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7화 (178/224)

송구영신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집 안에 진동을 했다.

이제야 파티 분위기가 좀 나는 것 같다. 석진은 음식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주철도 나름대로 도우려 노력했다.

“야, 야, 야! 귀찮게 이런 거는 뭐 하러 만들어. 제사도 아닌데 동그랑땡에 생선전… 부침개… 기름 냄새 때문에 속이 느글거려 죽겠다.”

“그러게 속이 느글거리면 그만 좀 집어 먹을래?”

“에이… 씨! 내가 몇 개나 먹었다고!”

주철은 생선전을 뒤집다 말고 발끈했다. 매우 억울하다는 뜻이었지만 솔직히 많이 집어 먹긴 집어 먹었다.

“네 옆에 있는 바구니를 봐라. 한참이나 만들었는데 전이나 부침개가 몇 개나 남아 있냐?”

“너무하네… 배고픈 게 죄냐?”

“맛있게 먹으면 누가 뭐래? 맛이 어떠니, 이런 건 왜 만드니, 구시렁거리면서 먹으니까 그렇지.”

주철은 입을 쭉 내밀고는 뭐라고 중얼거렸다. 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는 모습이었다.

“그만 좀 해라. 너 요즘 들어 불평이 더 심한 것 같다. 동빈이가 너보다 더 인기 좋은 것 같아서 삐친 거냐?”

“에이… 씨! 누가 삐쳤다고 그래? 제비족 할 거 아니면 연상에게 인기 많은 거 다 소용없어. 강남의 양주철 아직 안 죽었단 말이지.”

아무도 죽었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단지 불평이 많다고 말했을 뿐인데, 주철은 눈에 쌍심지까지 켜며 역정을 냈다.

“알았으니까, 음식 만드는 일에 신경 좀 써 줘라. 아직 잡채도 만들어야 하고, 홍어회도 무쳐야 하고, 할 일이 쌓였다.”

“석진아, 메뉴까지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우리가 집들이하냐? 간단히 케이크나 샀으면 됐잖아? 좀 약하다 싶으면 중국 요리 좀 시키면 되고 말이야, 이게 뭐니, 이게?”

조촐한 파티치고는 음식이 너무 과분했다. 출장 뷔페를 불렀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음식은 정성이야. 이 정도는 돼야 여자들에게 점수를 얻지.”

“어라? 이놈 좀 보게?”

“뭘 그리 놀라?”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수진이는 벌써 잊은 게냐? 다른 여자는 싫다고 난리 칠 때는 언제고?”

주철은 매우 의심스러운 눈으로 석진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믿을 남자 하나도 없다는 눈빛이었다.

“난 그런 뜻 전혀 없거든. 이왕 파티를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말이다.”

“어련하시겠냐? 심심해서 그냥 해 본 소리다.”

“그렇게 심심하면… 옜다, 나물하고 채소나 다듬어라.”

“야, 야, 야! 뭐 이리도 다듬을 게 많아?”

쓸데없는 장난의 결과는 추가적인 일거리였다. 주철은 수북이 쌓인 나물과 채소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 부치는 것도 지겨워 죽겠는데… 일할 의욕이 뚝 떨어진 표정이었다.

“그런데 주철아, 동빈이는 잘하고 있을까?”

석진은 은근슬쩍 동빈의 안부를 물었다.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 대놓고 묻지는 않았다.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그놈이 달리 괴물이냐.”

“아무리 괴물이라도 상대가 70명이 넘는다며?”

동빈이 괴물인 것은 석진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머릿수부터 달랐다. 동빈을 너무 믿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내가 장담하건대, 석진이 네가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빨리 끝낼걸?”

“설마…….”

“그럼, 우리 내기할까?”

“내기?”

주철의 제안에 석진은 귀가 솔깃해졌다. 그러고는 호기심 강한 눈으로 주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석진이, 네가 음식을 더 빨리 만드는지, 아니면 동빈이가 먼저 싸움 끝내고 돌아오는지. 어때, 자신 있어?”

“물론, 자신 있지. 그런데 내가 이기면 어떻게 되는 거야?”

석진은 흔쾌히 내기를 받아들였다.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는지 뒤따라오는 보상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어떻게 되긴…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봐.”

“정말?”

“당근이지. 특별히 원하는 것이라도 있냐?”

주철의 자신감은 상당했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태도였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석진은 재빨리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저번에 준 호텔 뷔페권 말이야, 수진이도 데려가게 한 장만 더 줄 수 있어?”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구만. 당연히 가능하지.”

주철은 과장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 뷔페권 정도는 문제없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석진이 졌을 때의 조건을 정하는 것이 순서였다.

“혹시 말이야, 내가 지면 뭘 해 주면 되지?”

“너한테는 바라는 거 없다.”

조금은 뜻밖이다. 주철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겠다는 것인가? 이러한 경우는 매우 흔치 않은 터라 석진은 꽤나 놀란 듯 물었다.

“저, 정말?”

석진이 반문하는 것도 당연했다. 주철이 아무리 부자라도 함부로 선심을 베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당연하지. 내가 친구한테 구라를 치겠냐?”

“고맙다. 친구야.”

“고맙긴…….”

주철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감돌았다.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소리였고, 주철의 본색은 곧바로 드러났다.

“석진아, 열심히 음식 만들어라. 난 조금 쉬어야겠거든.”

툭툭.

주철은 석진의 어깨를 다독거리고 주방을 벗어나려 했다. 깜짝 놀란 석진은 주철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야, 어디를 들어가는 거야? 음식은 마저 만들어야지?”

“쯧쯧쯧. 내기는 공평해야 하는 거야. 동빈이도 혼자 싸우고 있잖아. 그러니 음식도 너 혼자 만들어야지.”

“……!”

석진은 이제야 주철의 의도를 눈치 챘다. 완전히 뒤통수 맞은 것이다. 주철의 도움 없이 음식을 만들기는 힘들었다. 그러면 내기도 자연스럽게 주철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이건 불공평해! 너도 간접적으로 동빈이를 도왔잖아?”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거야. 이만큼 부침개 만들었으니까, 너도 충분히 도운 셈이거든.”

석진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주철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방을 나섰는데, 그 순간이었다.

딩동딩동.

초인종 소리에 주철이 걸음을 멈추었다.

“석진이, 넌 계속 음식 만들어라. 한가한 내가 나가 볼게.”

“…….”

주철은 발걸음도 가볍게 출입문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응, 미라야. 지혜하고 가영이도 왔어.”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인가? 남는 시간 동안 뭐 하나 했는데,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여자들과 수다를 떨면 시간이 금방 지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털컹.

끼이익.

“여기까지 웬일로 행차를 하셨습니까?”

주철은 환한 웃음을 머금고 문을 열었다. 재미있게 놀자는 의미였지만 그런 주철의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웬일은, 음식 만드는 거 도와주려고 왔지. 그동안 우리가 무심했던 것 같아서 말이야.”

“에이… 씨!”

주철은 여자들의 도움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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