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힌 대결이 펼쳐지는 바닷가.
생방송 전파를 못 타는 것이지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동빈은 펄펄 날아다니며 일진들을 때려눕혔다. 그 누구도 동빈을 막을 수 없었다.
퍼퍼퍼퍽!
연속적인 발차기 공격은 신들린 듯 보였다. 인간의 몸놀림이 아니었다. 스피드와 파괴력 그리고 유연성의 절묘한 조화였다. 그러나 동빈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바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었다.
푸악!
이렇듯 심하게 치고, 박고, 뛰어도 멀쩡했다. 지금도 동빈의 강력한 발차기에 한 놈이 나뒹굴었다. 놈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어도 동빈을 어쩌지는 못했다.
“세상에나! 이건 완전 특종이야!”
카메라맨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생생한 화면을 담았다. 생방송은 중단했지만 녹화는 계속하고 있었다.
“정혜선 씨, 이젠 진정이 됐어?”
“네… 간신히 움직일 정도는…….”
“그럼 빨리 마이크 들어!”
“네?”
정혜선은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마이크를 들라니? 살벌하기 짝이 없는 싸움판으로 다시 뛰어들라는 뜻이었다.
“이런 특종을 놓치면 방송인이 아니지. 게다가 단독이잖아?”
“그, 그래도…….”
정혜선은 여전히 껄끄러운 반응이었다. 특종도 좋지만 잘못하여 얼굴이라도 상하면? 얼짱 기상캐스터란 명성에 치명적인 결함이 생길 수도 있었다.
“걱정하지 마. 저놈은 자기들 싸움에만 관심 있어. 너무 접근만 하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아, 알겠습니다.”
정혜선은 마이크를 챙기며 일어섰다. 그러고는 흐트러진 옷과 머리를 정리했다.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정혜선 씨, 준비됐어?”
“네, 이제 됐어요.”
정혜선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에 목숨 거는 방송인의 기질이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좋아, 멘트는 자유롭게 해도 상관없어. 스탠바이…….”
정혜선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긴장을 풀었다. 그러면서 번쩍 치켜든 감독의 손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마지막 사인이 떨어지기를 침착하게 기다렸고,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왔다.
“…큐!”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상캐스터 정혜선입니다.”
정혜선은 당찬 음성으로 멘트를 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감독도 마음에 드는지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저는 지금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제 뒤로 보이는 것처럼, 학생들끼리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정혜선이 능동적으로 변했다.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장소로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카메라도 뒤를 따랐고, 덕분에 더욱 박진감 있는 현장을 담을 수 있었다.
“무슨 이유로 싸우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습니다. 저기 보이는 학생이 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한다는 것입니다. 어림잡아도 100명은 될 것 같은데… 정말 제 눈이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용감해지는 그녀. 일기예보를 할 때보다 훨씬 열정적으로 취재를 했다.
“여러분,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절대 카메라 조작이 아닙니다. 17 대 1의 전설은 벌써 깨졌습니다. 지금 모래밭에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누워 있습니다. 많이 다친 것 같습니다. 아, 지금 또 한 명이 쓰러집니다. 세상에, 이 많은 인원을 정말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저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미스터리입니다.”
피를 뿌리고 쓰러지는 놈들이 속출했다. 카메라맨은 주변 상황을 상세히 담으며 정혜선을 쫓아갔다. 그러나 피를 흘리는 장면이 너무 많은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모자이크 천지겠는데?”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방송으로 내보낼 수 없는 장면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카메라맨은 쓰러진 사람보다 싸우는 장면에 초점을 맞추라는 신호를 했다.
“시청자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학교 폭력의 실태를 그대로 보여 주는 사건이며… 100명에 가까운 인원과 혼자 맞짱… 아, 아니… 싸우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절대 눈속임이 아닙니다.”
정혜선의 목소리가 점점 다급해지더니, 곳곳에 흥건한 피를 보고는 두려움과 흥분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변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저희도 말리고는 싶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조직 폭력배들이 세력 다툼을 벌이는 장면이 이러할까요.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 바로 제가 서 있는데… 아! 엄청난 발차기가 펼쳐졌습니다!”
정혜선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탄성을 터트렸다. 그만큼 동빈의 현란한 발치기는 예술에 가까웠다. 허공으로 몸을 날리면서 연속으로 세 놈을 쓰러트린 것이다. 어떠한 발차기가 적중했는지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만큼 빠르고, 파괴력 또한 대단했다.
“저 학생은 완전 괴물입니다. 수적으로 턱없이 불리하지만 절대 물러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력한 무술 실력으로 상대의 혼을 쏙 빼놓고 있습니다. 마치 초A급 태풍이 휘몰아치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격양된 목소리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초A급이라는 태풍의 강도를 나타내는 단어까지 튀어나왔다.
“저 학생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학생들의 말하는 일진일까요. 아니면 유명한 조직 폭력배… 아, 지금 긴급 속보가 도착한 모양입니다.”
스텝 한 명이 다급하게 달려와 A4 용지 한 장을 전해 주고는 다시 쏜살같이 달려갔다. 정혜선은 스텝이 전해 준 종이를 빠르게 읽고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괴물 학생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혼자서 싸우고 있는 학생은 서울 명성… 아, 아니… M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 모 군으로 확인됐습니다. 예전에는 졸라 빠른 아, 아니… 매우 빠른 고등학생으로 명성을 얻었고. 얼마 전에는 조폭 잡는 고딩으로 유명세를 탔으며, 지금은 학원 주먹의 전설적인 존재로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김 모 군과 싸우고 있는 쪽은 ‘학생 조직’이라는 매우 불량한 단체라고 합니다. 학교 폭력의 온상지나 다름없으며 선량한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하여 김 모 학생은 이를 응징하는 차원에서 나섰다고 합니다.”
정혜선은 열심히 속보 내용을 읽었다. 대부분 진실이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이러한 내용은 누가 전달한 것인가? 방송 스텝들이 작성한 것은 아니었다.
“말씀드리는 순간… 아! 이번에는 나, 날아다닙니다. 엄청난 점프력입니다. 한꺼번에 덤벼드는 놈들은 그대로 뛰어넘었습니다. 그러면서 방심하고 있던 놈들을 공격합니다!”
푸악!
“팔꿈치 공격입니다. 피, 피가 튀고…….”
풀썩…….
“그, 그대로 뻗어 버렸습니다. 한 방 이상을 견디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학생 조직의 반항은 계속됩니다. 저, 저, 저, 무기를 들었습니다. 언제 구해 왔는지 커다란 쇠파이프가… 아! 위험합니다!”
후웅.
“네, 피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매우 편파적인 중계였다. 정혜선은 동빈의 편이 되어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폭력을 미화하는 공정성 시비가 생길 수 있다는 즉각적인 제지가 들어왔다.
“정혜선 씨, 감정의 표출을 자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이고 교육적으로 진행하란 말이야. 이건 스포츠가 아니라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잘 알지?”
“죄송합니다. 감독님. 그런데요, 이 내용은 누가 준 거예요? 아무리 속보라도… ‘졸라’ 같은 은어는 좀 걸러야 하잖아요?”
마이크를 끈 상태였기에 정혜선도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감독이 알아서 편집은 하겠지만, 속보를 읽으면서 상당히 난감했었다.
“미안, 시간이 촉박해서 그랬어. 난 그냥 전달만 했을 뿐이야.”
“누가 보냈는데요?”
“글쎄? 윗선이라고 해야 하나…….”
“……?”
정혜선은 살짝 눈을 치켜떴다. 무슨 소리냐는 반문이다. 최대한 예쁜 척하려는 그녀만의 얼굴 표정이었다.
“에이, 시간 없으니 빨리빨리 갑시다.”
“네, 감독님.”
카메라 감독은 대충대충 넘어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시시콜콜 따지지 말라는 뜻이었기에 정혜선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잠시 쉬면서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잡고 방송 준비를 끝마쳤다.
“스탠바이… 큐!”
“네, 여기는 학생들의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입니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패싸움을, 아니… 감독님, 이거 패싸움 아니잖아요? 양쪽이 다수일 때 패싸움 아닌가요?”
“낸들 알아? 대충 넘어가란 말이야. 시간 없으니까, 곧바로 다시 시작해!”
“네, 여기는 학생들의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입니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성인 조직 폭력배의 싸움 못지않은 치열한 혈전이 펼쳐지고 있으며…….”
정혜선은 아수라장으로 변한 모래밭을 뛰어다니며 취재에 열을 올렸다. 학생 조직은 동빈을 상대하기도 벅찼기에 취재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조금은 여유로워 보이는 인물들이 보였다. 그들은 방송국 중계차 뒤에서 난장판이 된 상황을 엿보고 있었다.
“저놈 진짜로 괴물이었군. 아무리 고등학생들과 싸운다고 해도 100명을 혼자서 감당하다니…….”
이십 대 후반의 남자가 혼잣말하듯 입을 열었다. 175 정도의 신장에 매우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김동빈은 특별 코드를 부여받은 몸이지요. 최악의 기피 인물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친근한 인상의 소유자가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중얼거렸다. 십 대 후반이나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180이 조금 넘는 신장에 호리호리한 체형이었고 쉽게 호감이 가는 타입이었다. 동빈을 매우 잘 알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서윤호, 네놈한테 물어본 거 아니다.”
피식.
친근한 인상의 소유자는 학생 경찰의 리더 서윤호였다. 그는 강인한 인상의 사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뜻 모를 웃음을 지어 보였다. 좋은 의도는 아니라 판단했는지 강인한 인상의 얼굴이 더욱 심하게 일그러졌다.
“내 앞에서 그렇게 웃지 말라고 했지. 회장님의 명령만 아니었으면… 넌 벌써 죽은 목숨이야.”
강인한 인상은 살벌한 기운을 펄펄 풍겼다. 소름이 돋을 정도의 살기가 느껴졌지만, 윤호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정말 섭섭하네요, 선배님. 함부로 웃지도 못합니까?”
윤호는 상대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았다. 시선은 계속 전방을 향한 채, 억울하단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인한 인상의 반응이 당연히 좋을 리 없었다.
“미친 새끼, 뭘 잘했다고 꼬박꼬박 말대꾸나 하고… 내가 왜 너 같은 새끼의 선배야? 네놈에게 맡겨진 일이나 제대로 처리하고 실실 쪼개란 말이야.”
“죄송하지만, 전 모든 임무를 착오 없이 끝마쳤습니다.”
“뭐라고? 이 개념 없는 새끼… 학교 폭력만 강조하라는 회장님의 지시를 어겼잖아. 학생 조직의 정체는 뭐 하러 까발렸고, 김동빈은 왜 이리 좋게 표현한 거지? 네놈도 특별 코드를 부여받은 몸이라 전우애가 발동한 것인가?”
속보를 전해 준 사람이 윤호인 모양이다. 강인한 인상은 속보의 내용을 문제 삼았다.
“회장님은 ‘학교 폭력만’ 강조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학교 폭력을’ 강조하라고 말씀하셨지요. 회장님 앞에서 같이 들은 것 같은데요?”
“어린 노무 새끼가 날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꾸악.
강인한 인상은 왼손으로 윤호의 어깨를 잡았다.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 주려는 행동임이 분명했다. 그는 주먹을 쥔 오른손까지 동시에 치켜들었다.
“우리끼리 싸우자는 겁니까? 회장님께서 친하게 지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윤호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여전히 전방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개놈의 새끼가… 난 너 같은 새끼와 친하게 지낼 마음 없어!”
강인한 인상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윤호의 행동에 자존심이 상했다. 번쩍 치켜든 주먹을 그대로 내지르려 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부스슥.
윤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는 강인한 인상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이미 웃음이 사라진 상태였다.
“아주 잘됐군요. 나도 당신과 친하게 지낼 마음이 전혀 없거든.”
“……!”
강인한 인상은 주먹을 뻗으려는 상태에서 얼어붙었다. 심하게 흔들리는 주먹은 내적 갈등의 표현이었다. 괜히 뻗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이제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주먹만 들고 뭐 하고 계십니까?”
“…….”
강인한 인상은 아무런 대답이나 행동도 하지 못했다. 때려 보라는 뜻처럼 들렸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부우우웅. 부우우웅.
“전화 안 받습니까? 회장님 전화일지도 모르는데?”
“……!”
강인한 인상은 방금 잠에서 깨어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윤호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감돌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진동으로 해 놓은 핸드폰이 연신 울리고 있었다.
“여, 여보세요.”
강인한 인상은 후다닥 전화를 받았다. 전화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얼굴에서는 연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네, 회장님. 작전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강인한 인상을 재빨리 안정을 찾았다. 그러고는 절도 있는 동작과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조직 폭력배들처럼 과장된 동작이 아니라, 군인들처럼 오랫동안 몸에 밴 행동이었다.
“생방송 노출 시간은 3분 20초 정도입니다. 네, 방송국 문제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방송 사고가 오랫동안 지속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계략이 틀림없었고, 이는 대단한 배경이 있어야 가능했다.
“네! 알겠습니다. 돌아가서 곧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꾸벅.
강인한 인상은 깍듯이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고양이 앞의 쥐라는 표현이 적당했다.
피식.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윤호는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금방 얼굴이 붉어진 강인한 인상은, 그러나 처음처럼 욱하며 성질을 부리진 못했다.
“뭐, 뭐가 그리 우습지?”
윤호와 눈길조차 부딪치기 꺼려 하던 강인한 인상은 주변을 괜히 둘러보면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냥 여러모로 재미있군요. 방송 사고를 3분이 넘게 이어 가는 능력에 감탄했습니다. 우리 회장님의 파워가 정말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입니다.”
“이봐, 회장님에 대해 장난스럽게 언급하지 마라.”
“무슨 섭섭한 소리를… 장난치는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그분은 이 나라를 이끌어 가실 분이야. 함부로 말하는 것은 삼가는 게 좋을 거야.”
“하긴, 나처럼 군대에서 엄청난 사고를 친 놈도 무사히 풀려나게 해 주시는 분이시니…….”
윤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느 정도 수긍한다는 표정이었지만, 금세 얼굴이 굳어졌다.
“참, 아까 전화 때문에 말을 다 못 했는데…….”
“……!”
강인한 인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 또한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변했다.
“회장님의 부탁이 있었기에 오늘은 참았습니다만, 나한테 덤비려면 그만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쪽도 특수부대 출신이라 선배라는 호칭을 썼는데… 특수부대에도 등급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조, 좀 전에는 미, 미안했다.”
“참고로… 나한테 큰소리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딱 둘뿐입니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서는 한 명, 지금 모래밭에서 신나게 싸우고 있는 바로 저놈이고. 나보다 훨씬 많은 나이가 많은 사람에서 또 한 명… 그분은 워낙 전설적인 인물로, 저놈의 사부나 다름없는 존재입니다. 당신은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내 말을 알아듣겠습니까, 선배님!”
소심하게 변한 인상은 고개를 빠르게 끄떡였다. 윤호와 똑바로 눈을 보고 말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우리도 많이 쉬었으니 일을 해야지요. 방송 팀에서 촬영 끝내면 선배님이 카메라 테이프 입수하십시오. 인터넷에 올리면 엄청난 반향이 일어날 겁니다. 저는 경찰들을 막으러 가겠습니다. 이러한 구경거리를 금방 끝나게 할 수는 없지요.”
“아, 알았어. 그렇게 하지.”
강인한 인상은 불평 한마디 없이 승낙했다. 예정에는 없던 일이었지만, 순순히 따르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에에에~ 에에엥~.
잠시 후, 경찰차의 사이렌이 울렸다.
그러나 소리만 요란하게 들릴 뿐, 해수욕장 모래밭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찰은 한 명도 없었다. 100 대 1의 싸움은 계속되었고, 방송국 카메라가 그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