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8화 (209/224)

졸업식과 입학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도 있는 법… 지금 입학식을 끝낸 신입생들이 졸업생들의 빈자리를 메울 것이다.

입학식이 끝난 명성고등학교 대강당.

우르르.

신입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밖으로 나와 담임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자신들이 배정받은 반으로 흩어졌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야, 빠져. 담배 하나 피고 들어가자.”

“나야 좋지.”

물론 모두가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새를 못 참고 몇 놈이 무단이탈을 시도했다. 선생님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재빨리 뒤로 빠져나간 것이다.

“내가 몇 번 이 학교에 왔었는데 저쪽에 가면 화장실 있다.”

“에이… 담배 피면 냄새 나잖아. 그냥 땡땡이치자.”

“첫날부터? 그건 좀 심하지 않냐?”

“우리가 언제 그런 거 따졌어?”

“그러게!”

말하는 것을 보니 철없는 중딩들이었다. 아니, 이제는 철없는 고딩이라 바꿔 불러야 했다. 나이는 한 살을 더 먹었지만 그들의 개념 없는 행동은 여전했다.

“난 말이야, 내가 어떻게 고등학교에 붙었는지 모르겠어. 아무래도 컴퓨터가 고장 난 거 같아.”

7 대 1로 싸워서 이겼다는 창수가 말했다. 상대가 초등학교 3학년인 것이 밝혀져 엄청난 망신을 당했지만 말이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내가 고등학생이 된 걸 믿지 않아. 입학식에 와서 확인한다는 걸 말리느라 쌩쇼를 했다니까!”

중학생 다섯 명과 싸웠던 영우도 말했다. 머릿수에 겁먹지는 않지만 항상 얻어터지는 것이 문제였다.

“이게 다 그 김동빈 때문이야. 졸라 놀지도 못하고 공부를 했으니 고등학교에 붙었잖아. 우리 엄마는 내가 정말 마음잡았는지 알고 있어. 나한테 얼마나 잘해 주는지 짜증 나 죽겠다니까! 이러다 나 진짜 모범생 되는 거 아니야?”

반항아로 알려진 재혁. 약간 모자란 듯 보이지만 그중에서는 가장 정상적인 놈이었다.

대책 없기로 소문난 이들이 명성고등학교서 뭉쳤으니… 학교의 앞날이 심히 걱정인 상황이었다.

“고등학교 입학까지는 봐주겠는데 하필이면 명성이냐? 정말 재수도 없지…….”

“그래도 다행이지. 김동빈 새끼가 퇴학당했으니 말이야.”

“그놈 있었으면 우리가 학교에 왔겠냐?”

철없던 중딩들은 학교 배치를 받고 경기를 일으켰다. 김동빈과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동빈이 경찰에 자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입학식에 참석한 것이다.

“이왕 학교에 다니기로 했으니 우리가 짱을 먹어야지?”

“당연하지. 저기 보니 대충 답이 나오는데?”

철없는 고딩들은 구석진 화장실을 바라보았다. 그들보다 먼저 온 신입생 몇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1학년 짱을 먹기 위한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다.

“골치 아프게 생겼네… 저 새끼도 명성이야?”

“누구? 아… 송림중학교 장대석. 저 새끼 졸라 잘 싸우는 놈이지.”

“송림의 장대석보다 저 새끼가 더 위험해.”

“씨벌… 강천중학교의 양현식까지 여기야?”

철없는 고딩들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상대들의 면모를 살펴보니 짱에 오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대충 5개 중학교에서 짱을 했던 놈들이 모여 있었다.

“졸라 반갑다, 이것들아.”

“이게 누구신가? 김동빈에게 개겼다는 그 중딩들?”

“씨발 너희들은 개길 용기나 있었냐?”

처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짱을 향한 놈들의 기 싸움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것이다.

“용우야, 담배 하나 줘 봐라.”

“여기…….”

창수가 철없는 고딩들을 대표해서 말했다. 담배부터 피워 물고는 불량스러운 분위기에 동참했다. 여기에 모인 대부분이 담배를 피우려다 만난 사이였다.

“어차피 짱은 여기서 나올 것 같은데… 이왕 모였으니 한판 놀아 볼까?”

“씨발, 졸라 세게 나오네? 그런다고 우리가 겁먹을 것 같냐?”

“오늘 몸도 뻐근했는데 잘됐네! 한번 맞장 까 볼까?”

“어쭈구리, 이것들 봐라?”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았다. 첫날부터 밀리면 3학년 내내 죽어지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휘익.

창수는 피우던 담배를 던지고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아무나 덤비라는 대담한 행동이었다. 그러자 다른 놈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살폈다. 초반부터 싸워서 이득이 될 것은 없었다.

“뭐 해? 어서 덤벼.”

창수의 배짱은 보통이 넘었다. 그렇기에 동빈에게 덤빌 수 있었던 것이다.

“씨발… 괜히 기분 나쁘네. 그래 내가 덤빈다.”

“어디 함 해보자. 너희들 오늘 제대로 걸렸다.”

다른 놈들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피우던 담배를 비며 끄고는 각자 한 발자국씩 나섰다. 중학교의 짱을 했던 놈들은 전부 나섰다. 동물의 왕국처럼 서열 싸움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얘, 너희들 거기서 뭐 하는 거니?”

빗자루를 든 여학생이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 주변을 청소하다가 이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재수 없게 웬 냄비야…….”

“뭐라고? 너희들 신입생이지? 선배한테 그게 할 소리야?”

3학년 여학생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입생들의 불량스러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이, 선배면 다야?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시나?”

“다치기 싫으면 꺼지시지. 우리는 무척 사나운 신입생이야!”

놈들은 경쟁적으로 여학생을 위협했다. 누가 더 성격 더러운지 시합을 벌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너희들, 정말 이럴래?”

“어쭈? 꼴에 선배라고…….”

“오늘 이런 놈들이 몇 명째인지 모르겠네. 마지막 경고야, 너희들이 버린 담배꽁초 줍고 선배한테 무례하게 군 거 사과해!”

“우리가 미쳤어?”

말로 해서 될 분위기가 아니었다. 신입생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고, 여학생의 인상도 점점 일그러졌다.

“흥! 그래… 선배 말이 말 같지 않다 이거지…….”

“씨발, 요즘은 개나 소나 선배야. 나이만 처먹으면 장땡인가.”

빠직.

여학생의 이마에 주름이 갔다. 신입생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내리겠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동빈아, 여기 화장실 앞도 쓸어야겠다.”

썰렁~.

철없는 고딩을 포함한 모든 신입생들이 충격을 받았다. 절대적 카리스마가 담긴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지, 진짜 김동빈일까?”

“아, 아니야… 그 새끼는 퇴학당했다니까…….”

“너 누구한테 들었어?”

“누, 누구한테 듣긴… 그 정도 사고 쳤으니 당연히 퇴학이지.”

“졸라…….”

공개적으로 확인된 내용이 아니라,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정설로 굳어진 것이었다.

“거… 겁먹지 마. 똑같은 이름 아닐까? 우리 형 친구 이름이 장동빈이야.”

“맞아, 씨발… 신입생 중에도 오동빈이 있었어.”

불량 신입생들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진짜 김동빈이라면 학교생활은 지옥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제발 아니기를 바라는 표정으로 여학생이 시선을 두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야, 유나야? 아침에 내가 다 쓸었는데?”

“……?”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부터 들려왔다. 불량 신입생들은 진짜 김동빈인지 확신을 하지 못했다.

“저, 저게… 진짜 김동빈의 목소릴까?”

“목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야, 방금 나온 내용을 잘 되새겨 보자고. 전국 짱이 청소나 할 것 같아?”

“맞다, 씨발! 어떤 학교가 전국을 평정한 학생한테 청소를 시켜? 우릴 겁주려고 학교에서 단단히 준비했구만!”

놈들은 쾌재를 불렀다. 김동빈이 아닐 것이라는 조그만 실마리가 보여도 좋아하며 난리를 쳤다. 그러나 여러 번 동빈과 인연(?)을 맺은 철없는 고딩들의 반응은 달랐다.

슬금슬금.

그들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뒷걸음치기 분주했다. 김동빈의 목소리를 정확히 기억한다는 증거였다.

“어떤 놈들이 또 쓰레기를 버린 거야?”

뚜벅뚜벅.

푸념 섞인 음성과 함께 성큼성큼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유나는 여유로운 모습이었고, 불량 신입생들은 뭐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마침내 창고 건물 뒤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상당히 체격이 좋은 학생이었다.

“어라? 이건 뭐야… 사방이 담배꽁초잖아?”

“좆 됐다…….”

“이제 우린 죽은 거야…….”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타난 학생은 김동빈이 확실했다. 불량 신입생들이 받은 충격이 어땠는지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한 놈들의 얼굴만 봐도 대충은 짐작이 갔다.

“어떤 놈들이 이런 거야? 잡히기만 하면 그냥…….”

우당탕탕.

“아, 아, 앗 뜨거!”

“이 새끼야, 나한테 던지면 어떻게 해!”

놈들은 손에 든 담배를 감추려 혈안이 되었다. 손으로 끄려다 화상을 입고, 친구한테 던지기도 하고… 살아남기 위해 별짓을 다 한다고 볼 수 있었다.

“어라? 낯익은 놈들도 있네. 너희들, 왜 담 넘어 도망가?”

“아니요, 아니요. 도망치는 게 아니라 들어오는 겁니다.”

“맞아요, 맞아요.”

철없는 고딩들이 딱 걸렸다. 신출귀몰하게 움직였지만 동빈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 그동안 만수무강하셨습니까?”

“만수무강? 이것들 또 시작이네. 그나저나 이거 너희들이 버린 거야?”

동빈은 땅바닥에 널린 담배꽁초를 보며 추궁했다. 철없는 고딩들을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 것이다.

“아니요, 아니요! 우리 꽁초는 여기 있어요. 보세요, 저희는 디스밖에 안 피워요. 땅바닥의 꽁초들은 던힐이나 에쎄잖아요.”

“그런가? 내가 보기에는 똑같은 담배꽁촌데…….”

동빈은 담배의 종류를 몰랐다. 철없는 고딩들의 말을 믿고 담배꽁초를 줍기 시작했는데…….

“참, 너희들 혹시 신입생 아니야?”

“…….”

열심히 담배꽁초를 줍던 동빈이 순간적으로 주춤했다. 같은 학년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신입생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선배는 청소하고 후배들은 담배나 피우고?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모두 동작 그만…….”

화들짝.

동빈의 쫙 깔린 목소리에 불량 신입생들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담배야 너희들 몸 망가지는 거니 뭐라고 하진 않겠는데… 이게 첫날부터 신입생들이 할 짓이냐? 지금 교실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니야?”

“…….”

“이것들이 단체로 침묵시위 하나? 유나야, 이놈들 뭐야?”

“아, 우리 학교의 귀여운 신입생들…….”

“……!”

불량 신입생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유나에게 한 짓이 있으니 당연한 행동이었다.

“아주 괜찮은 애들이지… 동료끼리 사이좋게 지내고…….”

뜨끔.

“예의도 발라서… 선배 대접도 너무 확실했어.”

“…….”

놈들의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유나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는데, 갑자기 그녀의 음성이 바뀌었다.

“그런데! 너무 싸가지가 없어서 탈이더라.”

풀썩…….

놈들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죽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유나야, 다시 한 번 말해 봐. 싸가지가 없다고?”

“그래, 선배에게 냄비라고 부르지 않나!”

“뭐, 뭐! 너한테 그런 소리를 했단 말이야?”

“아마 그랬을걸.”

“이노무 새끼들을 그냥!”

동빈의 얼굴에 살기가 넘쳐 났다. 단단히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가뜩이나 기가 죽었던 불량 신입생들은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동빈아, 사고 치면 안 돼. 넌 봉사 활동 처분받았잖아?”

유나가 재빨리 나서서 동빈을 만류했다. 병 주고 약 주는 상황이었지만 불량 신입생들은 그녀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유나가 막아 주지 않았다면 벌써 피를 토하고 쓰러졌을 테니 말이다.

“이런 놈들은 버릇을 고쳐 줘야 하는데 말이야.”

“폭력은 사용하지 말고 너와 함께 청소하도록 하면 되겠네. 그러면 너도 편하잖아! 학교가 너무 넓어서 청소하기 힘들었지?”

“그래도 될까?”

“내가 선생님께 말씀드릴게. 저놈들은 땡땡이에 담배까지 폈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거야.”

유나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동빈이나 불량 신입생이나 모두 이득이 되는 것이었다. 더불어 학교까지 깨끗해지니 일석삼조라 할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