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4화 (205/224)

부전父戰-자전子戰

어수선하게 새해를 맞이했던 대한민국.

시간이 흘러도 황당한 방송 사고의 여파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학교 폭력에 대한 기사 덕분이었고, 인터넷에서는 동빈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두고 찬반양론이 벌어졌다. 동빈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형이었고, 일진들은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한편, 군대도 사회만큼이나 시끄럽긴 마찬가지였다. 각종 군사 비리까지 한꺼번에 터지면서 점입가경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예상했던 대로 반발이 심하겠지?”

“그렇습니다. 감사를 싫어하는 것은 민간인이나 군인이나 모두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쪽에서의 반발이 조금 심하기는 합니다.”

장군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보좌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부정을 저지른 것은 반성하지 않고 감사에 걸린 것만 분하다는 뜻인가?”

“목적성이 다분하다는 불만이 높습니다. 장군님과 원 회장의 대립에 관한 소문은 군 내부에 파다합니다. 괜히 본보기가 되었다는 푸념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예정된 감사가 아니라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게 걸릴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

원 회장과 장군의 싸움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원 회장이 방송 사고로 도발을 하자, 장군은 감사로 대응했다. 군 내부에 있던 원 회장 라인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아직은 견딜 만하지만 그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문제입니다. 조용히 당할 원 회장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쪽이 일을 해결하는 방법은 뻔하지 않은가? 군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고 위에서는 그것을 핑계로 압력을 가하겠지.”

“문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부류입니다. 원 회장과 장군님, 어느 쪽에 줄을 설까 눈치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쪽으로 붙게 놔둘 수는 없지… 그렇다고 내 쪽으로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고…….”

“……?”

보좌관은 순간적으로 주춤했다. 무슨 의도로 말하는 것인지 이해를 못 했기 때문이었다.

“중립을 취하는 쪽은 계속 중립을 유지하도록 했으면 좋겠어. 나와 원 회장의 싸움에 그들이 낄 필요는 없지.”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았습니다.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싸움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군에서 편을 가르게 되면 적군들만 유리할 뿐이었다.

“군 내부의 모든 압력은 내가 해결한다. 원 회장이 아무리 기를 써도, 퇴역을 했기에 직접적인 개입은 불가능하지. 군 외부적인 압력에만 집중적으로 대비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장군님.”

“그만 나가고… 송 교관 좀 들어오라고 하게.”

“네, 알겠습니다. 충성!”

보좌관은 거수경례를 하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장군은 목이 마른지 컵에 있던 물을 천천히 들이켰다.

똑똑똑.

유리컵의 물이 반쯤 사라질 무렵,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장군은 물 마시는 것을 멈추고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들어와.”

끼이익…….

장군의 말이 끝나자 누군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런데 완전히 활짝 여는 게 아니라 반 정도만 열고는 얼굴만 살짝 내미는 것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장군님?”

송 교관은 얼른 용건을 말하라는 뜻을 전했다. 중요한 일을 멈추고 갑작스럽게 달려온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냥 용무를 말씀하시지요. 긴급한 통화 중이라서…….”

“예쁜 원장님입니까?”

씨익~.

송 교관은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다 알면서 왜 그러냐는 표현이었다. 그토록 따라다닌 보람이 있는지 요즘은 피아노 학원 원장과 통화도 자주 했다.

“미안하지만 전화 끊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중요한 내용입니다.”

“중요한 내용이니 할 수 없지요…….”

송 교관은 여전히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법! 그는 뒤로 감췄던 핸드폰을 조용히 들어 올렸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을 심산이었다.

“여보세요, 원장 선생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그럼요, 동빈이는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저를 믿으세요. 내일쯤 연락이 올 것 같으니 또 전화 주세요. 꼭이요! 네, 들어가세요. 예쁜 원장님.”

딸깍.

동빈의 불행은 송 교관의 즐거움이란 말인가? 피아노 원장이 전화를 했던 것은 동빈의 안부 때문이었고, 송 교관은 이를 200퍼센트 활용했던 것이다.

“서운해하지 마시고 이쪽으로 앉으세요.”

장군은 자리까지 안내하는 선심을 베풀었다. 게다가 송 교관이 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아닌가?

“웬 친절을… 그냥 제가 아무 데나 앉겠습니다.”

송 교관은 장군의 행동이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장군이 가리킨 자리에서 상당히 동떨어진 곳에 앉은 것을 보면 말이다.

“뭘 그리 경계하십니까?”

장군은 송 교관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편하게 생각하라는 뜻이었지만, 송 교관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전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놈입니다. 그러나 장군님의 친절만큼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내가 그렇게 모진 사람이었습니까?”

“그 반대입니다. 장군님의 호의는 진짜 아낌없이 주는 호의라서 부담스럽습니다.”

“이번에는 부담 갖지 마세요. 나와 송 교관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안심이지요. 중요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장군과 송 교관은 바둑이라도 두는 모양새로,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테이블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약간 굽혔던 허리를 펴면서 장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7년 전 가을인가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집무실까지 찾아온 적이 있지요?”

“그런 적이 있을 겁니다.”

“송 교관의 부탁을 내가 매몰차게 거절했지요?”

“속 터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가 생각나는지 송 교관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성격으로 보아 장군이 만류했기에 참은 것이 분명했다.

“거절을 하면서 따로 당부했던 내용도 기억합니까?”

“물론 기억합니다. 전 한번 목표로 삼은 것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장군님만 아니었으면 어떤 사고를 쳤을지 모르고… 지금도 마찬가지 심정입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요.”

국방부 직속 제7특수부대 사령부.

뚜벅뚜벅뚜벅.

송 교관이 씩씩거리며 사령부 복도를 걸었다.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아니, 분해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알기에 어떤 이도 제지하지 못했다. 덩치 좋은 특수부대원들조차 몸을 숨기기 급급했다.

쿠앙!

우지끈.

송 교관의 주먹 한 방에 두꺼운 문이 박살 났다. 매우 과격한 등장이었지만, 집무실에 있던 장군은 놀라지도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살펴보던 서류를 내려놓은 장군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송 교관을 맞이하며 물었다.

“몰라서 묻는 겁니까?”

“모르니까 묻는 겁니다.”

“제가 가르쳤던 놈이 또 죽었습니다. 벌써 몇 명째인지 아십니까? 작전을 뛰다가 그런 것도 아니고 깡패 새끼들한테 당했습니다. 그 새끼들이 가족들을 위협했기에 꼼짝없이 당한 겁니다.”

송 교관의 진노는 하늘을 찔렀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몹쓸 병에 걸려 죽었다면 이리도 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위험한 군 생활을 끝내고 사회로 나갔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송 교관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내게 뭘 원하는 겁니까?”

“그 깡패 새끼들 때려잡게 군인 좀 빌려 주십시오. 많이도 바라지 않습니다. 딱 1개 소대만 쓰게 해 주십시오.”

“…….”

송 교관은 헛소리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무력이 동반된 일은 더욱 그러했다.

“너무 많습니까? 그럼 1개 분대라도 상관없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동안 군인들은 민간인에게 몹쓸 짓을 많이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군인을 함부로 동원할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그 새끼들은 보통 깡패들이 아닙니다. 이번에 죽은 놈도 경찰 특공대입니다. 법 무서운 줄 모르고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새끼들입니다.”

“그냥 분한 마음에서 끝내십시오. 이건 명령입니다.”

“못 참겠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저 혼자라도 그 새끼들을 처리하겠습니다. 군인의 신분만 아니면 됩니까?”

“…….”

송 교관은 단단히 작정한 표정이었다. 금방이라도 군복을 벗고 깡패들을 찾아 나설 분위기였다.

“송 교관은 군인의 신분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잘 알면서 그런 말을 합니까?”

“전 성질 더럽습니다.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화병으로 죽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죽게 생겼는데 못할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내가 퇴역할 때까지만 참아 주십시오.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복수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

장군은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장군이지만 기간이 문제였다. 그렇기에 송 교관도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난 정적이 많아서 정년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겁니다. 내일 당장 군복을 벗을 수도 있지요.”

“장군님… 이자나 잘 쳐주십시오.”

송 교관은 장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7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다.

“이제 군복을 벗을 생각입니까?”

마침내 복수의 기회가 왔지만 송 교관은 기쁘지 않았다. 장군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벅찬 상대와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나 스스로 벗을 생각은 없습니다.”

“요즘 군 내부가 시끄럽던데… 그 원 회장이라는 사람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국내 최대의 폭력 조직이 그쪽하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신매매부터 마약 거래까지… 큰돈이 되는 짓은 무엇이든 한다는 정보입니다.”

“그런데 군인이 투입되어도 상관없겠습니까?”

“동빈이가 가져온 총을 조사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놈들은 무기 밀매까지 손대고 있었습니다. 국방부 특별 수사팀 및 경찰과 공조하여 놈들을 일망타진할 겁니다.”

“점점 힘이 솟는군요.”

장군은 일거양득을 노렸다. 원 회장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송 교관의 복수까지 도울 수 있는 기회였다.

“국방부 특별 수사팀은 송 교관이 이끌면 됩니다. 특수부대 1개 중대를 지원해 주겠습니다. 더 원하면 말씀하십시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진짜 전쟁을 할 것도 아닌데요.”

“그동안 오래 기다렸습니다. 송 교관 성격에 어떻게 참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허허허… 이자 붙는 재미로 참았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