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6화 (217/224)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고급 호텔.

따르르르르릉.

폭발의 충격이 가시자마자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매캐한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올랐고, 정신없이 대피하는 사람들로 호텔 전체가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에이… 그냥 수능 액땜이라고 생각하자.”

바닥에 엎드렸던 동빈이 먼지를 떨며 일어섰다. 천장에서 떨어진 먼지 때문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어이, 멀쩡한 호텔은 왜 부숴?”

몸을 일으킨 동빈은 복도를 향해 소리쳤다. 킬러가 아직 밖에 있음을 파악한 것이다.

“귀먹었어? 아니면… 나한테 겁먹은 거야?”

“…….”

밖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동빈이 혼자 착각하는 것인가? 아니다, 동빈은 특급 킬러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

“꼭 이름까지 불러야겠어? 서윤호, 이제 그만 좀 하지…….”

“딩동댕! 역시 김동빈이야.”

뚜벅뚜벅.

학생 경찰의 수장이었던 서윤호 역시 많이 변해 있었다. 그는 특급 킬러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동빈 앞으로 걸어왔다.

“서, 서윤호…….”

태균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서윤호가 특급 킬러?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넌 계속 찌그러져 있어. 지금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

괜히 무안만 당한 태균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윤호의 충고대로 조용히 한쪽 구석에 몸을 숨겼다. 방해꾼이 사라지자 동빈과 윤호의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살인 미수에 폭파도 모자라 방화까지… 특급 킬러치고는 꽤나 요란하게 해동하는데?”

“내 방식이 좀 독특하지. 그냥 개성이라고 해 두자고.”

윤호는 소음기가 달린 총을 들고 있었다. 겉모습은 베레타였지만 안을 특수하게 개조한 암살용 권총이었다.

“왜 태균이를 죽이려고 하지? 저놈은 기태 선배를 죽인 진짜 범인을 알고 있어!”

“미련하긴… 그것 때문에 저놈을 죽이려는 거야.”

“실망인데… 그새 마음이 변했어? 누구보다도 진짜 범인을 찾고 싶어 했잖아?”

“미안하지만 윗선의 명령이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스윽.

윤호는 총을 겨누고 있는 손을 살짝 흔들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였다.

“나도 미안한데… 갑자기 저놈을 목숨 걸고 보호하고 싶어졌어. 장군님도 이것을 원할 거란 말이지.”

“내가 저놈을 죽이는 건 너무 간단해. 이대로 손가락만 움직이면… 그대로 끽이지.”

“그러면 너도 끽이야. 다시는 안 봐준다고 내가 경고했었지!”

동빈은 윤호와 정면으로 마주 섰다. 맨손으로 총을 가진 사람에게 덤비는 모양새지만, 총을 가진 윤호가 더욱 흠칫했다.

“놀랐잖아. 내가 진짜 방아쇠를 당긴 것도 아니고…….”

“오늘은 진짜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요즘 수능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까.”

“그래, 총 치울 테니까… 그 칼도 좀 치워 주겠어?”

어느새 동빈의 손에는 서슬 퍼런 칼이 쥐여 있었다. 동빈이 이처럼 위험한 무기를 꺼내 든 것은 학생이 되고서 처음이었다.

“먼저 총부터 치워!”

“공평하게 동시에 치우는 게 어때?”

“장난할 기분 아니라고 그랬지!”

“알았어, 알았어! 지금 치우고 있잖아. 그놈의 수능이 사람 여럿 잡네…….”

윤호는 매우 천천히 권총을 치웠다. 동빈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

동빈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보통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아주 미세한 기척을 탐지한 것이다.

“서윤호…….”

“……?”

착 내리깔리는 목소리에 윤호가 갸웃했다. 무엇 때문에 동빈이 화가 났는지 짐작도 못 하는 눈치였다.

“끝까지 이렇게 나오기냐!”

화앙.

동빈이 다짜고짜 발차기를 시도했다. 뭔가에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워낙 빠른 발차기였기에 윤호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불가능한 각도에서 돌려차기가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다.

후앙!

운이 좋았다. 간발의 차이로 동빈의 발차기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렇게 완벽한 기회를 동빈이 놓칠 리 없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퍼억.

“크억!”

분명히 발차기를 피했건만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다. 환청인가? 아니다, 뒤따라 울린 비명은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끼어든 게 분명했다.

“이것들아,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잖아!”

불청객은 윤호가 거느리고 있는 직속 수하들이었다. 상관을 위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명령을 어긴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모두 물러서란 말이야!”

“죄송합니다. 확실히 마무리 지으라는 회장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뭐라고!”

그들이 윤호의 명령을 어긴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원 회장의 지시가 최우선이기 때문이었다.

“김동빈, 이건 나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상관없어, 모두 부숴 버리면 되니까!”

꽈악.

동빈은 방 안으로 뛰어드는 놈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지체 없이 무릎 공격을 작렬시켰다.

푸악!

놈은 뒤따라오던 동료까지 엎어트리면서 문밖으로 날아갔다. 상황을 보니 놈들이 계속 들이닥칠 것이 분명했다. 생각보다 싸움이 커진 것이다.

“뭘 그러고 있어! 살고 싶으면 뛰어!”

동빈은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태균을 불렀다. 가만히 뒀다가는 연기에 질식하여 죽을지도 몰랐다.

“귀먹었어? 당장 밖으로 나가란 말이야!”

“……!”

파다닥.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태균은, 동빈이 손짓하는 모양을 보고는 부리나케 내달렸다. 그러나 간신히 문 앞까지 나오기는 했지만 뜻밖의 장애물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대로는 못 보내지!”

윤호가 순순히 보내 줄 리 없었다.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며 태균의 목을 낚아채려 하자, 겁에 질린 태균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상관 말고, 그냥 나가!”

후아앙.

어느새 태균을 도우러 달려온 동빈이 허공에서 점프를 하더니 몸을 뒤틀어 돌려차기 동작으로 바꾸었다. 엄청난 파괴력이 느껴지는 발차기였다.

빠각!

윤호는 십자막기로 동빈의 공격을 막아 냈다. 앞쪽으로 체중까지 실어 몸을 고정시켰지만, 동빈의 파괴력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건 도대체…….”

윤호는 절로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적절한 방어 동작을 펼쳤지만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우당탕탕.

윤호의 몸은 테이블과 옷장을 연달아 부수고 나가떨어졌다. 이것이 과연 인간의 파괴력인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구경났어? 빨리 뛰어!”

“아, 알았어.”

윤호가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태균이 찔끔했다. 자신의 상황도 잊어버리고 넋을 잃고 지켜봤던 것이다. 동빈의 질책이 떨어지자 그제야 태균은 밖으로 튀어 나갔다.

“계단으로 달려!”

“노, 놈들이 막고 있잖아!”

문을 나선 태균이 순간적으로 주춤했다. 계단으로 뛰라는 동빈의 목소리는 들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굳은 표정으로 달려오는 놈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괜찮아, 내가 막아 줄게.”

“아, 안 돼… 바, 발을 뗄 수 없어…….”

“에이… 씨! 진짜 가지가지 한다!”

타타타탓.

동빈은 태균을 밀치며 계단 쪽으로 뛰었다. 놈들을 제압하면 태균이 움직일 거라 판단한 것이다.

부웅.

적당한 거리까지 좁히자 동빈이 몸을 띄웠다. 놈들도 허리춤에 있던 회칼을 꺼내어 반격을 하려 했다. 태균은 다리가 풀렸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빈이 이기기를 바라면서 전반의 상황을 주시할 뿐이었다.

스윽.

“……!”

놈들의 칼질은 헛손질로 끝났다. 동빈이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는 묘기를 연출한 것이다. 아니, 묘기라기보다는 미리 계산된 행동이었다. 정면으로 점프를 하는 척하면서 복도 벽을 타고 내달린 것이다.

뱅그르.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복도를 오른 동빈이 몸을 회전시켰다. 동시에 양팔을 벌려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놈들의 목을 그대로 강타했다.

“크억…….”

버둥버둥.

놈들은 목을 쥐면서 난리를 쳤다. 급소를 정확히 맞았으니 한동안 숨을 쉬지 못할 것이다.

파다닥.

놈들이 쓰러지자 태균도 기운을 얻어 이를 악물고 동빈을 향해 달려왔다.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이쪽으로 들어가!”

동빈은 계단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화재를 피하려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도망치기는 안성맞춤이었다. 군중 속에 섞이면 놈들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긴 내가 막아 줄 테니까, 어서 내려가!”

“고, 고마워.”

태균은 서둘러 피난민 무리와 합류했다. 그러고는 누구보다 빠르게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좋아… 이제 좀 편하게 상대할 수 있겠군.”

동빈은 계단을 향했던 시선을 복도 쪽으로 옮겼다. 증인의 안전이 확보되었으니 마음 놓고 놈들과 싸울 수 있었다.

뚜벅뚜벅.

동빈은 복도 정중앙에 자리를 잡고 멈춰 섰다.

복도 바닥에 흐르는 연기는 점차 진해졌고, 놈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대라고 파악했는지 한꺼번에 덤벼들 모양새였다.

스윽…….

동빈은 잠시 넣어 두었던 칼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쌍칼이었다. 양쪽 손에 칼을 든 동빈은 천천히 놈들을 향해 다가갔다.

뚜벅뚜벅.

매캐한 연기가 점차 진해지면서 동빈의 걸음도 빨라졌다. 놈들도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 맞설 차비를 했다. 칼은 기본이었고, 권총을 가진 놈들도 있었다. 윤호의 명령이 있었는지 먼저 공격하지 않고 대기하는 상황이었다.

정적.

동빈의 발걸음 소리가 멈추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복도는 이제 시야 확보도 어려울 만큼 연기가 가득했는데…….

번쩍.

동빈은 양손에 쥔 단검을 한 바퀴 돌리며 고쳐 잡았다. 기괴한 빛이 번쩍이는 순간 동빈의 모습도 사라지고 없었다.

타앙!

서걱서걱.

요란하고 거북한 소리만이 복도에 가득했다.

삐뽀삐뽀.

호텔 밖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소방차들이 호텔 주변에 가득했고, 구급차는 부상자를 실어 나르기에 분주했다. 경찰들은 불구경 나온 사람들을 통제하느라 진땀을 빼고, 부상 정도가 경미한 사람들은 의료진의 부축을 받으며 한숨 돌리고 있었다.

“괜찮지?”

“응…….”

동빈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는 태균에게 다가갔다. 그는 두꺼운 담요를 두 장이나 덮고도 연신 떨고 있었다. 추위보다는 극도의 공포감 때문에 보이는 현상이었다. 물론 동빈도 담요를 한 장 걸치고 있었지만 용도가 좀 달랐다.

“이거 좀 마셔라.”

“고, 고마워…….”

동빈은 캔 커피 하나를 태균에게 던져 주었다. 그러자 몸이 움직이면서 담요 안에 감춰진 동빈의 옷이 살짝 드러났다. 붉은 피로 물감을 들였다고 착각할 정도로 섬뜩한 모습이었다.

“그, 그놈들을 혼자서 다 처치한 거야?”

태균은 잔뜩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동빈이 얼마나 위험한지 절실히 깨달은 표정이었다.

“물론 혼자 처리했지…….”

“죽, 죽인 거야… 그, 그런 거야?”

“또 겁먹는다. 아까 놈들 정도는 죽이지 않고도 이길 수 있어. 저기 봐. 지금 병원으로 실려 가고 있잖아.”

“…….”

태균은 호텔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엉망진창으로 변한 남자들이 들것에 실려 나오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누가 보아도 화상으로 인한 상처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급한 환자임은 분명했기에 서둘러 구급차에 실어 보내고 있었다.

“윤호는? 그놈이 바로 특급 킬러라며?”

“그놈은 도망쳤어. 워낙 재빠른 놈이라…….”

끄덕끄덕.

태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도망쳤든 상관없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우리 집에 갈 마음 생겼지?”

“응…….”

이번에는 동빈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간신히 참아 왔던 궁금증부터 풀고 싶은 것이다.

“그럼 진실을 밝혀도 상관없잖아? 어서 말해 봐. 기태 선배를 죽인 게 도대체 누구야?”

“원 회장.”

“엥? 원 회장… 그게 누군데?”

동빈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태균이 너무 쉽게 입을 열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고생한 보람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냥 원 회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야.”

“야, 요즘은 사장보다 흔한 게 회장이잖아! 조금 더 알기 쉽게 부연 설명을…….”

전화 왔어요. 전화 받으세요.

핸드폰이 또 동빈의 일을 방해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외면하고 싶었지만, 발신 번호를 보고는 그 생각이 싹 달아났다.

“잠깐만… 여보세요? 교관님, 접니다.”

-동빈이, 너 지금 어디네?

송 교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능 시험을 바로 앞두고 동빈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반응인지도 몰랐다.

“네, 잠시 좀 밖에 나왔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해서요.”

-잔소리 말고, 날래 오라우!

“네, 지금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집으로 오지 말고, 한강종합병원으로 오라우!

“벼, 병원요?”

동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내 말 똑바로 들으라우. 장군님이 교통사고를 당했어야. 날래 응급실로 달려오라우!

“……!”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는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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