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화 (200/224)

동빈은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었다.

걷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산책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느릿한 발걸음이었다. 동빈은 민박집을 벗어나 예전에 가장 번화했던 거리로 접어들었다.

“빈집들이 무척 많구나.”

고향 마을은 동빈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한적했다. 한 집 건너 버려진 집일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시끌벅적했던 과거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뭐야?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초토화잖아?”

변두리로 갈수록 사정이 더욱 좋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버림받아 방치된 집들이 무더기로 나타난 것이다. 귀신도 외면할 정도로 형편없이 망가졌고, 금방이라도 폭삭 주저앉을 것 같았다.

멈칫…….

두리번거리며 걷던 동빈이 발길을 멈추었다.

산골 마을.

그중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한 곳.

반쯤 무너진 돌담 사이로 다 낡은 판잣집을 볼 수 있었다. 잠시 멈춰 섰던 동빈의 걸음이 더욱 빨라지는 순간이었다.

뚜벅뚜벅.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인가? 동빈의 걷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산책을 하듯 여유롭던 표정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순식간에 판잣집에 도착한 동빈은 제 기능을 상실한 나무 대문을 지나서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흙먼지가 날리는 마당. 지금이 여름이라면 잡초가 무성했을 것이다. 누가 보아도 폐허 중의 폐허였다.

부슥.

동빈은 우측에 있는 철창 우리로 고개를 돌렸다. 개들을 보관(?)했던 장소였다. 온갖 종류의 개들이 으르렁거리고 짖어 댔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귀를 막아도 소용없을 때가 많았다. 하루 종일 개 소리에 시달리면 왠지 모를 분노가 치솟기도 했는데, 저녁 무렵이 되면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정적!

요란했던 개 소리가 사라졌다.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개들이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하얀 이빨까지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던 놈들이 꼬랑지를 내리고 온순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견공들이 갑자기 조용해진 이유가 밝혀졌다.

“아이고 개님, 어서 오세요.”

중년 남자의 어수룩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개님이라니? 말 못하는 짐승에게도 존댓말을 쓸 정도로 예의 바른 사람이거나 정신 나간 사람, 그 둘 중의 하나가 분명했다.

“어서 따라오세요, 개님.”

끄응끄응.

개와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양이었다. 죽어도 따라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개와 이를 달래는 사람의 모습… 결코 자연스러운 장면은 아니었다.

“거의 다 왔어요, 개님.”

끄응끄응.

“이러시면 곤란해요. 제가 억지로 끌고 가야 하잖아요!”

깨갱!

견공의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얼마나 애처로운지 철창 안에 있던 개들까지 난리가 났다. 도망치려 발버둥치는 것은 기본이었고, 괜히 오줌 지리는 놈들까지 속출했다.

“반항해도 소용없어요. 빨리 오세요, 개님.”

질질질.

끄응끄응.

인기척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철창 안에 있던 개들은 바싹 공포에 질렸고, 어린 동빈의 시선은 나무 대문에 집중되었다.

끼이익.

대문이 활짝 열리면서 삼십 대 후반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기 드물 정도로 신장과 체격이 좋은 사람이었다. 오른손에는 쇠사슬로 만든 개 끈을 쥐고 있었고, 바보 같은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개님…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꾸악.

건장한 체격의 남자는 방금 끌어 온 개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러고는 아주 가뿐하게 개를 들어 올렸다.

케엑케엑.

버둥버둥…….

목을 잡힌 개는 제대로 된 반항을 하지 못했다. 꼼짝없이 덩치 큰 남자의 처분을 받아야 했다.

“여기가 개님의 집입니다.”

그는 마당 우측에 있는 철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뒤, 나무 뚜껑을 열어젖히고는 버둥거리는 개를 철창 안으로 던져 넣었다. 많이 해 본 솜씨인지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스르륵.

개를 처리한 남자는 어린 동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더욱더 바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들님… 밥 먹었어?”

끄덕끄덕.

어린 동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를 따라 멍청하게 웃는 남자만큼 성장한 동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 질릴 정도로 많이 먹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동빈의 아버지를 개장수 김 씨라고 불렀다.

스륵.

와장창창.

살짝 힘을 준 것뿐인데, 낡은 문짝이 떨어지고 말았다. 동빈이 일부러 부쉈다기보다는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내 집 망가트렸으니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지…….”

동빈은 머리를 긁적이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없으니 편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좋았다.

삐걱… 삐걱…….

걸을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진동을 했다. 매우 불길한 소리였고, 언제라도 무너질 가능성을 보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행동하긴 했지만 발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삐걱삐걱.

동빈은 흙먼지로 가득한 마루를 지나서 안방으로 들어섰다. 아버지와 오붓하게 살았던 장소… 지금은 쓰레기만 가득한 버림받은 공간이었다.

“아이고, 피곤해 죽겠다.”

벌러덩.

방 안에 들어선 개장수 김 씨는 곧바로 드러누웠다. 마음 편하게 쉬려는 행동이 분명했는데…….

쿵.

“아고! 머리야…….”

김 씨는 머리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체격이 워낙 좋은 탓인가? 한두 번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너무 자주 벌어지니 문제였다.

“아들님, 나 머리 다쳤어. 빨리 술 가져와.”

보통 아버지와는 많이 달랐다. 귀여운 재롱이 아니라 평상시의 모습이었다. ‘정신 나간 개장수 김 씨’ 이것이 동빈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정식 명칭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신은 나갔지만 짐승과 아들에게도 존댓말을 쓸 정도로 순박(?)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개장수 김 씨가 마을에 머물 수 있는 중요한 이유였다.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체구를 가진 김 씨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쳐도 곱게 미쳤다며 불쌍하게 여길 정도였다.

뚜벅뚜벅.

동빈은 안방을 나와서 뒷마당으로 향했다.

뒷산과 이어진 곳이기에 매우 넓다고 할 수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개장수 김 씨는 아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았다.

“헤헤헤… 되게 기분 좋다…….”

알딸딸하게 취한 김 씨는 마냥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르는 동빈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억지로 끌려가는 모양새가 분명했다.

“아들… 사는 게 바로 전쟁이야.”

“…….”

김 씨의 목소리가 변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착했던 김 씨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독기 서린 눈빛과 냉혹할 정도로 차분한 음성… 소름이 돋을 정도의 강력한 살기까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준 선물 가져왔지?”

끄덕끄덕.

동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 있던 물건을 보여 주었다. 겹겹이 싼 신문지를 벗겨 내자 서슬 퍼런 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쓰는 장난감 칼이 아니었다. 특수부대에서 쓰는 대인용 단검! 동빈이 다섯 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선물이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거야. 놈들은 언제 어디서 뛰어나올지 모르거든.”

“…….”

“아무도 믿으면 절대 안 돼. 누가 적인지 모른단 말이야… 상대가 여자라도, 혹은 나이 든 노인이나 어린아이…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절대 방심하면 안 되는 거야. 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적이야. 놈들은 나를 죽이려 혈안이 되어 있어.”

“…….”

김 씨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원래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이처럼 이중적인 모습은 충격에 가까웠다. 평상시에는 한없이 순박한 김 씨였지만 술만 먹으면 180도로 바뀌었다. 그러나 동빈은 이러한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충실히 따른 결과였다.

“아들! 어떠한 상대를 만나도 절대 겁먹지 마. 네가 겁을 먹는 순간 지는 거야. 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그냥 죽으면 편하지. 엄청난 고문을 받게 돼… 평생 빠져나올 수 없는 고통에 빠지고 말지.”

“…….”

김 씨의 진지한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아들이 무슨 반응을 보이는지는 상관치 않았다. 그는 눈에 핏발이 선 상태에서 뒷산과 이어지는 길목을 바라보았다.

“저기 상대가 보이지?”

“응…….”

동빈은 정면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도사견을 볼 수 있었다. 오랫동안 굶주렸는지 먹이를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내가 가르쳐 준 거 잊지 않았지?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몰래 다가가는 거야…….”

김 씨의 상태가 매우 심각한 것이 분명했다. 인간보다 몇 배나 감각이 발달한 개를 속이라는 말인가? 너무 터무니없는 요구였지만, 어린 동빈의 반응은 매우 뜻밖이었다.

끄덕끄덕.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전의를 불태웠다. 아버지와 함께 미쳐 가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래… 실패하면 죽는 거야. 기회는 단 한 번. 살금살금 다가가서 놈의 급소를 찔러 버려!”

사사삭.

김 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빈이 움직였다. 날카로운 칼을 품속에 감추고는 도사견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부슥… 부슥…….

어린아이의 몸놀림이 아니었다. 특수 훈련을 받은 군인처럼 은밀하고 신속하게 행동했다. 얼마나 신출귀몰한 동작인지 도사견은 꼬마의 접근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킁킁거리며 먹잇감을 찾기에 분주할 뿐이었는데…….

크르릉.

갑자기 도사견의 행동이 수상하다. 땅에 코를 박고 열심히 냄새를 맡던 개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이빨을 보이며 적개심을 드러내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파팟.

무언가 도사견을 덮쳤다. 체구는 작지만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속도는 대단했다. 그리고 엎치락뒤치락 도사견과 뒤엉키며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깨갱!

동빈에게 실패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섬뜩한 비명과 함께 도사견의 몸이 축 늘어졌다.

주르르.

붉은 피가 사방으로 흘렀다. 엄청난 체구의 도사견이 어린아이의 손에 의해 비참하게 당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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