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4화 (215/224)

동빈이 전화를 받고 급히 찾아간 곳은 유명 호텔이었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급하게 내린 동빈은 벽면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는 우측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고는 방문 호수를 살피며 복도를 지났다.

똑똑똑.

1107호에서 걸음을 멈춘 동빈이 문을 두드렸다. 동빈은 태연하게 기다리는 척했지만 주변의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행이나 감시가 붙은 낌새는 발견할 수 없었다.

끼익…….

“김동빈?”

문이 조금 열리면서 불안한 음성이 들렸다. 누군가에게 쫓기는지 매우 초조한 모습이었다.

“나 맞으니까, 어서 문 열어.”

“혹시 수상한 사람들이…….”

“그런 사람 없거든!”

화악.

동빈은 그대로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방 안에 있던 놈은 깜짝 놀랐는지 황급히 물러섰다.

“오, 오랜만이다, 김동빈… 정말 쫓아온 사람 없었지?”

“꼴이 그게 뭐야? 정말 고교 황태자였던 최태균 맞아?”

잔뜩 겁에 질려서 도움을 청한 사람은 전국 연합의 우두머리였던 최태균이다. 그러나 훤칠한 키에 귀공자 스타일이었던 예전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입김만 불어도 날아갈 것처럼 야왼 몸은 기본이었고, 초췌한 얼굴과 겁에 질린 표정은 불쌍해서 못 봐 줄 정도였다.

“내가 많이 변했지… 나도 거울 보고 놀랄 때가 있어.”

“대학 생활이 그렇게 힘들어? 갑자기 수능 보기 싫어지는데?”

주철을 통해서 태균의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명문 대학에 들어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난 장난할 기분 아니야. 아주 심각한 처지에 몰렸다고.”

“나도 심각해. 모레가 바로 수능이란 말이야.”

서로가 못마땅한 표정이다. 이처럼 다시 만나게 된 이유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시 한 번 확인하는데… 정말 날 보호해 줄 수 있어?”

“미안하지만, 보호는 내 전공이 아니야.”

“김동빈? 아까와 말이 다르잖아?”

태균의 얼굴은 또다시 어두워졌다. 약간의 자극에서도 급격한 감정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걱정 좀 그만 하지. 전공은 아니지만 기본은 있으니까, 일급 킬러가 아니면 절대 해치지 못한다고 장담해.”

“그, 그럼… 일급 킬러가 덤비면 끝장이란 소리잖아?”

태균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태세였다. 계속되는 감정 변화는 그의 불안한 심정을 나타내는 지표였다.

“영화에서처럼 일급 킬러가 흔한 줄 알아? 전 세계적으로도 몇 명 없으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저, 정말이지? 난 안전한 거지?”

“아, 진짜… 못 믿을 거면 왜 전화했어?”

“어, 어쩔 수 없었어. 너무 큰 사람한테 찍혔거든…….”

태균은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보니 어떤 상대에게 찍혔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주철이한테 들으니 너희 집안도 빵빵하다고 하던데?”

“쪽팔리지만 우리 아버지는 아무 도움도 안 돼… 난 너무 위험한 사람과 거래를 했어…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야.”

“악마 대신 택한 게 나야? 괜히 기분 나쁘잖아!”

동빈은 태균을 동정하지 않았다. 그 선택으로 한때는 전국 연합의 우두머리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인과응보에 의한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했다.

“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어. 가족이나 친구는 도움이 안 되고… 경찰도 믿을 수 없어. 날 구해 줄 실력을 가진 사람은 너밖에 없어.”

“칭찬은 고마운데 계산은 확실히 해야지… 기태 선배의 죽음에 다른 음모가 숨어 있다는 게 사실이야?”

끄덕끄덕.

태균은 바싹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빈이 판단하기에도 사실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만사를 제쳐 놓고 뛰어나온 것이었다.

“단순한 자살이 아니었단 말이지… 그럼 누가 죽였는지 확실하게 말해 봐.”

“그 전에… 날 어떻게 지켜 줄 것인지부터 먼저 말해.”

“짜증 나게 하면 그냥 일어난다. 한때는 기태 선배와 친구였다며?”

“맘대로 해. 말하고 죽나 그냥 죽나 나한테는 똑같아. 기태 놈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한 신념 같은 건 전혀 없거든.”

“…….”

태균은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생명 줄 같은 정보이니 충분한 값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안전이 확실하지 않으면 죽어도 말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좋아, 그러면 우리 집으로 가자.”

“뭐라고?”

“귀까지 먹었어? 어떻게 지켜 줄 것인지 말하라며?”

“고, 고작 너희 집…….”

태균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기대에 못 미치는 대답이라 말문까지 막힌 상태였다.

“우리 아버지는 쓰리스타야. 국가의 기밀을 취급하기에 보안 또한 철저하지. 경찰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송 교관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 어떤 킬러도 발을 들여놓지 못해. 국가에서도 인정하는 분이거든.”

“…….”

태균은 계속 침묵을 지켰다. 어이없어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어떤 킬러도 침입할 수 없다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지만, 동빈의 말을 어느 정도 믿어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참고로 말이야, 우리 아버지가 바로 기태 선배 아버지야.”

“……!”

“친형제는 아니고 2년 전에 내가 양자로 들어갔지.”

“…….”

태균은 부릅뜬 눈으로 동빈을 노려보았다. 기태와 동빈 그리고 장군의 관계를 모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운지 정말이냐고 반문하지도 못했다.

“네가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 아버지도 널 지켜 주실 거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결정적인 증인을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 아냐?”

“조, 좋아… 우선은 너희 집으로 가자. 여기도 안전한 곳이 아니거든. 불안해서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어…….”

“어이, 함부로 움직이지 마.”

멈칫…….

몸을 일으키려 했던 태균이 주춤했다. 동빈의 음성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은 것이다. 태균은 경직된 자세를 유지한 채 동빈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는 거야…….”

“침착하게 내 말 잘 들어. 그 상태에서 절대 움직이지 마.”

“무, 무슨 일 있는 거지? 그렇지?”

태균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했다. 갑자기 돌변한 동빈의 태도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것이다.

“내가 신호하면 침대 쪽으로 몸을 날려… 얼마나 긴급한 상황인지는 네가 더 잘 알 거야.”

끄덕끄덕.

태균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을 한두 번 당한 것이 아닌지 의사 전달은 쉬웠다.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상대에게 밉보였는지 모르겠네…….”

꿀꺽.

태균은 갈증을 참을 수 없는지 마른침을 삼켰다. 동빈이 긴장한 모습은 처음 보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준비해… 내가 셋 하는 순간 몸을 날리는 거야. 하나…….”

동빈은 카운트를 하며 몸을 일으켰다. 매우 자연스러운 동작이었지만, 이를 바라보는 태균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문 쪽에 시선 주지 말고… 둘…….”

“…….”

“셋, 뛰어!”

와장창창.

피슝!

빠직.

갖가지 효과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유리 스탠드가 깨지는 소음, 총성과 비슷한 음향, 그리고 문이 쪼개지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이어진 것이다.

“진짜 제법인데…….”

어느새 동빈은 출입문과 바로 맞닿은 벽면에 붙어 있었다. 금 간 문에는 총알이 뚫고 지나간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출입문 밖에서 목표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상당한 수준의 킬러가 분명했다.

“어이, 괜찮은 거야?”

덜덜덜덜.

동빈은 태균의 안전부터 살폈다. 태균은 너무 세게 몸을 날려서 스탠드와 충돌했지만 별다른 상처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심하게 몸을 떨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그만 좀 떨지?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

“나… 살아 있는 거지…….”

“추잡한 행동 그만 하고 정신 똑바로 차려! 킬러가 노리는 건 내가 아니고 바로 너야.”

“나, 나도 알고 있고… 그, 그런데 저놈, 일급 킬러야?”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킨 태균은 자신의 생존 가능성부터 확인했다. 일급 킬러만 아니면 괜찮다는 동빈의 말을 떠올린 것이다.

“아니… 일급은 아니야…….”

“휴~ 다행이다.”

태균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긴장감이 탁 풀렸는지 몸을 늘어트리며 씁쓸한 미소까지 지었다. 그러나 태균의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긴장하는 게 좋을 거다. 밖에 있는 놈은 특급 킬러거든.”

“……!”

태균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일급보다 더욱 위험한 놈을 만난 것이다.

“이봐, 빨리 침대 밑으로 숨어!”

“무, 무슨 일이야?”

“잔말 말고, 당장 숨으란 말이야!”

“아, 알았어!”

버버버벅.

동빈의 말투가 다급해졌다. 커다란 위험이 닥친 게 분명했다. 태균은 허둥거리며 침대 밑으로 파고들었는데, 바로 그때였다.

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방 전체가 흔들렸다. 특급 킬러가 매우 무식한 방법으로 출입문을 부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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