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2화 (2/201)

2화

뒤를 돌아봤을 땐 어린아이가 김진석의 옷깃 소매를 잡고 울고 있었다. 정말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김진석의 감은 아직도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오싹한 기분이 다시 들었고, 김진석은 여자아이가 잡은 옷깃 소매를 보았다.

분명 그 어린아이가 옷깃을 잡았는데, 지금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상태인 김진석이었는데도 옷깃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눈으로 직접 아이가 손으로 옷깃을 잡은 걸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그때 김진석은 느꼈다. 옷깃에서부터 올라오는 차가움을. 또한 숲이 워낙 조용해서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오로지 자신의 숨소리만.

뭔가 이상해 김진석은 여자아이에게 시선을 옮겼는데, 그 여자아이는 어느새 울음을 멈추고 김진석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은 김진석은 바로 옷깃을 잡고 있건 말건 뒤도 보지 않고 도망쳤다. 뭔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무작정 앞을 향해 달렸다.

더는 달리지 못할 때까지 달린 김진석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뒤를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고요한 숲이었다.

김진석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귀신이란 존재를 믿진 않았지만 눈앞에 아무 숨소리도 안 내는, 온몸이 싸늘한 아이를 보면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제야 김진석은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곳은 뭐지……? 검은색 글씨는 또 뭐고. 아까 갑자기 하늘이 붉어졌는데… 그게 원인인가?”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이 몰아쳤다. 그저 그들을 평생 감옥에서 썩게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으니.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검은색 글씨… 분명 비명의 숲이라고 했지. 어디서 들어 봤는데…….”

게임을 시작하지. 비명의 숲을 탈출하라. 게임… 김진석이 했던 로스트 월드의 첫 시작 장소가 비명의 숲이었다.

그리고 튜토리얼이… 비명의 숲을 탈출해라.

그 튜토리얼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유령이 나온다. 아이에게 말을 걸어 울음을 그치게 한 다음 숲에서 나가는 게 튜토리얼의 끝이다.

이 숲의 이름이 비명의 숲인 이유는 말 그대로 비명이 들리기 때문이다. 새소리도, 벌레 소리도 안 나고 오로지 비명만 들리는 숲이다.

비명이 들리는 이유는 그 숲에서 많은 사람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왜… 실종됐지? 아니, 거기서 아이 유령에게 말을 안 걸면…….”

그때 다시 주변에서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귀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생생히 들렸다.

하지만 김진석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유는 게임에서의 설정 때문이다.

유령과 눈이 마주친 자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이 얘기가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그저 게임 속 설정이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건 현실. 김진석은 처음부터 꼬였다고 생각했다.

급히 고개를 숙이고 김진석은 왔던 길로 돌아갔다. 어린아이의 유령을 다시 만나야 했다. 아니면 평생, 이 숲을 헤맬 것이다.

다행히 튜토리얼에 시간제한 따위는 없었다.

재빠르게 상황 파악을 한 후 김진석은 천천히 왔던 길로 돌아갔다. 너무 필사적으로 도망쳐서 그런지 돌아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싸늘한 기운이 따라오는 게 느껴졌지만 김진석은 애써 무시한 채 고개를 숙이고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이 사라졌다.

체감상 몇 시간을 유령과 같이 걸어왔는지 모르겠는 김진석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뻣뻣해진 목을 풀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전에 보았던 어린아이의 유령이 보였다. 지금 보니 그 아이의 몸이 반투명하게 푸르르했다.

김진석은 또다시 한숨을 쉬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유령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다시 김진석을 바라봤다. 아이의 눈에 생기가 없는 건 유령이니 당연했다.

로스트 월드에서 여러 캐릭터를 키웠던 그는 튜토리얼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있었다.

울음을 멈춘 유령 아이는 김진석의 소매를 다시 한번 잡더니 어디론가 향했다.

김진석은 유령 아이가 끌고 가는 대로 얌전히 따라가 주었다. 체감상 몇 시간 동안 달렸는데도 숲 밖을 보지도 못했지만 아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니 10분도 채 안 돼서 밖으로 나왔다.

숲 밖은 무섭도록 어두운 대지였다. 땅이 마치 썩은 것처럼 새까맸고,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꿈틀거리는 것도 같았다.

그 기괴한 땅을 잠시 둘러보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유령 아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유령 아이는 유일하게 비명의 숲에서 인간에게 우호적인 유령이다. 무엇 때문에 비명의 숲에 그리 많은 유령이 있는지, 그 유령이 전부 원혼인지 게임 설정에서도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한시름 놓았다.

그때 다시 검은색 글씨가 나타났다.

- 검은 대지를 나가라.

검은 대지. 사실 새까맸지만 그건 전부 피였다. 말라붙은 피가 계속해서 그 위로 쌓여서 검은색이 된 것이다.

과거, 큰 전쟁이 있었다. 인간과 악마의 대전쟁이 있었다. 악마가 있다면 천사도 있겠지만 악마의 힘이 워낙 강력해 천사를 전부 몰살시켰다.

인간들은 천사와 악마의 전쟁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들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악마는 천사들을 전부 몰살시키고 지금 인간이 사는 이 세계로 넘어와 인간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다행히도, 인간 세계의 환경은 악마들에게 맞지 않았다.

처음에는 악마들의 힘이 너무나 강력했고,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그런데 인간들이 사는 환경과 맞지 않는 악마들은 가면 갈수록 힘이 약해졌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인간 중에서도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이 나타났다.

영웅들이 힘쓰고 악마들이 약해져서 다행히 균형은 맞춰졌고, 인간들은 버티기만 하면 악마들이 더더욱 약해질 상황이 되었다.

결국 악마들은 지금은 인간의 세계를 침공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하지만 언제 돌아올지 몰랐으니 인간들은 대비해야 했다.

게다가 악마들이 평화로웠던 인간들의 세계에 온갖 역병과 몬스터를 퍼트려 인간들은 뒷수습을 하고 있었다.

세계가 아직은 혼란스러울 때 게임에 접속하는 사람들, 즉 플레이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연히도 나중에 악마들이 다시 나타나 그 악마를 잡는 레이드가 생겨났다. 그래서 김진석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생각했다.

“내가 이 세계에 들어왔다고 이 세계가 이제 생겨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미 불합리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던 김진석이었다. 상식선에서 이 상황이 이해 가지 않았지만 그건 그가 어렸을 때도 똑같았다.

남들이 유치원 다니고 초등학교 들어갈 때 그는 투견과 싸워 왔다. 그는 어떤 상황이 와도 적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선… 과거가 아니다.”

이 검은 대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악마와 인간의 싸움은 이미 일어났다. 비명의 숲도 사실상 악마들이 인간의 세계를 침공했던 여파로 생긴 거니 대충은 예상했다.

현재 진행형도 아니었다. 이 검은 대지가 만들어진 이유가 이 지역 근처에서 악마들이 게이트를 통해 침공했기 때문이다.

…그래, 게이트.

“설마… 나도 게이트를 통해 이곳으로 오게 된 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미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안 오지?”

김진석이 지금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생각했던 것은, 다 생각이 있어서다. 만약 그의 가정이 전부 들어맞고, 자기가 들어왔을 시점이 만약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시점이 같다면.

그렇다면 자신을 마중 나오는 인원이 있을 것이다.

정확히는 이 악마가 나타났던 검은 대지에 또 악마가 나올 수도 있으니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인원이 있었다.

중세 시대처럼 갑옷을 입고 자신과 같은 플레이어를 찾아서 자신들이 사는 성안으로 안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기다릴 리가 없는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움직일 수도……?”

그때 또다시 검은색 글씨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분명 검은 대지를 나가라, 라고 쓰여 있었다.

- 검은색 대지를 탈출해라.

하지만 다시 나온 검은색 글씨는 나가라, 가 아닌 탈출 해라, 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비명의 숲과 같이…….

그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진석은 침을 꿀꺽 삼키고 앞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대형견이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개가 아니었다.

게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헬 하운드, 즉 늑대다. 게다가 입에서 불도 뿜는다.

온몸이 검고 으르렁거리는 입에서 화염이 조금씩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 게임에서 나오는 헬 하운드가 맞을 것이다.

“…튜토리얼에서 헬 하운드를 잡는 건 없었는데 말이지.”

그러면서 김진석은 자세를 잡았다. 어차피 저 헬 하운드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인간의 다리로 늑대에게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곳이 정말 로스트 월드, 게임 세계라면… 평생을 싸워 왔는데 고작 게임 잡몹인 너한테 내가 죽을 리가 없겠지.”

어떻게든 긴장을 풀기 위해 장난삼아 말하며 먼저 헬 하운드에게 달려들었다.

* * *

“대장님! 악마가 안 나타난 지 3년이 더 됐습니다. 이제는 순찰 안 돌아도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 안일함이 수많은 인간을 죽인 거다, 찰스.”

중세 시대에서 볼 법한 백은의 기사 갑옷을 입은 일행 둘이 검은 대지를 걸어오고 있었다. 찰스라고 불린 백은의 기사 갑옷을 입은 자는 검과 방패, 그리고 등에 거대한 쇠뇌를 차고 있었다.

그가 대장이라고 부른 자는 같은 백은의 갑옷을 입고 있었고, 찰스라는 자와 다르게 어깨에 무슨 문양이 있었다. 맨손이었지만 등에 거대한 대검을 매고 있었다.

“하지만 저희가 이곳으로 오는 것만으로도 인력 낭비 아닙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대장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고급 인력이잖습니까?! 아직 세상에는 몬스터들이 많습니다!”

찰스는 그의 상사로 보이는 자에게 격정적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상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가 고급 인력이기에 둘이서 올 수 있던 거다. 이 검은 대지에도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건 너도 알고 있으니… 잠시만.”

그때 말하고 있던, 대검을 등에 멘 백은의 갑옷 기사가 그 거대한 대검을 한 손으로 뽑아냈다.

“이건… 헬 하운드의 소리인 것 같은데. 누구랑 싸우고 있는 것 같다.”

“…대장님은 무슨 레인저보다 귀가 좋습니까?”

“레인저가 자기 몸과 비슷한 쇠뇌를 들고 다니는 게 더 이상한데 말이지.”

“아니, 그것보다 헬 하운드가 왜 검은 대지에서 나옵니까? 그런 약한 녀석은 여기까지 오기 힘들 텐데 말이죠.”

“그건 나도 모르겠… 잠시만.”

잠시 말을 멈춘 백은의 갑옷 기사가 투구를 벗었다. 그 안에는 장발의 미형인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뾰족했다.

그는 땅바닥에 귀를 가져다 대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말이… 들린다.”

“…예?”

말을 한다. 그 말인즉슨 헬 하운드와 싸우고 있는 자는 지성이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는 건 저기서 싸우고 있는 인간이거나 아니면…….

“마족일 수도 있다.”

몬스터는 악마의 부하 위치에 있다. 하지만 마족은 다르다. 인간과 악마의 사이에서 태어난 그들은 악마의 하수인이거나 아니면 인간과 함께 지낸다.

물론 마족은 인간들에게 차별받지만 그들의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마족은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일반 인간들보다 훨씬 뛰어나고, 그들 중에는 악마의 힘을 다룰 수도 있는 마족도 있다.

“마족은 맘에 안 드는데…….”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참이다. 그런 종족 차별은 좋지 않다.”

“아… 죄송합니다.”

백은의 기사들은 갑옷을 입었음에도 엄청난 속도로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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