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빈은 꽤나 먼 곳까지 이동했다.
도시의 삭막한 분위기와 전혀 다른 농촌 마을. 매우 평화롭게 보였지만 이곳에도 일진이란 놈들은 존재했다.
“씨발! 튀기 새끼들 팬 게 뭐가 잘못이야?”
“…….”
동빈은 열변을 토하는 일진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좋은 내용이라 귀담아듣는 것이 아니었다.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반박을 못 하고 있었다.
“좆도,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야. 튀기 새끼들은 이 땅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돼. 내 말 알아듣겠어?”
“어이?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대한민국 사람이지. 어머니가 외국인이라고 쫓아내야 된다고? 너 제정신이니?”
“이 씨발놈아! 너 매국노지? 그러니까 튀기 새끼들 편드는 거 아니야?”
“우와! 진짜, 미치겠다.”
이처럼 답답할 때가 있었던가? 동빈은 복장을 치면서 끓어오르는 분을 삭였다.
“씨발! 답답한 건 나야. 나 같은 애국주의자를 뭐로 보고 말이야. 김동빈, 네놈이 날 패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왔어?”
“어이? 혼혈인을 때리는 게 애국이냐?”
“당연하지 이 씨발놈아. 그래서 난 담배도 국산만 피워!”
“학생이 담배 피우는 게 자랑이야? 그럼 술은?”
“물론, 소주만 마신다! 남자가 술, 담배 좀 하는 게 뭐가 대수야!”
“참, 편하게 세상 사는 놈이네?”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서 믿는 놈이었다. 세상이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놈이거나, 잘못된 신념으로 사고가 굳어진 놈들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만 튀기 새끼들 괴롭힌 거 아니야. 다른 놈들도 똑같이 그랬다고. 나를 잡으려면 다른 놈부터 조져!”
“다른 애들보다 네놈이 가장 문제야. 생김새가 다르다고 앞장서서 먼저 왕따시키고, 함께 어울리려는 애들까지 위협하고… 너 때문에 가출한 애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그 부모님들의 심정을 네놈이 알까 모르겠다.”
“씨발, 지들이 못났으니까 가출하는 거지! 그러니 튀기 새끼들은 안 된다니까!”
“넌 정말 말로 해서는 진짜 안 되겠다. 개선의 여지가 확실히 없는 거지?”
“씨발! 잘못한 게 있어야, 개선을 할 것 아니야!”
동빈이 한 발자국 다가서자 놈은 두 발자국 다가섰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잠시 후.
예정된 결과가 벌어졌다.
용감했던 놈은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 있었다. 동빈이 얼굴만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 같았다. 붓고, 찢기고, 터진 얼굴은 본래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오늘은 가벼운 경고만 한 거다. 다음에 걸리면 진짜로 얼굴을 바꿔 버린다.”
“…….”
그렇게 당당했던 놈이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동빈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이번 달 안에 너 때문에 가출한 애들 모두 찾아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아. 알았지?”
놈은 매우 힘들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정한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젠 이런 놈들까지 상대해야 하나.”
동빈은 푸념하듯 중얼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그러고는 버스 정류장까지 달려가려 했는데, 바로 그때였다.
전화 왔어요. 전화 받으세요.
“이거… 불안한데?”
주철의 전화인가?
동빈은 살며시 발신자 번호부터 살펴보았다.
“누구지?”
처음 보는 번호였다.
받을까 말까? 주철이 꼼수를 쓸 수도 있기에 동빈이 고민하는 것이었다.
전화 왔어요. 전화…….
딸깍.
“여보세요?”
동빈은 자그만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주철의 목소리가 들리면 냅다 전화를 끊을 심산이었다.
-김동빈?
젊은 남자의 음성이었지만 주철은 아니었다. 동빈은 서둘러 본래의 목소리를 회복했다.
“누구신지?”
-김동빈이 맞군. 목소리가 이상해서 긴가민가했는데.
“제가 김동빈 맞습니다. 그쪽은 어떻게 되시는지?”
-반갑다. 나 학생 조직의 리더 강기준이다. 크리스마스 때 봤으니, 벌써 잊지는 않았겠지?
“……!”
동빈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조금은 의외라는 뜻이었다. 학생 조직의 우두머리가 직접 전화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소문을 들으니 대전에 있다고?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군. 사실 그 도전장은 내가 보낸 거야.
“…….”
학생 조직의 우두머리 강기준이 도전장을 보낸 장본인이었다. 이번 싸움은 진짜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