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3화 (3/201)

3화

“인간?”

백은의 갑옷을 입은 기사 둘이 달려간 곳에는 거구의 남자가 기이하게도 오른 다리만이 불에 타 피부가 녹아내린 채 기절해 있었다.

그 남자 곁에는 금화 세 개만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대검을 든 백은의 갑옷 기사는 뽑아 든 대검을 다시 등에 메고 기절한 남자를 살폈다.

“저 금화 세 개는 헬 하운드에게서 떨어진 것 같은데… 아마도 새끼인 것 같군. 어떻게 된 일이죠? 평범한 사람 같은데요, 대장님?”

“그래, 마족이 아니다. 그런데… 진짜 평범한 사람이다. 몸에 마나가 느껴지지 않아.”

“예? 그게 무슨… 아무리 헬 하운드가 약하다고 한들 일반인이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닌데…….”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떠들 시간이 없었다. 헬 하운드의 새끼가 있다는 건 주변에 다른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가장 큰 문제는…….

“더 떠들 시간 없다. 이미 목숨이 위험해 보여. 내가 업을 테니 네가 몬스터가 없는 곳으로 안내해라. 순찰은 끝이다. 성으로 간다!”

* * *

“…여긴?”

김진석은 낯선 곳에서 눈을 떴다. 온몸이 찌뿌둥했지만 그 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했다.

“분명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다가 게임 속 세계로 추정되는 곳으로 들어왔고… 헬 하운드와 싸웠다.”

아무리 김진석이라도 헬 하운드를 처음 본 거다. 원래의 헬 하운드였다면 레벨이 40이 넘는 몬스터. 그 어떤 요행이라도 그가 죽일 수 없었겠지만 놈은 헬 하운드의 새끼였다.

그는 끔찍했던 그 기억을 회상했다.

* * *

말 그대로 죽기 전까지 싸웠다. 아니, 사실상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게임 속 세계로 가정하면 그 헬 하운드에게 HP, 즉 체력이 있을 것이다.

김진석은 자신의 공격이 단 1의 HP만 깎을 수 있어도 언젠가 죽일 수 있을 것이란 마음가짐으로 싸웠다.

다행히 헬 하운드는 처음에는 불을 내뿜지 않았다. 그리고 김진석이 게임 속 세계라고 가정한다고 한들 그에게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투견과 싸움을 해 왔다. 개든 늑대든 결국 같은 갯과였고, 상대하는 방법은 그 어떤 사람보다 잘 안다고 말해도 무방했다.

정말 체력을 1씩 깎아서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다. 정말 그렇게 싸웠다면 헬 하운드가 죽기 전에 자신이 먼저 죽을 것이 분명했기에.

헬 하운드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도 없다. RPG 게임의 초반 몬스터 약점까지 알아 가면서 싸우는 플레이어가 어딨겠는가.

공격성이 짙은 헬 하운드가 먼저 김진석에게 달려들었다.

대형견 중에서도 투견은 당연하겠지만 싸움에 능하고 빨랐다. 하지만 그 투견이 비교도 안 될 수준의,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김진석은 그나마 가장 두꺼운 신발로 간신히 헬 하운드의 머리를 향해 내밀었다. 엄청난 속도에 잠시 당황했지만 완벽히 대처했고, 헬 하운드는 눈앞에 보인 신발을 먼저 물어뜯었다.

그사이에 김진석은 마침 땅 근처에 있던 돌을 급히 주워 헬 하운드의 머리를 내려쳤다.

“…씨발!”

평생 욕이란 걸 해 본 적 없는 김진석도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분명 돌로 헬 하운드의 머리를 내려쳤지만 통하지 않았다.

안 통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뭔가에 막힌 것처럼 그의 손이 튕겨 나왔다.

그 짧은 사이에 신발은 찢겨지다 못해 불에 타고 있었다. 아마 입에 불을 머금고 있는 헬 하운드의 특성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김진석은 발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느낌을 애써 무시하고 헬 하운드를 발로 차 밀어냈다. 뒤로 밀려난 헬 하운드와 김진석은 잠시 서로 마주 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헬 하운드의 입가에 미소가 보였다.

몬스터들은 악마에 의해 태어난 만큼 악마들의 습성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오로지 인간만을 죽인다.

먹지도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악마의 명을 받아 인간을 죽인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몬스터가 있었다.

지금 눈앞에 웃고 있는 헬 하운드같이 말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개와 싸워 놓고 죽는 것도 결국 개한테 죽나……?”

사실상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돌도 안 통하는데 맨몸이 통할 리가. 이 세계가 정말 게임이었다면, 단 1이라도 체력이 닳는 모습이 보였다면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 게임 세계라면 말이지.

“게임 속 세계라고 해도, 적어도 지금 여긴 현실이다.”

게임 속 세계에 설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도망칠 수도 없다.

김진석은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당연히 헬 하운드가 그 모습을 보고 지나칠 이유는 없었고,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그때 바로 눈을 뜨며 일부러 발을 내주었다. 투견들은 대부분 상대의 목숨을 끊기 위해 목을 향해 달려든다.

하지만 헬 하운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기는 몬스터였고, 먼저 기동성을 없애기 위해 발을 노리는 것 같았다.

이미 첫 대치에 그걸 알아챈 김진석은 일부러 신발이 녹았고,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헬 하운드에게 물렸다.

“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자기도 모르게 나왔지만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 냈다. 그리고 물린 발 반대쪽을 돌려 헬 하운드의 위로 포지션을 바꿨고, 양손으로 바로 헤드락을 걸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헬 하운드가 문 곳은 바로 불에 지져지며 지혈이 돼 피가 나오진 않았다.

김진석은 온 힘을 다해 헤드락을 건 양손을 자신의 상체로 잡아당겼다. 그럴수록 다리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것도 잠시.

죽을힘을 다한 김진석의 힘이 통했는지 발버둥 치는 헬 하운드는 김진석의 다리를 놓았지만 녀석의 입에서 불이 모이고 있었다.

그걸 김진석은 눈치채지 못했고, 젖 먹던 힘을 다해 헬 하운드의 목을 당기고 있었다.

하지만 천운이 도왔는지 질식사를 시키려던 김진석의 헤드락은 헬 하운드의 입에서 불이 모이는 것도 방해하고 있었다.

그 불을 쏘아 냈지만 김진석의 머리카락 끝을 살짝 태우는 것으로 그쳤고, 그 모습을 본 김진석은 더더욱 힘을 풀지 않았다.

그제야 헬 하운드는 잘못된 것을 느꼈는지 온몸을 바둥거렸지만 머리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헬 하운드는 결국 혀를 내뺀 채 축 처졌다.

하지만 김진석은 헬 하운드가 죽었는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힘을 주다가, 갑자기 헬 하운드의 시체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야 힘주는 것을 그만두었다.

헬 하운드의 시체는 반딧불이가 날아가는 것처럼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본 김진석은 입을 열었다.

“게임 세계야… 현실 세계야?”

그와 동시에 힘이 풀리고 긴장이 풀리며 김진석은 기절했다.

* * *

“그런데… 여긴 어디지.”

침대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긴 했지만 어쨌든 침대 위에 눕혀져 있었다. 게다가 온몸에 상처 하나 없었고. 김진석은 설마 꿈인가 싶었다.

그런데 옆에서 신음이 들려 옆을 바라보니 온몸에 붕대를 감은 사람들이 침대 같지 않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러고 다시 자신의 몸을 보니 오른발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헬 하운드와 싸울 때 다리를 잃을 각오로 싸웠지…….”

우선 김진석은 아직 자신의 다리가 달려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자신의 다리에서 어떠한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 게 이상했다. 물론 자기가 기절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그사이에 통증도 없을 정도로 치유됐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누른 채 자신의 오른발의 붕대를 천천히 풀었다.

“후…….”

그런데 예상외로 다리는 정말 멀쩡했다. 근처에 자신과 같은 부상당한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니 병원과 비슷한 곳으로 보였다.

“순찰하는 인원에게 다행히 발견되었나 보네.”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붕대를 전부 풀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때 그의 눈앞에 검은색 글씨가 나타났다.

- 가이크 성을 확인하라.

튜토리얼이 바뀌었다. 검은 대지를 탈출하라, 가 원래 튜토리얼이었고, 자의든 타의든 어쨌든 탈출했으니 아마 바뀐 것 같았다.

가이크 성은 로스트 월드 게임에서 튜토리얼 이후 NPC들이 안내해서 처음 방문하는 성이었다. 튜토리얼에서 나오는 성이었지만 게임 플레이어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검은 대지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레벨이 매우 높다. 그 몬스터들을 잡고 나온 부산물을 가이크 성의 상인에게 팔아 돈을 번다.

로스트 월드에선 기본적으로 몬스터를 잡으면 금화가 떨어진다. 레이드 몬스터를 잡는 것보단 훨씬 적은 양의 금화가 떨어지지만 떨어진다는 것이 중요했다.

간간이 쓸 만한 장비도 떨어지지만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가 쓸 수준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그 아이템은 경매장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에게 판다.

“그러고 보니 레벨이라…….”

로스트 월드는 특이하게도 튜토리얼이 끝나기 전까지 레벨을 받지 못한다. 레벨이 1도 아니고 아예 없다는 거다.

그 튜토리얼의 마지막, 몬스터를 잡으면 각성하여 HP(Health Point)와 MP(Mana point)가 생기며 레벨이 1로 나온다.

“튜토리얼이 끝나기도 전에 몬스터를 잡은 나는… 레벨이 있나?”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없었다. 게임에서는 UI(User Interface)로 알 수 있지만 김진석에겐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다.

김진석은 우선 생각을 거두고 검은색 글씨가 하라는 대로 해 보기로 했다. 이미 상처는 없었고, 걸어 다니는 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한쪽 신발과 바지 소매가 전부 타 버려서 맨발이었다.

“하아…….”

유난히 오늘따라 한숨이 많은 그였지만 마음을 다잡고 남은 신발마저 벗어 버렸다. 성안 병원 같은 곳이라 그런지 바닥은 거칠지 않았다.

“그런데 검은 대지에 왜 헬 하운드가 있지?”

그 생각을 끝으로 김진석은 병원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허…….”

밖을 본 김진석은 그 광경에 압도되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게임 속에서는 수백, 수천 번을 본 곳이지만 직접 그의 눈으로 본 광경은 차원이 달랐다.

가이크 성이 지어진 목적은 단 하나다. 검은 대지에서 흘러들어 오는 몬스터를 막기 위해 지어진 최전선 같은 곳이다.

물론 김진석은 한국에서 군대를 가진 않았지만 아마 비슷하진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오로지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백은의 갑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이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검과 방패, 어떤 자는 활, 어떤 사람은 무지막지한 철퇴를 들고 서로를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게 아닌 훈련의 목적으로. 그리고 주변에서 같은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소리치며 환호하고 있었다.

김진석의 주변에 누워 있던 부상당한 자들은 아마 저기서 진 인원들인 것 같았다. 확실히 그리 큰 부상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김진석이 압도된 광경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가이크 성에서, 아니 로스트 월드 전체의 NPC 군대 중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군단이 있다. 김진석의 시선은 땅을 향해 있지 않았다.

김진석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었고, 그 시선을 따라가니 하늘에는 땅에서 훈련 중인 사람들보다 적지만 그 위용이 남다른 히포그리프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히포그리프란 몬스터인 그리핀과 말의 사이에서 태어난 괴물이다. 몬스터인 그리핀은 독수리의 머리와 사자의 몸통, 거대한 날개를 가진 몬스터다.

몬스터라 당연하겠지만 히포그리프와 달리 매우 사나우며 인간을 죽이고 먹기도 하는 몬스터다.

히포그리프는 말과 교배해서 그런지 얼굴이 날카로운 그리핀과 달리 독수리와 말을 합친 얼굴이었고, 몸통은 아예 말이었다.

그리고 그리핀과 달리 비교적 온순했다. 물론 모든 히포그리프가 그렇진 않았고, 각 개체의 성격에 따라 달랐다.

그리핀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히포그리프는 몬스터나 다름없었지만 말의 영향을 받은 히포그리프는 온순했다.

그래서 온순한 히포그리프를 따로 잡아서 교배시켰고, 그렇게 히포그리프 군단이 탄생한 거다.

히포그리프 군단이 진형을 이루고 하늘을 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김진석이 멍하니 군단을 바라보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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