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줄까?”
주인 할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 동빈의 먹성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많이 먹었습니다.”
“괜찮아, 마음껏 더 먹으라고…….”
주인 할아버지는 사양하는 동빈의 밥그릇을 빼앗다시피 했다. 그러고는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밥을 퍼 주는데…….
철퍼덕.
“……!”
밥그릇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일반 식당 기준으로 3인분은 충분히 넘을 것 같았다. 이미 한 그릇을 해치운 동빈이 감당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할아버지… 죄송한데요. 조금…….”
“응! 더 달라고?”
“그, 그게 아니라요…….”
철퍼덕.
“…….”
동빈은 수북이 솟아오른 밥 산(?)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조금만 덜어 달라고 말하려 했는데 조금 늦었다. 그런데 이 많은 양을 인간이 먹을 수 있단 말인가? 혹시 주인 할아버지가 장난치는 것은 아닐까?
절대 아니다.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모습! 덩치 좋은 동빈이라면 충분히 먹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저 양푼에 담긴 밥… 설마 아침 한 끼를 위한 것은 아니겠지?’
동빈의 시선은 세숫대야로도 쓸 수 있을 널찍한 그릇에 집중되었다. 며칠 동안 두고두고 먹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동빈의 착각이 분명했다. 인심이 너무 좋아서 문제였던 것이다.
‘무척 부담스럽다.’
괜히 나무 주걱을 매만지는 할아버지의 손! 언제라도 밥을 떠 주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저기요…….”
스팟!
기다렸다는 듯이 할아버지의 손이 움직였다.
“밥 말고요!”
멈칫…….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주인 할아버지는 밥이 가득한 주걱을 쥐고서 동빈을 바라보았다.
“그럼, 반찬 더 줄까?”
“아니요, 아니요.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동빈은 즉각적으로 고개를 흔들었지만, 주인 할아버지는 말보다 행동이 빨랐다. 반쯤 남아 있는 반찬 그릇을 들고서 벌써 반이나 일어나 있었던 것이다. 우선은 할아버지의 저돌적인 인심 공격(?)을 막는 것이 관건이었다.
“할아버지도 드세요.”
“난 괜찮은디?”
“저만 먹으려니 왠지 불안해서요.”
“그럴까…….”
주인 할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함께 식사를 하면 인심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동빈도 한시름 놓았다.
“매우 한적한 마을이네요.”
“시골이 다 그렇제.”
여유를 찾은 동빈은 편안한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 조금 무리하는 셈이지만, 주인 할아버지의 정성을 외면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는데요. 방학이 되면 시끄러워서 잠도 잘 수 없을 정도였지요.”
“맞아, 그런 때도 있었지. 한때는 100가구가 넘게 살았던 곳인데… 여름이나 겨울방학 때만 되면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학생은 어찌 그렇게 잘 아는가?”
“……!”
동빈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오붓한 대화를 시도하려다가 예전의 기억까지 털어놓은 것이다.
“하하하! 제, 제가 착각했네요. 그, 글쎄… 여기가 외할머니 댁인 줄 착각했어요. 우리 할머니는 강원도에 사시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모르겠네요. 죄, 죄송하지만 이것 좀 더 주세요. 우와! 국물이 너무 시원해서 계속 들어가네요.”
동빈은 허겁지겁 동치미 국물을 들이켰다. 덕분에 철렁 내려앉았던 마음도 진정되고, 주인 할아버지의 관심도 돌릴 수 있었다.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서둘러 밖으로 나간 것이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갔던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솟았는지 엄청난 양의 동치미를 들고 온 것이다. 불쌍한 동빈… 저것을 다 먹으려면 꽤나 고생할 것이 분명했다.
오후가 되자 날씨가 조금씩 풀렸다. 바람 부는 소리는 여전했지만, 창문 안으로 스며드는 햇볕에서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옷만 제대로 챙겨 입는다면 가벼운 산책 정도는 문제없었다. 활동성이 강한 동빈이라면 벌써 밖으로 뛰어나갔겠지만, 지금은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우와… 아직도 배가 빵빵하네.”
역시나 과식을 한 것이 문제였다. 아침 식사를 끝낸 동빈은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볼록 튀어나온 배를 감당하지 못하고 계속 누워 있어야만 했다.
“소화제라도 먹어야 하나.”
누가 시골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던가! 주인 할아버지는 천하의 김동빈을 인심(?)으로 녹다운시켜 버렸다. 덕택에 동빈은 이처럼 약까지 찾게 될 정도로 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자, 잠깐… 이 냄새는……!”
동빈은 몸까지 벌떡 일으켰다. 구수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 점심시간이 가까이 왔다는 증거였다.
“더, 더 먹으면 죽는다.”
엉금엉금.
동빈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방문 쪽으로 다가갔다. 절대 장난이 아니었다. 동빈에게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끼이익.
동빈은 무작정 방문을 열고 나섰다. 밖으로 나갈 요량인지 겨울 점퍼가 손에 들려 있었다. 그러나 때마침 부엌에서 나오던 주인 할아버지와 부딪치고 말았다.
“학생, 어디 가려고?”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동빈은 신발을 신으며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계란 바구니를 보고는 더욱 빨리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도 밥은 먹고 나가야제. 조금 있으면 밥이 다 되거든.”
“아니요, 아니요. 방 안이 너무 답답해서요. 전 이 시간에 꼭 운동을 해야 해요.”
동빈은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대답했다. 언제라도 꽁무니를 뺄 준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그럼 빨리 들어오라고. 밥상 차려 놓을 테니께.”
“아니요, 아니요. 밥은 먹고 올 거예요.”
“어디서 밥을 먹고 와? 이 마을에 민박은 여기밖에…….”
“재주껏 먹고 올게요. 절대로 밥상 차리지 마세요!”
후다닥.
동빈은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뛰었다. 점점 더 진해지는 밥 냄새 때문에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밥 먹는 것이 고문인 경우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