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9화 (9/201)

9화

* * *

“굳이 그 김진석이란 자를 현상 수배까지 할 이유가 있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굳이 도망갈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그자가 나타남과 동시에 몬스터가 몰려왔습니다. 거기다가 처음 보는 악마까지. 그 악마는 가이크 님도 얕볼 수 없는 상대였습니다.”

다렌과 가이크의 대화였다. 가이크는 인간이지만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바로 오우거와 인간의 하프였다.

오우거가 인간을 납치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고 거기서 태어난 것이 바로 하프 오우거다. 하프 오우거들은 몬스터의 피인 오우거의 성향을 타고나 전부 몬스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유일한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가이크였다.

찰스가 가이크 성의 성주인 가이크에게 가 김진석의 현상 수배를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그래서 다렌이 직접 가이크에게 와 그를 설득하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다, 다렌. 내 레벨이 몇인진 알고 있겠지?”

“예, 72십니다.”

“그래, 영웅님들의 레벨이 몇인진 밝혀진 게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레벨이 낮은 레벨은 아니다. 그런 내가 한 스무 명은 있어야 그 악마와 싸워 봄직했을 거다. 그럼 문제다. 평범한 마족이 그런 거대한 악마를 마음대로 부를 수 있을 거라고 보나?”

“…….”

그 말에 다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척박한 대우를 받으면서 악으로 버티면서 레벨 업을 한 나도 72다. 물론 가이크 성을 운영하면서 더는 레벨 업을 하는 것이 어려워졌지만 나는 나를 한계까지 몰아쳤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스무 명, 아니 그걸로도 모자랄 수도 있겠지. 그런 괴물을 평범한 마족이 데려왔다고? 그저 우연의 일치다.”

가이크는 하프 오우거란 걸 숨기지 않았다. 아니, 숨길 수가 없었다.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어금니가 입에서 튀어나온 구조와 그 거대한 몸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들에게 차별받았다. 당연하다. 그를 제외한 같은 하프 오우거와 오우거들은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는 지성이 높은 몬스터일 뿐이었으니.

하지만 가이크는 그런 모든 차별받는 시선을 극복하고 압도적인 힘으로 인간들에게 신뢰를 받았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성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만. 그런 괴물이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문젠데 너까지 그러면 안 돼. 인간들의 세계에 적응할 때 네 도움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정확하지 않은 증거로 현상 수배를 걸 수 없어.”

다렌과 가이크는 같은 용병단에 입단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다렌이 먼저 입단해 적응하고 있을 때 가이크가 온 것이다.

다렌도 가이크와 비슷하게 엘프라고 가이크만큼은 아니지만 안 좋은 시선을 받아 왔다. 하지만 그는 극복했고,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가이크를 도와줬었다.

“…알겠습니다.”

엘프라고 한들 태생이 오우거인 가이크의 성장 속도는 엄청났고, 순식간에 다렌을 넘어섰다.

그래도 둘은 전혀 서로를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한쪽은 성의 주인이고 한쪽은 단원이 한 명뿐인 기사단의 단장일 뿐이었지만.

그렇게 다렌이 뒤돌아섰을 때 가이크가 말했다.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그는 비명의 숲 너머에 세계를 알고 있는 자다. 왜 도망갔는지 모르겠지만 현상 수배 말고 의뢰를 하지. 김진석을 찾는다는 의뢰. 이름도 특이해서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다렌은 성주의 방 방문을 열고, 나갔다.

“쟤는 점점 가면 갈수록 고지식해지네. 그런 괴물이 나타났는데 왜 그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지? 그 괴물만으로도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말이지. 그런데 그 거대한 악마를 죽인 자는… 진짜 영웅님인가? 한번 뵙고 싶긴 하네.”

* * *

이번에 김진석은 레벨 1과 2 수준의 몬스터가 아닌 훌쩍 뛰어 10레벨에 다다르는 몬스터를 잡으러 왔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토카와 꿔크를 잡아먹고 사는 몬스터였기 때문에.

“고블린… 실제로 보니 더 역겹게 생겼네.”

고블린. RPG 게임에서도 보편적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몬스터였으며 당연히 로스트 월드에서도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고블린의 생김새는 인간처럼 생겼지만 1미터 정도 되는 조그마한 몸집에 주름진 초록색 피부, 그리고 인간보다 귀와 코가 조금 더 뾰족했다.

본래 고블린의 키는 1미터 30센티 정도 되지만 허리를 곱게 펴지 못하고 숙이고 있어 몸집이 1미터로 보이는 것이다.

고블린은 기본적으로 지능이 뛰어나 도구를 사용할 줄도 아는 놈들이다. 몬스터 중에는 꽤나 머리가 똑똑한 놈들이다.

하지만 김진석이 잡을 고블린은 그런 놈들이 아니다.

“늙어서 그런지 걸음걸이가 이상하군.”

늙은 고블린. 기본적으로 고블린의 레벨은 20이 넘는다. 꽤 높은 레벨이지만 늙은 고블린은 아니다.

고블린들은 원래 뭉쳐서 살지만 늙은 고블린은 말 그대로 늙어서 약해진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약해지면 도태되고, 무리에서 버려진다.

버려진 고블린은 토카나 꿔크와 같은 레벨이 매우 낮은 몬스터를 잡으며 살아남는다. 토카나 꿔크가 사는 곳엔 늙은 고블린들이 항상 근처에 살고 있다.

그들의 레벨은 10.

“고블린의 단검 말고는 무장도 제대로 없군. 후…….”

고블린의 단검은 말 그대로 고블린들이 만들어 낸 단검이다. 당연히 인간들이 만든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조잡하고 훨씬 짧다. 하지만 그것도 칼.

찔리면 위험하다.

아무리 싸움에 익숙한 김진석이라도 칼을 든 상대와 싸워 본 적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내가 온 이후부터 이 세계가 이상해지고 있어.”

김진석이 로스트 월드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미 달라진 일을 겪었다. 자신이 없었다면 가이크 성이 위험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아니, 푸른색 글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도 죽었을 수도 있다.”

성장하는 재미도 당연히 있다.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 것이다. 처음 시작하면 매우 힘들지만 근육이 금방 붙으면서 자신의 몸이 바뀌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성장하는 재미를 찾기에는 세계가 너무 위험하다.

“긴장해라, 김진석. 이 세계는 현실이다.”

늙은 고블린을 눈앞에 두고 김진석은 심호흡하고 있었다. 게임에서라면 레벨 20인 그는 손가락으로도 죽일 수 있는 존재지만 이곳은 현실이다.

그때 늙은 고블린이 그를 발견했다.

캬아아악!

괴성을 지른 늙은 고블린이 갑자기 들고 있던 고블린 단검을 그에게 던졌다.

“이런 패턴은 없었는데?!”

늙은 고블린이 원거리 공격을 한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다행히 눈을 부릅뜨고 늙은 고블린을 바라보고 있어서 피할 수 있었다.

늙었다고 해도 고블린. 그리고 늙은 만큼 연륜이 있는 그들은 정확히 김진석의 목을 노리고 던졌지만 김진석은 반사 신경만으로 그걸 피해 냈다.

“빌어먹을 불합리한 현실!”

고블린 단검은 김진석을 지나 바로 뒤에 있는 나무에 꽂혔다. 그걸 본 김진석이 바로 고블린 단검에 손을 뻗어 뽑아낸 다음 바로 고블린에게 던졌다.

원래는 몬스터가 쓰는 장비 따위는 쓸 수 없고 오로지 몬스터를 잡고 떨어지는 장비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여기선 아니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김진석이 던진 고블린 단검은 늙은 고블린의 가슴팍에 정확히 명중했고, 녀석은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카아악!

하지만 김진석은 애초에 고블린 단검이 맞을 거란 생각을 안 하고 있었고, 상대에게 원거리 공격 수단이 있는 이상 거리를 좁히는 게 맞다고 판단해 이미 그는 늙은 고블린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달려가는 속도 그대로 자신의 몸을 이용해 늙은 고블린을 들이받았다. 그 결과 늙은 고블린에게 박혀 있던 고블린 단검이 더욱 녀석의 몸으로 파고들어 갔다.

짧은 단말마와 함께 늙은 고블린은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이런 현실은 괜찮네.”

빛으로 변해 사라지고 떨어진 고블린 단검을 김진석이 주웠다. 그때 푸른색 글씨가 고블린 단검 위에 나타났다.

[고블린 단검.

고블린들이 직접 만든 단검이다.

내구성이 그리 뛰어나진 않다.]

푸른색 글씨가 고블린의 단검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고블린의 단검은 원래 잡템이라 공격력 같은 것도 없는데, 로스트 월드의 설명과 똑같았다.

잡템이니 당연히 사용할 수도 없었지만 여기선 아니다.

“그렇다고 진짜 아이템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르겠지.”

고블린의 단검 밑으로 늙은 고블린이 죽고 떨어뜨린 아이템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반짝이고 있었으며 김진석은 그걸 주워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고블린이 자주 쓴 몽둥이. 레벨 제한 10.

나무로 만든 단단한 몽둥이.

자주 써서 다 닳았다.

공격력 +15 내구도 10/50]

아이템답게 레벨 제한도 있는 모습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나무 몽둥이지만 내구도가 다 박살 나 있다.

“그래도 10렙제 아이템이라고 공격력이 15나 되네.”

로스트 월드에선 아이템에 레벨 제한이 다 있다. 1레벨부터 10레벨, 20레벨 이렇게 10레벨마다 말이다.

게임 용어로는 0티어를 1레벨 아이템, 1티어를 10레벨 아이템 이렇게 정의해서 9티어 아이템이 가장 좋은 아이템이다.

물론 그 위에 전용 무기라는 아이템이 있긴 하지만 그건 예외. 어쨌든 늙은 고블린은 1티어 아이템이 나오는 몬스터 중에서 가장 약한 몬스터였다.

김진석도 그걸 알고 늙은 고블린을 죽인 것이지만 아이템이 바로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운이 좋았네. 그만큼 아이템이 쓰레기긴 하지만 어쨌든 1티어 아이템. 이걸 이용해서 더 레벨이 높은 녀석을 잡아야 해.”

그런데 그때 주변에서 카아악거리는 고블린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김진석에게 단검이 날아오고 있었다.

긴장을 놓지 않았던 김진석은 들고 있던 나무 몽둥이로 그 단검을 쳐 냈다.

[내구도 9/10]

“이런.”

단검이 날아온 방향을 보니 그곳에는 늙은 고블린 세 마리가 있었다.

“예상했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들은 모여 사니깐. 그게 현실이든, 게임이든 똑같겠지.”

그것보다 김진석은 자신의 반사 신경에 더 놀랐다. 늙은 고블린이 던져 그리 빠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들고 있는 무기로 쳐 낼 정도는 아니었으니.

정말 훈련된 사람이라면 할 수 있었겠지만 김진석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기습적으로 날아오는 단검을 보고 무기로 쳐 낸 것이다.

“고작 레벨 20인데도 이 정도면 진짜 레벨이 높은 이들은 초인이겠군.”

실제로 그는 눈앞에서 이미 초인을 보았다. 가이크 성의 성주 가이크. 그는 정말 전장을 날아다니듯 누비며 몬스터들을 휩쓸고 다녔다.

“그의 최종 레벨은 80이 넘지. 거의 완성된 상태였으니 지금은 한 70 정도겠네.”

김진석에겐 까마득한 레벨이었다. 그는 고블린 단검을 늙은 고블린에게 집어 던졌다. 하지만 앞의 세 마리는 그나마 덜 늙은 고블린인지 잽싸게 움직여 단검을 피했다.

물론 초심자의 행운으로 맞췄을 때도 이미 달려갔던 김진석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못 맞출 걸 예상하고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리가 좀 있었고, 이번에는 늙은 고블린 셋이 동시에 단검을 던졌다. 합공이 익숙한지 한 마리는 목, 한 마리는 다리, 한 마리는 팔을 노려 하나라도 맞으면 치명상이 될 수 있는 곳만을 노렸다.

달려가는 상태라 김진석은 제대로 피할 수가 없었고, 빠르게 판단해 살짝 다리만 뛰어서 다리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고 하필 몽둥이를 든 팔로 날아오는 단검은 몽둥이로 쳐 내고 목으로 날아오는 단검은 다른 팔로 막아냈다.

다행히 그리 날카롭지 않아 팔에 박히진 않았지만 화끈거리는 고통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하지만 애써 무시하고 늙은 고블린에게 달려갔다.

두 마리는 나무 몽둥이를 꺼내며 김진석을 막아내고, 한 마리는 다른 고블린 단검을 꺼내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들은 김진석의 힘을 잘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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