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3화 (204/224)

인심 좋기로 소문난 마을에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재앙이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조속한 사건 해결을 위해 특별 수사본부까지 운영되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피해자인 청수 스님하고는 어떻게 되십니까? 다른 가족이 없어서 장군님과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나가 한 분 계셨는데 2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더군요.”

파출소가 없기에 특별 수사팀은 이장의 집을 임시 본부로 사용했다. 삼십 대 중반의 수사관이 정중하게 피해자 가족을 면담했다.

“제가 매형입니다. 2년 전에 아내와 사별했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괜한 것을 제가 언급했군요. 죄송하지만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피곤하시면 나중에 말씀하셔도 무방합니다.”

수사관은 예의 바른 정도를 넘어섰다. 대한민국 육군 소장과 대화를 하려니 상당히 불편한 모양이었다.

“제 편의만 봐줄 필요는 없습니다. 피해자 가족의 한 명으로서 최선을 다해서 수사를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사건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것을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아는 선에서 성의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청수 스님을 조사해 보니 꽤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고 하더군요. 촉망받는 음악가가 왜 스님이 되기로 결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2년 전 자동차 사고가 있었습니다. 처남이 운전을 했는데… 전 아내를 잃었고, 처남은 누이를 잃었습니다. 전 너무 경황이 없었고, 얼마 전에야 처남이 출가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민감한 내용이긴 했지만, 장군은 답변을 거절하지 않았다. 냉정함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을 마쳤다.

“제가 또 아픈 상처를 건드렸군요. 다른 질문은 차후에 드리겠습니다. 서면으로 작성하셔도 무방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처남을 죽인 놈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탈옥수라 하던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장군이 묻고 수사관이 대답을 했다.

“사건을 저지르고 자살을 했다고 하던데요.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입니까?”

“글쎄요. 부검을 해야 정확한 사인을 알 것 같습니다. 자살이라고 발표는 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죽인 것 같기도 하고… 누구에게 살해당한 것 같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수사관도 장군처럼 자신이 아는 만큼 성심껏 대답했다. 윗선에서 비밀을 숨길 필요 없다는 언질을 받은 까닭도 있었다.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청수 스님과 어린 소녀를 죽인 놈들은 탈옥수들이 맞습니다. 무척 잔인한 방법으로요. 그런데 탈옥수들은 더욱 잔인한 방법으로 죽었습니다. 상당히 키가 작은 사람의 소행이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자살이라는 것은 언론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입니다.”

“우리가 좀 도와 드릴까요? 군에서 무술 교관을 담당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런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과학수사를 한다는 외국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고 자부합니다.”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십시오. 난 그저 싸움꾼에 불과합니다.”

자그만 체구의 노인이 등장했다. 계급장도 없는 군복을 입고 있었고, 장군과는 막역한 사이처럼 보였다.

“송 교관님, 차 안에 계시지 여기는 웬일이십니까?”

“내래 좀이 쑤셔서요.”

송 교관의 외모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었다. 최근 들어 노화가 심해졌다는 소리는 모두 거짓이었다.

“저는 다 됐습니다. 조사가 끝나서 막 일어나려는 참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장군님. 조금 더 머무르면 안 되겠습니까?”

“네? 조금 더 머물다니요?”

장군은 송 교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이유로 태도가 변했는지 궁금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밖에서 무표정한 얼굴의 꼬마를 보았는데, 우리가 찾는 조건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제대로 한번 검사하고 싶습니다.”

“송 교관님, 어떤 꼬마를 말하는 겁니까?”

“아! 제가 알 것 같습니다.”

수사관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불편함 없이 모시라는 상부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다. 장군과 송 교관이 쳐다보자 수사관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밖에 있는 꼬마는 청암사의 동자승으로, 이번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입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에는 온몸이 피 범벅에 날카로운 칼까지 들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충격을 받았는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

장군과 송 교관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채로운 표정을 지었다. 뒤엉킨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한 모습이었다.

“장군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장정 다섯을 그렇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놈들은 악독하기로 소문난 죄수들이었고, 살해 방법도 엄청 잔인했습니다. 저희도 의심을 해 봤지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 꼬마가 가지고 있던 칼을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수사관은 서랍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칼을 꺼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일반 칼과는 다른 모양임을 알 수 있었다.

“장군님, 제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송 교관은 비닐봉지를 빼앗듯이 낚아챘다. 그러고는 뚫어져라 피 묻은 칼을 관찰했다.

“의미가 있는 단검입니까?”

장군이 매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송 교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칼은 특수 제작한 것입니다. 손잡이 부근에 이니셜이 있는데… 아마도 칼 주인의 이름인 것 같습니다.”

“칼 주인을 알고 있습니까?”

“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가르친 놈들 중 가장 뛰어났습니다. 월남전을 포함한 수많은 작전에 투입되어 뛰어난 활약을 보였습니다.”

“매우 아꼈던 부하 같은데… 그다음은 어떻게 됐습니까?”

“작전을 거듭할수록 놈이 이상하게 변했지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별로 소용없었습니다. 11년 전 그놈이 탈영을 하면서 소식이 끊겼습니다.”

“저도 그 사람이 궁금해지는군요. 수사관님, 칼을 소지했던 아이하고 이야기 좀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최 형사, 그 동자승 좀 데려와.”

“네, 알겠습니다.”

수사관은 장군의 부탁을 마다하지 않았다. 급히 밖으로 나간 최 형사가 굳은 표정의 아이를 데리고 왔다.

“앙칼진 눈빛이 마음에 드느만 기래.”

송 교관은 꼬마와 눈높이를 맞추며 중얼거렸다. 노인과 아이가 눈싸움을 벌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이름이 뭐네?”

“…….”

“네가 가지고 있던 칼… 아버지한테 받은 게 틀림없지?”

“…….”

송 교관 혼자 말하는 꼴이었다. 한 번 입을 다문 아이는 입을 열 마음이 전혀 없었다.

“까불지 말고 대답하라우,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시네? 대답 안 하면 본때를 보여 줄기야.”

“김동빈이라는 아이입니다. 아버지는 1년 전에 죽었고요. 그렇기에 청암사의 동자승이 된 것입니다.”

수사관이 꼬마 대신 입을 열었다. 송 교관도 꼬마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듯 수사관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1년 전에 죽었다고요…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개장수 김 씨라고 조금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일가친척이 없다고 들었는데, 혹시…….”

“친척은 아니고, 그냥 옛날 직장 상사라고 해 두면 좋겠군요.”

송 교관은 대충 얼버무리며 꼬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꼬마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김동빈이라고? 어디… 자세히 좀 살펴볼까?”

“…….”

송 교관은 어린 동빈의 몸 상태를 조사했다. 손과 발은 물론이고 치아까지 세심히 관찰했다. 동빈은 특유의 무표정으로 일관했고, 송 교관의 얼굴은 점점 밝아졌다.

“내래 소원 풀었구만 기래.”

사투리가 심해지는 것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송 교관은 잔뜩 고무된 얼굴로 장군에게 다가갔다.

“보,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이건 하늘이 내려 주신 기회입니다.”

송 교관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장군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목소리 좀 낮추시지요. 그렇게 마음에 드십니까?”

장군은 동빈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물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또래에 비해 덩치가 좀 큰 것뿐이었지만, 송 교관은 더 큰 앞날을 보고 있었다.

“마음에 들다 뿐이겠습니까? 이번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하실 겁니다.”

“나이가 너무 어립니다. 아무리 고아라고 해도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제 욕심만 챙기려는 수작은 아닙니다. 저놈의 눈을 보셨습니까? 너무 어린 게 아니라 너무 위험한 겁니다. 당분간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합니다.”

“좋습니다. 일단은 절차를 밟겠습니다.”

위험하다는 말이 장군의 결정을 바꿔 놓았다. 송 교관이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동빈이라고 했지?”

“…….”

장군은 여전히 반응이 없는 동빈에게 다가갔다. 얼마나 위험한 아이인지는 모르지만 함께 지내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부터 안 좋은 기억은 모두 잊어버려라.”

장군이 동빈에게 처음으로 건넸던 말이었다.

부르릉!

노을이 질 무렵, 진한 흙먼지를 남기고 버스가 떠났다.

“아저씨, 스톱!”

동빈이 버스를 향해 소리쳤으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동빈은 청암사가 있던 산에서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아저씨, 제발~ 스톱!”

방금 떠난 버스는 막차였다. 이번에도 놓친다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르릉…….

야속한 버스는 속력을 줄이지 않고 동빈의 시야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에이… 씨!”

파파파팟.

동빈은 눈썹이 휘날려라 내달렸다. 버스는 산등성이를 빙 돌아서 아랫마을로 향한다. 죽어라 뛴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촤르르.

“앗! 따거…….”

긁히는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동빈은 급한 경사면을 거의 뒹굴다시피 내려오고 있었다. 버스와의 간격이 좁아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막상막하의 상황까지 치닫고 있었다.

부웅.

최대의 난관인 철조망까지 뛰어넘었다. 이대로 가면 승산은 충분했다. 코너를 도는 버스보다 조금이라도 빠르면 되는데…….

후앙~.

간발의 차이로 버스가 빨랐다. 동빈의 곁을 무심하게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아저씨, 스톱~!”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동빈은 회한에 찬 고함을 질렀는데, 바로 그때였다.

끼이익.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버스가 멈춰 섰다. 버스 기사가 동빈의 외침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동빈은 버스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우울했던 기분이 풀렸다고 해야 할까?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부르릉.

동빈이 올라타자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노을이 붉게 물든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동빈이 탄 버스는 서서히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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