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가는 열차.
주말도 아닌데 오늘은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창밖에 펼쳐진 멋진 경치가 좋았지만, 기차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난 진짜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수능 보자마자 영장이 나왔냐? 동빈이, 너 몇 년 꿇었지?”
“내 주민등록증 안 봤냐? 꿇기는 누가 꿇어?”
주철은 당최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고등학생에게 영장이 나올 수도 있단 말인가? 이렇게 입소하는 날조차도 실감이 나지 않는 눈치였다.
“국방부 실수니까, 조만간 도로 나올 것 같아.”
석진은 조금 과학적으로 접근했다. 전시 상황도 아닌데 군대에서 고등학생을 받을 리 없다는 분석이었다.
“글쎄… 어찌 될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너희들은 몰라도 유나는 왜 데려왔냐?”
“야, 야, 야! 군대 가는데 따라오는 여자 하나 없으면 얼마나 초라하게 보이는지 아냐? 그냥 구색 맞춤이라고 생각해라.”
“어머, 내가 왜 구색이니?”
동빈 일행은 의자 두 개를 마주 보게 배치해 놓았다. 한쪽은 동빈과 주철, 맞은편은 석진과 유나였다.
“우리도 늙었나 보다. 이 나이에 친구를 군대 보내다니.”
“그러게…….”
“그만 해라. 군대 가는 동빈이 심정은 어떻겠니?”
“…….”
주철, 석진, 유나는 아직도 동빈의 입대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국방부의 실수라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강원도에 있는 보충대.
짧게 머리를 깎은 입소생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마침내 함께 왔던 가족이나 친구와도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스탠드에 앉은 입소생들은 교관의 지시에 따라 힘차게 고함쳤다. 가족들은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자꾸만 뒤를 보며 눈물을 훔쳐 냈다.
“안녕히 가십시오!”
입소생들의 목청은 더욱 커졌다. 눈에서 멀어지는 가족들을 보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터질 듯한 함성으로 눈물을 대신하는 모습이었다.
“모두 동작 그만…….”
싸늘~.
교관의 나직한 목소리에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입소생들은 바싹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도 모르게 부동자세를 취했다.
“여러분들은 이제 민간인이 아닙니다.”
“…….”
입소생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이제부터 진짜 군 생활이라는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오늘 이 시간부터 여러분은 대한민군의 군인임을 명심하십시오. 또한 군대는 사회와는 많이 다릅니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반드시 군인으로서의 신분에 적합한 것인지…….”
교관의 묵직한 음성에 입소생들의 생각은 매우 간단해졌다. 성격 더럽게 생겼으니 찍히지 말자… 군대 오기 전에 들었던 오만 가지 충고를 되새기고 있을 때였다.
“추웅~성! 근무 중~ 이상~ 무!”
엄청난 고함 소리가 입소생들이 있는 스탠드까지 울려 퍼졌다. 절도 있는 목소리로 보아 위병소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충성~!”
“충성~!”
“추웅~성!”
위병소에서 시작된 경례 소리가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보충대의 기간병들은 경쟁하듯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비상이라도 걸린 듯한 반응이었다.
“도대체 뭐야?”
스탠드에 있는 교관도 당최 이해를 못 하는 표정이었다. 경례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상황을 살피던 교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저, 저건… 일동 차렷!”
화들짝.
교관의 고함에 기간병은 물론 입소생들까지 얼었다. 뜬금없이 투스타의 차량이 나타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사단장님께 경례!”
“충성~!”
끼이익.
우렁찬 경례 소리와 함께 사단장의 차가 멈추었다. 곧이어 사단장이 내려와 스탠드 쪽으로 다가갔다.
“자네…….”
“네! 소위~ 김! 병! 두~!”
사단장의 간단한 부름에 교관의 칼 같은 관등 성명이 튀어나왔다. 교관의 모습은 군기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 주고 있었다.
“김동빈이라는 입소생 좀 불러 주게나.”
“네! 알겠습니다!”
교관은 용수철처럼 튕기듯 스탠드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두리번거리며 사단장이 지시한 사람을 찾았다.
“누가 김동빈인가!”
“네, 접니다!”
동빈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교관 바로 앞에서 누군가 손을 들고 일어섰던 것이다. 체격이 상당히 좋은 입소생이었다.
“자네가 정말 김동빈이 맞나?”
“네!”
“사단장님께서 부르신다. 위치로!”
“네…….”
뚜벅뚜벅.
동빈은 여유롭게 걸어 내려왔다. 너무 여유로워 거만스럽게도 느껴질 수 있었다. 기간병들이 빨리 내려오라 눈치를 주어도 한결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오랜만이군.”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사단장은 동빈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스키장에서 만났던 윤가영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자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지… 어서 따라오게.”
“네, 알겠습니다.”
동빈은 사단장을 따라 연병장을 벗어났다. 스탠드에 남은 입소생들은 마냥 부러운 표정으로 지켜봤는데, 잠시 후…….
두두두두두두.
거센 바람과 함께 헬기가 솟아올랐다. 미군에서 쓰는 최신형 헬기였다. 기관병과 입소생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두두두두.
허공으로 치솟은 헬기는 보충대 주변을 활공했다. 헬기 문가에 바싹 붙어 앉은 동빈은 지상을 내려다보며 떠난 지 얼마 안 된 친구들을 찾고 있었다.
“저쪽으로 내려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동빈의 손짓에 따라 움직인 헬기는 매우 낮은 고도로 날아서는 친구들의 머리 위로 스치듯이 올랐다.
화아앙.
두두두두.
“친구들아… 안녕…….”
동빈이 탄 헬기는 순식간에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주철과 석진 그리고 유나는 방금 지나친 헬기에 동빈이 타고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에이 씨! 애써 한 머리 다 망가졌네.”
주철은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느라 분주했다. 이를 보고 있던 유나가 한마디 던지면서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남자가 왜 그렇게 머리에 신경 쓰니?”
“신경 끄세요. 너 보라고 신경 쓴 거 아니거든!”
“뭐라고? 너 말 다했어?”
“주철아, 유나야, 제발 그만 좀 싸워라. 나도 이제 지겨워 죽겠다. 내가 너희들 싸움 말리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냐?”
“석진아,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여자보다 머릿결이 더 좋아서 유나가 샘내는 거야?”
“뭐야! 내 머릿결도 한 머릿결 한단 말이야!”
그들의 싸움은 기차역까지 계속 이어졌다. 덕분에 잠시나마 동빈을 보낸 허전한 마음을 떨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