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국방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세계군사박람회는 규모 면에서도 엄청났다. ‘전쟁과 평화’라는 다소 유치한 타이틀 아래, 국내외 3백여 개의 군수, 국방 업체가 참여했고, 군사 무기뿐만 아니라 우주과학 분야까지 포함하여 다양하게 전시되었다.
쿵쾅쿵쾅.
군사박람회장 입구에서는 각종 부대 행사도 펼쳐졌다. 헌병 모터사이클 부대가 앞서고 기수단과 군악대가 따르는 퍼레이드가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퍼레이드를 구경하면서 입장하는 데 걸리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 행사가 얼마나 인기 높은지 알 수 있는 단면이었다.
표를 끊고 입장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야외 전시장으로 향하게 된다. 곧장 전시관 내부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야외 전시장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없었다. 국군의 날에도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무기들을 실제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덩치가 커서 전시장 내부로 못 들어가는 장비들도 꽤나 되었다. 야외 전시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오른편에는 K2 전차와 K200 장갑차, K-9 자주포, 최신예 훈련기인 T/A-50 등 백여 점의 국산 무기가 선보였고, 왼편에는 BGM-109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 패트리어트 미사일, 스텔스 모형 등 50여 점의 해외 무기가 전시되었다.
전시관 내부로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모터쇼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화려한 볼거리가 많았다. 미래형 전차나 장갑차는 기본이었고, 헬기나 비행기 등의 시뮬레이터, 워게임 등의 소프트웨어도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도우미의 인기가 최고였다. 탱크 걸이나 장갑차 걸에서 시선을 못 떼는 남자들이 속출했다. 그 어떤 첨단 무기도 아름다운 도우미를 이길 수는 없었다.
“어떻습니까, 대단한 인파 아닙니까?”
원 회장이 한 무리의 인파를 끌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해외 귀빈들에게 이번 행사가 얼마나 성공적인지 보여 주려는 의도였다. 이러한 대성황은 원 회장도 예측을 못 했는지 상당히 고무된 목소리였다.
“정말 놀랍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무기를 좋아합니까?”
“한국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를 경험합니다. 따라서 무기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지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모두가 웃으며 원 회장을 따라 전시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원 회장님, 저 기계는 무엇입니까?”
해외 귀빈들은 네모난 박스 앞에 멈춰 섰다. 화장실 크기에 점수판 같은 것이 외부에 달려 있는 박스였다. 전시장 내부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것은 한국의 벤처 기업에서 개발한 것인데, 개인의 전투력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입니다.”
“전투력 측정요? 그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 아닙니까?”
“내부에 들어가면 신체 각 부위에 맞는 장비를 착용하고 시뮬레이션이 나타나면 동작을 하게 되는데, 모든 움직임이 컴퓨터로 분석됩니다. 저도 몇 번 해 봤는데 아주 재미있습니다.”
원 회장은 귀빈들을 이끌고 전투력 측정기로 다가갔다. 일반인의 출입은 당분간 제한되었고, 귀빈들은 호기심에 차 기계를 살펴보았다.
“한번 들어가 보시지요.”
“아닙니다, 제 나이가 있지요.”
귀빈들은 체험해 보라는 원 회장의 제안에 손사래를 쳤다. 젊은 나이라면 당장 뛰어들었겠지만, 지금은 뱃살과의 전쟁부터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개인 경호원들을 들여보내시지요. 몸값을 제대로 하나 살펴봐야지요?”
“그럴까요? 어디 한번 해 봅시다. 톰슨, 자네가 한번 들어가 보게.”
“알겠습니다, 회장님.”
건장한 흑인이 측정기 앞에 나섰다. 190이 넘는 키에 양복 상의를 벗자 근육이 셔츠를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느껴졌다.
“호리모프 회장님의 경호원도 들여보내시지요.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해 두 개의 기계가 한꺼번에 작동됩니다.”
원 회장은 또 다른 귀빈에게 말했다. 측정기의 문은 양쪽에 있었고, 한 번에 두 명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내 경호원은 무술보다는 사격에 능한데요.”
“이 기계는 사격과 검술 등 군인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종합적으로 테스트합니다.”
“그렇다면 뭐… 세르게이, 자네도 한번 들어가 보게.”
“알겠습니다, 회장님.”
금발의 경호원이 측정기로 다가갔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척 보기에도 날렵한 몸의 소유자였다.
“입장해 주십시오.”
찌이잉.
도우미의 목소리와 함께 측정기 문이 열렸다. 경호원들은 측정기 내부로 들어섰고, 사람들의 호기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차차차창.
기계 상단에 있는 계기판이 변했다. 기존의 숫자가 사라지고 양쪽 수치가 모두 0으로 맞춰진 것이다.
“전투력 측정을 시작합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경쾌한 기계음과 함께 수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20
25
28
30
초반부터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어떤 경호원이 이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원 회장, 전투력 측정의 평균이 얼마입니까?”
“세계 군인 평균을 100으로 맞췄습니다. 그 이상이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럼, 민간인들 평균은 얼마입니까?”
“70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훈련이 잘된 특공대의 경우는 170까지도 기록합니다.”
원 회장은 차근차근 질문에 답해 주었다. 귀빈들이 관심을 가져 주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띠띠띠.
깜박깜박.
한쪽의 점수판이 정지했다. 130. 군인들의 평균보다 30점이 많은 수치였다.
기이잉.
문이 열리며 흑인 경호원이 나타났다. 슬쩍 점수를 확인한 그는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130이 어떤 점수인지는 몰라도, 다른 쪽보다 먼저 끝난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띠띠띠.
깜박깜박.
나머지 점수판도 정지했다. 180! 지금까지의 최고 점수인 170을 뛰어넘는 수치였다.
“호리모프 회장님, 좋은 경호원을 두셨습니다.”
“과찬입니다. 세르게이에게 돈이 많이 들기는 했지요.”
짝짝짝짝.
금발의 경호원이 나오자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사격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탁월한 점수를 기록한 것이다.
“원 회장, 내 경호원도 들여보내고 싶은데요.”
“좋습니다. 또 다른 분 계십니까?”
“나도 하겠소이다.”
슬슬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귀빈들은 너도나도 경호원을 측정기로 보내려 했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내기를 걸면 어떻겠습니까?”
“찬성입니다.”
“나도 찬성이오.”
원 회장은 한 술 더 떠서 내기를 제의했다. 귀빈들도 흔쾌히 승낙하고 경호원들을 측정기 안으로 들여보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다시 경쾌한 기계음과 함께 수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돈까지 걸리자 귀빈들의 반응은 대박 수준이었다.
140 대 145.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결정되었다.
“아하! 다시 한 번 합시다.”
“우리들만 즐길 수 있나요. 다른 분들 생각도 해야지요.”
무기와 관련된 인물들이라 그런지 경쟁심도 치열했다. 이제는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려야 할 지경이었는데…….
“내 경호원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어떤 도전자든 환영합니다.”
“…….”
제임스 회장의 등장에 귀빈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던 귀빈들도 그의 경호원을 보고는 이내 꼬리를 내렸다.
“어허… 한 명도 없습니까?”
“제임스 회장님, 럼스펠드가 나오면 누가 감히 나서겠습니까?”
원 회장이 어색해진 분위기를 무마하려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임스의 심복인 럼스펠드는 살아 있는 전설이나 다름없었다. 군과 용병 시절의 화려한 경력은 영화를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귀빈들은 지는 시합에 동참할 정도로 마음이 너그럽지는 못했다.
“그냥 내려갈 수는 없으니… 기록이나 갈아 치워야겠군. 럼스펠드, 안으로 들어가게.”
“네, 회장님.”
사십 대 초반의 사내가 측정기 쪽으로 걸어갔다. 라틴 계열의 얼굴에 머리를 짧게 깎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함께 시합할 사람이 없기에 혼자서 전투력 측정을 받아야 했는데,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웅성웅성.
“으음? 저건 누구의 경호원이지?”
“럼스펠드와 맞서겠다니… 누가 비밀 병기를 숨겨 온 모양이군.”
젊은 동양계 남자가 측정기 반대편에 섰다. 귀빈들이 데려온 경호원 중 한 명이라 추측되는 인물이었다.
“입장해 주십시오.”
찌이잉.
문이 열리자 측정을 받을 사람들이 안으로 사라졌다. 상단에 있는 계기판도 0으로 맞춰지면서 모둔 준비가 끝이 났다.
“전투력 측정을 시작합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시작하자마자 계기판의 숫자가 격렬하게 반응했다. 좀 전에 측정을 받았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귀빈들은 역시 럼스펠드라고 감탄을 했지만, 같이 들어간 동양계 젊은이도 만만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