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사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한 대한민국.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던 작년의 앙금을 떨쳐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를 벅찬 가슴으로 맞아들였다. 올해는 침체된 경기가 나아지기를,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좋은 사람과 만날 수 있기를… 저마다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차분한 새해 첫날을 보내고 있었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자그만 바람.
그러나 새해 첫날부터 초대형 방송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서울 명성고등학교 근처의 식당.
저녁을 먹던 사람들은 넋 나간 표정으로 TV를 주시했다. 너무나 황당한 장면이라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일기예보가 갑자기 싸움판으로 변한 것이다.
“꺄악! 꺄악! 끼아악~.”
얼짱 기상캐스터 정혜선, 그녀는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다. 치열한 싸움판 중앙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일진에게 휩쓸리기도 했다.
“빨리 김동빈을 잡아!”
우르르.
“꺄악! 난 싸움 못해요~.”
난리, 난리, 이런 난리가 없었다. 100명에 가까운 험상궂은 학생들이 단 한 명을 잡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머릿수 면에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 그러나 홀로 놈들을 상대하는 동빈의 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 마리 야수가 되어 놈들의 정중앙을 헤집고 다녔다.
황황황황.
동빈은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
푸악!
강력한 앞차기로 한 놈을 고꾸라트리고 곧바로 몸을 띄웠다. 측면에서 달려드는 놈의 공격을 피한 것이다. 그러고는 허공에서 몸을 틀어 찍어차기를 시도했다.
빠각!
거북한 타격음과 함께 또 한 놈이 쓰러졌다.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곧장 돌려차기 동작으로 이어졌고, 뒤에서 달려들던 놈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쩌억!
정면에서 달려오는 놈을 팔꿈치로 그대로 찍어 버렸다. 이마가 터진 놈은 비틀거리다 고꾸라졌다.
“씨발! 겁먹지 말고 덤벼! 놈은 겨우 한 명이야!”
“김동빈, 이 씨발새끼!”
학생 조직은 욕설과 고함을 질러 댔지만, 동빈은 묵묵히 놈들을 처리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살벌한 공격을 퍼붓는 장면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싸움을 위해 태어난 괴물… 어처구니없는 숫자의 대결이었지만 동빈이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파파팍.
연달아 작렬하는 동빈의 펀치!
두 다리의 움직임은 현란하기 그지없었고, 주먹의 파괴력 또한 엄청났다. 코피가 터지고 이빨이 날아다니고… 순간적인 스피드와 파괴력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다. 온몸 전체가 무기인 셈이었다.
빠악.
동빈은 뒤에서 덮치는 놈을 뒤통수로 받아 버렸다. 그러고는 지체 없이 뒤돌려차기를 시도했다.
푸악!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맞은 놈은 고개가 획 돌아갔다. 어찌나 파괴력이 강했는지 몸까지 함께 돌았고, 반 바퀴 정도 돌다가 그대로 모래사장에 고꾸라졌다.
“이런! 개새끼!”
파파팟.
잔뜩 열 받은 놈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엄청난 체구를 가진 놈이었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서 동빈을 상대하겠다는 의도였다.
파팟.
동빈도 빠르게 반응했다. 놈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몸을 날린 것이다. 놈과 정면으로 부딪치려는 의도인가? 동빈은 속도를 죽이지 않고 더욱 속력을 높였다.
“우와아! 김동빈 새끼는 내가 잡는다!”
“…….”
둘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거의 충돌 직전의 상황. 덩치 면에서는 동빈이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바로 그때였다.
부웅.
“……!”
엄청난 탄력으로 점프를 한 동빈은 새가 날갯짓하며 오르듯 비스듬히 솟아오른 후, 무릎을 끌어 올려 놈의 얼굴을 그대로 강타했다.
퍼억!
묵직한 소리와 함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거대한 덩치가 저 멀리 날아가는 장관을 연출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가 동빈의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액션 영화도 이러한 타이밍은 맞추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스팟.
갑자기 화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등장하는 뜬금없는 화면. 동빈의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은 사라지고, 얼룩말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이제야 사고 장면을 커트해 냈지만, 이미 상당한 시간 동안 노출되고 말았다.
저녁을 먹던 사람들은 아직도 멍하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한참 후에야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는데…….
“저, 저게 뭐지? 새로운 프로그램 예고인가?”
“모… 몰래 카메라 아니야?”
얼마나 황당했으면 방송 사고라는 것조차 까먹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구석진 자리에 있는 테이블만은 예외였다.
“장군님,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구석진 테이블의 손님은 장군과 송 교관이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동빈을 여기서 보게 된 것이다. 그것도 생방송을 통해서… 처음에는 어이없는 반응이었지만, 그들은 이내 차분함을 되찾았다.
“쯧쯧쯧… 아주 대형 사고를 쳤군요.”
송 교관은 혀끝을 차며 중얼거렸다. 생방송으로 전국에 물의를 일으켰으니 초대형 사고라 할 수 있었다.
“송 교관님,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다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장군은 납득할 수 없는 뭔가를 발견했다. 그렇기에 확인 차 송 교관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물론 송 교관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생방송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번 건은 너무 심하군요. 사고 장면은 길어야 10초를 넘기기 힘든데… 동빈이의 경우는 꽤나 오래 방송되었습니다.”
“글쎄요? 현장에서 늦게 대응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송 교관은 별로 의심스럽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TV 프로그램에나 관심이 많았지 제작 과정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무한 그였다.”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방송국에서 커트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그런가요?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왕 방송 탔으면 오래 나오는 게 좋지 않습니까?”
“…….”
송 교관은 여전히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기에 황당한 대답으로 장군의 말문까지 막히게 만들었다.
“전 먼저 일어나야겠습니다. 보좌관과 대책을 의논해야 할 것 같군요.”
장군은 식사도 끝마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측근인 보좌관을 불러서 앞으로의 대응 방향을 세우려는 것이다.
“같이 일어나시죠. 저도 밥맛이 없군요.”
송 교관도 수저를 놓고 장군을 따라 일어섰다. 엄청난 난리가 났는데 혼자서 밥 먹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잠시 후, 장군과 송 교관은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갔다.
한편, 대전에 있는 주철의 머리는 상당히 복잡했다.
밥풀이 튄 게 문제가 아니었다. 저녁 식사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초원을 질주하는 얼룩말들을 보면서 깜깜한 앞날을 걱정했다.
“졸라…….”
주철은 조용히 밥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 대책이 서지 않았다. 이러한 초대형 사고가 벌어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예상한 적이 없었다.
딩딩딩딩. 딩딩딩딩.
“내가 미친다…….”
주철은 휴대폰 소리를 듣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딩딩딩딩…….
딸깍.
“휴~ 여보세요.”
주철은 길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충격의 여파가 남아 있는지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주철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마침 전화 잘했다.”
석진의 다급한 음성이 들렸다. 주철도 석진에게 막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
-방송에 나온 사람, 동빈이 맞지?
“너도 TV 봤구나. 어떻게 하면 좋겠냐?”
-야,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냐?
“나도 방법이 없으니까 이러지…….”
사고가 워낙 컸다.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되었으니,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 없었다. 주철이나 석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우선은 만나서 대책을 강구해 보자. 너 지금 어디 있어?
“당연히 할아버지 집이지.”
-어떻게 가야 하는데?
“아무 택시나 타고 양 회장 전통 가옥으로 가자고 그래.”
-그러면 다 아냐?
석진은 뚱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대전 지역에 양 회장이나 전통 가옥이 한두 개뿐이겠는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반문이었지만, 주철의 대답은 간단했다.
“응.”
-…….
모두 다 안다고 하는데 뭐라고 반박할 것인가? 석진은 아무나 붙잡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우선은 주철과 만나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난 지금 떠나니까, 너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나 알아봐라.
“알았다. 최대한 빨리 와라.”
딸깍.
주철은 핸드폰을 끊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컴퓨터를 하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전원이 켜진 상태였기에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
“이거 인터넷은 난리도 아닐 텐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터넷 아니던가!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 나고, 멀쩡한 사람 병신 만드는 것도 금방이고… 주철은 인터넷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만 떠올랐다.
“젠장!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지.”
딸깍.
주철은 초조한 표정으로 인터넷 아이콘을 클릭한 후, 즐겨 보는 포털 사이트로 재빨리 이동했다.
“에이… 씨!”
불안한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포털 사이트 뉴스의 톱을 장식한 것은 물론이고, 실시간 검색도 당연히 1위였다. ‘방송 사고’, ‘조폭 잡는 고딩’ 등 비슷한 검색어까지 합치면 1~5위까지 휩쓸어 버렸다.
“미친다.”
주철은 메인 뉴스부터 클릭했다. 다행히 방송 사고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누가 싸웠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었다.
“동빈의 존재를 아는 놈들이 문젠데…….”
주철은 ‘방송 사고’라는 제목의 블로그로 들어갔다. 역시나 방송 사고보다는 누가 싸웠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오늘따라 주철의 불안한 예상이 계속 적중한 것이다.
“젠장! 어떤 새끼가 실명을 올렸어!”
밑에 달린 덧글은 장난이 아니었다. 동빈의 이름뿐만 아니라 과거의 경력까지 화려하게 적혀 있었다.
-우와! 명성고 김동빈 떴다! 근데, 누구랑 싸우는 거지?
-신난다. 오늘 일진 새끼들 다 죽었어!
-너무 오버하는군요. 일진들이 100명 가까이 되는 것 같은데, 아무리 김동빈이라도 쪽수에서 너무 밀립니다. 아무래도 이번은 매우 힘들 듯합니다.
-김동빈의 별명이 ‘조폭 잡는 고딩’입니다. 일진 놈들이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조폭 잡는 동영상 링크 걸었으니 참고하시길.
-카카카. 김동빈은 제가 키웠습니다.
-옜다, 관심.
동빈에 관한 덧글은 계속 늘어났다. 그러고는 블로그 창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빙글빙글.
마우스를 움직여도 반응이 없고 완전히 먹통이 되었다. 접속이 폭주하여 서버가 다운된 것이 분명했다.
“으아~. 나도 모르겠다.”
주철은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푸념만 나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