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 完
1화
【 최초의 플레이어 】
세상에 갑자기 게이트가 생겨났다.
하늘이 갑자기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검은색 글씨가 나타났다.
- 게임을 시작하지.
그런데 하필 2022년 2월 22일. 장난과도 같은 그 날에 글씨가 나타나서 그런지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당일에 갑자기 실종자가 많아졌다는 것 말고는 실제로 별사건이 없었고,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힐 무렵.
이상한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실종돼 찾아보니 뼈만 남아 있다거나 숲속의 생명체가 전부 사라진다거나 말이다.
그리고 갑자기 이상한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금 시대에 걸맞지 않은 검과 방패, 창과 지팡이, 화살 등등 각종 무기나 중세 시대에서나 볼 법한 기사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상한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며 그곳은 게임 속 세계였다고 말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저런 거짓말을 하냐고 무시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게임 캐릭터와 같이 엄청난 힘을 발휘했고, 몇몇은 정말 마법을 부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전부 2027년 2월 22일, 그날에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게이트 속에서 살아나온 날짜도 똑같이 2027년 2월 22일. 같은 날짜였다. 생존자들은 게임 속 세계에서 5년 전 잠깐 보였던 검은색 글씨가 다시 눈앞에 보였고, 그 검은색 글씨에 의존하며 살아남았다고 했다.
게임 속 세계는 화면에서나 보던 세계가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남기에는 너무나도 잔혹한 세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일까.
그 세계에서 검은색 글씨가 안내해 주는 것.
그들의 말로는 튜토리얼이라고 한다.
튜토리얼 진행 도중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하지만 그 목숨의 제한은 정확히 세 목숨. 세 목숨이 다하면 지구로 추방당한다.
추방당한 그들은 정신이 멀쩡하지 못했다. 목숨이 다한다는 건 말 그대로 죽는다는 것. 그중에서는 절대 얌전히 죽은 사람은 없었다.
탈수로 죽거나 배고파 죽거나 아니면… 게임 속에서 등장하는 몬스터에게 죽거나.
그렇게 추방당한 사람은 지구에 돌아와서도 죽음의 고통을 두려워하며 이윽고 정신병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죽음의 고통을 딛고 튜토리얼을 클리어한 사람은 합당한 힘을 얻었다. 앞서 말한 초인적인 힘과 마법을 다루는 게 이에 해당한다.
세상은 그런 힘을 가진 자들을 플레이어라고 불렀다.
그런데 플레이어들이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게임 속에서나 보일 법한 괴물들이 지구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쳐 그 괴물, 몬스터들을 퇴치해 나가며 인간들은 다시 그런 세상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전부 2027년 2월 22일 날 게이트 속으로 사라졌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보다도 5년 전에 먼저 게이트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 * *
김진석은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
그는 천애 고아였으며 열다섯 살이 되자 바로 보육원을 뛰쳐나왔다.
보육원은 김진석이 도망간 걸 알고 찾으려고 했지만 김진석은 교묘하게 잘 숨어 다녔고, 바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봤다. 하지만 가족도 없는 고아를 고용해 줄 의인은 없었다.
그래도 김진석은 포기하지 않았고 간신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냈다. 편의점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받는 금액의 절반만 받고 일했다.
편의점에서 폐기된 음식을 먹고, 편의점에서 자고, 편의점에서 씻는 삶을 계속 이어 나갔다. 같은 편의점에서 일하는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좋지 못한 시선을 계속해서 받았지만 김진석은 개의치 않았다.
지옥 같은 보육원의 삶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하고 있었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사실상 장난감이었다.
그 보육원은 기부를 전혀 받지도 않고 완전 외지에 지어진 건물이다. 주변 이웃들조차 전부 한통속이었다.
아이들은 학대 수준도 아닌 마을 사람들의 장난감 취급을 당했고, 그곳을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실제로 도망치려던 아이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왔다.
그리고 더욱 잔인한 취급을 당했다. 투견과 아이들을 싸우게 시키며 그걸 구경하는 등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짓거리를 해 왔다.
게다가 아이들이 평범하게 자라서 몸집이 커지게 되면 어른들에게 구타를 당한 뒤 투견과 싸움을 시켰다.
그렇게 그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김진석은 아이 중에서도 두뇌와 피지컬이 뛰어났다. 특유의 강골과 싸움에 있어서 뛰어난 재능이 있던 김진석은 투견과 싸움에서도 밀리는 모습 따위는 없었다.
상처를 입어도 아픈 기색 하나 없이 투견을 주먹으로 때려잡았다. 고작 열두 살의 나이에 말이다.
제대로 먹지 못했음에도 열두 살의 나이에 키가 170이 넘어갔으며 열다섯 살이 될 때는 180에 가까워졌다.
나이에 맞지 않는 몸에 나이에 맞지 않는 은밀함으로 달빛도 제대로 비추지 않는 칠흑 같은 밤에 몰래 탈출을 감행했다.
물론 기껏해야 열다섯 살의 아이였고, 마을 사람에게 들켰지만 다행히 한 명뿐이었다. 김진석은 자신을 발견한 마을 사람에게 순식간에 달려가 몸으로 그를 들이받았다.
김진석을 발견한 자는 여성이었고, 김진석의 그 거대한 몸에 부딪힌 여성은 안 좋은 곳에 맞았는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바닥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그녀를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쳐다보다가 주머니를 뒤져서 지갑을 꺼내 돈만 가져가고 지갑은 던져 버렸다.
보육원의 아이들에게 돈이 있을 리가 없었고, 도망치는데도 돈이 필요했으니깐.
그리고 저 여성도 마찬가지로 다른 아이들은 물론이고 김진석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물론 반항할 수 있었지만 그러면 오히려 그 앞으로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그 아이를 더욱 모질게 대했다.
김진석은 딱히 다른 아이들에게 정 따윈 없었지만 반항하면 아이들이 당했기에 참은 것이지만 아이들 또한 그를 배척했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김진석은 탈출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기회가 보이자 바로 실행한 것이다.
신분증도, 아무것도 없는 김진석을 편의점에서 받아 준 것도 기적이라고 말해도 무방했다. 물론 남들보다 절반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하고 있었지만 김진석에겐 그것도 감지덕지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김진석은 편의점에서 일했다. 5년의 세월 동안 김진석은 그 보육원을 신고할 생각이 없던 건 아니다.
애초에 경찰이란 존재 자체도 모른 김진석이었지만 5년의 생활로 기본적인 지식을 전부 배울 수 있었다.
다행인 건 편의점 점주가 5년 동안 그를 내치지 않았다는 것.
5년이나 같은 곳에서 일했지만 월급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래도 김진석은 자신을 내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5년 동안 김진석은 신분증도 만들고, 보육원의 위치도 찾아 헤맸다.
그동안 그는 지금껏 하지 못했던 것, 유흥을 알았다. 최소한의 옷만을 산 채 김진석은 모든 돈을 게임에 사용했다.
갑자기 게임이라니. 하지만 이유가 있었다. 김진석은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를 알아봤다.
보육원에서의 기억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상 사람과 계속 부딪칠 수밖에 없으니.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평범한 삶을 염원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지내며 좋은 거를 먹진 못했지만 다행히 잘 먹고 지내서 그런지 체격이 커져서 진상 손님들은 거의 없었다.
김진석 나이대의 남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여자와 게임이었다. 당연히 사람들과 부대끼기 싫은 김진석은 게임에 관심을 가졌다.
그에게 맞는 게임은 PVP(Player versus Player), 즉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 있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특이하게도 인기가 많은 게임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즉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협동하는 게임을 했다.
물론 김진석은 협동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협동해서 보스 몬스터를 잡는 일명 레이드도 그는 혼자서 잡았다.
게임 자체가 그리 불합리한 게임은 아니었고, 시간만 있다면 그 게임에 수많은 돈을 투자하는 사람도 따라잡을 순 있었다.
물론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시간을 줄여 주는 방법은 부캐릭터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김진석이 했던 게임, 로스트 월드는 당연하겠지만 여러 캐릭터를 키우면 그만큼 게임 재화 수급량이 많아진다.
부캐릭터에서 벌어 온 돈을 메인 캐릭터가 쓰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이 대부분 MMORPG가 채택하는 방식이고, 로스트 월드도 그런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사람이 로스트 월드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김진석도 그 게임을 시작했다.
생각 외로 그에게 잘 맞는 게임이었고, 그는 그 특유의 컨트롤로 혼자서 레이드 몬스터를 잡아서 돈을 벌었고, 번 돈으로 아이템을 맞췄다.
하지만 그가 제일 많이 시간을 투자한 건 바로 PVP. 로스트 월드는 게임의 재미를 대부분 레이드 몬스터를 잡는 것에 중점으로 둬서 그런지 PVP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김진석은 반대로 레이드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고, 재미는 PVP에서 찾았다. 태어나고 몸이 조금 커졌을 때부터 투견과 싸워 온 그의 인생은 평생이 싸움이었다.
그는 투견과 싸우며 항상 생각했던 것이, 저 투견 뒤에서 웃으며 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과 싸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투견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인 그들과 싸우고 싶다고 생각한 김진석이었다. 아니, 싸우고 싶다는 게 아닌 죽여 버리고 싶다는 감정이었다.
PVP에 재능이 있던 그는 PVP에서는 랭킹 1위를 찍었지만 워낙 비주류였던 PVP라 그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PVP가 즐거웠고, 계속해서 게임을 했다. 물론 5년 동안 게임만 한 건 아니었고 모든 돈을 게임에만 쓴 것도 아니었다.
우선 자기가 있던 보육원의 위치를 알고 싶었다. 흥신소를 통해 알아내려고 했지만 그 지역에 대해 그 무엇 하나도 모르는 김진석은 흥신소에 의뢰할 수도 없었다.
자기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그들은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이름은 물론이고 남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으니깐.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2022년 2월 22일, 외진 곳에서 마을의 위치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 외진 곳은 경찰들조차도 잘 모르는 곳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 준 것 또한 경찰이었다.
어쩌지 고민하는 김진석에게 한 경찰이 다가와 물었던 것이다.
“제가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그곳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누가 봐도 수상한 경찰이었다. 아무도 모르던 곳을 정말 운이 좋게 그곳을 아는 경찰이 있었고, 직접 안내까지 하겠다니.
한 번쯤은 의심할 만했지만 김진석은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사회생활을 조금 일찍 배운 사회 초년생이었다.
물론 김진석은 인간 의심증을 넘어서서 인간 혐오증에 걸린 수준이었지만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판단력이 흐려졌다.
그 경찰의 차를 타고 자신이 살았던 곳으로 돌아갔지만 당연하게도 그 경찰은 그 보육원과 마을과 연관이 있는 자였다.
아니, 애초에 그 마을에서 나고 자라난 경찰이었고, 김진석은 범의 아가리로 다시 들어간 꼴이 되었다.
하지만 경찰과 함께 차를 타고 내렸더니 마을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에 이상함을 감지하고 바로 도망쳤다.
“잡아!”
이미 마을 사람들의 손에는 연장이 들려 있었고, 5년이 지나도 잊지도 않고 김진석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언제 자기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매일매일을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자기들이 한 일에 자각이 있다는 것이었으니.
지금까지 아이가 도망친 적은 많았어도 성공한 적은 없었으니 처음으로 도망간 김진석을 기억하고 있었다.
5년 사이에 키도 엄청나게 크고 체격도 애초부터 좋았지만 더더욱 좋아진 그를 기억하고 바로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다행히 김진석이 그 낌새를 눈치채고 바로 도망쳤지만 이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방어망이 느슨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산이었다.
저 산에 들어가면 사라졌던 아이들이 보인다는 소문이 계속해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분명 사라진 아이들인데 산에서 발견됐다는 게 기이하고 두려웠기에 저들은 들어가는 걸 꺼렸다.
김진석은 그런 내부 사정 따위는 잘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방어망이 약한 곳을 찾아 그곳으로 달렸고, 그곳이 바로 산이었다.
“뭐 해?! 안 들어갈 거야?! 잡아야 할 거 아니야!”
뒤에서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김진석은 무시하고 어떻게든 나무와 나무 사이로 들어가 도망쳤다.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쳐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붉어지며 검은색 글씨가 나타났다.
- 게임을 시작하지.
그 장난과도 같은 말을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김진석조차도 잠시 숨을 고르며 멍하니 쳐다봤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앞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하필 그의 눈앞에서 게이트가 생겨났고, 김진석은 게이트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 안으로 들어갔다.
* * *
“뭐지……?”
김진석은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이상함을 감지했다. 분명 그가 달리던 곳은 숲이었다. 마찬가지로 이곳도 숲이었으나… 뭔가 이상했다.
그가 갔던 곳은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아 새소리와 벌레 소리가 싱그럽게 들려왔지만 지금 이곳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때 갑자기 눈앞에서 검은색 글씨가 나타났다.
- 비명의 숲을 탈출해라.
“…뭐?”
그와 동시에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하지만 김진석의 감이 그에게 속삭였다. 절대 가면 안 된다고.
하지만 김진석은 그 소리에 홀린 듯이 걸어갔다.
그때 갑자기 여인의 비명이 멈췄다. 홀린 듯이 걸어가던 김진석의 흐리멍덩한 눈이 다시 날카로운 눈으로 돌아왔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김진석은 바로 주변 상황을 살폈다.
이전과 똑같이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싸늘한 숲이었다. 하지만 싸늘해도 너무 싸늘했다. 숲이 원래 찬 공기가 강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한이 들 것만 같았다.
그때 김진석의 뒤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등골이 오싹한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김진석은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