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강 살극무
강북에 위치한 한강종합병원.
끼이익.
택시 한 대가 들어서더니 급하게 멈춰 섰다. 응급 환자의 가족인 모양이다. 누군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응급실이 어딥니까!”
“저, 저쪽…….”
후앙.
간호사가 손짓하는 방향으로 힘껏 내달린 동빈은 엄청난 속력으로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서는 응급실 내부까지 들이닥쳤다.
“동빈아…….”
“교, 교관님…….”
응급실 내부를 서성거리고 있던 송 교관이 동빈을 발견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그들의 표정이 변했다. 이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디서 사고를 당하셨나요?”
“한, 한강 근처라고 했던가…….”
“한강 근처요? 운전기사도 없이 왜, 혼자서 그곳에 가신 겁니까?”
“나도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그곳은 기태가 죽은 장소야. 예전에도 가끔 혼자 가셨는데…….”
송 교관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꾸만 손을 입 주위로 가져가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장군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많이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어, 얼마나 심각한 부상입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자우. 지금 치료를 받고 계시니 말이야.”
송 교관의 시선은 커튼으로 가려진 공간에 집중되었다. 장군이 응급 치료를 받는 모양이었다. 동빈의 고개도 커튼 쪽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
분주하게 들락거리는 의료진의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다. 금방이라도 의사가 다가와서 안 좋은 소식이 있다고 말할 것 같았다.
“동빈아, 침착하고… 이거 받으라우.”
“…….”
송 교관은 책 정도 크기의 상자를 내밀었다. 예쁘게 포장까지 했지만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장군의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동빈이 함부로 만지지 못하고 망설이자, 송 교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네 거 맞을 기야… 사고가 나는 순간에도 꼭 안고 계셨다고 하더구나. 너무 꼭 안고 있어서 병원에 도착해서야 뺄 수 있었대.”
“무슨 물건이지 알아야…….”
“너는 장군의 아들 아니네? 괜찮으니까, 어서 열어 보라우.”
“네…….”
부스럭부스럭.
마침내 동빈은 포장지를 뜯기 시작했다. 무엇이기에 장군이 그토록 소중히 감싸 안았던 것일까? 죽은 아들의 유품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동빈의 예감이 틀렸다.
“장군님…….”
상자 안에는 합격을 기원하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엿과 찹쌀떡 그리고 도끼와 휴지까지… 재미있는 것만 골라서 따로 포장한 게 분명했다.
스륵.
상자 위에는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동빈은 조심스럽게 카드를 집어서 읽기 시작했다.
동빈아, 이 아비는 너의 피아노 소리가 듣기 좋았다. 원하는 음대에 꼭 붙기를 바란다.
울컥.
카드를 쥔 동빈의 손에 경련이 일어났다. 짧은 내용이건만 왜 이리도 읽기 힘든 것인지…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뿐이었는데, 바로 그때였다.
삐삐삐삐삐.
갑자기 심장 박동기의 소리가 커졌다. 환자가 위험하다는 증거였다. 깜짝 놀란 동빈은 커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간호사들이 만류하려 했지만 동빈의 움직임이 워낙 빨랐다.
“누가 장군님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제가 원수를 갚아 드리겠습니다. 누군지 말씀만 하세요, 장군님!”
“…….”
동빈은 장군의 손을 잡고 소리쳤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장군은 아무런 대답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심장 박동기의 기계 소리만 더욱 요란해지고 있었다.
“장군님, 눈을 뜨십시오.”
“…….”
“장군님, 어서 눈을 뜨고 명령해 주십시오. 장군님을 해친 놈을 처리하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도, 동빈아…….”
“……!”
기적이 일어났다. 혼수상태에 빠졌던 장군이 동빈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지 의료진도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자, 장군님! 저 여기 있습니다.”
“동빈아… 미, 미안하다… 정말… 미안…….”
장군이 눈을 뜬 순간은 매우 짧았다. 힘겹게 말을 잇던 장군은 조용히 눈을 감아 버렸다.
삐이이~.
“비켜 주세요. 심폐소생술을 해야 합니다!”
심장 박동기의 요란한 소리는 절정에 다다랐고, 의료진의 움직임은 정신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병원이 생과 사의 치열한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터벅터벅.
동빈은 의료진의 원활한 치료를 위해 장군 곁을 떠났다. 넋 나간 표정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발걸음… 그러나 이렇게 나약한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빠득.
더 이상 동빈의 얼굴에서 슬픔은 찾을 수 없었다. 눈물을 글썽이던 눈에는 섬뜩한 살기가 넘쳐 났고, 얼마나 분을 참으려 애를 썼는지 입술에서는 진한 선혈까지 흘러내렸다.
“장군님의 복수는 제가 합니다.”
동빈은 스스로에게 작전명령을 내렸다.
아버지의 복수!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