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1화 (212/224)

무덥던 날씨가 한풀 꺾였다.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정도는 되었다. 힘든 고비를 넘겼지만 수험생들은 안도할 여유가 없었다. 수능이 두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에 더욱더 공부에 매진해야 했다.

국방부 직속 제7특수부대 사령부.

장군의 집무실은 수험생들의 교실처럼 조용했다. 참모들은 장군이 집중하여 일 처리를 할 때에는 방해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급한 보고가 아니면 그냥 비서에게 맡기고 돌아갔지만, 최측근 보좌관은 예외였다.

“안녕하셨습니까, 장군님.”

“어서 오게. 해외 출장은 어땠나?”

장군은 중요한 일 처리까지 미루고 보좌관을 맞이했다. 외국으로 출장을 떠났던 보좌관이 귀국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그랬습니다. 장군님은 잘 지내셨습니까?”

“나도 그저 그렇게 지냈네.”

“참, 동빈이가 수험생이지요? 공부 잘하고 있습니까?”

“공부야 열심히 하지…….”

장군은 교묘하게 뒷말을 흐렸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다는 뜻이었다.

“수능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것 같습니까? 음대 쪽이라 실기도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지 않았나? 세상 일이 다 그렇듯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네.”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뜻이군요.”

“…….”

보좌관이 제대로 맞혔다.

동빈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장군이 생각해도 어려웠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했지만 마땅한 대학을 찾기는 힘들었다.

“인생에서 대학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 생각하네. 운이 좋아서 대학에 붙으면 좋겠지만 떨어져도 상관없어. 동빈이가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것으로도 난 충분히 만족하네.”

“장군님께서 그렇게 소박한 생각을 품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 아닌가? 동빈이가 노력을 안 했다면 아쉬움이 남겠지만… 해도 안 되는 것 가지고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알겠습니다. 동빈이의 성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제 안부나 전해 주십시오.”

“고맙네. 동빈이도 나 때문에 힘들어하거든. 염치없다고 생각하는지 자꾸만 나를 피하더라고… 그래, 이번에는 자네 여행 이야기 좀 들어 볼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그저 그랬습니다.”

장군은 자세를 고쳐 잡고 귀를 기울였지만, 보좌관은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그저 그랬어도…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없었겠나? 그런 것도 없다면 급하게 귀국한 이유나 들어 볼까?”

“…….”

보좌관의 귀국은 예정보다 훨씬 빨랐다. 일이 잘 해결된 것도 있지만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앞당긴 것이다. 잠시 머뭇거렸던 보좌관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기 전에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끄덕끄덕.

장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일이 닥치면 장군의 말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쪽은 완전히 물러난 겁니까?”

“확정적으로 대답하긴 힘들군…….”

그쪽이란 원 회장 라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장군과의 담판 이후 원 회장은 분쟁이 생길 만한 사건을 만들지 않았다. 장군과의 싸움이 버거워서 꼬리를 내렸다는 소문도 간간이 들려올 정도였다.

“무기 구입 건에 대해서도 압력이 없습니까?”

“아직은 없네. 그러나 원 회장이 순순히 물러날 인물인가? 무기 구입 건을 성사시키려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겠지.”

장군은 원 회장 라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만큼 이번 무기 구입에는 엄청난 이권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

보좌관이 급히 귀국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장군은 냉정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세계군사박람회를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소문입니다. 벌써 기본적인 내용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미국에 있는 군사 관련 기업들이 힘을 실어 주고 있다고 합니다.”

“군사박람회라… 원 회장의 작품인가?”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군님을 압박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역시 원 회장이야. 조금 골치 아프게 됐군.”

장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불안한 평화가 끝나고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렇게 큰 행사를 치르려면 준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군사박람회는 언제쯤 열릴 예정이지?”

“무기 구입을 결정하는 시점보다 조금 앞서 열릴 것 같습니다. 그래야 장군님을 확실히 압박할 수 있으니…….”

“그럼… 수능 시험일 정도가 되겠군.”

“해외의 상황까지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장군과 보좌관은 원 회장과 맞서기 위한 준비에 들어섰다. 일단 군사박람회의 날짜까지는 예측할 수 있었다.

“우선은 원 회장 라인에 대한 감시를 늘려야겠어.”

“벌써 지시해 두었습니다.”

“원 회장은 큰일과 은밀한 일을 동시에 추진하는 성격이지. 군사박람회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행동이 있으면 뭐든 보고하게.”

“의심 가는 행동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번에 원 회장을 만나서 미끼를 던진 적이 있었네… 원 회장이 그 증거를 없애려 한다면 확실히 범인이란 얘기지.”

“…….”

보좌관은 장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미끼를 던졌는지 알면 대충 짐작이라도 하겠건만…….

“자네도 일 보게. 난 급한 서류가 밀려 있어서 말이야.”

부슥.

털어놓기 껄끄러운 내용인지 장군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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