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사고
주철은 으리으리한 기와집 안으로 들어섰다. 국가 문화재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규모가 있는 전통 주택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중년의 남자가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철의 모습을 보고는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셨어요, 집사님.”
“저야 늘 그렇지요. 춥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주철은 집사의 뒤를 따랐다. 넓은 앞마당을 지나자 안채 건물이 보였다. 집사는 고풍스러운 문양으로 단장한 대청마루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회장님.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어서 들어오너라.”
노인의 중후한 음성이 들렸다. 주철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순간이었다.
“들어가시지요, 도련님.”
“네, 수고하셨습니다.”
집사는 추위를 막기 위해 설치한 문을 열어 주었다. 주철은 가벼운 묵례를 하고는 대청마루 내부로 들어섰다.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오느라고 수고했다.”
주철의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깐깐한 외모는 아니었다. 주철의 잘생긴 얼굴은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인 것 같았다. 멋지게 나이 든 어르신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화초가 많이 늘었네요?”
“무엇이든 정성을 들이면 된단다. 요즘은 이놈들 키우는 낙으로 살고 있거든.”
대청마루는 그야말로 화초들의 전시장이었다. 주철은 모르지만 엄청난 금액을 자랑하는 난들도 많았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대청마루까지 개조한 것이었다.
“화초보다 할아버지가 건강해서 다행이에요.”
“철들었구나. 그런 말까지 할 줄 알고…….”
노인은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아부성 발언이란 것을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이번에는 며칠이나 묵고 갈 것이냐?”
“오래 묵고 싶지만 아버지 때문에…….”
주철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약속한 일주일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보는 게 죄란 말이냐? 내가 애비한테 직접 전화하겠다.”
노인은 지체 없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단축키를 눌러 아들과의 통화를 시도했다.
“여보세요. 애비다.”
손자를 대할 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들에게는 매우 차가운 음성으로 전화 통화를 했다.
“주철이는 내가 며칠 더 데리고 있겠다. 주철이가 수험생인 거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며칠 더 보겠다는 거 아니냐? 뭐? 과외?”
또 과외가 주철의 발목을 잡았다. 할아버지는 주철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할아버지 난 과외 싫어요.”
주철은 매우 작은 목소리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고집을 이길 사람은 할아버지밖에 없었다.
“억지로 시킬 수 없는 게 공부다. 주철이는 나와 며칠 더 있을 것이니 그렇게 알거라. 끊는다.”
딸각.
역시 부전자전인가? 대책 없는 주철이 아버지 앞에서는 꼼짝을 못 하듯, 천하의 양 회장도 그의 아버지를 당해 내진 못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고맙긴… 그나저나 넌 친구도 없냐? 오늘도 혼자 온 것이냐?”
할아버지는 손자가 왕따가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한 번도 친구를 데려온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친구들과 왔어요. 그것도 2명이나 함께요.”
“그래? 어디 있는 것이냐?”
“잠시 볼일이 있다고 나갔어요. 밤이 되어야 올 겁니다.”
“알겠다. 어떤 친구들인지 기대가 되는구나. 참, 밥은 먹었냐?”
“네, 간단히 먹었어요. 할아버지는 식사하셨어요?”
“요즘은 통 입맛이 없어서…….”
“입맛이 없어도 드세요. 밥이 보약이라고 하잖아요.”
“허허허… 그건 할아비가 너에게 자주 했던 말이지. 어렸을 때는 골골했던 놈이 이렇게 잘 컸구나.”
할아버지와 손자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누가 보아도 다정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