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금방이라도 그 거대한 대검을 내리칠 것만 같았던 가디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했다.
“…영웅님들이 돌아온 건가?”
가이크가 말한 영웅이란 로스트 월드에서 악마에게 대적했던 사람 중에서 특출 나게 강했던 몇몇 인물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악마들에게 당하던 인간을 구원해 주었다.
악마의 몬스터들은 인간들이 대항할 수 있었지만 악마의 엄청난 마기 앞에서는 당하기만을 반복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영웅들이 악마들에게 대항했다. 그들은 악마들과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밀리기만 하던 인간들도 그들을 도와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악마들은 시간이 지나 힘이 약해졌고, 결국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영웅들도 전부 사라졌다.
악마들이 사라지고 인간들은 악마의 잔재인 남아 있는 몬스터들을 차근차근 소탕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그 영웅들을 악마들에게 당했지만 아직 살아남은 천사들의 잔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방인, 플레이어가 로스트 월드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가이크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뜬금없이 하늘에 커다란 매가 날아다니고 있었지만 그저 평범한 새이거니 생각했다.
“언제나 위험할 땐 우리 인간을 도와주시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영웅들이 자신들을 도와줬다는 것을 확신하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 *
[플레이어 카이와 동기화가 진행 중입니다.]
김진석은 검은색 글씨가 아닌 푸른빛의 글씨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글씨체와 푸른색은 김진석에게 익숙한 거였다.
“이건… 로스트 월드의 UI다.”
UI 사용자 인터페이스다. 일할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로스트 월드를 해 왔다. 절대 그와 유사하거나 착각이 아님을 그는 알고 있었다.
[카이와의 동기화가 끝났습니다.]
- 최초의 플레이어로 이번에 한에서만 허락된 힘입니다.
검은색 글씨와 푸른색 글씨가 눈앞에 생겨났고, 김진석은 어느새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활을 쳐다보았다.
“고요한 카인의 활. 내가 쓰던 무기가 맞네.”
카이의 직업, 카인의 전용 무기 고요한 카인의 활. 로스트 월드에서는 직업마다 전용 무기가 존재했다.
지금 김진석, 아니 카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바로 카인의 전용 무기, 고요한 카인의 활.
카인이라는 직업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만 그 극히 드문 사람들에도 혹평을 받은 전용 무기다.
이유는 정말 평범히 생긴 활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검은색이었고, 그림자와 같이 조금 일렁이는 것, 그걸 제외하고는 정말 평범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난, 이 직업이 더 맘에 들었다.”
여러 캐릭터를 키우고 많은 직업을 보아 왔지만 김진석이 메인 캐릭터를 카인으로 정한 이유는 하나다.
쓸데없는 동작 없이 오로지 공격만을 구사하는 카인. 요란한 마법 없이 오직 상대를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카인.
그거 하나 때문이다.
[30초 남았습니다.]
“이런, 시간제한이 있었나.”
시간제한이 있다는 검은색 글씨를 보자마자 그는 감옥 안에서 활시위를 걸었다. 화살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가 사용하고자 하면 활은 그에 답한다. 평생 활을 쏴 본 적도 없고 영상에서도 본 적이 없는 그였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어느새 지식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고, 그 지식에 따라 동작을 실현하면 될 뿐이었으니. 하지만 아무리 카이라도 기본 공격으로는 저 가디언을 죽일 수 없었다.
김진석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스킬을 입에 담았다.
“차징 샷.”
말 그대로 기를 모아 사용하는 스킬. 김진석은 자신의, 활시위를 당긴 손에 마나가 모인다는 것을 느꼈다.
마나를 평생 느껴 본 적도 없는 그였지만 그는 확신했다.
충분히 마나가 모였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활시위를 놓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평범한 인간이라면 감지하기도 힘들 소리와 속도로 거대한 대검을 높이 든 가디언에게 날아갔다.
그 감옥의 철창에는 마나를 사용하는 것을 방해하는 마법도 걸려 있었지만 그런 건 카이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 마법이 걸린 철창 하나 부수지 않고 바로 가디언에게 날아갔고, 가디언의 몸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가디언의 몸 정 가운데에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 최초 플레이어의 힘을 회수한다.
[카이와의 동기화가 풀립니다.]
그와 동시에 카이로 변한 김진석은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그는 커다란 매 한 마리가 전장에서 날아다니는 것을 목격했다.
“호크,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카인이라는 직업에는 항상 같이 다니는 동료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 그의 눈이 되어 주고 공격을 함께하는 영원한 동반자가.
동반자의 이름은 호크. 날개를 펼치면 3미터 가까이 되는, 매우 커다란 매다.
카이와의 동기화가 풀리면서 동시에 호크도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눈앞에 검은색 글씨가 나타났다.
- 가이크 성을 탈출하라.
여전히 검은색 글씨는 가이크 성을 탈출하라, 에서 바뀌지 않았다.
그때 김진석의 뒤에서 끼익 소리가 났다.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니 철창에 걸린 마법이 카이의 마나를 견디지 못하고 풀려 버린 것이다.
김진석은 감옥 안에서 잠시 격렬한 전투가 일어났던 검은 대지를 바라봤다. 아직 전장의 열기가 식지 않았고, 가이크 성의 병력은 남아 있는 몬스터의 잔당을 처치하고 있었다.
드레이크를 비롯한 레벨 80이 넘는 몬스터도 아직 살아 있었지만 금방 정리가 될 것 같았다. 김진석은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전장을 바라보다가 철창을 열고 나왔다.
“어차피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로스트 월드와 같이 다렌이 주는 퀘스트를 깬다고 한들 성장한다는 보장이 없다.”
이곳이 게임 속 세계라고 한들 정말 게임처럼 편리하게 퀘스트를 깨고 성장하긴 힘들다. 게임에선 마우스 클릭 몇 번, 키보드 몇 번 두드리면 깰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게다가…….
“로스트 월드 세계관이지만 이방인, 플레이어의 존재가 없다.”
그게 가장 컸다. NPC, 아니 이젠 현실 사람인 그들은 물심양면 도와주는 컴퓨터가 아니다.
감옥을 나온 김진석은 방금까지만 해도 몬스터와의 전쟁을 해서 그런지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감옥에서 빠져나와 가이크 성의 성벽을 넘어 검은 대지 반대편인 남쪽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NPC가 주는 퀘스트가 아닌 검은색 글씨가 있었다.
- 말리 성으로 향하라.
검은색 글씨가 갱신되었다. 말리 성. 사실상 튜토리얼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곳이다.
가이크 성 근처에 있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레벨이 높은 몬스터다.
성장하기 부적합해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인 말리 성으로 다렌과 찰스가 안전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동안 다렌이 퀘스트를 내며 찰스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로스트 월드란 게임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김진석은 아니었다. 말리 성까지 가는 길을 김진석이 혼자 헤쳐 나가야 했다. 그것도 게임 속이 아닌 현실에서.
“찰스의 성격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믿을 수 없다.”
물론 김진석이 인간 의심병이 있기도 하지만 이미 이 세계는 로스트 월드 세계와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찰스도 더는 NPC가 아니다.
찰스와 다렌은 둘이서 한 세트였으며 찰스가 그를 도와준다면 다렌도 마찬가지로 따라올 것이다. 그리고 다렌은 왠지 모르겠지만 김진석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방인이란 존재가 없고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나도 모르는 시점에 설명하는 건 불가능이다.”
그럴 바에 혼자서 다니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는 김진석이었다. 어떻게든 말리 성까지만 간다면 거기서부턴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가이크 성 남쪽 근처에는 강력한 몬스터가 별로 없다.”
우선 최대한 로스트 월드의 지식을 쥐어짜 내서 말리 성까지 가는 게 1차 목표인 김진석이었다.
* * *
전장의 정리가 끝났다. 정리라고도 할 것이 없었다. 몬스터들은 자신들의 대장 격인 드레이크 등이 죽고 난 뒤 뿔뿔이 흩어졌고, 남은 잔당들을 정리했을 뿐이다.
시체 또한 남지 않아서 몬스터들이 죽고 떨어뜨린 금화와 장비를 회수하면 끝이었다.
“아! 김진석 씨!”
찰스는 그제야 김진석을 감옥에 두고 온 것을 기억했다.
“나도 같이 간다.”
찰스가 말하자 다렌도 같이 간다고 말했다. 둘 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김진석을 그곳에 계속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가 정말로 평범한 사람이라면 둘은 애꿎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게 된 것이다. 그것도 비명의 숲 너머 북쪽의 지식이 있는 사람을.
물론 다렌은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옥에 붙잡아 두라고 말한 거지만.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도망간 것 같은데요? 여기 철창이 열려 있네요. 이게 왜 열려 있지? 제대로 잠갔는데…….”
찰스와 다렌은 감옥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 다렌이 철창을 살피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다.
“철창의 마법이 풀려 있다. 마법이 없는 철창은 마나를 조금만 다룰 줄 안다면 쉽게 탈출할 수 있다. 이름이 김진석이라고 했나? 현상 수배를 걸어 두지. 인상착의 확인했나?”
“예! 그래도 아쉽네요. 순순히 말도 잘 듣고 얘기를 했을 땐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그것도 가면일 수도 있다. 찰스, 내가 말했지. 사람은 쉽게 믿는 것이 아니라고.”
“알겠습니다. 쫄리는 것이 없으면 그냥 가만히 있지 왜 탈옥을 했을까.”
찰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현상 수배를 걸기 위해 가이크 성의 주인인 가이크를 만나러 감옥을 나갔다.
다렌은 그런 찰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철창으로 눈을 돌렸다.
“철창의 마법이 풀려 있다. 정확히 그 남자를 가둔 이 철창만 말이지.”
의미심장한 눈으로 다렌은 철창을 바라보다가 찰스를 뒤따라 감옥 밖으로 나갔다.
* * *
김진석은 지금 난항을 겪고 있다.
“너무 게임으로만 생각했나 보네…….”
그에게 들이닥친 끔찍한 굶주림.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로스트 월드는 MMORPG이지 생존 게임이 아니다.
액세서리나 장비 등의 아이템은 빠삭하게 알고 있는 김진석이었지만 음식이나 마실 것에 대한 건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떤 RPG 게임에서 음식을 찾겠는가. 기껏해야 포션이나 알지 다른 음식에 관한 건 전혀 모른다.
다행히 김진석에게 굶주림은 익숙했다. 애초에 보육원에서 제대로 뭘 먹고 지낸 기억 따위는 없었으니깐.
하지만 익숙하다고 견디기 쉬운 고통은 절대 아니다.
“언제든지 싸울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해.”
당연하지만 몸이 무거워지면 싸우기 어렵다. 그는 언제나 만약의 상황을 대비했다. 덕분에 김진석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진상인 손님들을 거의 안 만났다.
“게임 하기 위해 운동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
희망적인 말을 하고는 있지만 지금 상황을 벗어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체감상 한나절은 걸은 것 같은데 말리 성이 도저히 보일 생각을 안 했다.
중간중간 몬스터가 보이긴 했지만 다행히 들키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하늘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릴 땐 어떻게든 은폐물을 찾아 숨어야 했다.
매 순간이 위기였고, 로스트 월드의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몬스터가 보이면 눈에도 띄지 않게 그저 숨어야 했다.
그렇게 열심히 숨어 다니며 몬스터들을 피해 다녔지만 굶주림은 피할 수 없었다. 로스트 월드에 들어오기 전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느라 힘을 다 썼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다시는 시달리고 싶지 않았던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 말리 성으로 향하라.
말리 성은 보이지도 않는데 검은색 글씨가 전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야속하기만 한 김진석이었다.
더는 희망적인 말이 입에 담기지 않을 즘에 저 멀리서 거대한 성과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