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키메라의 만티코어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키메라는 얼굴은 사자, 몸은 염소, 꼬리는 뱀인 기괴하게 생긴 몬스터다. 만티코어는 몸 전부가 사자와 같지만 머리에는 황소와 같은 뿔이 달렸고, 녀석의 몸보다 훨씬 큰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고 있었다.
둘 모두가 레벨이 80이 넘어가는 상위 몬스터다. 그런 괴수가 가이크 성 밖에서 성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외에 잡다한 몬스터들이 마찬가지로 가이크 성을 부술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잡다한 몬스터조차도 제일 낮은 레벨이 40으로 보였지만 문제는 저 셋.
만티코어, 드레이크, 키메라.
키메라는 다른 몬스터와 함께 가이크 성의 성벽으로 달려오고 있었고, 드레이크는 땅속을 파고들더니 사라졌다.
만티코어는 자신의 거대한 날개를 펼쳐 날아다니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수많은 날아다니는 몬스터가 만티코어를 호위하듯이 있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다른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로스트 월드 세계의 최고 전력이 모인 가이크 성에 고작 드레이크를 비롯한 다른 몬스터들이 들이닥친다고 해도 못 막을 건 없었다.
희생이 조금 있을지언정 절대 뚫릴 일 따위는 없었다. 가이크 성은 악마와 싸워 오며 인간들이 만든 최후의 요새였다.
그런데…….
“검은 대지에선 볼 수 없는 몬스터들이다. 설마… 나 때문에?”
“…우선 따라오세요. 다렌 대장님이 저렇게까지 반응하시는 것을 보면 당신은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겠죠. 반항은 안 하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어느새 찰스는 휴대용으로 들고 다니던 조그만 숏소드를 들고 있었다. 여차하면 김진석을 베겠다는 의지가 느껴졌기에 김진석은 얌전히 그를 따랐다.
찰스를 따라가며 성벽 밖, 전장의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새 히포그리프 기사단이 만티코어와 맞붙고 있었다.
히포그리프 기사단은 각기 힘이 다르다.
히포그리프의 선택을 받은 자가 정말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다렌과 같은 강력한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히포그리프를 잘 다루기만 한다면 최소 레벨 50에서 60은 넘어가는 전투력을 발휘한다.
거기에 적응하는 데도 수많은 시간이 들어가지만 가이크 성에 있는 히포그리프 기사단은 전부 정예다.
그런데도 만티코어에게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히포그리프 기사단은 하늘에서의 첫 돌진은 가히 아름다웠다.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달려 날아다니는 몬스터들을 말 그대로 찢어발겼다. 내장과 육체가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졌다.
그런 엄청난 돌진도 만티코어의 앞에선 허무하게 막혀 버렸다. 히포그리프 기사단은 언뜻 봐도 백에 가까웠는데도 말이다.
고작 20레벨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그럴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럴 수 있다.
로스트 월드에선 1레벨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10레벨부터는 차원이 다르게 차이가 났다. 정확히는 뒤 숫자가 0이 되는 그 시점부터, 말이다.
이유는 플레이어의 장비를 바꿀 수 있는 레벨이 뒤 숫자가 0이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10레벨에 장비를 끼면 20레벨에 바꾼다는 것이다.
RPG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알 것이다. 상위 장비가 게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게다가 10레벨 장비가 있다면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고, 그 10레벨 장비에서도 좋은 아이템과 안 좋은 아이템이 구분되었다.
만티코어의 가장 무서운 점은 꼬리에서 나오는 독. 플레이어를 마비시키는 것도 아닌 강력한 산으로 녹여 버리는 게 목적인 독이다.
히포그리프도 60레벨에 다다르는 몬스터지만 만티코어의 꼬리에서 나오는 독에 날개가 살짝만 닿아도 부식돼 녹아 버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히포그리프와 그 기사는 꼼짝없이 몬스터의 먹이로 전락했다. 그 끔찍한 모습을 똑바로 바라본 김진석의 안색이 찌푸려졌다.
“정말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군요.”
“…예?”
갑자기 나를 묶지도 않았지만 형식상 끌고 가고 있던 찰스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김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진석. 평범한 사람이 저 끔찍한 광경을 보고 보이는 모습이 고작 인상을 찌푸리는 게 전부입니까?”
그 말에 김진석은 씁쓸했다. 자신의 유년, 청소년기는 전부 싸움으로 얼룩져 있었으니. 게다가 저런 광경은 익숙하다.
인간이 몬스터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끔찍하다. 하지만 김진석은 그런 처참한 광경을 본인이 직접 겪어 왔다.
그 지옥 같은 보육원에서 가장 오래 버틴 아이였으며 처음으로 탈출한 아이가 바로, 김진석이다.
김진석이 무언가 변명 아닌 변명을 하려고 할 때 성벽 밖에서 몬스터의 비명이 들려왔다.
찰스와 함께 김진석은 성벽 밖의 비명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어느새 만티코어의 날개가 전부 찢겨 땅으로 추락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히포그리프 기사단이 만티코어에게 돌격해 허무하게 막혔지만 히포그리프는 말과 그리핀의 교배종이지 말이 아니었다.
돌진이 전부가 아니었고, 그 위 기수의 능력도 제각기 달랐다. 원래 기사였던 자도 있고, 평범한 사람도 있고, 마법사인 사람도 있다.
처음 돌진에 만티코어의 꼬리에서 나오는 독을 맞고 추락한 자들은 가이크 성에 비교적 최근에 온 신인들이며 평범한 사람이 대부분. 그것도 극소수였다.
히포그리프의 위에서 활을 쏘는 자도 있었고, 마법을 쓰는 자, 2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마상용 창을 든 사람도 있었다.
첫 돌진 이후로 히포그리프 기사단은 흩어져 자신만의 방법으로 만티코어를 상대했고, 과연 정예라 그런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만티코어를 하늘에서 추락시켰다.
날아다니는 몬스터는 히포그리프 기사단이 전부 죽였고, 날개가 찢긴 만티코어는 더는 날지 못했다.
제공권을 인간이 다시 가져간 것이다.
그 이후로 전투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찰스는 김진석을 성의 감옥에 가두고 다렌과 함께 몬스터와 인간의 갑작스럽게 벌어진 전쟁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 전쟁을 김진석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보고 있었다. 가이크 성에서 감옥은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사방이 뚫려 있으며 그 죄수가 탈출하면 그 누구라도 볼 수 있게 만든 구조였다. 가이크 성에서의 범죄는 아주 질이 약해도 처벌이 매우 강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이크 성은 일반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가이크 성에 소속된 군인들이었으며 있는 일반인도 군인들에게 장비를 파는 전쟁 상인들이다.
그마저도 대부분 호위가 있었으며 계속 가이크 성에 주둔하는 것이 아니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말이 샜지만 어쨌든 김진석은 전쟁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전쟁을 관람했다.
김진석을 감옥에 가두라고 지시한 건 아니었지만 가이크 성에서도 꽤 유명한 다렌이 김진석을 붙잡아 두라고 말했으니 찰스는 우습게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김진석은 감옥에서 편안히(?) 전쟁을 볼 수 있었다.
로스트 월드에서 스토리상 전쟁은 별로 없다.
전쟁을 하면 그 연출에 돈이 얼마나 들겠는가. 게다가 MMORPG에서 스토리는 사실상 1회용품이다.
RPG 게임을 해 본 사람은 대부분 알 것이다. 스토리? 한 번이라도 보면 많이 본 거다. 그마저도 스킵 버튼만 연타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게임사가 굳이 전쟁까지 해 가면서 돈을 쓸 이유가 어딨겠는가.
김진석은 그래도 스토리를 하나하나 다 본 사람에 속했다. 하지만 그런 김진석도 이런 전쟁은 기억에 없었다.
“게다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전쟁이라니… 미치겠군.”
가이크 성이 뚫릴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저 이 전쟁으로 인해 뒤에 바뀔 스토리가 걱정되었다.
김진석은 로스트 월드의 스토리를 전부 꿰고 있다. 하지만 흔히 나비 효과라고 한다. 조그마한 일 하나에도 스토리 전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몬스터가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이크 성에는 히포그리프 기사단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히포그리프가 아닌 평범한 말을 타는 기사단도 있었다.
지상에도 수많은 몬스터가 있었지만 성벽을 열어 말을 타고 나가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저 기사단의 이름은 가이크 성에 소속되어 있어 가이크 기사단이다. 가이크 기사단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성벽을 박차고 나갈 때부터 기사단 전체에 푸른 막이 아른거릴 정도로 휩싸여 있었다.
가이크 기사단이 지나간 곳은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그 어떠한 것도 남기지 않고 전부 휩쓸어 버리고 있었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는 폭풍에 휩쓸려 사라졌고, 레벨이 그나마 조금 높은 몬스터들도 가이크 기사단의 돌격에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고 이내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먼지로 변해 사라진 곳에는 그저 금화와 가끔 보이는 장비들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진짜 게임 속 세계인가.”
몬스터를 죽이면 금화와 장비가 떨어지는 것을 그제야 확인한 김진석이었다.
가이크 성의 병력에 조금 손실이 있었지만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 차였다.
“진짜 나 때문에… 몬스터들이 몰려든 건가? 헬 하운드 한 마리 잡기도 버거워 한 나 때문에……?”
로스트 월드에서 이런 스토리가 없었지만 그곳에는 당연히 김진석도 없었다. 그저 정해진 수순대로 갔을 뿐이지만… 이곳은 아니다.
김진석은 여전히 검게 빛나는 검은색 글씨를 바라봤다.
- 가이크 성을 탈출하라.
지금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이 퀘스트는 깰 수 있을 것이다. 김진석은 설마 감옥에서 못 나갈 걸 알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 그때.
천둥이 울리는 소리가 다시 한번 들리며 땅이 울렸다.
그 정체는 드레이크와 키메라가 가이크 기사단에 토벌당해 죽어 가는 목소리였다. 히포그리프 기사단도 합세 해 마무리하지 못한 만티코어를 토벌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진석의 마음속에선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어. 튜토리얼은 가만히 있다고 깨지지 않는다.”
그리고 김진석의 예상대로. 하늘에서 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
아직 만티코어, 드레이크, 키메라 전부가 살아 있는 와중에 하늘에서 다시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성벽 밖에 있는 기사단을 비롯한 성벽 안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게이트가 열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들도 평생을 몬스터들과 싸워 온 사람들이었지만 게이트가 열리는 모습을, 그것도 눈앞에서 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다.
하늘에서 열리는 게이트의 크기는 언뜻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멀리서 봤을 때도 적어도 만티코어보다 커 보였다.
적어도 5미터는 넘어 보였다.
처음 보는 게이트, 그것도 5미터가 넘어가는 게이트를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봤다.
누가 봐도 엄청난 몬스터가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김진석은 오히려 게이트의 크기를 보고 안심했다.
“로스트 월드에서 강력한 몬스터는 대부분 지능이 있는 인간형이다. 물론 녀석들이 벌써 나온다면 가이크 성에서도 감당이……?”
거대한 몬스터는 대부분 스토리상 초반에 나와 사람들을 로스트 월드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물론 그 몬스터들도 김진석은 감당하지 못하지만 이곳은 가이크 성. 고작 초반에 나오는 몬스터는 나오자마자 바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김진석은 안심했다. 극히 희박한 확률을 생각하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