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6화 (6/201)

6화

하늘에서 열린 게이트에서 한 몬스터가 서서히 나오고 있었다. 그 몬스터는 김진석의 기억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잊힌, 강력한 몬스터였다.

“가디언…….”

가디언, 직역하면 수호자다. 악마도 인간들과 똑같다. 마을이 있고, 성이 있고, 도시가 있다. 가디언은 그중 도시와 성을 수호하는 수호자다.

경비병이란 종족이 악마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디언의 레벨은 어떤 성, 도시를 지키고 있냐는 것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레벨이 90에 다다르는 몬스터다.

게다가 만티코어나 드레이크 같은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었다. 지성이 있는 몬스터였으며 개체에 따라 인간보다 훨씬 더 지능적이었다.

몬스터라고 폄하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종족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인간에게 적대적인 그들을 굳이 종족이라고 해 줄 이유는 없다.

게이트에서 나온 가디언은 인간형이었으며 거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크기가 10미터도 넘는 것 같았다.

등에는 거대한 날개가 달렸으며 온몸을 가리고 있는, 다렌과 같은 기사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완전 무장한 상태다. 다행히 저 갑옷에 문양은 없지만… 어째서 가디언이 이곳에?”

가디언은 이름 그대로 성과 도시를 지키는 악마다. 악마들이 다른 세계를 침공하고 있을 때도 자신의 도시와 성을 지키는 것이, 가디언이다.

로스트 월드 스토리상에서도 가디언이 자신이 지키고 있는 곳을 벗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즉, 완벽히 이상한 상황이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가디언은 날개를 펼치며 땅에 착지했다. 그 거대한 몸에 맞게 가디언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니 하늘을 가려 버렸다.

“가디언 중에서도 10미터 가까이하는 가디언은 거의 없다. 90레벨, 그것도 최고 레벨급이다.”

이거는 위험했다. 아무리 가이크 성이라도 저 가디언 하나만으로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로스트 월드에서는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만큼 NPC들도 성장했다.

김진석이 예상하길 지금은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처음 들어왔을 시점, 즉 김진석 본인이 들어왔을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제 막 시작한 시점에 최고 레벨 가디언을 잡으라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탈출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김진석이 갇힌 곳은 악명 높은 가이크 성의 감옥이었다. 마나를 각성해 쓸 수 있는 자도 쉽게 탈출할 수 없는 감옥인데 김진석은 마나도 없다. 그는 아직도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검은색 글씨를 보고 화가 났다.

- 가이크 성을 탈출하라.

“튜토리얼은 깰 수 있게 만들어 놔야지! 씨발, 이러면 도대체 누가 이 게임을 하겠어?!”

원래는 욕도 잘 모르는 김진석이었지만 로스트 월드를 해 오면서 수많은 욕을 배웠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육성으로 내뱉은 적은 없었다.

그만큼 화가 나고 허탈한 상태였다.

아무리 불합리해도 정도가 있다. 각성도 못한 플레이어에게 가디언, 그것도 최고 레벨의 가디언을 잡으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해 보려다가 배신을 당했고, 그들에게 잡히기 직전에 이곳 로스트 월드 세계로 들어왔다.

“정말 세상은… 불합리하네.”

그런데 그때, 검은색 글씨가 전과 달리 사라질 듯이 격렬하게 흔들리다가 새로운 글씨로 바뀌었다.

- 이름을 말하라.

“…뭐?”

무슨 이름을 말하라는 거지? 김진석은 알 수 없는 말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가디언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름? 내 이름? 김진석은 아닐 텐데…….”

가디언은 장갑을 두른 손을 아공간과 같은 곳에 집어넣더니 본인 크기만 한 거대한 대검을 꺼내 들더니 땅에 내리꽂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더니 가디언의 몸에서 엄청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눈으로도 보일 것만 같은 엄청난 마기는 검은 대지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갔다.

검은 대지가 더더욱 어두워지며 칠흑같이 변했다. 그러더니 검은 대지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 검은 연기가 가이크 기사단에 당한 몬스터들에게 빨려 들어가더니, 간신히 살아 있는 몬스터들도 점점 재생되고 있었다.

만티코어의 날개도 재생되고, 드레이크의 부서진 비늘도 재생됐다. 키메라의 잘린 뱀의 꼬리조차도 재생됐다.

영역 선포. 가디언 고유의 스킬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영역에 있는 모두가 재생한다. 하지만 그건 몬스터와 악마뿐.

인간에게는 악영향을 끼친다. 마기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평범한 인간은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광인으로 변한다.

가이크 성에는 마나조차 각성시키지 못한 나약한 자는 극히 드물다. 전에 말했던 전쟁 상인도 이미 몬스터가 나온 것을 보고 도망친 이후다.

몬스터와 인간의 전쟁에서 멀리 떨어진 김진석의 눈에도 검은 마기가 땅에서 슬금슬금 올라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김진석은 저 마기가 자신한테도 영향을 끼칠 것만 같았다. 아니, 백 퍼센트 끼칠 것이다.

그 모습에 김진석은 마음이 점점 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색 글씨는 변함이 없었고, 생각할 시간도 부족한 그는 점점 답답해졌다.

“내가 로스트 월드에서 죽는다고?”

대부분 게이머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이다. 게임 속으로 들어가서 게임 캐릭터로서 그 안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뭐,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김진석은 그런 생각을 해 봤다. 하지만 최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게임 캐릭터로서 들어와야지 실제 몸이 들어오면 어떡…해?”

그때 김진석의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것이 있었다. 그와 동시에 검은색 글씨가 그에 답하듯 일렁이더니 글씨가 바뀌었다.

- 최초의 플레이어로 이번에 한에서만 허락된 힘입니다.

처음으로 검은색 글씨가 존댓말을 했다. 하지만 김진석은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의 단어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카이.”

카이, 김진석이 로스트 월드에 처음 접속했을 때 만든 캐릭터의 이름. 카이는 김진석이 그저 로스트 월드란 게임을 시작할 때 아무 지식도 없이 만든 캐릭터다.

하지만 예상외로 로스트 월드란 게임이 재밌었으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 게임의 지식을 쌓아 갔다.

카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영어 이름이 멋있어 보였고, 대충 생각나는 이름으로 지은 거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직업과 비슷했기 때문에 지었다.

카인. 활을 주로 사용하는 직업이었으며 하필 그 당시에 카인이라는 직업의 인식이 매우 좋지 못했다.

활을 사용해 원거리 공격이 주가 되는 만큼 몸이, 즉 방어력과 HP가 전 캐릭터를 통틀어 최악이었다.

그렇다면 공격력이라도 강력해야 했는데 원거리 캐릭터라고 그렇게 강하지도 않았다. 포지셔닝, 그러니깐 공격할 수 있는 수단과 위치가 자유로웠지만 그게 전부.

카인을 키우는 사람 중 대부분이 MMORPG의 꽃인 레이드에서 허무하게 픽픽 쓰러져 죽으니 사람들이 카인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거다.

파티에서도 선호도가 최하위를 달렸으며 그런 이유로 아무도 그 직업을 키우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김진석은 그런 지식 하나도 없이 하필 골랐던 직업이 카인이었다. 하지만 카인이란 직업은 김진석에게 잘 맞았다.

선천적으로 동체 시력이 매우 좋았던 그는 몬스터의 모든 공격을 피하며 공격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했다.

사실 그도 처음부터 레이드를 혼자서 진행한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끼워 주지 않아서 혼자서 진행했을 뿐.

- 카이. 그 이름이 맞나?

처음으로 검은색 글씨가 김진석의 의사를 물어 왔다. 김진석은 자기 생각이 옳았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 카이, 직업은 카인. 확인되었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나타난 푸른빛이 김진석의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김진석은 자신의 몸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각성 】

“…끔찍한 마기다.”

다렌은 가디언을 처음 보았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끔찍할 정도로 많은 마기에 기가 질렸다.

“어느 정돕니까? 저렇게 거대한 악마는 책에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만…….”

“…영웅분들과 비견될 힘이다. 자칫하면 가이크 성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갑자기 저런 악마가 어디서 나타난 겁니까?”

“그걸 알았다면 진작에 대책을 세웠겠지. 후…….”

그때 가디언이 어디선가 거대한 대검을 뽑아 들더니 땅에 내리꽂고는 마기를 검은 대지에 공급했다.

아직 죽이지 못했던 만티코어와 드레이크, 키메라가 전부 싸우기 전인 만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인간들은 절망을 느꼈다.

아직 인간들에게 큰 피해는 없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히포그리프 기사단의 히포그리프들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히포그리프도 그리핀에서 파생된, 결국엔 몬스터다. 검은 대지에서 올라오는 마기를 피부로 흡수하더니 기수의 말을 안 듣고 날뛰기 시작했다.

히포그리프의 위에서 떨어진 기수들이었지만 다행히 가이크 기사단과 함께 땅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했던 그들이라 안전하게 땅에 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히포그리프들이 몬스터로 변해 버렸다. 가이크 성의 강력한 기사단 중 하나가 무력화가 된 것이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싸워라!”

가이크 기사단의 선두이며 기사단장, 가이크 성의 주인, 그리고 가이크 성에서 가장 강력한 자, 가이크가 목에 핏줄이 서도록 소리쳤다.

가이크의 눈빛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그에 호응해 가이크 기사단은 자신의 방패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검에 맹세하리라.

검으로 긍지를 증명할 것을.

죽음 앞에서도 기사는 검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나 스스로 맹세하리라.

맹세의 노래. 단순히 기를 돋구려고 하는 노래가 아니었다. 과거부터 전통으로 내려오는 노래긴 했지만 이 노래 자체에도 버프가 있었다.

그저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게임상에서는 최대 HP와 MP, 그리고 HP 재생 속도가 증가하는 버프가 있다.

물론 남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자들 모두가 진심으로 자신의 검에 맹세를 해야만이 버프를 받을 수 있었다.

인간들도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만전의 상태로 돌아왔다. 비록 히포그리프 기사단은 무력화됐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각오가 있었다.

검을 위해, 자신의 가족을 위해 망설임 없이 죽을 각오가.

“이곳에 영웅은 없다! 우리가 곧 가이크 성의 영웅이다! 가자!”

그 말을 끝으로 가이크 기사단은 가디언과 그의 곁에 있는 몬스터들에게 달려 나갔다. 가디언은 그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면서 땅에서 천천히 대검을 뽑아내며 한 손으로 쥐었다.

“가이크 성을 위하여!!”

가디언의 대검에 엄청난 마기가 몰려들고 있었다. 그 거대한 대검은 가디언의 몸과 비슷한 크기였지만 그 위에 덧대어지는 마기로 인해 그 크기가 두 배에 다다르고 있었다.

가디언은 하늘 위로 거대한 대검을 들었다. 마치 하늘을 뚫을 것만 같은 그 거대한 대검은 단칼에 모든 가이크 성의 병력을 베어 버릴 것만 같았다.

돌진은 멈추지 않았다. 먼지를 일으키며 몬스터들을 말 그대로 갈아 버렸다.

그 뒤로 남겨진 몬스터들은 히포그리프 기사단의 기수들이 처리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긴장했다.

분명 검은 대지에서 올라오는 검은색 연기로 인해 그 몬스터들이 재생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런데 몬스터들은 재생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가이크 성의 기사단에 당한 몬스터는 먼지로 변해 사라졌고, 금화와 장비만을 떨어뜨릴 뿐이었다.

그렇게 가이크 성의 병력은 돌진해 가디언의 앞까지 진출했다.

그때 가디언이 하늘 높이 올린 거대한 대검을 땅을 향해 내리꽂았다.

“산개해!”

저 거대한 대검은 지금 이곳에서 가장 강한 가이크조차도 막을 자신이 없었다. 바로 산개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신은 어떻게든 저 검의 방향이라도 바꿔 보려 가디언을 두 눈 부릅뜨고 똑바로 쳐다봤다.

아니, 쳐다보려 했다.

“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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