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 (174/224)

동빈 일행이 머물고 있는 숙소.

오늘은 웬일로 주철과 석진이 일찍 돌아와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스키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시간이었다. 과일을 먹으면서 평상 위에 있는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진아, 좀 더 아래로 내려봐.”

“다 내린 거야.”

“그럼 다음 페이지.”

주철이 코치를 했고 석진은 마우스를 움직였다. 석진이 왼쪽 마우스를 클릭하자 화면이 바뀌었다.

“중간에 있는 것 좀 열어 봐.”

“이거?”

“아니, 그 위에… 1740번.”

“1740번이라…….”

똑각.

게시물을 클릭하니 다시 그 안의 내용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주철과 석진은 차분하게 게시물 내용을 살폈다.

“이 새끼들… 진짜로 작정을 했네?”

“그러게…….”

주철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석진이 또한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이미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확신하는 듯했다.

“예상을 못 한 건 아니지만 일이 점점 커지는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동빈이 혼자 감당하긴 힘들 텐데?”

“이이… 씨! 하루도 편할 날이 없구만!”

주철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골치가 많이 아프다는 표현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석진도 머리가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게시물 상단의 아이콘을 클릭하여 메인 화면으로 복귀했다. 그러고는 노트북에서 시선을 거둬들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았다.

철컹.

현관에서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열쇠를 가진 사람. 그러면 누군지 뻔한 상황이었다. 주철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물었다.

“동빈이냐?”

“응.”

출입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동빈이 모습을 드러냈다.

옷 곳곳에 얼룩진 핏자국… 무엇을 하다 들어왔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기동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됐거든. 그런데 뭘 보고 있었냐?”

동빈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친구들을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굉장히 흥미로운 화면일 것이라는 상상이 들었다.

“설마 너희들…….”

파다닥.

동빈은 재빨리 뛰어가 주철과 석진이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호기심 강한 표정으로 화면을 살폈는데…….

“에이… 이건 또 뭐냐?”

동빈의 예상처럼 그렇고 그런 화면은 아니었다. 사실, 주철과 석진은 그 부분에 있어선 이미 예전에 마스터해 놓았다. 그러니 스키장까지 와서 그런 사이트에 접속할 리 없었다.

“뭘 기대했기에 얼굴이 그러냐?”

“뭐, 뭐가?”

동빈은 시치미를 뚝 뗐다. 주철의 눈총을 외면하면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거, 어디 홈페이지야? 굉장히 근사한데?”

동빈은 노트북 화면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멋진 이미지와 화려한 그래픽! 관심을 돌리려는 꼼수가 아니라 정말 잘 만들어진 홈페이지였다.

“어디 홈페이진지 궁금하냐?”

“물론이지. 고등학생들의 모임 같은데?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것 같고… 혹시 주철이 네가 결성한 모임이냐?”

“내 건 아니고, 나도 한때는 여기 회원이었지. 그리고 화면에 드러나는 것처럼 좋은 일을 하지는 않아.”

“……?”

동빈은 열심히 눈만 깜박였다. 중요한 힌트를 듣고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뭐, 뭐야… 이렇게 말했는데도 진짜 모르겠냐?”

동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용력에 매우 취약한 동빈. 돌려서 말하는 사람이 더 답답한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니 동빈에게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건 전국 연합의 홈페이지야. 알간?”

“전국 연합! 정말이야?”

“당연히 정말이지. 쓸데없이 거짓말을 왜 하겠냐?”

일진들의 최대 조직이라 할 수 있은 전국 연합. 동빈이 선전포고를 했기에 전쟁 중이나 마찬가지인 집단이었다.

“주철이, 너 재주도 좋다. 아무나 입장할 수 없는데, 어떻게 들어갔냐?”

“그냥 옛날 ID하고 비밀 번호 쳤는데 성공했어. 요즘은 관리가 허술한 모양이야.”

“호기심을 매우 자극하기는 하지만… 왜 훔쳐보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내 홈페이지도 이렇게 꾸며 보라는 충고냐?”

동빈은 몰래 전국 연합의 홈페이지를 보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 별로 상종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라, 인터넷에서 보는 것도 싫다는 반응이었다. 다만, 홈페이지의 여러 가지 기능들과 멋들어진 디자인엔 관심이 있었다.

“지금 홈페이지 꾸미는 게 문제가 아니거든.”

“기분 나쁘게 내 것보다 좋아 보이잖아. 이참에 말이야, 나도 카페 리뉴얼이나 해 볼까?”

“야, 야, 야! 난 지금 심각하거든. 마침내 우리가 염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단 말이다.”

“뭐가 염려했던 상황인데? 이야! 이렇게 괜찮은 사진들은 어떻게 구하냐? 저작권이 있으니 함부로 쓸 수는 없잖아?”

동빈은 주철의 충고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간간이 전국 연합의 홈페이지에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제발 내 말 좀 들어라. 지금 석진이와 나는 이거 때문에 골치가 매우 아프다고!”

“그러니까 뭐가 골치 아픈데? 말을 해야 알 것 아니야!”

“핵심을 먼저 말하면, 너 때문에 우리 계획에 커다란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그래, 바로 너 때문에!”

“……?”

이젠 직설적으로 말해도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못 했다.

따지고 보면 동빈만의 잘못은 아니다. 동빈 그리고 주철과 석진은 따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가끔 동빈이가 스키장을 찾기는 했지만 일진들과 싸우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결국 학생 연합과 동빈 간의 대결이라 주철과 석진은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지역적으로 놈들이 단합하기 시작했어. 전국 연합과 학생 조직이 대놓고 손잡기 시작했단 말이지.”

“난 상관 안 하니까 그냥 뭉치라고 놔둬.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나도 편한 거 아닌가?”

동빈은 두 조직의 단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수고를 덜었다며 반색하는 분위기였다.

“이건 간단히 넘어갈 일이 아니야. 여태까지는 전국 연합이나 학생 조직을 따로 상대하면 편했어. 두 조직이 뭉친 것이 얼마나 심각한 뜻인지 아냐? 이제는 네가 쫓기는 신세가 되었단 말이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쫓겨?”

“놈들이 스키장으로 쳐들어오고 있거든. 네가 이 근처에 있는 게 자주 목격되었나 봐. 단단히 벼르는 것을 보니… 이번에 싸워야 할 놈들은 머릿수부터가 장난 아닐 거야.”

“잘됐네? 그냥 앉아 있어도 놈들이 온다는 말이지?”

동빈의 생각은 너무 긍정적으로 흘렀다. 덩치가 엄청난 상대와 싸우면서 때릴 곳이 많겠다고 좋아하는 경우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동빈아, 제발 단순하게만 생각하지 마. 여자들이 너 싸우는 거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냐?”

“뭐가? 군인하고 일진하고 싸우면 안 돼?”

“또 단순해진다! 조폭 잡는 고딩 김동빈이라는, 너의 정체가 밝혀지는 게 문제라고. 나이하고 직업까지 속였으니 여자들이 용서해 줄 것 같으냐?”

“어허∼. 이건 또 문제군.”

동빈도 조금씩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연상의 여자들 때문에 기분이 한창 좋은 상태였는데… 까닥하면 영웅에서 파렴치범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게다가 놈들은 D-day를 12월 31일, 아주 엿 같은 날로 잡았단 말이야. 올해 안에 김동빈이라는 괴물을 처리한다나 어쩐다나.”

“어라? 그날은 여자 애들하고 파티하기로 한 날이잖아?”

“그래, 바로 그거야! 한 해를 마감하는 아주 귀중한 날, 여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모자란데… 반갑지도 않은 일진 새끼들하고 대판 싸워야 한다는 말이지. 왜 큰일 났는지 이제야 감이 잡히는가?”

동빈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과 싸우는 것은 걱정되지 않았다. 여자들에게 거짓말한 것이 들통 나는 게 가장 큰 근심거리였다.

“좋아, 동빈이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으니 대책을 세워 보자. 석진아, 게시판에 답변 달린 거 조사했지.”

“응…….”

동빈과 주철이 대화를 나눌 동안, 석진은 게시판 글을 차분히 검색하고 있었다.

“대충 몇 명이나 몰려올 것 같냐?”

“여기와 가까운 놈들이 주축이 되었어.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 지역 일진들인데… 대충 봐도 100명은 넘을 것 같은데?”

“뭐라, 100명!”

주철은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숫자 때문이었다. 땅 위에 있는 어떠한 생명체도 한꺼번에 인간 100명과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동빈도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너희들은 그냥 여자들하고 파티해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싸움은 나 혼자 할게.”

숫자를 잘못 들은 것인가? 동빈은 여전히 천하태평이었다. 혼자서 일진 100명과 싸우겠다는 망발을 서슴없이 던진 것이다. 주철이 화가 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완전히 미쳤구만! 100명이 누구 이름인지 알아? 어떻게 혼자 싸우겠다고 큰소리치는 거야!”

주철은 침까지 튀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석진까지 합세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참이었는데, 석진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주철아…….”

“무슨 일이야? 숫자가 좀 줄었어?”

“아니… 그 반대 같은데…….”

“…….”

반색했던 주철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이보다 더 나빠질 상황이 어디 있다고…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건 좀 의왼데 말이야, 학생 경찰까지 동빈을 잡겠다고 나섰어. 지금 방금 공지로 떴어.”

“학생 경찰? 그놈들은 갑자기 총 맞았나?”

주철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학생 경찰은 전국 연합이나 학생 조직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오히려 동빈과 뜻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동빈을 잡겠다고 나선 것인가!

“동빈이, 너 사실대로 말해. 사고 친 거 있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었다. 주철은 동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발뺌해도 소용없다는 뜻이었다.

“소식 한번 빠르네? 방금 손봐 주고 왔는데…….”

인터넷의 위력은 엄청났다. 유상현과 싸운 소문이 벌써 인터넷에 오른 것이다. 물론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 일부라고 하지만 동빈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내가 미친다. 학생 경찰은 왜 건드렸어? 진짜 죽고 싶어 환장을 했니, 응?”

“무슨 소리! 날 잡겠다는 놈들이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거지!”

“말이나 못하면…….”

예전의 동빈이 아니었다. 이제 말싸움도 수준급의 단계로 올라선 것이다.

“동빈아.”

“왜 갑자기 목소리는 깔고 난리야?”

저음으로 깔리는 주철의 음성에 동빈이 흠칫했다. 분위기를 봐서는 뭔가 극단의 조치가 있을 것 같았다.

“너희 아버지에게 전화해라.”

“우리 아버지?”

“그래, 너희 아버지.”

장난 같지는 않다. 주철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전화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무슨 일로?”

“지금 당장 전화해서 말이야… 군대 좀 보내 달라고 부탁 좀 해라. 1개 소대 정도만 어떻게 말해 봐라. 물론 무장은 필수겠지? 자! 빨리 전화해.”

“…….”

주철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얼른 장군에게 전화하라고 자신의 핸드폰까지 내밀었다. 그러나 동빈의 전투력이 1개 중대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다. 물론 완전 무장한 상태의 전투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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