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0화 (10/201)

10화

김진석은 순식간에 달려가 늙은 고블린에게 몽둥이를 내리치려고 했다. 몽둥이를 든 늙은 고블린 한 마리가 김진석의 몽둥이를 막으려고 했고, 한 마리는 김진석의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김진석의 천부적인 싸움에 대한 재능으로 이미 늙은 고블린의 방식을 깨달았고, 그는 다리를 들어 다리를 노린 고블린 몽둥이를 발로 밟았다.

그와 동시에 고블린 몽둥이를 들고 있던 팔로, 온 힘을 다해 늙은 고블린을 향해 내리쳤다.

같은 몽둥이를 들고 막으려던 고블린은 김진석이 내려친 힘을 견디지 못하고 고블린 몽둥이가 부서져 버렸다.

[내구도 1/50]

마찬가지로 김진석의 몽둥이도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늙은 고블린의 몽둥이를 부수고도 내려치는 힘은 전혀 줄지 않았고, 그대로 늙은 고블린의 머리를 박살 냈다.

뇌가 튀어나오고 피가 솟구쳤지만 다친 팔로 눈에 튀지 않게 막은 다음 본능적으로 부서질 거로 예상한 자신의 몽둥이를 놓고 몽둥이를 발로 밟아 당황하고 있던 늙은 고블린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 자신의 몸을 가렸다.

그와 동시에 김진석의 목을 노리고 던진 고블린 단검이 방패로 사용한 늙은 고블린에게 박혔다.

카아악!

괴성을 지르는 늙은 고블린을 한쪽 팔로 잡고 박힌 단검을 다친 팔로 뽑아 다시 고블린의 몸에 찔러 넣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다쳐서 그런지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계속해서, 계속해서 찔렀고 결국엔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꺾어서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단검을 피했다.

“패턴이 뻔하잖아.”

늙은 고블린의 피를 온몸에 한껏 묻힌 김진석은 늙은 고블린에겐 살인귀나 다름없었다. 김진석은 다친 팔에 든 고블린 단검을 고쳐 들고 눈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늙은 고블린에게 달려갔다.

* * *

“나쁘지 않네.”

늙은 고블린 총 네 마리를 잡고 나온 수입은 꽤 짭짤했다.

[금화 50개.

고블린 몽둥이. 내구도 10/50

최하급 포션 2개.]

늙은 고블린을 잡고 나온 최하급 포션이 있었다. 문제는 사용 방법이었다.

“그냥 먹으면 되나? 아니면 상처에 바르는 건가?”

어차피 두 개가 나왔고, 아무리 돈이 없다지만 최하급 포션을 아낄 필요는 없었으니 둘 다 시험 해 보기로 했다.

우선 먼저 먹어 보기로 했다. 김진석은 붉은색 물이 찰랑거리는 포션의 뚜껑을 열어 전부 마셔 보았다.

“생각보다 맛있네.”

살짝 딸기 향이 나는 것도 같았다. 포션을 전부 마시고 김진석은 다친 팔을 바라보았다.

“오, 낫는 게 눈에 보이네.”

고블린 단검이 짧은 데다가 그리 날카롭지도 않아서 크게 상처를 입진 않았었다. 그래도 가만히 내버려 두니 피가 계속해서 나와 방치할 수 없는 상처였다.

그런데 어느새 피가 멎고 딱지가 얹어져 있었다. 그 과정이 전부 눈에 보였다.

“그래도 실험할 건 해야지.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효율의 문제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굳이 비효율적으로 할 이유가 없으니깐.

늙은 고블린을 쑤시고 쑤셔서 닳고 닳은 고블린 단검을 손에 들고 자신의 손바닥을 살짝 그었다.

그런데 너무 닳아서 그런지 제대로 베이지도 않았다. 김진석은 한숨을 쉬고 살짝 심호흡한 뒤 고블린 단검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찍었다.

“끄으윽! 굳이 지금 했어야, 했나?!”

자기 자신에게 되물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김진석은 이를 악물고 남은 포션 한 병의 뚜껑을 따서 자신의 손바닥 위에 조심스럽게 뿌렸다.

* * *

결과만 말하자면 상처에 뿌리는 것도 도움이 됐다. 아니, 효과가 더 좋았다. 하지만 그 뒤에 끔찍한 고통이 따랐다.

포션을 마셨을 때는 상처가 낫는 게 눈에 보였는데도 별 고통이 없었다. 딱지가 질 때 간지러운 그 정도?

그런데 상처에 뿌리니 화상 입은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면 이런 고통일까.

끔찍한 고통과 더불어 상처가 낫는 게 보였다. 마셨을 때보다 훨씬 더 빨리 낫고 있었다.

늙은 고블린과의 싸움에서 난 상처는 포션을 마셔서 딱지까지 졌지만 손바닥에 뿌린 상처는 딱지조차 지지 않고 깔끔하게 나았다.

물론 그만한 고통이 따랐지만.

“느꼈던 고통 중에서 가장 끔찍했어. 고작 손바닥인데도 이 정도면… 웬만하면 이 방법은 봉인해 놔야지. 아니, 그냥 기억에서 없애자.”

김진석은 넌덜머리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HP의 존재가 있는지 모르겠네. 무기 말고 방어구가 떠야 하는데 말이지.”

하지만 늙은 고블린을 잡고 나오는 건 방어구는 없고, 무기마저도 고블린 몽둥이밖에 없었다. 1티어 몬스터 중에서도 최하급 몬스터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이 근처에 조금 더 레벨이 높은 몬스터가 있긴 한데… 너무 무리 지어 다니고 위험한데 말이지.”

레벨 15인 몬스터가 살고 있다. 바로 회색 멧돼지. 회색 멧돼지는 기본적으로 무리를 지어 다녀 지금 김진석이 잡기에는 까다로울 것이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그 멧돼지를 사육하는 고블린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고블린 레벨이 20이니 김진석과 같지만 지금 김진석은 맨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설령 아이템을 전부 갖췄다고 해도 섣불리 상대하기는 힘든 상대다.

하지만 그건 고블린을 마주쳤을 때다. 회색 멧돼지와 고블린의 서식지가 겹치긴 하지만 어떻게든 조심하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회색 멧돼지는 무리 지어 다니는 만큼 새끼들도 있는데 그 새끼의 레벨도 똑같이 15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레벨이 같다는 건 떨어뜨리는 아이템과 금화도 같다는 것. 만약 새끼만을 골라서 잡고 아이템을 얻는다면 성체 회색 멧돼지도 할 만하다.

“문제는 어떻게 새끼만을 골라잡느냐는 건데…….”

그때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김진석은 이미 다 닳아서 쓸모가 없어진 고블린 단검을 버리고 나무 뒤로 숨었다.

말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전에 보았던 갑옷을 입은 남자와 마법사의 차림을 한 여성이 다가오고 있었다.

“얼레? 토카와 꿔크로 몸 풀고 늙은 고블린 잡으러 왔는데 여기도 없네?”

“그러게. 누가 먼저 죽이고 갔나 봐. 저기 고블린 단검도 떨어져 있다.”

마법사 차림을 한 여성이 김진석이 버린 고블린 단검을 주워들었다.

“다 닳았네. 그런데 피가 묻어 있는 거 보면 최근까지 썼나 본데?”

“가져가자. 고물상이라든가 대장장이한테 가면 팔 수 있으니깐.”

갑옷을 입은 남성이 고블린 단검을 주워 등에 멘 배낭에다가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그들에게는 인벤토리와 같은 게 없는 것 같았다.

“회색 멧돼지라도 잡으러 갈래?”

“위험하지 않아? 고블린을 마주치면 어떡해?”

“그땐 잽싸게 도망가면 되지. 고블린들이 영리해서 인간들을 깊게 안 쫓는다고 들었어. 자칫하면 보복이 올 수 있으니깐.”

“하긴, 근처에 말리 성이 있으니 위험하면 경비원들 있는 데까지 도망가자.”

그 둘은 그렇게 말하며 회색 멧돼지의 서식지인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숲의 이름 따위는 없었지만 고블린과 회색 멧돼지들이 살아 고블린 숲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둘이 떠나자 김진석은 나무 뒤에서 나오며 말했다.

“저 둘을 이용하면 되겠네. 회색 멧돼지는 부모가 죽임당하면 새끼는 도망가니깐… 그 도망가는 새끼를 잡아야겠다.”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고블린 숲으로 들어가는 그 둘을 조심스레 뒤따라가기 시작했고, 금방 고블린 숲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미행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어 최대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고블린 숲은 비명의 숲과 달리 활발했다. 활발이라고 말한 이유는 들어오자마자 사슴이 뛰어다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저건… 몬스터가 아니라 진짜 사슴이네.”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사슴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에 안정감이 들었다. 이 세계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보는 평범한 동물이라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사슴이 뛰어다니는 걸 지나 남성과 여성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으니.

“위험하다 싶으면 내빼면 된다. 내가 위험할 건 없어.”

* * *

회색 멧돼지는 개체 수가 워낙 많다 보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성체 둘, 새끼 하나로 된 회색 멧돼지들이었다.

성체의 크기가 2미터에서 2미터 50센티 정도 되어 보였고, 새끼는 그것보다 훨씬 작았다.

“저깄다!”

“조용히 해! 도망가면 어떡할 거야. 내가 먼저 공격할 테니 혼비백산일 때 네가 달려가.”

나무에 숨어 회색 멧돼지를 지켜보는 둘을 지켜보는 김진석이었다. 마법사 여성의 손 앞에서 조그마한 불로 된 구체가 생기더니 모여 있던 회색 멧돼지 일가에 날렸다.

로스트 월드에서 MP, 마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업은 마법사 하나뿐이다. 하지만 그 마법사 중에서도 학파가 나뉜다.

불을 다루는 학파, 물을 다루는 학파 등등 수많은 학파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보편적인 학파가 바로 불을 다루는 학파.

로스트 월드에서도 불이 약점인 몬스터가 많아 게임에 대해서 많이 알려졌을 때 불을 다루는 마법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진석은 저 화염의 구가 새끼에게 닿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여성이 날린 화염의 구는 정확히 성체 멧돼지 둘의 사이에 적중했다.

뀌이익!

어떻게 정확히 그 둘의 사이를 맞춰서 아무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았고, 흥분한 회색 멧돼지들은 화염구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법사 여성이 화염의 구를 맞추고 달려가려 했던 갑옷을 입은 남성이 맞추지 못해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회색 멧돼지에게 걸렸다.

성체 멧돼지가 갑옷을 입은 남성을 보자마자 바로 냅다 달려가 들이받아 버렸다.

“끄아악!”

갑옷을 입은 남성이 넘어졌고, 그를 지키려 마법사 여성이 급하게 마법을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김진석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뒤에 멀뚱멀뚱 서 있는 새끼를 보고 있었다. 부모들이 흥분해 달려들었고, 새끼가 붕 뜬 거다.

새끼를 죽인다는 죄책감 따위는 김진석에겐 없었다.

어차피 몬스터다. 저것들이 크면 인간들을 죽일 거다. 그런 생각도 아니었다. 그저 죽이면 김진석 자신이 성장할 수 있으니 죽이는 것뿐이다.

김진석은 고블린 몽둥이를 들고 몰래 살금살금 다가갔다. 다행히 회색 멧돼지의 새끼는 그리 기감이 뛰어나지 않았는지 가까이 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수풀 속에서 숨어서 다가가던 김진석이 순식간에 일어나 회색 멧돼지의 새끼에게 달려가 고블린 몽둥이를 휘둘렀다.

회색 멧돼지의 새끼는 그제야 김진석의 존재를 눈치챘지만 이미 늦었다.

김진석의 고블린 몽둥이가 회색 멧돼지 새끼의 머리를 단 한 방에 깨부쉈다. 회색 멧돼지 새끼는 단말마조차 내지 못하고 시체로 변해 빛으로 사라졌고, 뭐가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바로 다 주워 담고 급히 몸을 숨겼다.

그런데 여전히 갑옷을 입은 남성과 마법사 여성은 회색 멧돼지 성체 두 마리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남성은 회색 멧돼지의 돌진을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갑옷에 손상도 가지 않았지만 문제는 뒤에 있는 마법사 여성이었다.

“지켜 줄 테니까 마법을 날려.”

“이렇게 가까이서는 너에게도 피해가 갈 텐데?!”

“됐으니까 날려!”

마법사 여성은 갑옷 입은 남성에게 피해가 갈 게 두려워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대충 눈치챘는지 회색 멧돼지 한 마리는 남성을, 한 마리는 여성을 견제하면서 뭔가 낌새가 보이면 바로 남성에게 붙었다.

“로스트 월드에선 PVP가 가능한 대륙이거나 아예 결투장 같은 곳이 아니면 아군 공격이 안 됐는데 말이지……. 그런데 저 여자는 도대체 무슨 깡으로 몬스터를 잡으러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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