스 고블린 족장. 필드 보스란 던전이나 따로 들어가는 곳이 아닌 월드에 있는 보스, 필드에 있는 보스, 그게 필드 보스다.
원래 필드 보스는 정해진 시간에만 나온다. 게임 속 언어로는 젠 된다고 한다.
그런 필드 보스는 일주일에 딱 세 번만 나온다. 그 보스를 잡으면 높은 확률로 좋은 아이템을 주기 때문에 각 레벨에 맞는 필드 보스를 잡기 위해 시간에 맞춰 플레이어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이곳은 게임이 아니다.
“애초에 이곳이 필드 보스가 나오는 곳이 아닌데……. 아니지.”
게임이 아니다. 게임 속에서처럼 같은 곳을 방황하는 그런 몬스터가 아니다. 필드 보스도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고블린 족장의 크기는 다른 고블린보다 훨씬 거대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오우거라고도 착각할 수도 있을 수준이다.
그 크기는 3미터를 훌쩍 뛰어넘은 것 같았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있었으며 등에는 커다란 지팡이를 매고 있었다.
고블린 족장의 레벨은 29. 2티어 중 최고 레벨이었고, 29지만 같은 레벨 29의 몬스터보다 훨씬 강력했다. 필드 보스란 혼자서 잡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드 보스를 잡으면 잡은 모든 플레이어에게 각자 동티어 아이템 중 가장 좋은 아이템을 준다.
하지만 그나마 희망이 있는 건 고블린 족장은 본인이 강한 건 아니다. 물론 강하긴 하지만 고블린 족장이 나오면 동시에 수많은 고블린이 나타난다.
그때 나타나는 고블린들은 같은 고블린들보다 월등히 강하다.
“아마 저 녀석들이 그런 놈들인 것 같은데…….”
다른 부락에 있는 고블린보다도 저 고블린 족장과 함께 온 고블린이 크기부터가 훨씬 컸다. 녀석들은 고블린 족장을 숭배하는 듯이 족장 주변을 빙빙 돌면서 춤과 같은 것을 추고 있었다.
고블린 족장은 그 모습에 고블린 특유의 기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부락에 있던 고블린들도 전부 나와 족장을 모시고 있어 다행히 김진석은 걸리지 않고 있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다.
“몰래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할 것 같네.”
부락에는 이미 수많은 고블린이 모여 있었고, 그들의 눈을 피해 달아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지금은, 말이다.
“원래… 게임은 몰이 사냥이지.”
게임에서 메인으로 키우는 캐릭터를 쭉 키우고 난 다음 그 뒤에 다른 캐릭터에 관심이 생기거나 해서 부캐릭터를 키울 때, 대부분 하는 방식은 몰이 사냥으로 인한 폭업이다.
폭업은 말 그대로 폭발적인 레벨 업으로 몬스터를 순식간에 여러 마리를 잡아서 레벨 업을 하는 걸 말한다.
대부분 메인 캐릭터의 지원으로 처음부터 좋은 장비를 착용하고 동레벨, 혹은 더 강한 레벨의 몬스터를 몰아서 잡는 걸 몰이 사냥이라고 말한다.
“물론 난 지원도 없고, 장비도 없고, 게임도 아니지…….”
하지만 해야만 했다. 고작 고블린에게 죽을 순 없었다. 저 고블린들이 사라질 때까지 숨어 있다고 들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김진석을 덮은 건초도 몇 개 없었으니 금방 건초를 채우려고 고블린들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고블린을 공격할 순 없다.
지금 그의 상태로는 고블린과 1:1도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아니, 이길 순 있겠지만 상처 하나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고블린을 수십, 혹은 백 마리가 넘어갈 수도 있는 숫자를 혼자서 죽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고블린에게 돌격할 순 없는 노릇.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회색 멧돼지의 새끼를 고블린에게 들키지 않고 최대한 많이 죽이는 것.”
그리고 아이템, 장비를 얻는 것.
다행히 김진석이 숨어 있는 사료통은 생각보다 커서 팔을 조금 움직일 순 있었지만 그게 전부. 회색 멧돼지의 새끼를 죽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후…….”
김진석은 잠시 밖을 살펴보고 고블린의 무리가 조금 멀어진 것을 확인한 다음 인벤토리에서 얼마 남지 않은 내구도의 고블린 몽둥이를 꺼내 심호흡을 했다.
아무리 김진석이라도 무서운 건 당연했다. 헬 하운드와 싸울 때와는 달랐다. 김진석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싸움이 투견, 개와의 싸움이다.
물론 그 어떤 투견도 헬 하운드와 비교하면 쓰레기나 다름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때는 1:1의 싸움이었고, 어떻게든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1:1도 아니고 개도 아니다. 그래도 김진석은 믿어야 했다. 자기 자신과 로스트 월드의 시스템을.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