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실수
화악!
어두웠던 통제실 밖이 환하게 밝아졌다. 기이한 장면을 믿을 수 없었던지 윤호가 전원을 넣었던 것이다. 물론 방금 전 보인 것은 트릭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원 회장, 눈동자도 굴리지 말라우.”
송 교관은 원 회장의 목을 살포시 조르며 말했다. 겁에 질린 원 회장은 아직도 이러한 현실을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누, 누구…….”
“내 목소리 정말 모르겠네?”
“……!”
송 교관이 목소리를 깔자 원 회장의 얼굴이 변했다.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쯧쯧쯧… 이제야 눈치 챈 모양이구만 기래?”
“서, 설마… 마스터 송!”
원 회장은 신음을 발하듯 중얼거렸다. 마스터 송! 꽤나 유명한 이름인지 귀빈들의 표정도 덩달아 변했다.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마스터 송입니까?”
“역시 마스터 송입니다. 이런 구경은 평생 가도 못 할 겁니다.”
“이것들이 뭐라 중얼거리네? 난 영어는 ‘할로’밖에 몰라야.”
송 교관은 영어에 매우 약해 그들이 칭찬을 하는지, 비난을 퍼붓는지 구분을 못했다.
“원 회장, 또 경고하는데… 내가 펼친 건 극강 살극무라는 비기야. 내 심장이 멈추고 머리가 터져도, 네 목을 쥐고 있는 손은 절대 풀리지 않아. 오히려 네놈의 목을 조여서 숨통을 끊어 놓지. 같이 죽고 싶으면 뭔 짓이든 하라우.”
“아, 아니요. 난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내 수하들도 마찬가지고… 뭐 하는 거야? 당장 총 내려놔!”
우르르.
원 회장의 경호원들은 들고 있던 무기를 던졌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원 회장의 명령은 절대적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좀 이야기가 되겠구만… 동빈이 너도 물러서라우.”
“교관님,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하셨습니까? 원 회장의 목숨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동빈은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원 회장을 잡기 위해 오랜만에 호흡을 맞추지 않았던가! 결정적인 순간 바뀐 송 교관의 태도는 동빈으로서도 뜻밖이었다.
“동빈아, 넌 이 정도 했으면 충분히 원수를 갚은 기야. 원 회장을 죽이면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해. 벌써 경찰 특공대와 군부대가 이곳을 포위했을 기야.”
“이곳에 오면서 이미 각오는 했습니다, 교관님.”
“벌써 죽으면 젊음이 아깝지 않네? 이놈은 내가 맡을 테니… 어서 떠나라우. 아까도 말했지만 넌 할 일을 다 했어.”
“교관님…….”
동빈은 송 교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원 회장을 포로로 잡고 있는 동안 멀리 도망치라는 것이었다.
“뭐 하네? 팔 아프니까 날래 떠나라우.”
“교관님, 제가 운이 좋아 빠져나가도 평생 도망자 신세는 면치 못합니다. 전 여기서 끝장을 보겠습니다.”
“쯧쯧쯧… 내가 그런 생각도 없이 널 보내려 했겠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기야. 이보라우, 원 회장. 내래 손이 불편해서 그란데, 미군 사령부 직통으로 연결하라우!”
송 교관은 포로로 잡은 원 회장을 십분 활용했다. 송 교관이 살짝 손에 힘주고 말했기에 원 회장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윤호, 네놈이 당장 연결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원 회장과 송 교관은 벽으로 가로막힌 상태였기에 윤호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다. 윤호는 미군 사령부와 연결한 핸드폰을 서둘러 송 교관에게 전달했다.
“할로? 나 송 교관인데? 자넨 누구가?”
역시나 송 교관의 영어는 짧았다. 진짜 할로밖에 영어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꼬부랑말은 그만 하고… 한국말 할 수 있는 놈 바꾸라우. 나 마스터 송이야, 마스터 송!”
-여보세요? 정말 마스터 송이십니까?
영어보다는 이름이 통했다고 봐야 했다. ‘마스터 송’이라는 말이 나오자 곧바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못 믿으면 말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무슨 일은… 그냥 망명 좀 하려고 그러는데?”
-저, 정말입니까!
상대편의 반응은 무척이나 격했다. 송 교관이 인상을 찌푸릴 만큼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놀라긴… 싫다는 뜻이네, 좋다는 뜻이네?”
-당연히 우리는 대환영입니다.
미군 사령부의 뜻은 확고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참,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들어주시갔소?”
-말씀만 하십시오, 마스터 송.
“첫 번째, 식물인간이 된 장군님을 먼저 보낼 것인데… 최고의 의료진을 부탁하오.”
-세계 최고의 의료진을 약속합니다.
미국 측은 흔쾌히 승낙했다. 송 교관을 얻는 데 그 정도 요구라면 공짜나 다름없었다.
“두 번째… 망명 기간은 딱 3년! 그 뒤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오.”
-그건 좀…….
미국 측은 난처한 반응을 보였다. 3년이라는 시간의 제약이 문제였던 것이다.
“대신 비밀 코드 770도 함께할 것이오. 둘의 3년 임대면 엄청난 조건 아니오?”
-비밀 코드 770!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런 엄청난 조건을 제시하는 것입니까? 대한민국 정부에서 허락하겠습니까?
너무 큰 호박이라 미국 측이 약간 주춤했다. 비밀 코드 770 또한 마스터 송 못지않은 전설적인 군인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사고를 좀 쳤습니다. 원 회장이라는 사람인데… 우리를 못 죽여서 안달이오. 지금도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걱정 마십시오. 비밀 코드 770과 마스터 송은 이 순간부터 3년 동안은 미합중국 소속입니다. 원 회장은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절대로 비밀 코드 770과 마스터 송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약속드립니다.
“좋소, 당신만 믿고 끊겠소이다.”
딸깍.
송 교관은 전화를 끊고 벽 건너에 있는 동빈을 향해 말했다.
“동빈아, 넌 장군님 모시고 먼저 떠나라우. 3년은 긴 시간이 아니야. 그때 다시 돌아와서 저놈에게 복수를 하자우. 그때는 진짜로 네 맘대로 하라우.”
“알겠습니다, 교관님.”
지금은 장군을 돌보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동빈은 3년 뒤를 약속하며 복수를 미루었다.
“기운 차리고 변명거리나 생각해 두라우. 친구들이 뭐라고 할 것 아니갔어?”
“…….”
그러고 보니, 어떤 변명으로 3년 동안 떠나야 할지도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